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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주재-170화 (169/1,000)

170화. 연자를 연화하다

그들은 허공에서 흩어져 수면을 관찰하였고 1각 정도 지났는데도 목진은 나타나지 않았다.

“녀석은 분명 죽었을 겁니다.”

노인이 묵직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 정도 시간이면 자신이라도 죽었을 것인데 융천경 초기밖에 안 되는 목진은 더할 나위 없었다.

이에 백동은 씩씩거리며 옷깃을 날렸다.

“소성주, 우리도 일단 성주한테 갑시다. 지금은 백룡 지존의 물건을 얻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백동은 노인의 말을 따르는 수밖에 없었지만, 미련이 남아 떠나기 직전까지 수면을 훑었다.

그런데 이들이 죽었다고 생각한 목진은 암장 호수의 깊은 곳에 내려가 무언가를 찾고 있었다. 화독이 비록 치명적이긴 하나 구유화를 지닌 목진한테는 무용지물이었다.

목진은 붉은색 암장 속을 누비며 주위를 계속해서 훑었다. 일전에 구유작이 암장의 깊은 곳에서 기이한 영력 파동을 느꼈는데 화영선련일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이에 노인의 손을 빌려 호수에 뛰어든 것이다.

백룡성 세력을 따돌리고 화영선련까지 찾을 수 있는 일석이조의 방법이었다.

“괘씸한 노인네, 다음번에 만나면 절대 가만두지 않을 거야.”

목진은 원하는 바가 따로 있지만 않았어도 절대 실력을 숨기지 않았을 것이다. 그의 공격에 노인네가 죽지는 않아도 중상을 입힐 수는 있었다.

목진은 선련을 찾는 발걸음을 늦추지 않고, 계속해서 주위를 살피며 더 깊숙이 들어갔다. 어느 정도 들어가니 암장이 구유화를 뚫고 들어오는 것이 느껴졌다.

이대로는 아무리 구유화가 있어도 오래 버티지 못할 것이다.

“우측 아래 200장쯤에 있어.”

이때 갑자기 들려온 구유작의 말에 목진은 재빨리 움직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속도를 줄였는데 눈앞에 나타난 물건에 이내 화색이 되었다.

들끓는 붉은색 암장 속에 10척 정도의 무지갯빛 연꽃이 피었는데 다채롭게 빛나는 빛에 암장조차 가까이하지 못했고, 발산하는 기이한 향에 목진의 몸에 깃든 화독이 점점 사라졌다.

목진은 조금 흥분하여 암장 깊숙한 곳에 피어난 무지갯빛 연꽃을 바라봤다. 이것이 바로 오랫동안 찾아다녔던 화영선련(火靈仙蓮)이었다!

“정말 화영선련이네.”

목진은 이글거리는 눈으로 암장 속 무지갯빛 연꽃을 바라봤다. 그의 예상대로 보물은 수면 위에 있는 것이 아니라 암장 밑 깊숙한 곳에 숨어있었다.

다만 금속도 순식간에 녹일 정도의 암장 속에 화독까지 더하면 화천경의 강자라도 깊게는 들어오지 못할 것이다. 목진도 구유화가 없었다면 화영선련이 있는 곳을 알았어도 포기하고 떠났을 것이다.

목진은 곧바로 화영선련으로 향했다.

그런데 그때, 아래쪽 암장이 미친 듯이 요동치더니 붉은빛이 이를 뚫고 목진을 공격했다.

이에 화들짝 놀란 목진은 9급부도탑을 소환해 몸을 감쌌는데 붉은빛의 공격에 파르르 떨더니 빠르게 어두워지며 목진의 체내로 돌아갔다.

풉!

이와 동시에 목진은 피를 토했고 오른쪽을 바라보고는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곳에는 평범해 보이는 붉은 뱀 한 마리가 있었는데 선홍빛 비늘에 머리 위에는 암금색 뿔이 났고 그 속에서 암장이 계속해서 쏟아져 나왔다.

탄염망보다 몸집이 훨씬 작은 붉은 뱀은 회색 도포의 노인보다 더 위험해 보였다.

“탄염망왕인가?”

