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8화. 화염영련(火炎靈蓮)
그들은 다시 백룡지구의 가장 깊은 곳으로 향했는데 가끔 강력한 영수를 만난 것 외에는 방해꾼이 나타나지 않아 반 시진 만에 바로 목적지에 도착했다.
그곳에는 구름을 뚫고 우뚝 솟아오른 산이 수두룩했다. 그리고 그사이에는 거대한 폭포가 쏟아져 내렸다. 이로 인해 생긴 엄청난 물소리가 사방으로 메아리쳤다.
목진이 청산 한 곳에 올라타 주위를 살폈는데 그곳은 이미 사람들로 빼곡했다. 그 모습이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사람들이 이렇게 많아?”
곽흉은 이내 혀를 끌끌 찼다. 보아하니 백룡지구 천 리 안에서 실력이 괜찮은 사람들이 전부 이곳에 모인 듯했다. 역시 지존 영장의 위력은 대단했다.
“그해, 백룡 지존이 바로 이곳에서 사망했대.”
소훤이 앞쪽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곳에는 마침 산이 다섯 개나 솟아올랐다. 그 위에서 다섯 갈래의 폭포가 은하수처럼 쏟아져 내렸고 거대하고 맑은 호수가 다섯 개의 산을 비췄다.
목진은 계속해서 그곳을 쳐다봤지만,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했다.
“안 보여.”
소훤이 미소 지으며 말했다.
“수백 년간 이곳에 많은 사람이 왔지만 다들 아무런 수확도 얻지 못했어. 때가 되지 않았을 수도 있지만 백룡지존 정도의 실력이라면 숨기고 싶은 물건을 쉽게 찾아내게 할 리가 없지 않겠어?”
이에 목진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한 대륙의 주인이 되어 위엄을 떨치고 만민을 보듬어줘도 손색없는 실력의 소유자가 남긴 영장을 그리 쉽게 발견하기란 불가능했다.
“그럼 우린 조용히 영장이 나타나기만 기다리자. 곧 때가 올 것 같아.”
소훤은 다섯 개의 산을 바라보며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목진 등은 청산 위에 앉아 조용히 기다렸다. 그러는 사이에도 사람들은 계속 몰려들었고 백룡지구는 제법 떠들썩해졌다.
그때, 조용히 산봉우리에 앉아있던 목진은 갑자기 눈을 번쩍 뜨고 오른쪽을 바라봤다. 대량의 바람 소리가 들려오며 강력한 영력의 파동이 느껴지기 시작하더니 백 명 정도 되는 두 갈래의 무리가 산봉우리에 내려왔다.
그들은 백룡성에서 봤던 천강검파와 지행종으로 전보다 더 강하고 많은 사람을 거느리고 있었다.
웅장한 영력 파동과 많은 사람의 수에 다들 그들을 바라봤는데 각 세력의 우두머리들은 곧바로 인상을 찌푸렸다.
천강검파와 지행종에서 이번에 나타날 영장을 단단히 벼르고 있는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천강검파와 지행종에서 각각 두 명의 화천경 초기 장로를 보냈군.”
여정이 인상을 찌푸리며 그쪽을 바라봤다. 천강검파와 지행종은 북창대륙에서 일류는 아니나 백룡지구에서만큼은 누구보다 강력했다. 또한, 짧은 시간에 이토록 많은 사람을 움직일 수 있는 세력은 이들뿐이었다.
소훤도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임무에는 통천 영장이라고만 적혀있었는데 도착해보니 지존 영장일 줄은 꿈에도 몰랐다.
“최선을 다하면 돼. 우린 영장 중 한 가지만 얻으면 성공이야. 그리고 다른 보물은 상황을 살피며 결정하자.”
소훤의 말에 곽흉 등도 동의하였다. 지금으로서 그럴 수밖에 없었다. 이들 중 진정한 실력자는 소훤 한 사람뿐이고 다른 네 명은 다른 세력에 비하면 평범하기 그지없었다.
