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6화. 용마궁
쾅!
세 사람이 부딪쳐 난폭한 영력이 일자 바닥에 널브러졌던 낙엽이 순식간에 가루가 되었고, 거대한 나무 한 그루도 맥없이 쓰러졌다.
그러나 목진은 이에 멈추지 않고 유일하게 부상을 입지 않은 검은색 그림자를 향해 전력 질주했다. 이를 눈치챈 다른 한 놈이 자신은 일단 안전하다는 생각에 한 시름을 놓았다.
한편, 목진이 쫓아간 검은색 그림자는 융천경 후기의 실력을 전부 끌어올려 목진의 급소를 공격했는데, 검과 창이 바람을 가르며 부딪혀 그 사이로 계속해서 놀라운 영력이 퍼졌다.
이에 목진은 흑염을 머금은 영력을 검에 실어 힘껏 찔렀다. 이는 한 갈래의 검은색 기(氣)의 회오리처럼 번개같이 놈의 가슴으로 향했지만 장창으로 인해 무산되었다.
“융천경 초기 따위가 나한테 덤벼? 꿈도 야무지지.”
검은색 그림자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목진은 무덤덤하게 검을 거두더니 독수리처럼 하늘 높이 날아올라 주먹을 꽉 쥐고 힘껏 휘둘렀다.
쿵!
어두운 영력이 폭풍처럼 휘몰아쳐 목진의 주먹에 모이더니 순식간에 여섯 갈래의 삼라사인이 형성되었다. 이때, 주위의 영기가 폭동을 일으켰고 검은색 광인이 밤하늘을 밝히는 혜성처럼 하늘을 가르며 검은색 그림자를 향해 폭주했다.
쿵!
혜성이 닿은 곳이 움푹 파여 거대한 구덩이가 생겼다.
한편, 사색이 된 검은색 그림자는 그제야 생명의 위협을 느꼈다.
“흑살룡모(黑煞龍矛)!”
검은색 그림자가 영력을 모조리 끌어모아 손바닥을 파르르 떨더니 수중의 검은색 장창을 발사했다. 그러자 영력 폭동이 일어나며 수백 척 정도 되는 큰 흑룡으로 변해 하늘 높이 솟아올랐다.
이에 맞서 검은색 혜성은 멈추지 않고 곧장 흑룡을 공격했는데 파죽지세로 다가가 상대방을 찢는 것도 모자라 그 속에 숨은 검은색 장창까지 멀리 튕겨냈다.
“악!”
처량한 비명과 함께 땅이 흔들렸고 지면에 거대한 구덩이가 생겨났다. 그 속에서 검은색 그림자가 눈앞이 흐릿해지더니 바로 숨졌다.
이현통의 공격마저 막아냈던 여섯 갈래의 삼라사인에 융천경 후기의 강자가 즉사한 것이다.
목진은 깊게 숨을 내쉬었다. 이러한 공격은 소모가 상당했다.
잠시 후, 목진은 다시 하늘 높이 솟아올라 손바닥을 파르르 떨었는데 9급부도탑이 나타나더니 손가락이 부러진 검은색 그림자의 공격을 막았다.
목진은 서서히 돌아 한껏 겁에 질린 마지막 한 명을 향해 담담하게 웃었다.
“너희가 이번엔 상대를 잘못 만났어. 계속 내 공격을 막아볼 거야?”
부상을 입은 검은색 그림자는 몸을 파르르 떨었고 살기 가득했던 눈도 어느새 두려움과 공포감으로 가득 찼다. 오늘 밤 일어난 일은 그야말로 간담을 서늘케 하였다.
“너 도대체 누구야? 북창령원 천방에 너 같은 사람은 절대 없어!”
손가락이 잘린 검은색 그림자가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그 말에 목진은 인상을 조금 찌푸리더니 차가운 눈빛으로 상대방을 바라봤다.
“북창령원에 대해 아주 잘 아는 것처럼 말하는구나. 그러는 너흰 어디서 왔을까?”
한마디에 바로 의심을 샀으니 검은색 그림자는 목진이 역시 쉬운 상대가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안 되겠군. 오늘은 이미 글렀으니 일단 돌아가 보고해야겠어. 목표의 실력을 예측하는 데 실패했어!”
검은색 그림자는 이를 악물고 수중의 검은색 장창을 목진한테 내던지며 도망치려 하였다. 하지만 빠르게 팽창한 9급부도탑이 놈의 공격을 막았고 목진은 무덤덤하게 놈을 바라보더니 손을 튕겼다.
그러자 9급부도탑은 다시금 폭등하였고, 1급 탑신에서 엄청난 금광이 빛을 발하더니 금룡 한 마리가 한 줄기 금광이 되어 숲을 뚫고 검은색 그림자에게로 향했다.
엄청난 충격에 주위의 나무들이 갈기갈기 찢어졌고 검은색 그림자는 피를 토하며 다시 목진의 발아래로 튕겨 돌아왔다.
청광 장검이 검은색 그림자의 숨통 바로 앞쪽에서 멈췄다.
“이제 말해, 누가 보냈어?”
목진이 담담하게 웃으며 물었다.
