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주재-171화 (170/1,000)

171화. 용교령환(龍蛟靈環)

암장 호수를 떠난 지 1각 만에 드넓은 암장 호수에서 벗어난 목진 앞에 거대한 궁전이 나타났다. 수많은 사람이 보물을 찾으려 혈안이 되어 궁전으로 들어갔다.

이곳은 암장 호수보다 더 난잡했고 무언가 나타나면 그 정체를 알기도 전에 사람들은 정신없이 달려들었다.

아직은 외곽이라 진정한 보물이 있을 리 없다고 여긴 목진은 서둘러 혼잡한 대전을 지나려 했다. 그런데 눈치 없는 녀석들이 목진을 막아섰고 그는 상대가 피를 토하며 쓰러질 때까지 사정없이 후려쳤다. 이에 목진에게 더는 함부로 덤비지 못했다.

대전을 지나가 기다란 복도에 연결된 상고의 석실로 들어가는 사람들이 보였다. 잇따라 호탕한 웃음소리가 들려와 뭔가 좋은 물건을 찾은 듯했지만, 잠시 후에는 들려오는 소리는 칼부림 소리뿐이었다.

목진은 개의치 않고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갔다. 암장 호수에서 시간을 많이 지체하여 최대한 빨리 소훤 등을 따라잡아야 했다.

이토록 위험한 곳에서 믿을 수 있는 건 친구밖에 없었다. 소훤 등과 회합하는 것이 답이었다.

“부디 그들이 무사하길.”

목진은 소훤, 여정, 곽흉은 전혀 걱정되지 않았지만, 그중에서 실력이 제일 약한 소령아가 신경 쓰였다. 그녀의 활발한 성격으로 시비라도 붙으면 큰코다칠 수도 있었다.

그는 결코 교만하긴 해도 착한 소령아가 다치는 걸 원치 않았다.

목진은 3리 정도의 기다란 복도를 수없이 지났고 그중에는 수많은 석실과 대전이 있었지만 힐끗 쳐다보기만 할 뿐 그대로 지나쳤다.

목진의 마음을 움직이기엔 턱없이 부족한 물건들뿐이었다.

“이 정도면 외곽은 지났겠군.”

깊숙이 들어갈수록 석실의 수는 적어졌지만, 내부는 더 크고 화려해졌다. 그러다 목진이 또 하나의 복도를 지나자 눈앞에 거대한 석전이 나타났다. 대문은 이미 망가졌고 안에서는 난폭한 영력을 발산하고 있었다.

목진은 석전을 훑고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결국 포기하고 가던 길을 계속 가려고 했다.

그런데 그때, 석전에서 광기 어린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어여쁜 아가씨, 물건을 이리 내. 네가 우리 사호단과 원한 관계가 있긴 하지만 내 말을 들으면 없던 일로 해주지. 아니면 네 몸뚱이가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몰라.”

“꿈 깨!”

음란한 목소리와 함께 들려온 한기 어린 목소리에서 주체할 수 없는 화와 혐오감이 묻어났다.

“우린 회유했는데 네가 말을 듣지 않은 거야.”

다시금 광기 어린 웃음소리가 들려오자 목진은 발걸음을 멈췄다. 차가운 목소리의 주인은 바로 여정 선배였다.

* * *

석전은 널찍하고 웅장했지만 세월의 흔적을 고스란히 담고 있어 망가진 데가 많았다. 게다가 대전에는 거대한 돌기둥이 무너져 내려 마치 폐허처럼 보였다.

폐허 같은 석전에는 사람이 수두룩했지만, 그 중심에 10명 정도 모여있는 것 외에는 다들 뿔뿔이 흩어져 있었다. 사람들은 감히 그들한테 덤비지 못하고 눈도 마주치려 하지 않았다.

사호단은 백룡지구에서 손꼽히는 탐험조 중 하나로 현재 두 우두머리가 전부 와있었기 때문이다.

한편 석전의 끝자락에 우뚝 솟은 석상이 두 눈을 부릅뜨고 서 있었는데 꼭 살아 숨 쉬는 것 같았고, 그의 두 손목에는 구멍이 움푹 파여 있었다.

그리고 그 아래에는 늘씬한 몸매에 차가운 인상의 아름다운 여인이 잔뜩 화가나 서 있었다.

“얼른 물건을 내놔. 안 그럼 우리가 어떻게 나올지 몰라.”

사호단 중 하나가 여인을 흘겨보며 히쭉거렸다. 여인의 화끈한 몸매에 야릇한 생각이 저절로 들었다.

사호단 앞, 석상 아래에 서 있는 여인이 바로 여정이었다. 그녀는 이를 갈며 차가운 눈빛으로 사호단을 바라보았다.

“너무한 거 아니야? 하나를 빼앗고도 성에 차지 않는 거야?”

여정은 놈들을 전부 찢어 죽이고 싶었지만 준 화천경의 실력으로 같은 수준의 사호단 우두머리 2명과 자신을 호시탐탐 노리는 강자들을 모두 상대하기는 어렵다는 걸 잘 알았다.