그때 멀리서 또다시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들렸는데 고개를 돌려보니 백 명 정도가 우르르 몰려들었다.
“백룡성에서 왔어요.”
무리의 맨 앞에는 백룡성의 소성주 백동이 있었고, 옆에는 회색 도포를 입은 노인이 있었다. 그리고 그 뒤로는 백 명 가까이 되는 사람들이 용무늬를 수놓은 하얀색 도포를 입고 서 있었는데 살기가 깃든 매서운 눈빛으로 주위를 훑었다.
그들을 바라보던 목진은 갑자기 인상을 찌푸렸다. 영력의 파동이 강력하지는 않았지만 왠지 모르게 거슬렸다.
“얄미운 놈!”
백동을 발견한 소령아는 순간 미간을 찌푸렸다.
이에 소훤도 고개를 돌려 보더니 이내 얼굴이 일그러졌다. 이곳에 온 백룡성 전사들은 실력이 평범해 보였고 회색 도포를 입은 노인도 기껏해야 화천경 초기로 천강검파와 지행종에 뒤처졌다.
그러나 소훤은 다른 세력보다 이들이 더 위험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백동도 소령아 쪽을 바라봤는데 음침하고 기괴하게 웃기만 할 뿐, 시비를 걸지는 않았다.
지금은 싸울 때가 아니었다.
이에 목진 등도 서서히 눈길을 거두고 거대한 호수를 뚫어져라 쳐다보며 영장이 나타나기만 기다렸다.
어느새 해가 저물고 둥근 달이 하늘 높이 걸려 차가운 달빛이 대지를 비췄다. 사람들은 목소리마저 줄이고 흥분한 마음을 가까스로 진정하며 호수 쪽을 바라봤다.
밤이 깊어졌지만 아무런 반응도 없었다.
설마 오늘이 아닌가?
사람들은 점차 인내심을 잃고 수군대기 시작했다.
한편, 목진도 둥근 달이 비친 거대한 호수를 조용히 바라보고 있었는데 호수 속 달이 갑자기 기이한 빛을 발하며 스며져 나오더니 수면에 잔잔한 안개가 일었다.
“드디어 때가 왔어!”
사람들은 가슴이 벅차올랐다. 드디어 영장이 나타날 징조가 보인 것이다.
그때 천지의 영기가 갑자기 폭동을 일으켰고 엄청난 속도로 모여들었다.
슉!
호수에 비친 둥근 달은 점차 밝아지더니 수많은 사람들의 눈길 속에서 은은한 그림자를 만들었다.
하얀색 도포를 입은 그림자의 얼굴은 제대로 보이지 않았지만, 옷에는 살아 숨 쉬는 듯한 백룡이 새겨져 있었고 무서운 압박감이 주위에 퍼졌다.
크으으으!
용의 울음소리가 들리더니 호수가 진동하며 뭉쳐진 안개가 한 마리의 백룡이 되어 그림자 주위를 맴돌았다.
“저건!”
사람들은 두 눈이 휘둥그레져 흐릿한 하얀색 그림자와 백룡을 바라보다가 금세 화색이 되어 눈이 반짝반짝 빛났다.
“백룡 지존이야!”
소훤은 주먹을 꽉 쥐고 감탄했다. 그러나 금세 복잡미묘한 감정에 사로잡혔다.
이번 영장은 역시 지존 영장이었다!
맑은 호수에 서서히 빛이 모이다가 백룡을 휘감은 허상이 나타나자 백룡지구의 분위기는 순식간에 들끓었다.
사람들은 혈안이 되어 허상을 노려보다 점차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이곳에 모인 사람들은 지존 영장에 관한 소문을 들었을 뿐, 아무 확신도 없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왔던 사람들의 바람은 현실이 되었다.