목진은 자그마한 뱀을 보더니 흠칫했다. 수면 위에 있는 화염영련이 탄연망을 불러왔으니 화영선련 같은 보물을 지키는 영수가 없을 리 없었다.

탄염망왕은 화천경 중기의 실력에 암장 속에 있어서 소훤이라도 그 상대가 되지 않을 것 같았다.

탄염망왕은 차가운 눈으로 표독스럽게 목진을 노려봤다. 이 정도 실력이라면 지능도 어느 정도 발달했단 뜻인데 그래서인지 목진을 바라보는 것이 꼭 먹잇감을 희롱하며 자기 실력으로 눈앞의 인간을 없애는 것은 식은 죽 먹기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목진은 꼼짝하지 않고 코앞에 있는 화영선련을 바라보다가 다시 호시탐탐 자신을 노리는 탄염망왕한테 눈길을 돌려 곧바로 철수하려 했다.

지금 실력으로 암장 속에서 탄염망왕과 싸우기는 무리였고 조금이라도 지체하면 화독 때문에 죽을 수도 있었다.

슉!

그때 탄염망왕이 살기 가득한 눈으로 목진을 노려보며 꼬리를 가볍게 흔들었는데 놀라운 영력 파동과 함께 목진 주위의 암장이 미친 듯이 몰려왔다. 이에 목진은 부득이하게 속도를 줄였다.

탄염망왕이 암장을 다루는 법은 역시 남달랐다.

목진은 식은땀을 흘리며 구유화로 간신히 자신을 보호하였다. 고개를 들어보니 탄염망왕이 암장을 가르며 한줄기 붉은빛처럼 자신을 향해 다가왔다.

“이런!”

목진은 안색이 어두워지며 체내의 영력을 모조리 끌어올려 상대에게 맞설 준비를 했다. 그때 갑자기 몸이 파르르 떨리더니 새의 맑은 울음소리가 체내에 울려 퍼졌다.

명쾌한 소리에는 차마 감출 수 없는 오만함과 존귀함, 그리고 강력한 기운이 물씬 풍겼다.

이에 탄염망왕은 바로 동작을 멈추고 놀란 듯 눈이 휘둥그레졌다. 마치 생명을 위협하는 무서운 물체를 본 듯했다.

탄염망왕은 뒤도 안 돌아보고 도망치려 하였다. 그런데 목진의 체내에서 갑자기 흑염이 튀어나와 십 척 정도의 흑조로 변해 차가운 눈빛으로 앞쪽의 탄염망왕을 노려보다가 입을 쩍 벌려 흑염을 뿜었다.

온몸에 흑염을 휘감은 탄염망왕은 비명을 지르며 미친 듯이 발버둥 쳤는데 결국 흑광으로 변해 흑조의 입속으로 들어갔다.

목진은 이를 넋 놓고 바라보다가 우아하고 날씬하며 자그마한 흑조한테 눈길을 돌렸다.

“구유작이야?”

몸에 흑염을 휘감은 새는 느긋하게 목진을 바라봤는데 눈빛을 보니 구유작이 틀림없었다.

“이젠 내 몸에서 나올 수 있어?”

목진이 화들짝 놀라 물었다. 보아하니 구유작이 어느 정도 힘을 되찾은 것 같았다.

“영력이 만들어낸 허상일 뿐이란다.”

눈앞에서 날갯짓하는 구유작의 목소리가 목진의 체내에서 울려 퍼졌다.

“난 너 때문에 빨리 죽고 싶지 않아.”

이에 목진은 쓸쓸하게 웃었다. 혈맥을 연결했기 때문에 목진이 탄염망왕의 손에 죽으면 구유작도 같이 죽게 된다.

그때 영력이 만들어낸 구유작의 허상이 갑자기 날개를 퍼덕이며 흑염으로 감싼 무언가를 뱉었다.

“탄염망왕 체내의 물건 같은데 소화가 안 되는구나.”

목진은 어리둥절하여 물건을 받았는데 흑염이 가시자 백은으로 만든 손바닥만 한 은패가 나타났고, 그 위에 백룡 한 마리가 날아가며 기이한 빛을 뿜어냈다.

“이게 뭐지?”

