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9화. 조우
“저게 뭐지?”
사람들은 눈앞에서 벌어진 일에 화들짝 놀라 황급히 암장에 눈길을 주었는데, 그 속에서 붉은색 그림자가 나타나 거닐었다.
그들은 온몸이 붉은색 비늘로 덮인 거대한 이무기로 머리에는 붉은색 뿔이 달렸고 들끓는 암장이 피부에 닿아도 아프지 않았다.
그들은 차갑고 흉악한 기운을 내뿜는 회백색의 눈으로 석대 위에 서 있는 사람들을 노려봤다.
“탄염망(吞炎蟒)이다!”
누군가 흉물을 알아보고 소리쳤다. 놈은 영수로 암장에서 태어나 이를 다스리는 능력이 타고났고, 암장 속에 숨어있어 상대하기가 무척 어려웠다.
“보물은 대개 무언가가 지키고 있는데 탄염망이 바로 화염영련을 지키는 수호신이구나.”
목진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탄염망은 상대하기 쉽지 않으나 무서워 도망칠 정도는 아니었다.
“탄염망 주제에 우릴 막을 수 있을까?”
멀지 않은 곳에서 한 사내가 피식 웃더니 웅장한 영력을 뽐내며 암장을 향해 돌진했다.
푹!
사내가 화염영련을 취하려 하자 암장에서 또다시 붉은빛을 내는 여러 갈래의 빛줄기가 난폭한 바람을 일으키며 솟아올랐다.
이에 사내가 콧방귀를 뀌며 주먹을 쥐자, 영광에 빛나는 장도가 나타나 여러 갈래의 날카로운 빛을 발하며 상대방의 공격에 맞섰다.
쿵!
금속이 부딪치는 소리와 함께 암장을 뚫고 나온 여러 마리의 탄염망이 반으로 잘렸고 비명과 함께 혈흔이 생겨 맥없이 떨어졌다.
이렇게 사내는 탄염망을 물리치고 화염영련을 수중에 넣더니 곧바로 그 속의 연자를 취했다.
이에 주변에서 손 놓고 보고만 있던 사람들이 황급히 암장으로 향했다.
목진도 발끝으로 허공을 가볍게 내디뎌 암장 호수의 중심으로 향했다.
화염영련도 좋지만 목진은 화영선련이 더 탐이 났다. 선련을 얻으면 체내의 구유화가 더 강력해질뿐더러 바로 융천경 중기에 진입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에게는 여러 가지 수단이 많지만 그에 비해 실력은 평범해 실력 차이가 큰 상대와 붙으면 조금 뒤처진다.
목진은 이런 생각을 하며 속도를 더 끌어올렸다.
그때 아래쪽 암장 호수에서 갑자기 암장이 떠오르더니 엄청난 소리와 함께 수십 척 정도 되는 암장 기둥이 목진을 향해 솟아올랐다.
목진은 곧바로 영영보로 몇 갈래의 잔상을 이뤄 암장 기둥을 피했고 여전히 빠른 속도로 앞으로 향했다.
한편, 한껏 떠들썩해진 드넓은 암장 호수 위에서 사람들은 화염영련을 얻고자 혈안이 되었고 이로 인해 싸움이 벌어지기도 했다.
암장 속에 숨어든 탄염방은 기회를 엿보다 맹렬한 공격을 가하곤 했는데, 사방에서 들려오는 비명과 함께 수많은 사람이 추락해 암장에 빠졌다.
그들은 영력의 도움으로 암장이 주는 피해를 면할 수 있었지만, 그 속에 숨은 탄염망의 습격에는 속수무책이었다.
그러나 목진은 이를 무덤덤하게 바라볼 뿐, 목적지를 향한 발걸음은 한시도 늦추지 않았다. 그는 화염영련을 빼앗을 생각이 전혀 없었다.