“난 절대 말하지 않을 거야, 그러니까 꿈 깨!”
검은색 그림자는 음침한 눈빛으로 목진을 바라보며 씨익 웃었다.
“너무 으쓱할 필요 없어. 너흰 결국 한 명도 이곳에서 빠져나갈 수 없으니까.”
목진은 곧바로 수중의 장검을 휘둘러 놈의 숨통을 끊었다. 검은색 그림자에게서 아무것도 알아낼 수 없다는 걸 알았으니 살려둘 필요가 없었다.
드디어 마지막 한 명까지 해치운 목진은 그제야 바닥에 주저앉아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 두뇌 싸움에 몸싸움까지, 목진은 조금 힘들었다.
슉.
그때 먼 곳에서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들려와 목진은 화들짝 놀라 재빨리 수중의 장검을 빼 들었다. 그러나 얼마 되지 않아 긴장을 풀었다. 소령아가 나타난 것이다.
“목진!”
소령아는 피투성이가 된 목진을 보더니 사색이 되어 황급히 달려왔다.
“난 괜찮아.”
목진이 손을 휘저으며 말했다.
그 뒤로 소훤, 곽흉, 여정이 뒤따라왔는데 잔뜩 긴장하였다가 목진이 살아있는 것을 확인하고 나서야 한시름 놓았다.
그들은 바닥에 널브러진 두 구의 시체를 보고는 흠칫 놀라 목진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이들을 죽인 거야? 네 명이라고 들었는데 나머지 두 명은 어디 있어?”
“다 죽었어요.”
목진은 휘청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나 몸에 묻은 피를 보더니 그저 웃었다.
“다 죽었다고?”
소훤 등 세 사람은 눈이 휘둥그레졌다.
“네가 죽였어?”
그 말에 목진은 주위를 둘러보더니 물었다.
“나 말고 이곳에 또 누가 있나요?”
소훤 등은 말문이 막혔다.
소령아의 말에 의하면 두 사람을 추격한 것은 네 명의 융천경 후기의 살수로 매서운 공격에 경험까지 풍부하여 소훤이 아닌 이상 곽흉과 여정같이 준 화천경인 사람마저도 간신히 도망갈 수 있을 뿐, 모조리 죽이기란 불가능했다.
그런데 이토록 어려운 일을 목진이 해냈다.
“역시 대단해.”
곽흉이 목진한테 엄지를 척 내보이며 말했다. 융천경 초기의 실력으로 이를 해결한 것에 진심으로 탄복했다.
여정 역시 경악을 금치 못했다.
“역시 마지막 한 사람을 너로 정하길 잘했어.”
소훤은 방긋 웃더니 신기한 듯 목진을 바라봤다.
“다들 그만 해요. 난 그저 목숨을 내걸고 싸웠을 뿐이에요. 특별한 건 딱히 없었고 저들보다 더 잔혹한 수법을 사용했다고나 할까요?”
목진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말했다.
“그런데 저들이 누군데 우리를 공격한 건가요? 이건 일반 세력에서는 절대 나올 수 없는 조합이에요.”
그 말에 소훤은 수중의 장검으로 시체의 옷을 풀어헤쳤는데 가슴팍에 이상한 무늬가 새겨져 있었다. 그 무늬는 궁전처럼 생겼고, 그 아래에 거대한 용이 보였으며 은은하게 살기가 퍼졌다.
소훤은 그 무늬를 바라보더니 한기 어린 눈빛을 하고 말했다.
“역시 용마궁이었어.”
“용마궁이요?”
소훤의 말에 목진은 인상을 찌푸렸다. 낯선 이름인 것으로 봐서 건드린 적이 없는 것 같은데, 왜 이렇게까지 살수를 두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정말 용마궁 사람이야?”
옆에 있던 곽흉과 여정의 안색도 조금 어두워졌다.
“그래서 이렇게 많은 실력자를 파견할 수 있었군. 어찌나 잔혹한지 그 세력이 너무 궁금했는데 용마궁이었구나.”
소훤이 고개를 가볍게 끄덕이며 말했다.
“나를 추격하던 사람 중에는 화천경 초기 두 명과 준 화천경인 강자 세 명이 있었어. 백룡지구 천 리 안에서 이런 실력자들을 파견할 세력은 많지 않아.”
소훤은 미소를 지으며 목진을 바라봤다.
“넌 북창령원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았으니 용마궁을 모를 수 있어. 수백 년 전에 북창대륙 전체를 휘어잡을 법한 막강한 세력이 있었는데 그게 바로 용마궁이야.”
“북창령원보다 더 강한가요?”
목진이 눈이 휘둥그레져 물었다.
“북창령원이 북창대륙의 중심이긴 하지만 이곳에 군림할 생각은 전혀 없어. 또한, 북창령원은 북창대륙에서 벌어진 일에 참견하지도 않아. 그래서 용마궁이 이곳 북창대륙의 패주가 되었던 거야.”
곽흉이 웃으며 말했다.
“그런데 용마궁은 북창대륙의 패주가 된 것으로 만족하지 않고 북창대륙의 중심에 있는 북창령원을 노렸어. 그들은 북창령원을 없애야 대륙의 진정한 패주가 될 수 있다는 걸 잘 알았거든. 또 이곳을 근거지로 다른 대륙을 침범할 계획이었어.”