그때 사호단의 중년 남자 하나가 앞으로 나아가 손을 들자 암홍색 팔찌가 드러났다. 손목을 감싸고 있는 팔찌에서 교룡이 웅장한 영력을 뽐내며 울부짖었고, 그 속에서 내뿜는 빛이 중년 남자의 주위를 맴돌았다.

이에 다들 부러운 눈빛으로 용교령환을 바라보았다.

석전에 이상이 나타나자 석상의 손목이 수상하다고 여긴 여정은 제일 먼저 그곳을 발견하고 단칼에 그 위에 묻은 먼지를 없앴다.

그런데 먼지가 떨어지자마자 영광이 빗발치며 석상의 손목에 반짝이는 팔찌가 나타났고, 각각 용과 이무기의 모양을 한 팔찌에서 울음소리가 들렸다.

이는 절대 일반 영기가 아니었다.

적어도 상품 영기였다.

백룡성에서 중품 영기만해도 경매가로 수백만 영폐를 내야 하는데 상품 영기는 더 말할 것도 없었다. 그래서 나타났다면 하면 세력들의 치열한 쟁탈전이 벌어졌다. 그러니 눈앞에 나타난 용교령환을 그냥 지나칠 수는 없었다.

사람들이 기쁨에 젖어있을 때, 여정이 가장 먼저 정신을 차리고 석상에서 용교령환을 떼어냈는데 바로 사호단의 우두머리 두 명한테 걸려 그중 이무기령환을 빼앗기고 말았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로 절대 만족하지 않았다. 용교령환은 두 개가 함께 있어야 상품 영기의 진정한 위력을 뽐낼 수 있어 용령환까지 수중에 넣으려 하였다.

수중에 이무기령환을 쥔 중년 남자가 이를 쓰다듬으며 히쭉 웃었다.

“용령환을 얼른 내놔. 그럼 털끝 하나 건드리지 않을게.”

그는 사호단의 우두머리 중 한 명으로 이름은 정호(程虎)였는데 백룡지구에서 명성이 자자했다.

“내 손에서 용령환을 빼앗으려거든 어디 해봐.”

여정은 이를 악물고 간신히 화를 참으려 수중의 용령환을 바라보았다. 화룡 모양의 용령환의 난폭한 영력에 대전의 천지 영기마저 진동했다.

“설마 혼자 우리 사호단과 맞서겠단 건가?”

남자 여럿이서 여인 한 명을 괴롭혔다고 소문이 나도 정호는 아무렇지 않았다. 이익 앞에서 명성 따위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형님, 우리 합세하여 저 여인을 칩시다. 끝까지 저렇게 버틸 수는 없을 거예요.”

사호단 우두머리 중 나머지 하나가 입을 열었다. 그는 곧 목진과 힘을 겨뤘던 정사(程獅)였다.

용교령환이 중품 영기였으면 사호단이 이렇게까지 나오지 않았을 텐데 상품 영기라면 전혀 다른 문제였다.

사호단의 우두머리 형제는 용교령환을 얻으면 화천경 초기도 거뜬히 상대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두 사람이 힘을 합치면 상대방의 코를 납작하게 해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또 백룡지구에서 실력이 괜찮은 사람들은 대부분 중품 영기를 소유하고 있었고, 상품 영기는 3대 세력 이외에는 보유한 자가 다섯 손가락을 넘지 않았다.

상품 영기보다 더 강력한 존재가 절품 영기인데 해당 등급의 영기는 지능이 높아 오묘하기 그지없고 산을 옮기고 바다를 반으로 가를 만큼 강력한 힘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북창대륙에서 이를 소유하고 있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그러자.”

정호가 고개를 끄덕이며 답하더니 차가운 눈빛으로 여정을 노려봤다.

이에 사람들은 혀를 끌끌 찼다. 역시 사호단은 원하는 것이 있다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덤볐다.

“움직여!”

정호 두 형제는 사람들의 야유를 무시하고 바로 여정을 공격했다. 영력의 위압감에 주위에 있던 실력자들조차 황급히 물러났다.

여정도 순간 안색이 어두워져 수중의 용령환을 꼭 쥐었다. 죽는 한이 있어도 절대 물건을 빼앗기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백룡지구에서 이름을 날린 사호단이 어찌 이따위 짓거리를 하지?”

그때 그들을 비웃는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누구야!”

정호 등은 흠칫하며 주위를 둘러봤다. 대문 쪽에 훤칠한 소년이 히쭉거리며 그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 녀석이야.”

정호 형제는 순간 안색이 어두워져 목진의 뒤를 살피고는 소훤이 없는 것을 확인하자 바로 시름을 놓았다. 실력파 소훤만 없으면 이들은 두려울 것이 없었다.

“목진아!”