반면, 암장 호수 중심은 천지 영기가 더 난폭하고, 숨은 영수도 더 표독스러울 거라 여긴 사람들은 처음부터 그곳을 거들떠보지도 않았는데 목진에게는 오히려 기회가 주어졌다.
이렇게 1각이 지나지 않아 목진은 목적지에 도착했다.
그런데 아무리 살펴도 주위엔 붉은색 암장만 있을 뿐, 다른 건 전혀 보이지 않았다.
“아무것도 없나?”
인상을 찌푸리며 주위를 살피던 목진은 암장 호수 중심에 시무룩하게 서 있었다.
그때 바람을 가르는 소리와 함께 누군가 그곳으로 들어왔다. 이들도 목진처럼 화영선련을 찾아 헤매고 있었다.
목진은 속으로 그들의 안목을 칭찬하며 쓰윽 살폈는데 무리의 말단에 있는 사람 중에 익숙한 얼굴이 몇 명 보였다.
5명 정도 되는 무리의 우두머리는 하얀 옷을 입은 백룡성 소성주 백동이었고, 옆에는 회색 도포를 입은 노인과 부하 몇 명이 따라붙었다.
마침 백동도 목진을 발견했는데 장난기 어린 미소와 함께 음침한 눈빛으로 목진을 쏘아봤다.
“혼자인가? 일행들과 흩어졌나 보군.”
백동은 활짝 웃으며 목진을 바라보더니 서서히 다가왔다.
이에 회색 도포를 입은 노인과 그 부하들은 부채형으로 흩어졌다.
그 모습에 목진은 눈빛이 순간 일그러지다 이내 웃으며 백동한테 다가갔다.
“백룡성의 소성주군요. 소문으로 익히 들었는데 그날은 알아보지 못하여 미안하네요.”
백동은 흠칫 놀라더니 후회하는 듯한 목진의 표정에 속아 입가가 씰룩거렸다. 그를 죽이려는 생각은 변함은 없지만 이렇게 나온다면 죽을 때 고통을 조금 덜어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날 무슨 일이 있었나? 나 백룡성 소성주는…….”
백동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회색 도포 노인의 얼굴이 순간 어두워졌다.
목진은 귀신처럼 순식간에 백동 앞에 나타나 청광 장검으로 상대방의 숨통을 향해 힘껏 휘둘렀다.
아무도 융천경 초기인 목진이 도망치지 않고 이들이 보는 앞에서 백동을 공격할 줄 몰랐다!
너무 가까운 거리에서 날아온 공격이라 피하기가 거의 불가능해 보였다.
그런데 그때, 회색 도포를 입은 노인이 백동의 몸을 쳐내 장검은 결국 그의 얼굴을 지나 한쪽 귀를 베었고 피가 철철 흘러내렸다.
공격이 무산된 목진은 놀라운 속도로 후퇴하였으나 눈빛은 전혀 흔들리지 않았다. 어느새 웃음기가 사라진 차가운 얼굴로 상대방을 바라봤다.
“멍청한 놈, 제법 운이 좋구나.”
목진은 장검으로 떨어져 나간 귀를 가리키며 피범벅이 된 백동에게 말했다.
“망할 녀석, 감히 내 귀를…….”
백동의 잔뜩 일그러진 얼굴은 피 때문에 더 무서워 보였는데 한쪽 귀를 막고 목진을 가리키며 아우성치는 모습이 마치 그를 갈기갈기 찢어버리겠다고 말하는 것만 같았다.
목진한테 이토록 농락당할 줄은 몰랐다.
“구 씨, 저 녀석을 잡게. 무조건 살려둬. 내 반드시 저 녀석의 사지를 찢어버릴 거야!”
백동은 혈안이 되어 외쳤다.
“어린 나이에 저렇게 교활하다니, 방심해선 안 되겠구나.”