한편, 이들은 갑작스레 퍼진 소식 때문에 이곳에 큰 세력이 모이지 않은 것을 다행이라 여겼다. 만약 시간이 충분했다면 지존 영장은 분명 큰 세력의 손에 들어갔을 것이다.
“정말 백룡 지존이구나…….”
백동도 혈안이 되어 수면 위에 있는 허상을 바라봤고, 뒤에 서 있던 하얀 도포를 입은 사람들도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저분이 바로 백룡 지존인가?”
목진도 신기하긴 마찬가지였다. 비록 허상이 또렷하게 보이지는 않았지만, 주위를 맴도는 백룡과 사망했는데도 천지를 제압할만한 무서운 기운을 내뿜고 있는 것이 정말 대단했다.
그때 백룡 지존의 허상이 갑자기 손을 들자 주위를 맴돌던 백룡이 울부짖으며 눈부신 빛을 뿌렸는데 뜨거운 태양이 솟아오른 것처럼 호수 전체가 들끓었다.
그중 다섯 갈래의 빛줄기가 가장 눈부셨는데 빛의 기둥처럼 우뚝 솟아올라 다섯 개의 산봉우리로 향했다.
빛줄기가 산봉우리에서 쏟아져 내리는 은하수를 쏘자 폭포가 바로 반으로 잘리며 엄청난 빛을 발했다.
잠시 후, 거대한 암석이 굴러내리며 다섯 갈래의 폭포수 밑에서 다섯 개의 거대한 부적이 나타났다.
“저건…….”
다들 눈이 휘둥그레져 폭포에 숨겨진 부적을 바라봤다.
다섯 개의 거대한 상고 부적은 갑자기 밝아지더니 살아 숨 쉬는 것처럼 산에 떨어져 호수 위에서 뭉쳐졌다.
이와 동시에 백룡도 하늘을 향해 포효하더니 부적을 향해 돌진했다. 그리고 눈부신 빛을 발하다 이내 수백 척 되는 빛의 소용돌이를 만들어냈다.
그 속에서 빛의 기둥이 구름을 뚫고 솟아올랐는데 기둥은 거대한 백룡이 날아가는 것 같았고, 용의 울음소리도 백 리 넘게 퍼져나갔다.
“지존 영장이 드디어 나타났구나.”
오늘 드디어 백룡지구에 수백 년 동안 숨겨졌던 지존 영장이 나타났다!
“돌격하라!”
누군가의 외침에 사람들은 모두 일제히 날아올라 벌떼처럼 소용돌이를 향해 돌진했다.
이에 목진의 마음도 불타올랐다. 지존 영장을 얻어 실력을 키울 절호의 기회였다.
이현통에게서 낙리와 낙신족에 관한 일을 들은 뒤로 목진은 하루라도 빨리 실력을 키우고 싶었다. 그는 낙리가 수많은 백성을 끌어안고 혼자 고독하게 지내는 것도, 자신이 옆에서 지켜볼 수밖에 없는 것도 싫었다.
목진은 북창령원 신생 구역의 자그마한 집 옥상에서 소녀한테 말했었다, 언젠가 절세의 강자가 되겠다고!
아직 갈 길이 멀지만 목진이 성장할 시간은 충분했다.
“우리도 갑시다.”
목진은 고개를 들어 차가운 공기를 깊게 들이마시며 말했다. 그의 눈동자에 무언가 드리웠고 목소리에는 간결함이 묻어났다. 목적지를 향한 길은 멀고 험난하겠지만 결국 전부를 바쳐 노력해야 한다.
이에 소훤도 고개를 끄덕였다.
“다들 조심해. 지존경이 남긴 영장을 얻기란 절대 쉽지 않을 거야.”
그녀는 말을 마치자마자 가볍게 숨을 들이마시고 일행들과 함께 네 갈래의 빛이 되어 거대한 빛의 소용돌이로 향했다.
