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7화. 사호단(獅虎團)
목진은 잔뜩 흥분한 곽흉을 바라보다가 옆으로 눈길을 돌렸는데 여정같이 차가운 여인도 그의 말에 동의하는 눈치였다. 아직 대면하지는 못했지만 심창생 선배가 북창령원 학생들 마음속에 아주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건 확실했다.
이에 목진은 전설과도 같은 심창생이 도대체 얼마나 뛰어난지 자못 궁금했다. 이현통과 얼마나 큰 차이가 날까?
“심창생은 정말 대단한 녀석이야.”
소훤도 그 말에 부응하였다. 천재가 득실거리는 북창령원에서 학요, 서황 등도 훌륭하고 아직 자취를 드러내지 않은 숨은 고수도 많았다. 하지만 제아무리 훌륭해도 절대 천방 1위의 존재를 따라가진 못했다.
“현상방에 적힌 자들은 대부분 용마궁 사람들이야. 그들은 북창령원의 학생을 죽이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거든.”
소훤은 목진을 바라보며 말을 이어갔다.
“이젠 용마궁과 북창령원이 어떤 사인지 잘 알겠지?”
목진은 고개를 끄덕이며 생각했다. 북창령원에서 나서지 않은 것은 학생들이 진정한 강자가 됐으면 하는 바람도 있겠지만 용마궁을 송두리째 뽑아버릴 수 없었기 때문이란 생각이 들었다.
“이번엔 우리가 용마궁의 먹잇감이 된 것 같아.”
소훤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이곳에서 사망한 백룡지존도 용마궁의 큰 인물이었는데 배신하고 나왔다고 들었어. 지존 영장이 나타났단 소문이 퍼졌으니 용마궁에서도 사람을 여럿 파견했을 거야. 그러니까 우리도 조심해야 해.”
목진, 곽흉, 여정, 소령아 등은 곧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떠나자. 용마궁에서도 큰 타격을 입었으니 이참에 완전히 따돌려버리는 게 좋겠어.”
목진 등은 소훤의 말에 동의했다. 그들은 대충 정리하고 잔뜩 경계하며 백룡지구의 깊은 곳으로 향했다.
* * *
목진 등이 백룡지구로 향할 때, 깊은 숲속 산봉우리에 서 있던 백동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해졌다.
“이 멍청한 것들아! 융천경 후기의 실력을 갖춘 남자 넷이 융천경 후기 여인 한 명과 융천경 초기의 소년도 처리하지 못해!”
백동은 검은색 옥편 네 덩이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 위에는 용문이 새겨져 있었는데 산산조각이 난 것으로 보아 이들도 살해당한 것이 분명했다.
이에 백동 옆에 서 있던 회색 옷을 입은 노인이 경악을 금치 못했다.
“그들 둘이 어찌 네 명의 용마위를 죽였을까요?”
용마위의 실력을 잘 아는 노인은 자신도 해결하기 쉽지 않은 이들을 머리에 피도 안 마른 소년과 소녀 두 명이 전부 죽였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아버지께 이 소식을 알려. 더는 정체를 숨길 필요가 없을 것 같아. 영장 중 그 물건만 수중에 넣으면 우린 바로 이곳을 떠나는 거야. 대신 거슬리는 것들을 모조리 없애고 떠날 거야!”
백동이 잔뜩 화가나 수중의 옥편을 부수며 음침한 눈빛으로 숲속 깊은 곳을 바라보았다.
* * *
어느덧 날이 밝아 드넓은 백룡지구를 삼켰던 어둠이 사라지고 산맥에는 조금씩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벌레떼처럼 우르르 숲을 거닐었다.
지존 영장이 나타났다는 소식을 듣고 몰려온 사람들이었다. 몰려든 사람들로 인해 백룡지구는 순식간에 들끓었고 이에 수많은 영수가 분노에 차 울부짖었다.