회색 도포 노인이 음침한 눈으로 목진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네 명의 용마위가 살해당한 이유를 이제야 알 것 같았다. 소년은 백동보다 어리지만 교활하고 흉악한 것은 절대 일반 북창령원 학생에게서 볼 수 없는 것이었다.
“날 죽이려고 코앞까지 찾아왔는데 차라도 대접할까요?”
목진이 익살스럽게 웃으며 물었다.
회색 도포의 노인이 음침한 눈빛으로 목진을 노려보더니 피식 웃었다.
“어차피 넌 죽을 목숨이야. 지난번에는 운 좋게 살아남았지만, 이번엔 절대 살아남지 못할 거야.”
목진은 흠칫 놀랐다.
“지난번이라니?”
목진은 그제야 의문이 풀렸다.
“당신들이 용마위를 보냈군요. 그럼 백룡성도 용마궁의 것이란 말이네요?”
“똑똑한 녀석.”
회색 도포를 입은 노인이 무덤덤하게 웃으며 말했다. 소년은 어차피 죽을 거니까 사실을 알아도 상관없었다.
“저 녀석을 죽여라!”
회색 도포를 입은 노인이 손을 휘두르자 뒤쪽에 있던 부하들의 눈빛이 점차 음침해졌다. 그 속에서 스며져 나오는 살기는 목진이 죽였던 네 명의 용마위와 똑같은 것이었다.
회색 도포를 입은 노인의 살기 가득한 목소리가 울려 퍼지자 뒤쪽에 있던 부하들이 검은색 창을 들고 목진에게 달려들었다.
이에 목진은 어두운 영력을 끌어올리며 수중의 청광 장검을 휘둘렀는데 흑염이 들끓는 검광이 빛을 발하며 상대방의 공격에 맞섰다.
쿵!
그러다 검광에 부딪힌 검은색 창은 바로 들끓는 흑염에 활활 타버렸다. 오늘의 상대는 지난번에 상대했던 용마위들보다 실력이 뒤처져 보이는 것이 기껏해야 융천경 중기였으나, 서로 손발이 잘 맞아 융천경 후기도 충분히 죽일 수 있을 정도였다.
목진은 전장 밖에서 독사처럼 자신을 노려보는 회색 도포의 노인에게 눈길을 돌렸다. 이 사람이야말로 목진이 진정 두려워하는 사람이었다. 화천경 초기의 실력은 현재의 목진에게는 부담이 커 공격을 개시하면 절대적인 위협이 될 것이다.
또 지금은 그를 도와줄 사람이 없고 그날처럼 지세를 빌어 추격전을 개시할 수도 없는 총체적 난국이었다.
한편 암장 호수 주위에서 목진이 백룡성 사람들과 싸우자 사람들은 전부 못 본 척 지나쳤다.
“기회를 봐서 먼저 도망가야겠어.”
목진은 인상을 찌푸리며 생각했다.
이곳은 지존 영장의 외곽이라 이곳에서 백동 등과 힘을 겨루다가 상대방의 지원군이 도착할 수도 있고,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는 다른 사람들도 경계해야 했다.
“도망가려고?”
그때 회색 도포의 노인이 음침하게 웃더니 메마른 손으로 주먹을 꽉 쥐었는데 순식간에 난폭한 영력이 모여 놀라운 위력을 뽐내는 장창을 만들어냈다.
“노인네가 움직이겠군.”
목진은 안색이 어두워져 재빨리 물러났다.
이에 회색 도포의 노인은 피식 웃더니 연기처럼 사라져 목진을 바로 따라잡았다.
목진이 영영보를 극도로 끌어올렸는데도 손쉽게 따라잡은 것으로 봐서 영영보보다 더 훌륭한 영결을 수련한 것이 분명했다.
“흑룡창!”
노인이 검은색 창을 휘두르자 눈부신 빛과 함께 웅장한 영력이 살벌한 흑룡으로 변해 살기를 가득 품고 목진을 공격했다.
이에 목진은 9급부도탑을 소환하여 이를 방패로 내세웠다.
