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주재-164화 (163/1,000)

164화. 백룡지구

목진 등은 한시도 쉬지 않고 날아 해지기 전에 백룡지구의 변두리에 도착했다.

끝없이 뻗은 산맥에 십만 척도 넘는 산들이 구름을 뚫고 하늘 높이 솟아있었고, 가끔 들리는 영수의 울음소리에 천지의 영기가 흔들렸다.

그러나 이토록 우뚝 솟은 산맥도 땅에서 풍기는 참혹한 기운을 덮지는 못했다. 수백 년 전에 일어난 대전에서 죽어간 사람들이 백골이 되어 쌓여있었기 때문이다.

“지존이 돌아가신 곳이라 그런지 남다르군.”

목진 일행은 먼 곳의 산봉우리에서 장렬한 기운을 풍기는 백룡지구를 바라보며 감탄했다.

“영장은 백룡지구의 가장 깊숙한 곳에서 나타난다던데 그곳은 영수가 정말 많다고 해. 그중에는 천급 영수도 존재한다고 하니 더 조심해야 하고, 이곳에 온 탐험조도 조심해야 해. 다들 잔혹해서 충돌이 생기면 그 누구를 막론하고 살수를 펼칠 거야.”

소훤이 살기 가득한 백룡지구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들은 평범하지 않은 백룡지구 행에 더욱 주의를 기울여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니 백룡지구에 들어온 이상 절대 홀로 움직이면 안 돼.”

소훤은 이리 말하며 소령아한테 눈길을 돌렸다.

“알겠어?”

소훤의 말에 소령아가 입을 삐쭉 내밀었다. 자신을 미덥지 못한 사람으로 생각하는 언니가 조금은 얄미웠다.

이에 옆에 있던 세 사람도 피식 웃었다.

“그럼 떠날까? 백룡지구에서 안전하고 은밀한 곳을 찾아야 해.”

소훤은 손을 가볍게 휘두르더니 바로 살기 가득한 백룡지구로 향했고 그 뒤로 목진 등이 따라붙었다.

백룡지구에 들어서자마자 은은하게 살기가 느껴졌다. 살기가 몸속에 스며들면 육체에 엄청난 해를 끼치기에 사람들은 이곳에 오자마자 전부 영력을 끌어올려 육체를 보호했다.

목진 일행은 백룡지구를 거닐며 탐험조를 적잖게 지나쳤는데, 그들 모두 소훤, 소령아와 여정의 모습에 오랫동안 눈길을 떼지 못했다.

평소 생사의 고비를 수없이 넘기며 지내는 이들이라 이토록 예쁜 여인들을 만날 기회가 없었다.

그런데 단 한 명도 함부로 소훤 일행을 건드리지 못했다. 탐험조의 우두머리들은 소훤 등의 실력을 알아보고 호통을 치며 아랫것들을 단속했다.

그래서 그들이 주의를 끌긴 했지만 아무런 일도 없었다. 게다가 아직은 백룡지구 바깥쪽에 있어 천급 영수도 극히 드물었고 날이 어두워질 때쯤에는 쉴 수 있는 적당한 곳도 찾았다.

이들은 광활하고 외진 숲속에 자리를 잡고 모닥불로 어둠을 물리쳤다.

“오늘 밤은 곽흉이 당번을 서도록 해. 대신 누구도 긴장의 끈을 놓지 말아야 할 거야. 이런 곳에선 위험이 언제 어떻게 닥칠지 몰라.”

소훤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이에 목진 등도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은 오면서 탐험조를 여럿 지나쳤는데 비록 실력이 목진 일행에 비해 턱없이 부족했지만, 인원수가 많고 위험한 일을 많이 했던 사람들이라 충돌하게 되면 꽤 번거로웠다.

소훤은 말을 마친 후 소령아와 함께 천막에 들어갔고 목진도 곽흉과 잠시 대화를 나누다가 돌아가 영진자 연구에 몰두했다. 목진은 하루 만에 영진자 속 영진에 대한 단서를 조금 찾았는데, 충분히 시간을 주면 분명 이를 다루는 방법도 알아낼 것 같았다.