잔뜩 화가 났던 여정은 금세 화색이 되었는데 곧바로 그녀 또한 목진 한 사람뿐이라는 사실에 걱정이 밀려왔다.

비록 목진이 보이는 것보다 실력이 좋긴 하지만 사호단 무리도 호락호락한 존재가 아니었다.

“당장 꺼져, 죽기 싫으면.”

정호가 음침한 눈으로 목진을 쏘아보며 말했다.

이에 목진은 피식 웃더니 석전의 인파를 뚫고 여정한테 다가가 정호 형제의 예리한 눈빛은 무시하고 여정에게 따뜻한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여정 선배, 괜찮아요?”

여정은 이런 열세에도 자기 옆에 와준 목진이 고마워 가볍게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우리 함께 이들을 뚫고 나가자. 소훤 등과 회합하면 이들도 감히 우리를 건드리진 못할 거야.”

“가긴 갈 건데 빼앗긴 물건은 돌려받고 가야죠.”

목진도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좋게 말할 때 물건을 내놔.”

목진은 정호 형제에게 고개를 돌려 손을 내밀며 웃었다.

이를 지켜보는 사람들은 흥미진진했다. 소년이 무슨 자신감으로 이런 말을 내뱉는 것인지, 사호단은 과연 그들을 그대로 보내줄지 자못 궁금했다.

아니나 다를까, 정호 형제의 안색은 점차 어두워졌고 살기 가득한 눈으로 목진을 바라봤다.

“죽고 싶어 환장했냐?”

정호 형제가 목진을 쏘아보며 물었다. 이들은 소년이 혼자인데도 겁 없이 나댈 줄 몰랐다.

“큰형님, 저 녀석을 죽여버립시다.”

누군가가 기세등등하여 말했다. 목진이 감히 사호단의 위엄에 도전하고 있었다.

이에 정사는 정호와 눈을 마주치더니 고개를 끄덕이며 앞으로 나아가 강대한 영력의 압박과 함께 입을 열었다.

“네 용기는 가상하나 그에는 엄청난 대가가 뒤따르는 법이야.”

정사가 이리 말하며 주먹을 쥐자 검은색 장도가 나타났는데 피비린내 나는 것이 위력이 상당한 영기인 것 같았다.

이에 여정도 한기 어린 눈빛으로 상대방을 바라보며 그에 맞서려 하였으나 목진이 이내 막아 나섰다.

“나한테 맡겨요.”

목진의 웃는 모습에 여정은 그나마 시름이 놓였다. 임무를 함께 하다 보니 조금은 목진에 대해 알게 됐는데, 그는 절대 피가 끓어 충동적인 결정을 할 녀석이 아니었다.

그가 나타나자마자 이러는 것은 절대 멍청해서가 아니라 상대방을 전혀 두려워하지 않아서였다. 두렵지도 않은 상대를 봐줄 필요는 없었다.

“조심해. 정호는 내가 맡을게.”

여정이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이에 목진은 고개를 끄덕이고 천천히 앞으로 나아갔는데 수중에 영광이 번쩍이더니 청광 장검이 나타났다.

“나와 단둘이서 싸우겠다고? 패기가 대단하구나.”

정사는 헛웃음부터 나왔다. 융천경 주제에 감히 준 화천경과 싸우겠다고 홀로 나선 목진이 어이가 없었다.

구경꾼들도 경악을 금치 못했다. 소년이 뭘 믿고 이렇게 멍청한 짓을 하는 건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오늘 네가 한 결정에 얼마나 큰 대가를 치를지 제대로 알려주지.”

그는 목진을 봐줄 생각이 전혀 없는지 곧바로 잔혹한 모습을 드러냈다. 강력한 영력을 끌어올리며 공격을 개시했는데 이에 석전 전체가 흔들렸다.

“죽어!”

정사는 순식간에 목진의 위쪽에 나타나 음침한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며 수중의 장도를 휘둘렀다. 정사는 공격에 아무런 기교도 넣지 않은 대신 체내의 영력을 모조리 끌어모았다. 하여 장도에서 수백 척 정도의 막강한 빛이 뿜어져 나왔고 바닥에 닿지도 않았는데 땅에는 거대한 균열이 생겼다.

정사는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여 목진을 공격했다.

이에 목진도 숨을 깊게 들이마시더니 갑자기 차가워진 눈빛으로 상대방을 바라보며 체내의 영력을 미친 듯이 끌어올렸다.

잠시 후, 흑염이 깃든 어두운 영력이 끓어올라 몸을 감싸 안자 대전의 온도가 서서히 올라갔고 기합 소리와 함께 수중의 장검을 앞으로 있는 힘껏 찔렀다. 그러자 흑염이 휘몰아쳐 수백 척 정도의 흑염 검망을 형성하여 상대방의 공격에 정면으로 맞섰다.

엄청난 소리와 함께 주변의 거대한 돌기둥 전부가 잘려 반듯한 단면을 형성하자 구경꾼들도 황급히 뒤로 물러났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