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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주재-157화 (156/1,000)

157화. 낙신족

한편, 양홍은 사색이 되어 자신보다 훨씬 뛰어난 목진을 바라보며 주먹을 꽉 쥐고 온몸을 파르르 떨었다.

목진을 억누를 수 있는 사람은 정녕 기현 뿐이란 말인가?

목규와 빙청도 이내 가볍게 한숨을 쉬었는데 그중 힘겨루기를 좋아하는 목규마저도 목진을 건드리고 싶지 않았다. 자신은 목진이 받아낸 이현통의 첫번째 공격조차 막을 수 없을 것 같았다.

“이럴 수가…….”

서청청은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하다가 이내 창백해졌고 몸을 파르르 떨며 잔뜩 겁을 먹었다.

하늘 위에 떠 있던 목진은 우레와 같은 박수 소리에 머리가 핑 돌더니 휘청거리다가 의식을 잃었다.

검은색 치마를 입은 소녀가 쏜살같이 달려와 목진을 받았다. 낙리는 걱정 어린 눈빛으로 사색이 된 목진을 바라보다가 이현통한테 눈길을 돌렸다.

“절대 널 가만두지 않을 거야.”

이현통은 애써 웃어봤지만 낙리는 그에게 더는 눈길을 주지 않았고 목진과 함께 빛이 되어 사라졌다.

영투장 격전은 끝내 그 화려한 막을 내렸고 사람들은 아수라장이 된 현장을 바라보며 혀를 끌끌 찼다. 이렇게 목진은 다시 한번 북창령원에서 이름을 날렸다.

융천경 초기의 실력으로 이현통의 공격을 두 번이나 막아내고 이현통이 피를 볼 만큼 파괴력 있는 공격을 선보인 목진에게 노참들도 탄복했다. 능력이든 수단이든 어느 하나 흠잡을 데가 없었다.

목진은 아직 이현통을 상대할 충분한 능력은 없지만 앞으로 얼마나 성장할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었다. 곧 천방 3위 안에 목진이 이름을 올릴 가능성도 충분했다.

이렇게 대결은 끝났으나 이로 인해 생긴 여파는 오랫동안 가시지 않았다. 오늘을 기회로 이곳 북창령원에서 목진을 모르는 사람은 더는 없을 것이다.

* * *

낙리와 함께 집에 돌아온 목진은 며칠간 방에서 나오지 않고 휴식을 취했다. 류경산과의 대결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어서 반나절 만에 기력을 회복하였으나 이현통과의 대결이 불어온 엄청난 여파 때문에 집에서 한 발자국도 나서지 않았다.

그러나 이현통과의 대결이 결코 나쁜 점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영력으로 몸을 휘감고 조용히 앉아있던 목진의 숨소리가 전보다 묵직하고 평온해졌다.

이번에 이현통을 막는 데에 성공했지만, 그의 실력이 얼마나 좋은지 잘 알았고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도 감이 잡혔다.

이현통과 세 번의 공격을 하자고 약속하지 않았으면 목진은 구유작의 힘을 빌려야만 했다. 그런데 이는 절대 목진이 원하는 바가 아니었다.

이현통은 두 사람 사이를 갈라놓으려고 했지만 좋은 사람이라 그가 싫지 않았다. 게다가 이런 상대와의 대결에서 다른 무언가의 힘을 빌고 싶지 않았다. 이는 목진이 상대방을 존중하는 방식이었고 그의 자존심이었다.

그리고 언젠가, 실력을 키워 이현통과 정면승부를 해 그를 이기고 싶었다. 이에 목진은 오늘의 승부에 자만하지 않고 더 열심히 수련하기로 마음먹었다.

다음번에 만나면 그따위 약속 없이도, 충분히 이길 수 있다는 걸 알려주고 싶었다. 그러나 그 상대가 류경산이라면 목진은 절대 이런 고민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목진은 담담하게 웃으며 방 밖을 쓰윽 훑었는데 낙리가 없었다. 그녀가 간 곳이라면 보지 않아도 뻔했다. 그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는 불쌍한 녀석을 위해 기도하며 천천히 눈을 감았다.

* * *

북창령원의 어느 높은 산봉우리.

산봉우리의 석대에서 이현통은 차가운 얼굴로 검은색 장검을 든 소녀를 무안해하며 바라봤다.

“그렇게 하고 나니까 속이 시원해?”

낙리는 차가운 눈빛으로 이현통을 바라보며 한기 가득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직이면 내가 상대해주지.”

이에 이현통이 머쓱하여 코를 문지르며 입을 열려는데 낙리가 이미 공기를 가르며 다가왔다.

이현통은 결국 손을 튕겨 영력을 쏴 그녀의 검광에 맞섰다.

칙!