모닥불을 피운 곳이 어느덧 조용해지자 그곳과 약간 거리를 둔 산봉우리에서 검은색 그림자들이 유령처럼 나타났다.

선두에는 백의를 입은 백동이 씨익 웃으며 목진 등이 있는 쪽을 바라보다가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구 씨, 준비는 마쳤나?”

“그럼요.”

그 뒤에 있던 노인이 잠긴 목소리로 답했다.

“그럼 움직이게. 계획대로 하되 우리 미인들은 절대 다치게 하지 말고.”

입맛을 다시는 백동의 눈에서 욕망이 불타올랐다.

“예!”

백동 뒤의 검은색 그림자들이 유령처럼 조용히 그곳으로 향했다.

한편, 백동은 산봉우리에 서서 차가운 눈빛으로 그곳을 바라보고는 피식 웃었다.

“용마위 손에 죽은 북창령원 학생의 수가 서른을 넘는데 오늘 또 그 수가 늘어나는구나. 이번엔 절대 도망칠 수 없을 거다.”

* * *

곽흉은 고요한 주둔지에 앉아 잔뜩 경계하며 주위를 살폈다. 어둠 속에 무엇이 숨어있을지 몰라 손에는 검은색 장도를 꼭 쥐었고 영력으로 신변을 보호하였다.

그때 곽흉이 정색하며 웅장한 영력을 끌어올려 검은색 장도를 휘둘렀다.

쿵!

금속이 부딪치는 소리와 함께 검은색 장창이 반으로 갈렸다.

“누구냐?”

곽흉은 벌떡 일어나 어두운 숲속을 향해 소리를 질렀다. 그 소리에 목진 등이 장막에서 뛰어나왔다.

“습격이야. 조심해!”

곽흉이 일행에게 귀띔해줬다.

그런데 그때, 어두운 숲속에서 갑자기 여러 갈래의 흑광이 솟아오르더니 웅장한 영기를 담은 장창이 이들을 공격해왔다.

소훤은 이내 정색하며 튀어나와 손을 비틀어 영력을 내뿜었다. 그러자 그 앞에서 수백 척 정도 되는 영력이 소용돌이를 만들었다.

푹!

검은색 장창은 모조리 영력의 소용돌이에 빨려들어 산산조각이 났다.

“누가 보냈기에 감히 얼굴도 내밀지 못하는 거야?”

소훤은 한기 어린 눈빛으로 어두운 숲속을 바라보다 한 줄기 빛이 되어 달려가며 영력 기(氣)의 회오리로 어둠을 갈기갈기 찢어버렸다.

쿠쿵!

소훤은 아수라장이 된 숲을 확인하고는 바로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쥐만도 못한 녀석들을 바로 해결하지 못하면 앞으로 더욱 귀찮아질 것이다.

목진 등은 떠나가는 소훤을 바라보며 잔뜩 긴장한 채 주둔지를 지켰다.

쿵!

그때 먼 곳에서 여러 갈래의 놀라운 영력 파동이 하늘 높이 솟아올랐는데, 그중 두 갈래는 화천경 초기였다!

이에 목진 등은 안색이 조금 어두워졌고, 한편으로 이들을 보낸 사람이 궁금했다. 도대체 누가 자신들을 공격한 걸까?

“우리가 소훤을 도와야겠어.”

여정은 말이 끝나기 바쁘게 소훤이 있는 곳으로 향했고, 곽흉도 그 뒤를 따르며 목진과 소령아에게 말했다.

“너흰 적당한 곳을 찾아 숨어있어. 저 녀석들을 처리하고 나면 너희를 찾으러 갈게.”

곽흉의 말이 끝나자마자 두 사람은 이미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목진은 이내 인상을 찌푸렸다. 비록 다섯 사람밖에 안 되지만 실력만은 절대 평범하지 않는데 과연 누가 이런 일을 벌였단 말인가?

상대방은 절대 평범한 이들이 아니었다.

“목진, 우리 어떡하면 좋아?”

소훤 등이 떠나자 소령아는 바로 목진한테 달라붙었다.

“겁먹을 것 없어. 우린 그저 조용히 저들이 돌아오기만 기다리면 돼. 멀리 가지 않았으니 금방 돌아올 거야.”