* * *
빛의 소용돌이에 들어가자 목진은 주위에서 몰려오는 무질서한 공간의 움직임을 느꼈다. 갑자기 어두워졌다가 광명을 되찾은 곳에서 뜨거운 바람이 불었다.
목진이 간신히 눈을 뜨자 놀라운 장면이 눈앞에 펼쳐졌다. 이곳은 아주 넓은 암장의 호수였고 목진은 호수의 거대한 석대 위에 서 있었다. 석대는 부단히 빛을 발하더니 사람들이 계속해서 나타났다.
그런데 소훤 등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소용돌이의 공간 파동 속에서 흩어졌나?”
목진은 인상을 찌푸리며 지존 영장의 위력에 감탄했다. 이는 스스로 만들어낸 공간이었는데 대천세계에서 엄청난 실력자여야만 해낼 수 있는 일이었다.
통천경의 강자도 절대 할 수 없는 일이다.
대천세계는 천만 개 위면의 교차로로 공간이 튼튼하기로 유명한데 하위면에서 손쉽게 이곳에 온 강자는 이곳의 공간을 찢지 못하지만, 대천세계에서 하위면으로 간 강자는 그곳의 공간을 자유자재로 뒤집어놓을 수 있었다.
목진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는 잠시 흩어진 일행을 언젠가 다시 만나리라 믿었고 그들의 실력은 누군가 일부러 시비를 걸지만 않으면 안전할 것이라 믿었다. 지금은 자신을 지키는 것이 최선이었다.
목진은 고개를 들고 주위를 살폈는데 떠들썩한 것으로 보아 거대한 암장 호수 주위에 석대는 이곳 하나뿐이 아니었다.
“이곳부터 떠나야겠군.”
목진은 암장 호수의 끝자락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곳이 지존 영장으로 향하는 곳일 가능성이 컸다.
“저게 뭐지?”
그때 석대에서 환호성이 일었다.
암장 호수에 붉은색 연꽃이 피었고 그 속에서 화염이 들끓었는데 화염 속에 엄지손가락만큼 큰 연자가 불타오르는 것 같았다.
동시에 놀라운 영력 파동이 일며 공기마저 들끓었다.
“저건…….”
붉은색 연꽃을 본 목진은 흠칫하더니 바로 알아챘다.
“화염영련?”
사람들도 이를 알아챘는지 다들 욕망에 들끓는 눈빛으로 그곳을 바라보았다.
역시 지존 영장은 남달랐다.
목진은 입맛을 다시며 거대한 암장 호수를 살피다가 갑자기 무언가 떠올랐다.
화염영련은 무리를 지어 성장하지 않는데 그런 현상이 나타났다는 것은 이보다 놀라운 보물이 숨겨져 있다는 뜻이었다.
그건 바로 화영선련이었다.
화염영련이 진화하면 화영선련이 되는데 불 속성 영결을 수련하는 사람한테는 정말 큰 도움이 되었다. 아직 목진은 해당 영결을 수련하진 않았지만, 체내에 융합한 구유화에게 유리할 것이 분명했다.
“화염영련이 저렇게 많으니 그 속에는 분명 선련도 있을 거야.”
그때 뒤쪽에서 호탕하게 웃는 소리가 들리더니 누군가 자신과 가장 가까운 화염영련으로 향했다.
“화염영련이 이렇게나 많다니, 운이 너무 좋은 거 아니야?”
그는 곧장 화염영련으로 향했는데 잇따라 일어난 일에 목진의 눈이 파르르 떨렸다.
녀석이 화염영련를 덥석 잡자 아래쪽 암장이 쩍 갈라지더니 붉은 그림자가 번개같이 나타나 녀석의 다리를 휘감아 힘껏 끌어 당겼다.
으악!
처량한 비명과 함께 그는 암장 속에 빠져들었고 곧장 연기로 변해 피어올랐다.
화염영련을 꺾으려던 목진 등은 순간 안색이 어두워졌다. 암장에 이토록 무서운 흉물이 숨어있단 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