이현통은 자신의 영력을 단칼에 찢어버린 날렵한 검기에 흠칫 놀랐다. 낙리는 낙신족에서 보기 힘든 천재였고, 그 낙신결도 엄청났다.

그는 한숨을 쉬고 낙리의 검망을 피해 뒤로 물러났다. 잔뜩 화가 난 낙리한테 말해봐야 듣지 않을 것 같아 일단 마음껏 분풀이하도록 그냥 두었다.

낙리가 검광과 함께 놀라운 영력을 내뿜어 산봉우리를 발칵 뒤집자 주위에 있던 사람들은 화들짝 놀랐다. 이현통이 있는 곳이 저리 요란하다는 것은 누군가와 싸운다는 뜻이었다.

어느덧 조용하고 아름다웠던 산봉우리는 싸움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상처투성이가 되었다.

그러나 사람들은 궁금하면서도 감히 다가가지 못하고 그 자리에서 폭우처럼 쏟아지는 날렵한 검광을 바라봤다.

1각 후, 낙리는 공격을 멈췄고 주위는 다시 조용해졌다.

석대 위에 서 있는 이현통은 어느새 옷이 찢어지고 머리는 산발이 되어 초라한 몰골이 되었는데 절대 낙리를 봐주다가 이리된 것은 아니었다. 낙리의 실력에 이현통도 놀랐다.

“화가 좀 풀렸어?”

이현통은 자신의 남루한 옷차림을 확인하고 장검을 든 소녀한테 눈길을 돌려 조심스레 물었다.

“이현통, 이게 마지막이었으면 좋겠어. 아무리 친구 사이라도 네가 도를 넘으면 나 또한 가만있지 않을 거야.”

낙리가 무뚝뚝하게 머리를 묶으며 답했다.

“내 공격도 받아내지 못하면 앞으로 어떡할 거야? 너 혼자서 모든 걸 안고 갈 셈이야?”

이현통이 쓸쓸하게 웃더니 잠시 머뭇거리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낙리는 아무런 답변도 하지 않았다.

“할아버지께서 얼마나 더 버티실 수 있을 것 같아? 2년, 3년?”

이현통이 한숨을 쉬며 하는 말에 낙리는 몸을 파르르 떨었는데 그 모습이 왠지 가여워 보였다.

“낙신족의 유일한 희망인 네가 언제까지 목진과 함께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 넌 낙신족의 황녀야. 가장 순수한 혈통을 가진 너에게는 낙신 황족에 충성하는 백성들이 있고. 그들은 너를 차기 낙황으로 생각해. 넌 절대 백성들을 버릴 수 없고 필경 돌아가야 할 텐데, 그러려면 목진과 헤어져야 해. 너희는 결코 이루어질 수 없는 운명이야.”

“그 사람한테 충분한 시간을 줄 거야.”

“목진이 충분히 성장할 때까지? 네가 원하는 대로 될지도 모르지만 너한테 그럴 시간이 있어? 삼대 신족은 한물간 낙신족을 호시탐탐 노리고 있는데 말이야. 지금의 낙신족은 겉치레만 그럴싸할 뿐이야…….”

이현통이 이내 한탄하며 말했다.

“난 그 사람을 믿어.”

낙리는 이현통을 노려보며 믿어 의심치 않다는 듯 또박또박 말했다. 낙리는 이현통이 더는 말하지 않자 대충 인사하고는 한 줄기 빛이 되어 사라졌다.

* * *

목진의 예상대로 북창령원 전체가 들끓었고 신생들은 잔뜩 흥분하여 이를 떠들어댔다. 이에 목진은 여전히 방에서 나오지 않고 수련에 임했고 낙리도 목진이 무사한 것을 확인하고는 바로 수련을 하러 취영진에 들어갔다.

그녀는 뭔가 절박해 보였다. 수련에 대한 낙리의 집착에 목진은 마음이 아팠지만 도울 방법이 없었다.

짊어져야 할 책임 때문에 수련이 인생의 전부였던 소녀는 자연스레 다른 것에는 관심이 없었고, 독립적인 성격이 되었다. 그런데 그런 소녀의 무거운 마음에 목진이 한 줄기 밝은 빛이 되어 힘든 인생에 비로소 위로가 되어 주었다.

하여 낙리는 목진을 위해 가장 소중히 여기는 시간을 선뜻 내어 먼 곳에서 북창령원까지 온 것이다.

어느 날 밤, 방에서 수련 중이던 목진이 눈을 번쩍 뜨더니 옥탑으로 올라갔다. 그곳에는 이현통이 뒷짐을 지고 자신을 기다리고 있었다.

“낙리한테 뭐라고 말했기에 요즘 들어 저렇게 열심히 수련하는 건가요?”

목진이 인상을 찌푸리며 묻는 말에 이현통은 담담하게 답했다.

“열심히 수련한다기보다는 네 부담을 덜어주려 한다는 것이 더 정확할 거야.”