백룡이 새겨진 은패는 아무리 봐도 알 수가 없어 목진은 일단 주머니에 넣었다. 백룡이 있는 것으로 보아 백룡 지존의 물건 같은데 왜 탄염망왕의 체내에 있는지 궁금했다.

목진은 뭔지 모를 은패를 거두고 다시 화영선련으로 고개를 돌려 스스럼없이 다가가 수십 척 정도의 연꽃 위에 내려앉았다.

순수한 화의 영력이 연꽃에서 피어올랐고 중심에 갓난아이의 주먹만한 작은 연자가 허공에 떠 있었다.

“화영선련의 연자는 네가 가져. 대신 네가 연자를 완벽하게 흡수하면 연꽃은 나한테 넘겨.”

구유작은 흐뭇하게 화영선련을 바라봤다. 그는 이토록 순수한 화의 영력을 머금은 보물이 필요했다.

이에 목진도 동의했다. 연꽃 자체도 나쁘진 않지만 그 속에 깃든 영력이 너무 난폭해 연화하고 흡수하는 데 적잖은 힘과 시간을 쏟아부어야 했다. 화영선련의 연자 속 영력이 더 순수했다.

그래서 여유가 없는 목진은 연꽃을 버릴 바에는 구유작에게 주는 것이 낫다고 판단했다.

“빨리 연화해. 화영선련은 화독을 막을 수 있어. 또 이곳에서 수련하면 연자 속 영력을 흡수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거야. 내 영력의 화신이 널 보호할 수 있을 때 서둘러. 사라지면 너도 위험해질 거야.”

구유작의 흑염이 들끓는 몸은 빠르게 작아져 손바닥 정도의 자그마한 흑조가 되어 연꽃에 내려앉았다.

이에 목진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앞으로 나아가 연꽃 속의 무지갯빛 연자를 취했다.

그때 주위의 순수한 화의 영력이 한 갈래씩 목진에게 향하자 그는 바로 대부도결을 소환하여 전부 흡수하였다.

목진이 손을 펴자 갓난아이 주먹만 한 크기의 은은한 빛을 내는 연자가 보였다. 점점 온몸이 따뜻해지며 이곳에 오래 머물러 체내에 파고들었던 화독이 모조리 사라졌다.

“엄청난 물건이로구나.”

목진은 감탄을 자아내며 연꽃에 자리 잡고 앉아 체내에 솟구치는 영력을 가라앉히고, 무지갯빛 연자를 손에 꼭 쥔 채 대부도결을 소환하였다.

무지갯빛 연자는 눈부신 붉은빛을 내며 뜨거운 태양처럼 목진의 손가락 사이로 스며 나왔고, 순수한 붉은색 영력은 연자에서 빠르게 솟아올라 붉은빛이 되어 목진을 감싸 안았다.

어느덧 목진의 피부는 빨갛게 달아올랐고 체내의 영력은 놀라운 속도로 웅장해지며 들끓었다.

* * *

암장의 호수 위, 사람들은 부단히 바람을 가르며 화염영련을 찾느라 여념이 없었다. 대부분은 누군가의 손에 들어갔지만 드넓은 암장 호수를 낱낱이 훑어보면 하나라도 더 있을까 싶어 적잖은 사람들이 이곳을 떠나지 못하였다.

그중 하얀색 도포를 입은 사람 하나가 방대한 석대 위에 앉아 날카로운 눈빛으로 언짢은 듯 붉은색 암장 호수를 살폈다.

그는 백동이 이곳을 떠나며 남긴 용마위로 목진이 암장 호수에 빠진 걸 직접 눈으로 봤는데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일부러 감시자를 남겨놓았다.

백동의 이런 명령에 회색 도포의 노인은 괜한 짓이라고 생각했다. 자신이라도 암장에 빠지면 반각도 안 되어 죽을 텐데 1각 넘게 기다리다 떠났으니 목진은 이미 재가 되었을 것이다.

남겨진 용마위도 똑같이 생각하였으나 백동의 명을 거역할 수 없어 언짢은 마음을 애써 다스리며 주위를 살폈다.