소령아는 고개를 끄덕이며 저도 모르게 목진의 옷깃을 잡았다. 위험천만한 백룡지구에서 소훤이 곁에 없으니 의지할 사람은 이제 목진 뿐이었다.

목진은 잔뜩 긴장한 채 주위를 살폈고 돌발 상황을 피하고자 끊임없이 체내에 영력을 끌어 올렸다.

이때, 날카로운 무언가가 바람을 가르며 거슬리는 소리를 냈다.

목진은 곧바로 소령아를 안고 가볍게 발을 굴러 백 척 넘게 날아올랐는데 팔뚝만큼 두꺼운 검은색 장창이 파르르 떨며 두 사람이 서 있던 곳을 내리찍었다.

바닥 깊숙이 박힌 검은색 장창에 목진은 화들짝 놀라 고개를 번쩍 들었다. 바람을 가르는 소리와 함께 4명의 검은색 그림자가 눈앞 나무 위에 나타나 한기 어린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융천경 후기가 4명이나?”

목진은 4명의 검은색 그림자를 쓰윽 훑더니 흠칫하였다. 도대체 어떤 세력이기에 이렇게 엄청난 사람들을 파견한 걸까?

소훤이 떠난 방향을 확인하던 목진은 아차 싶었다. 이 일은 처음부터 목진과 소령아를 노리고 벌인 일이었다.

네 갈래의 그림자가 유령처럼 거대한 나무 위에 서 있었는데 검은색 도포로 전신을 휘감아 얼굴조차 보이지 않았고 그저 눈에서 살기를 내뿜었다.

네 사람 주위에 놀라운 영력의 파동이 일었는데 전부 융천경 후기의 실력이었다!

이에 목진도 흠칫하였다. 주둔지에 오기까지 만났던 탐험조의 우두머리를 해도 남을 사람이 넷씩이나 나타나다니…….

목진 일행은 북창령원에서 나와 그 어떤 세력도 건드리지 않으려 조심했는데 대체 어찌 된 걸까?

“너흰 누구냐?”

목진이 묵직한 목소리로 물었다. 만약 상대가 한 명이었다면 손쉽게 때려잡을 수 있었을 텐데, 그들은 융천경 후기가 4명이나 되었고 경험까지 풍부해 보였다. 그리고 눈에서 흘러나오는 살기는 분명 살인을 많이 해서 쌓인 것이라 북창령원의 융천경 후기와는 완전히 달랐다.

그들은 목진의 말에 미동이 없었고 살기만 더 그윽해졌다. 절대 일반 탐험조가 아니었다.

“죽여라!”

누군가의 명령에 검은색 그림자 하나가 튀어나왔고, 그 뒤로 나머지 세 사람이 따라붙었다. 그들이 주먹을 쥐자 검은색 장창이 수중에 나타났고, 영력이 들끓더니 천지를 뒤덮을 만큼 날렵한 장창이 그림자로 변해 목진과 소령아에게로 향했다.

이에 안색이 어두워진 목진은 주먹을 쥐며 흑광을 끌어모아 9급부도탑을 소환했다.

쿵! 쾅!

수많은 창의 그림자가 9급부도탑에 내리꽂혔는데 탑은 조금 떨렸을 뿐, 몸체에는 아무런 흔적도 남지 않았다.

그러나 그들은 절대 호락호락하지가 않아 목진의 강력한 방어에도 몸을 돌려 목진 뒤에 있는 소령아한테 창을 겨눴다.

소령아는 곧바로 허리에 두른 붉은색 장편을 휘둘렀고, 들끓는 영력과 함께 두 갈래 창이 서로 부딪쳤다.

쿵쿵!

난폭한 영력에 주위의 거대했던 나무가 모조리 꺾였는데 유령 같은 검은색 그림자 두 명이 바로 한기 어린 창으로 소령아의 급소를 공격했다.

두 명의 융천경 후기에 맞선 소령아는 순간 겁에 질려 사색이 되었다. 그녀의 실력도 결코 평범하진 않았지만 공격의 잔혹한 정도로 보아 절대 두 사람의 상대가 아니었다.