그들은 침입자를 봐줄 생각이 없는 듯, 난폭한 영력이 하늘로 치솟아 올라 산맥 전체가 흔들렸다.
악!
산맥에서 처량한 비명이 들려왔다. 사람들이 영수에 갈기갈기 찢기며 나는 소리와 영수들이 수많은 강자의 손에 살해당하며 내는 소리였다.
그들은 들끓는 선홍빛 피를 내뿜으며 맥없이 쓰러졌다. 이렇게 산맥 곳곳에서 비슷한 일이 벌어졌고 피비린내가 진동했다.
한편, 목진 일행도 부지런히 목적지로 향했다. 백룡지구는 고요했던 어제저녁과 전혀 다른 모습이었는데 곳곳에 숨어있었던 세력과 강자들이 날이 밝자 웅장한 영력을 끌어올리며 모습을 드러냈다.
도대체 얼마나 많은 강자가 이곳에 모인 걸까?
“우리도 빨리 가자.”
소훤은 백룡지구에서 일어나고 있는 폭동을 눈치채고 손을 휘두르며 말했다. 이에 그들은 순식간에 다섯 갈래의 빛줄기로 변해 거대한 나무가 무성한 숲속을 지났다.
그런데 그때, 우측에서 무언가 울부짖는 소리가 들려 고개를 돌려보니 붉은색 거대한 영수가 이글거리는 눈으로 이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녀석의 입에는 이미 누군가의 다리가 물려 있었다.
“융천경 중기의 혈영수가 감히 우리 앞길을 막아?”
목진은 피식 웃더니 주먹을 쥐고 9급부도탑을 소환하였다. 그가 손을 튕기자 흑탑은 순간 거대한 흑탑으로 변했고 무서운 힘을 실은 채 붉은색 영수 위에 매섭게 내려앉았다.
쿵!
9급부도탑이 바닥에 닿자 대지마저 움푹 파였고 붉은색 영수는 애처롭게 울다가 곧바로 숨졌다.
이에 소훤 등은 조금 놀랐다. 혈영수가 아무리 융천경 중기의 실력이라지만 방어력만큼은 지극히 센 편인데 목진은 이를 너무 손쉽게 죽였다.
“앗, 뭐가 있네?”
소령아는 혈영수의 시체를 힐끗 쳐다보더니 바로 그 앞쪽으로 시선을 돌렸는데 거대한 암석 위에 암홍색의 영지가 그윽한 향을 내뿜으며 자라고 있었다.
“혈영지?”
소령아는 순간 눈이 휘둥그레졌다. 이는 얻기 어려운 보물로 수련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그녀는 곧바로 달려가 혈영지를 따왔다.
그런데 그때,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날카롭게 위를 때렸고 한기 어린 한 줄기 빛이 이들을 향해왔다.
“조심해!”
소훤은 정색하여 손가락을 허공에 가볍게 찍자 한 갈래의 영력 기(氣)의 회오리가 소령아를 공격한 한기 어린 빛줄기를 산산조각 내버렸다.
곽흉과 여정도 바로 전투태세에 돌입해 차가운 눈빛으로 빛줄기가 온 방향을 바라봤다.
잠시 후, 스무 명 가까이 되는 사람들이 날아와 그들이 있는 곳에 내려앉았다.
그들은 모두 검이나 칼을 수중에 쥐었고 눈빛이 예사롭지 않았으며 살기가 가득했다. 실력이 좋은 모험조인 것 같았다.
무리의 맨 앞에는 서른 정도 돼 보이는 남자 2명이 서 있었는데 생김새가 비슷한 것이 형제인 듯했다.
“뭐 하는 짓이야?”
곽흉이 그들을 바라보며 물었다.
목진도 그들에게 눈길을 돌렸는데 그중 우두머리 남자 2명이 준 화천경의 실력을 지니고 있었고, 8명은 융천경, 나머지는 전부 신백경의 실력자였다.