“융천경 초기밖에 안 되는 녀석이 암장에 빠졌는데 과연 살아남을 수 있을까?”

용마위는 피식 웃으며 들끓는 암장 호수를 대충 살폈는데 순간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놀란 건 그뿐이 아니었으니, 화염영련을 찾아 헤매던 강자들도 화들짝 놀라 암장 호수를 바라봤다.

그곳에서 소용돌이가 일고 뜨거운 암장이 들끓기 시작하더니 주위에 있던 염망들이 도망치느라 바빴다.

쿵 하는 소리와 함께 거대한 암장 기둥이 소용돌이에서 솟아올랐는데 흑염을 휘감은 사람 하나가 그 속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어느덧 흑염이 가시고 늘씬하고 훤칠한 소년이 나타났는데 그 익숙한 모습에 다들 깜짝 놀랐다.

“백룡성 사람들과 싸우다 암장 호수에 빠진 소년이잖아!”

“저 녀석이 아직도 살아있다니!”

“말도 안 돼!”

사람들은 마치 귀신이라도 본 듯한 표정을 지으며 혀를 끌끌 찼다. 목진이 암장 호수에 빠졌을 때까지만 해도 가엾게 여겼는데 아직 살아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그러나 목진은 사람들의 시선은 신경 쓰지 않았다. 그는 곧바로 고개를 숙여 자신의 기다란 손을 바라보고는 주먹을 쥐어 체내에 들끓는 웅장한 영력을 확인하고 흐뭇하게 웃었다.

화영선련의 연자에 깃든 순수한 화의 영력으로 목진의 실력이 부쩍 늘어나 융천경 중기에 이르렀고 융합한 구유화마저 전보다 훨씬 강력해졌다.

목진은 만족스러운 듯 웃으며 고개를 들어 주위를 살폈는데 백동 일행은 이미 떠나고 없었다. 하긴, 그들은 이곳에서 목진이 나올 때까지 기다릴 시간이 없었다.

“다시 만나면 절대 가만두지 않을 거야.”

그때 목진은 멀지 않은 곳에서 넋 놓고 자신을 바라보는 하얀색 도포를 입은 남자를 발견했다.

“날 감시하려고 사람을 남겼어?”

하얀색 도포를 입은 용마위는 순간 어두워진 목진의 안색에 흠칫 놀라 바로 도망치려 했다. 융천경 중기인 자신의 실력으로는 절대 목진을 이길 수 없다고 판단해 일단 백동에게 이 소식을 알리려 한 것이다.

그런데 그때, 뒤쪽에서 바람을 가르는 날카로운 소리가 들려 뒤돌아보니 목진이 귀신처럼 바로 뒤에서 나타났다.

“백동의 소원대로 넌 영원히 이곳을 지켜.”

목진의 차가운 목소리에는 살기가 깃들어있었다.

용마위는 안색이 돌변해 검은색 장창을 소환하여 있는 힘껏 목진을 향해 휘둘렀다. 흑염을 휘감은 기다란 손이 번개같이 다가와 검은색 장창을 건너 용마위의 등을 때렸다.

그러자 용마위의 옷은 순간 잿더미가 되었고 등에는 검은색 손자국이 생겼으며 난폭한 흑염이 피부를 뚫고 그의 체내로 스며들어 경맥을 불태웠다.

“으악!”

용마위가 피를 토하며 처량하게 울부짖었다.

목진은 차가운 눈빛으로 상대를 바라보더니 검은색 장창을 빼앗아 용마위를 있는 힘껏 내리쳤다.

용마위는 암장 호수에 맥없이 떨어지며 비명을 질렀지만 암장은 그를 사정없이 삼켜버렸다.

목진은 수중의 검은색 장창도 암장 호수에 내던지고 다시 안정을 되찾았다. 그리고 유유히 그곳을 떠났다.

사람들은 손에 땀을 쥐고 이를 지켜보았고 떠나가는 목진을 두려움 가득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어린 소년이 이토록 잔인할 줄은 몰랐다.

그런데 이런 소년을 건드렸으니 백동은 이제 아주 골치 아파질 것이다.

사람들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감탄하다가 바로 정신을 차리고 다시 화염영련을 찾기에 몰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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