슉!

이때, 한기 어린 두 개의 창이 소령아의 장편의 구속에서 벗어나 쏜살같이 그녀의 어깨를 향했다.

매서운 상대방의 공격에 소령아는 황급히 뒷걸음쳤고 어느새 얼굴이 하얗게 질린 채 나무에 바싹 붙었다.

그런데 그때, 9급부도탑이 내려와 소령아를 감쌌다.

쿵!

놀라운 영력 파동을 자랑하는 검은색 장창은 9급부도탑에 내리꽂혔는데 그 주위를 맴도는 검은색 빛에 녹아내렸다.

검은색 광탑이 빠르게 줄어들자 목진은 소령아를 끌어안고 어두운 숲속으로 뛰어들었다.

“쫓아!”

네 갈래의 그림자가 고함을 지르더니 곧바로 그들을 쫓았다.

목진은 사색이 되어 아직 정신을 제대로 차리지 못한 소녀에게 물었다.

“괜찮아?”

이에 소령아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답했다.

“고마워. 그런데 이제 어떡해야 해?”

소령아는 비록 융천경 후기지만 생사를 오가는 전투에 참여해보지 않아 그들의 상대가 되지 못했고, 목진은 그나마 경험이 많아 괜찮았지만 정당한 싸움이 아니기에 준비할 시간이 부족했다.

그들은 그야말로 궁지에 몰렸다.

“언니가 돌아올 때까지 버틸 수 있을까?”

소령아가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소훤 등이 있다면 분명 자신들을 쫓는 이들을 손쉽게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저들은 목표가 명확해. 일부러 네 언니를 유인해 다른 곳으로 보내고 우리 둘을 노렸던 거야. 우리를 잡아 그 빌미로 남은 셋을 협박하려는 거야.”

목진은 날렵하게 숲을 지나며 묵직한 목소리로 말했다.

“내가 너와 함께 있으면 저들한테 잡히는 건 시간 문제야.”

그 말에 소령아는 초조한 기색이 역력해 물었다.

“그럼 어떻게 해?”

“우리 일단 갈라서자.”

목진은 이리 말하며 뒤를 힐끗 쳐다봤는데 검은색 그림자가 놀라운 속도로 그들을 쫓아왔다.

“뭐?”

소령아는 흠칫 놀라더니 얼굴이 하얗게 질려 눈물이 글썽해진 채 목진의 멱살을 잡았다.

“목진, 이 나쁜 놈아! 당장 내려놔. 너더러 구해달라고 한 적 없어!”

이에 목진은 웃으며 말했다.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널 데리고 도망가면 우리 둘 다 잡힐 거야. 대신, 내가 저들을 따돌리고 넌 소훤 선배를 찾으러 가면 일말의 승산이라도 있잖아.”

소령아는 순간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안 돼. 너 혼자서 저들을 상대하는 건 너무 위험해.”

살기 가득하여 달려드는 그들의 매서운 손길은 북창령원의 선배들과는 차원이 달랐다.

“나한테 다 생각이 있어.”

목진은 의지가 확고했다. 이내 풀숲에서 푸른 풀잎 한 움큼을 따서 빠르게 으깬 뒤 그 속에서 나온 이상한 냄새가 나는 액체를 소령아의 몸에 뿌렸다.

“이것으로 네 체취를 감출 수 있어. 내가 너를 내던지면 바로 적당한 곳을 찾아 숨어. 체내의 영력을 억제하면 저들은 절대 너를 찾지 못할 거야.”

목진의 숙련된 수법에 소령아는 놀라며 은은한 달빛에 비친 그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런데 평소와 달리 목진의 차갑고 매서운 눈빛은 날렵한 장검처럼 어둠 속에서 빛을 발했다.

“목진, 이 물건은 내가 북창령원의 영치전에서 바꾼 중품 영기인데 일단 써.”

소령아는 암청색에 날렵한 검기를 은은하게 내뿜는 장검을 목진에게 건네주며 말했다.

목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여태껏 마땅한 영기가 없었던 그에게는 잠시나마 빌려 사용하는 장검이 맨손으로 싸우는 것보다는 나았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