목진은 혀를 끌끌 찼다.
용마궁은 흘러넘치는 야심을 주체하지 못하고 북창대륙을 수중에 넣은 것도 모자라 북창령원까지 손을 뻗으려 하였다.
“그래서 용마궁은 수백 년 전부터 북창령원을 공격하기 시작했어. 그 때문에 수많은 강자가 전사했고 북창대륙 전체가 전쟁에 휩쓸렸어.”
목진의 안색이 조금 어두워졌다. 북창대륙을 휘어잡을만한 실력이라면 분명 놀랍긴 하지만 북창대륙에 수천 년간 존재한 북창령원 역시 호락호락한 존재가 아니었다.
두 세력이 맞서 싸우면 그 여파는 분명 엄청날 것이다.
“전쟁은 몇 년간 지속했는데 결국 북창령원의 승리로 끝났어. 용마궁의 위세가 한풀 죽자 압박을 받던 세력들이 모여들어 공격하였고, 용마궁은 자연스레 패주의 자리에서 물러났지.”
소훤은 바닥에 누워있는 시체를 노려보며 말했다.
“한때 북창대륙을 휘어잡았던 용마궁이 사라진 것이 아니라 여태껏 북창대륙에 숨어 살며 기회를 엿보고 있었어. 몇 년 사이, 북창령원 학생들이 밖에 수련하러 나오기만 하면 여러 가지 공격을 받았는데 대부분 용마궁의 짓이었어. 심지어 북창대륙에서 사망한 학생 중 절반 이상은 용마궁의 손에 죽었지.”
이에 소훤은 눈빛이 금세 차가워졌다. 그녀도 용마궁이 치가 떨리도록 싫었다.
“북창령원에서는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았나요?”
목진이 인상을 찌푸리며 물었다.
“너도 알다시피 북창령원과 바깥세상은 전혀 달라서 생사를 넘나드는 치열한 전쟁을 직접 겪어야만 비로소 진정한 강자가 될 수 있어.”
소훤은 천천히 말을 이어갔다.
“북창령원은 북창대륙이 위험하다는 걸 알기에 일부러 학생들을 내보내는 거야.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고 더 강해질 수는 없는 법이잖아? 북창령원의 임무전에는 특수한 방이 있는데 현상방(懸賞榜)으로 위에 이름을 올린 사람은 전부 악랄하기로 유명해. 많은 학생이 그들 손에 죽어 북창령원에서 수배령을 내렸는데 그들을 죽이면 큰 보상을 받을 수 있어.”
“현상방이요?”
목진은 흠칫하였다. 그는 북창령원에 이런 방이 있다는 것을 지금껏 몰랐다. 실력을 어느 정도 갖춰야만 현상방 임무를 수행할 자격이 주어지는 듯했다.
“현상방에 이름을 올린 사람은 전부 잔혹하기 그지없고 북창대륙에서도 어느 정도 이름을 날린 자들이야. 그래서 현상 임무를 완수하기엔 위험할뿐더러 너무 어려워 북창령원에서도 골치 아파하지.”
옆에 서 있던 곽흉이 입을 열었다.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나는데 1년 전에 북창령원 전체를 뒤흔든 큰 사건이 있었어. 그때 심창생이 수련을 마치고 나와 임무전에서 현상 임무를 받았는데 그 대상이 곧 현상방 3위의 용마궁 출신, 극악무도한 절세의 천재 혈용마 여연(余淵)이었어.”
“혈용마 여연이라…….”
목진이 중얼거렸다.
“여연이란 자는 실력이 엄청나. 그해, 북창령원에서 스무 명이 넘는 사람들이 조를 이루어 수련을 나갔는데, 그중 화천경 초기의 선배가 두 명 있었고 나머지 중 실력이 가장 못 한 사람도 융천경 후기였어. 그런데도 한 명만 간신히 살아 돌아왔지. 나머지는 생존자를 보호하려다 전부 여연의 손에 죽었어. 그 뒤로 북창령원에서는 실력 좋은 학생을 많이 파견했지만 결국 실패했지. 이로써 여연의 죄는 더 커졌어. 사람들은 겁을 먹고 그에 관한 현상 임무를 받으려고 하지 않았지.”
곽흉은 눈이 반짝이며 말을 이어갔다.
“그러다 심창생이 나타났어. 그해의 심창생은 아직 천방 1위가 아닌 10위권 밖이었는데 수련을 마치자마자 곧장 천방 1위에 올랐지. 이 사실에 북창령원 전체가 경악을 금치 못하고 있을 때, 그는 여연의 현상 임무를 받고 떠나더니 열흘 만에 그자의 머리를 들고 돌아왔어.”
북창령원 전체를 뒤흔들던 그 날을 돌이켜보던 곽흉은 이내 마음이 들끓었다.
다들 멍하니 고개를 들어 장창을 어깨에 메고, 전쟁의 신처럼 하늘을 나는 거대한 몸짓을 바라봤다. 그때의 벅찬 마음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