이는 모험조에서 아주 훌륭한 편에 속했다.
“여러분, 우리가 혈영지를 얻으려고 주위의 영수들을 간신히 없앴는데 당신들이 이렇게 채가는 것은 아니지.”
그중 삐쩍 마른 남자가 소훤, 소령아와 여정을 힐끗 쳐다보더니 히쭉거리며 말했다.
“능력 있는 자가 보물을 얻는 법. 당신들은 하루 동안 노력해도 따내지 못한 혈영지가 한순간에 우리 손에 들어온 것은 당신들이 무능하단 소리가 아닐까?”
소령아는 입을 삐쭉 내밀더니 놀리듯 말했다. 같잖은 녀석들의 말을 믿는 것이야말로 바보였다.
“너! 어린 계집이 죽고 싶어 환장했구나.”
“나이도 어린 것이 성깔은 제법이구나. 이 오라버니가 제대로 혼내주지.”
소령아의 말에 상대방이 화가 났는지 살기 가득한 얼굴로 욕설을 퍼부었다.
“꺼져!”
목진은 이따위 녀석들과 말을 섞고 싶지 않았다.
“성격 한번 거칠구나.”
탐험조의 우두머리가 목진을 힐끗 쳐다보더니 서서히 말을 이어갔다.
“제아무리 3대 세력이라도 여태껏 백룡지구에서 지낸 우리 사호단을 이리 대하진 못할 거야.”
그는 소훤의 실력을 확인하였으나 전혀 두렵지 않았다. 하나같이 경험이 풍부한 자신들에 비해 곱게 자랐을 것 같은 아이들은 상대가 되지 않았다.
“난 3대 세력 사람이 아니야.”
목진이 무덤덤하게 말했다.
“그런데도 입을 함부로 놀려? 융천경 초기밖에 안 되는 녀석이 어디서 까불어? 겁대가리 없는 녀석.”
얼굴에 칼자국이 난 사내 한 명이 사나운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이에 목진은 안색이 순간 어두워져 주먹에 흑염이 깃든 영력을 끌어모으며 먹이를 노리는 독수리처럼 하늘 높이 날아올랐다.
“죽고 싶어 환장했구나!”
융천경 중기인 사내는 융천경 초기인 목진이 전혀 두렵지 않았다.
사내 역시 영력을 손에 끌어모았는데 금세 빛을 발하는 독수리 발이 되어 공기를 가르며 목진에게로 향했다.
쿵!
주먹과 발이 부딪쳐 영력의 파동이 주위에 퍼져나갔다. 그러자 사내는 순간 사색이 되어 비명을 지르더니 손가락 마디마디가 부러지는 소리가 들렸고, 몸은 곧 튕겨 나갈 것만 같았다.
목진이 뒤로 튕겨 나가려는 사내의 손을 잡고 힘껏 비틀자 놈은 바닥에 맥없이 넘어졌고, 다시 가까이 다가가 발로 얼굴을 가격하자 더 멀리 튕겨 나가 거대한 나무에 부딪혔다. 갑작스레 벌어진 일에 놈은 비명조차 지르지 못했다.
다른 이들이 정신을 차렸을 때는 그는 이미 피투성이가 되어 쓰러져 있었다.
“무엄하다!”
사호단의 우두머리가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더니 체내의 영력을 끌어올려 주먹을 휘두르자 웅장한 영력이 포효하는 빛의 사자가 되어 놀라운 영력 파동과 함께 목진에게 향했다.
쿵!
대지마저 수령의 권풍에 반으로 갈라졌으니 그 위력은 상당했다.
그러나 여전히 무덤덤한 목진은 흑염이 깃든 영력을 끌어올려 주먹을 휘둘렀다. 여섯 갈래의 삼라사인이 검은색 혜성처럼 상대방에게 향했다.
두 사람의 권풍에 자갈들은 격렬하게 충돌하였고, 놀라운 기의 폭풍을 맞고 산산조각이 났다.