“그게 무슨 말이죠?”

목진은 안색이 점차 어두워졌다.

“낙신족이라고 들어봤어?”

목진은 다리를 틀고 앉아 하늘을 바라보며 한숨을 쉬는 이현통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낙신족이라…….”

목진은 영치전에서 늙은이가 낙신족을 언급했던 것 외에는 아는 것이 전혀 없었다. 이곳 북창령원이 속해있는 북창 대륙도 대천세계 중 지극히 작은 일부라 목진은 모르는 것이 정상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낙리가 먼저 말해주기 전까지는 알아볼 자격 또한 없다고 여겼다.

“우리가 사는 세상에는 빙영족, 화영족과 같이 오랜 시간 살아남은 강대한 종족이 있는데 낙신족이 바로 그중 하나야.”

이현통은 담담하게 웃으며 말을 이어갔다.

“낙신족은 전성기에 유명한 화영족이나 빙영족에 절대 뒤처지지 않았고 심지어 그 이상의 실력을 보여줬어. 무려 북창령원과 엇비슷한 실력이었지.”

빙영족과 화영족은 몰라도 북창령원의 실력은 누구보다 잘 아는 목진은 낙신족이 그렇게 엄청난 존재인 줄 몰랐다.

“다만 전성기 때만 그랬어.”

이현통은 목진을 힐끗 쳐다보고 말을 이어갔다.

“낙신족은 대천세계 중 가장 서쪽에 있는 서천계에 있는데 그곳에는 대륙이 많고 세력도 다양해. 이렇게나 많은 대륙과 세력을 통솔하고 관리하는 것이 곧 사대 신족인데 수많은 세력이 이들의 도움을 받으며 살아가고 이들을 왕으로 받들지.”

“사대 신족이요?”

“그래. 그중엔 낙신족도 있어.”

이현통이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사대 신족은 서천계에 수천 년 동안 존재했는데 적수가 많아 지금껏 계속해서 싸워왔어. 이들은 누구 하나 남을 때까지 절대 싸움을 멈추지 않아. 전성기에는 삼대 신족이 낙신족에게 꿈쩍도 못 했었지. 그런 낙신족이 지금은 여인을 내세우려 하는구나.”

이현통이 이내 혀를 끌끌 찼다.

이에 목진이 인상을 찌푸리며 생각했다.

설마 이현통이 말한 여인이 낙리일까?

“낙신족은 수백 년 동안 계속해서 몰락했는데, 지금의 낙신 황족 중 대부분은 구더기처럼 들러붙어 낙신족을 뜯어먹고 있어. 낙리와 피를 나눈 가족들도 수백 년 전의 명예와 영광에 눈이 멀어 앞을 내다보지 못하고 있지.”

이현통은 콧방귀를 뀌며 말을 이어갔다.

“십수 년 전까지만 해도 낙신족의 유망주는 낙리의 아버지였어. 만약 그분이 낙신족을 물려받으셨으면 낙신족도 희망이 있었을 텐데, 아쉽게도 사대 신족 중 하나인 역신족(力神族)과 싸우다가 전사하셨지. 이에 낙신족은 큰 타격을 입었고 낙리의 할아버지께서 다시 낙신족을 맡으셨어.

할아버지께서도 실망이 크셨을 거야. 방대한 낙신족을 믿고 맡길 사람이 없으니까 말이야. 다행히 낙리가 자라면서 아버지보다 뛰어난 재능을 보여줬지. 그래서 할아버지께서는 어린 낙리를 차기 낙황으로 임명하고 그 책임과 명예를 마음속 깊이 새겨두도록 했어.

수천 년을 이어온 방대한 종족을 앞으로 물려받을 것이며, 수십억 백성의 기대에 저버리지 않기 위해, 그들을 다른 종족들로부터 지켜내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말이야.”

이현통은 눈을 질끔 감고 아무 근심 걱정 없이 뛰어놀았어야 할 어린 소녀가 낙천신의 감시하에 매일 폭포 아래에서 장검을 휘두르고 세찬 파도에 상처투성이가 되었을 몸을 머리에 그렸다.

낙리가 아무리 장검을 안고 구슬피 울어도 아무도 그를 위로해주지 않았고 돌아오는 건 엄격한 할아버지의 채찍질뿐이었다. 또한, 유아 시기에 아버지를 잃은 낙리는 병상에 계신 어머니께 자신의 마음을 털어놓아 봐야 걱정만 끼칠 뿐이라는 걸 알아 결국 모든 걸 혼자 견뎌냈다.

이현통이 낙리를 처음 마주쳤을 때도 그녀는 장검을 안고 바위 뒤에서 몰래 눈물을 흘리고 있었는데, 이내 눈물을 닦아내고 다시 세찬 파도에 맞서 장검을 휘두르는 것을 반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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