쾅!
금속이 부딪치는 소리와 함께 장창에 맞은 9급부도탑이 세차게 흔들렸고 목진의 기혈마저 들끓었다.
노인은 융천경 후기의 실력자도 받아내지 못하는 자신의 공격을 막아낸 괴이한 흑탑에 조금 놀랐다.
“이곳을 봉쇄해. 저 녀석이 끝까지 버틸 수는 없을 거야.”
노인은 수중의 검은색 창에 화천경의 영력을 전부 쏟아부어 힘껏 휘둘렀다. 이렇게 그 공격의 여파로 암장 호수에 파도가 일었고 공기마저 반으로 갈리는 것 같았다.
노인의 공격이 점차 강해지자 목진은 황급히 영영보로 도망쳤고 9급부도탑의 강대한 방어 능력으로 모든 공격을 막아냈다.
그러나 목진은 상대방의 공격을 막아내느라 아무런 공격도 개시하지 못했다.
“구 씨, 저 녀석을 절대 죽이지 말게. 난 저 녀석을 한 방에 죽이지 않을 거야.”
외곽에 있는 백동이 도망치기 바쁜 목진을 바라보며 말했다.
“걱정하지 마세요, 소성주. 난 절대 저 녀석을 놓치지 않을 겁니다.”
노인은 씨익 웃더니 더 강력한 공격을 개시했다.
이에 목진의 안색이 점차 어두워졌다. 계속해서 쏘아붙이는 노인 때문에 잔뜩 화가 났다.
목진은 화천경 초기의 실력이 부담스럽긴 해도 전력을 다하면 얼마든지 짓밟을 수 있었다.
“그렇게까지 나랑 놀고 싶으면 상대해줘야지.”
목진이 두 손으로 결인하더니 지극히 놀라운 속도로 수중의 인법을 변환하였다. 그러자 아주 경이로운 영력의 파동이 주위에 퍼졌다.
“뭐지?”
이를 감지한 노인이 흠칫 놀랐다. 역시 용마위 네 명을 죽인 데는 다 이유가 있었다.
그런데 그때, 목진은 무언가를 발견한 듯 아래쪽을 보느라 잠시 인법의 변환을 멈췄다.
“나를 상대하면서 감히 한눈을 팔아? 죽고 싶어 환장했구나!”
노인은 피식 웃더니 번개같이 목진의 위쪽에 나타나 들끓는 영력으로 힘껏 내리쳤다.
빠른 속도로 목진의 머리 위에서 팽창한 9급부도탑은 또다시 노인의 공격을 막아냈지만, 곧바로 빛을 잃고 작아져 목진의 몸속으로 돌아갔다.
목진은 큰 타격을 입은 듯 맥없이 암장 호수에 빠졌다. 이렇게 목진은 종적을 감췄다.
노인은 눈을 부릅뜨고 호수를 빤히 쳐다봤다. 목진이 이렇게 쉽게 죽었다는 사실이 도무지 믿기지 않았다.
이때, 백동이 황급히 달려와 이를 갈며 말했다.
“그 녀석은 분명 죽지 않았을 거야. 당장 잡아 와, 그 녀석은 내 손에 죽어야 해!”
노인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소성주, 암장 호수에는 화독이 있어요. 그 속에 빠지면 제아무리 영력으로 암장을 막아내도 화독 때문에 죽을 수밖에 없습니다.”
목진의 뼈를 잘근잘근 씹어먹어도 화가 풀리지 않을 백동은 그가 이렇게 죽었다고 믿고 싶지 않았다.
“이곳에서 조금만 더 지켜봅시다. 염장 호수에서 오랜 시간 버티기란 불가능하니 만약 죽지 않았다면 바로 나올 겁니다. 그때 놈을 잡으면 되지요.”
노인은 예리한 눈으로 수면을 훑으며 말했다.
“절대 죽지 마라!”
백동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