이에 사호단 사람들은 황급히 뒤로 물러나며 잔뜩 긴장하여 앞쪽을 바라봤다. 두 사람 모두 휘청이는 것 같았다.
그러다 이들은 금세 두 눈이 휘둥그레졌는데 그들의 우두머리가 어깨를 파르르 떨더니 반 치 정도의 흔적을 남기며 뒤로 수십 보 밀려났다.
반면, 맞은편의 소년은 기껏해야 뒤로 두 발자국 물러났다.
“이럴 수가!”
융천경 초기밖에 안 되는 목진이 준 화천경의 우두머리를 저리 만든 것에 다들 믿기지 않는 눈치였다.
나머지 한 명의 우두머리도 눈가가 파르르 떨렸다. 목진이 보이는 것보다 더 엄청난 전투력을 보였기 때문이다.
곽흉과 여정도 놀라긴 마찬가지였다. 어제저녁에 목진 혼자서 네 명의 융천경 후기인 용마위를 죽였다는 걸 들었지만 자신과 실력이 비슷한 놈을 직접 짓밟는 것을 보니 마음속이 복잡미묘했다.
목진은 주먹을 서서히 거두며 무덤덤하게 사호단 사람들을 바라봤다. 그들은 더는 함부로 입을 놀리지 못했고 심지어 목진의 눈을 피하기 바빴다.
흉악하기로 소문난 놈들은 앞에 있는 소년이 자신들보다 수법이 더 악랄하고 건드리면 인정사정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젠 그만 썩 물러나시지.”
목진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때 목진 뒤에 서 있던 소훤도 손을 들었는데 그 속에는 상고의 옥주가 있었다. 놀라운 영력 파동이 은은하게 퍼지면서 차분하기만 했던 그녀의 얼굴에도 어느새 한기가 드리웠다.
소훤도 화가 난 것이다.
소훤, 곽흉 등을 비롯해 다섯 명 모두 몸에서 영력 파동을 내뿜으며 싸울 준비를 마쳤다. 그들은 차가운 눈빛으로 사호단 사람들을 바라봤다.
이에 사호단의 두 우두머리는 안색이 조금 어두워져 목진과 소훤을 쓰윽 훑더니 두려운 기색이 역력했다.
실력이 자신보다 훨씬 좋은 소훤과 싸우면 이들이 전부 힘을 합쳐도 이기기 어려울 것 같았다. 또 가장 앞에 서 있는 보기엔 상냥하지만 잔혹한 소년까지 합세하면 처참한 대가를 치를 것만 같았다.
더구나 지존 영장이 나타난 지금, 이곳에서 힘을 빼는 것은 정말 멍청한 짓이었다. 함께 힘을 모아 목진 일행을 짓밟기로 했던 두 우두머리는 눈빛이 음침해져 나지막하게 말했다.
“조심해, 사호단은 절대 너희를 가만두지 않을 거야.”
그들은 손을 휘젓더니 살기 가득한 얼굴로 단원들과 함께 빠르게 사라졌다.
소령아는 그제야 콧방귀를 뀌고 돌아서 방긋 웃으며 목진을 바라봤다.
“네가 화낼 때 이렇게 멋있을 줄은 생각도 못 했어.”
목진이 소리 없이 웃자 뒤에 있던 소훤도 수중의 둥근 상고의 옥구슬을 집어넣고 목진을 바라보며 웃었다.
“역시 명불허전이야, 영로의 혈화자.”
소훤은 목진에 대해 어느 정도 아는 눈치였다. 그녀는 그를 이번 임무에 넣어도 될지 미리 조사했었다.
“우리도 얼른 떠날까요? 곧 백룡지구의 가장 깊숙한 곳에 도착할 거예요.”
목진은 이에 대해 더는 말하고 싶지 않은지 말을 돌리더니 기대에 가득 찬 눈빛으로 앞쪽을 바라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