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3화. 석상 수위
상고의 석상은 눈부신 빛을 뿜었고 그 주위에 각인된 듯한 영진은 복잡하고 난해했다.
사람들은 넋을 놓고 이를 바라보다가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경악을 금치 못했다.
석상이 살아난 것이다.
목진도 이내 정색하여 상고의 석상를 바라봤다.
석상은 눈을 뜬 채 빛을 발산하고 있었다. 그는 서서히 고개를 숙여 석전에 모인 사람들을 훑더니 감정이 하나도 섞이지 않은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용묘를 건드린 자, 모조리 없애라!”
석상은 그렇게 말하며 옆에 있던 쓰러진 거대한 돌기둥을 번쩍 들어 올려 무시무시한 힘을 실어 휘둘렀다.
돌기둥에 닿은 물건은 전부 산산조각이 났고 차마 피하지 못한 이들은 멀리 튕겨 나가거나 대전의 벽에 부딪혀 피를 토했다.
갑자기 폭주한 석상에 사람들은 화들짝 놀라 물러났다. 석상은 무서운 살육의 신이었다.
목진도 놀라긴 마찬가지라 체내의 영력을 신속히 끌어올렸고 기회를 엿봐 도망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철수할 준비를 합시다.”
목진은 작은 목소리로 여정에게 말했다. 이에 여정도 동의하듯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어떻게 깨어났는지는 모르지만 석상은 사정없이 도살을 시작했다. 수중의 돌기둥을 흉기로 삼아 사방으로 휘둘렀고 이에 맞은 사람은 죽거나 중상을 입었다.
그중 사호단과 구도단 단원이 가장 많았는데 대부분 돌기둥에 맞아 즉사했다.
“정호 형, 석상이 어떻게 된 일이죠?”
구도단의 두 우두머리의 안색이 순간 어두워졌다. 상품 영기가 있다고 해서 왔는데 이런 변고가 있을 줄 몰랐다. 그런데 상품 영기는 커녕 처리하기 힘든 석상 수위가 나타났다.
“상품 영기는 두 사람한테 있으니까 절대 놓쳐서는 안 돼.”
후원병이 겨우 왔는데 이런 일이 생겨 정호도 답답하긴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그는 기어코 물러서지 않고, 멀지 않은 곳에 서 있는 목진과 여정을 가리키며 말했다.
“우리 셋만 남고 나머지는 전부 철수하자.”
그 말에 구도단의 두 우두머리는 조금 주저했다. 미친 듯이 도살하는 석상 수위가 있는 곳에 머물렀다가는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몰랐다.
“내 동생은 저 녀석한테 맞아 중상을 입었고 이를 빌미로 협박까지 했어. 그러니까 녀석만 잡을 수 있다면 상품 영기는 너희가 가져.”
정호가 이를 갈며 하는 말에 구도단의 우두머리는 비로소 눈을 번쩍 뜨며 웃었다.
“그럼 정호 형 말대로 녀석부터 잡죠.”
정호는 언짢았지만 별다른 말은 하지 않고 부하들을 철수시키고 구도단의 두 우두머리와 함께 목진과 여정에게 다가갔다.
그들이 다가오는 것을 발견한 여정은 어이가 없었다. 석상 수위가 날뛰는 곳을 떠나지 않고 다가오는 놈들을 보며 지금 그럴 때인가 싶었다.
그러나 그녀는 전혀 당황하지 않고 주먹을 쥐었다. 그러자 용교령환에서 강렬한 빛을 내뿜더니 거대한 적룡과 이무기가 포효하며 나타나 하늘을 뒤흔들만한 힘으로 셋을 향해 돌진했다. 이에 주위의 돌기둥이 우르르 무너졌다.
한편, 용교령환이 하나가 되어 선보인 위력에 목진은 화들짝 놀랐다. 역시 상품 영기의 위력은 대단했다.
“젠장!”
살기 가득한 적룡과 이무기의 돌진에 정호는 안색이 어두워졌다. 그들은 곧바로 체내의 영력을 모조리 끌어올렸고, 세 갈래의 웅장한 영력 기(氣)의 회오리가 적룡, 이무기와 부딪쳤다.
쿵!
난폭한 영력의 파동에 주위에 남아있던 사람들은 이내 피를 토하며 뒤로 튕겨 나갔다.
한편, 정호 일행은 포효하며 달려드는 적룡과 이무기의 공격을 막는 데 성공했지만, 이들한테 발이 묶여 속수무책이었다.
용교령환의 강력한 힘에 여정은 화색이 되었다. 이 물건만 있으면 화천경 초기의 실력자와도 힘을 겨뤄 볼 만했다. 상품 영기는 역시 엄청나다는 생각이 들었다.
목진도 그 위력에 감탄했다. 자신도 용교령환을 지닌 여정과 힘을 겨뤄서 이기려면 강력한 수단을 써야 어느 정도 승산이 있을 것 같았다.
목진은 용교령환이 탐났지만 이미 여정에게 주기로 하여 마음을 접었고 지존영장에 상품 영기가 절대 하나 뿐은 아닐 거라고 굳게 믿었다.
쿵!
엄청난 소리에 목진은 멈칫하여 석상 수위에게로 눈길을 돌렸는데 녀석은 멈춰서서 용교령환을 착용한 여정을 바라보았다.
녀석은 자기 몸에서 떨어져 나간 용교령환에서 익숙한 파동을 감지한 것 같았다. 비록 지능은 없지만 영력의 파동만으로 자연스럽게 이끌린 것이다.
그런데 그때, 석상 수위가 갑자기 목진 등을 향해 돌진하더니 씩씩거리며 돌기둥을 휘둘렀다.
목진은 바로 정색하며 여정을 끌어안고 후퇴했다.
쿵!
돌기둥이 사정없이 두 사람이 서 있었던 곳을 내리치자 땅이 갈라졌다.
목진은 정말 아찔했고, 만약 이를 피하지 못했더라면 적어도 중상을 입었을 것이다. 이 석상 수위는 아마 화천경이나 돼야 상대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이거 놔.”
귓가에 들리는 차가운 목소리에 목진은 고개를 돌려 품에 안은 얼음 미인을 바라봤는데 여인의 차가운 눈빛에서 부끄러움이 묻어났다.
“상황이 상황인지라…….”
목진은 머쓱하여 웃더니 바로 여정을 풀어줬다. 그는 여정이 이성을 특별히 배척하는 것을 알았지만 긴박한 상황이라 어쩔 수 없었다.
이를 아는 여정도 끝까지 물고 늘어지지 않고 목진을 힐끗 째려보고는 다시 석상 수위에게 고개를 돌렸다.
녀석은 다시 돌기둥을 휘둘러 가장 가까이에 있는 정호 일행을 공격했다.
이에 기겁한 정호 일행은 황급히 도망쳤는데 하마터면 돌기둥에 제대로 맞을 뻔했다.
“우리도 얼른 이곳을 떠나요.”
목진의 말이 끝나자마자 갑자기 백룡의 무늬가 새겨진 은패가 나타났다. 그리고 암장 호수 밑, 탄염망왕한테서 얻은 은패가 갑자기 뜨거워지기 시작했다.
“뭐지?”
목진은 멈칫하였다가 바로 인상을 찌푸리며 물건을 주머니에 넣었는데, 석상 수위가 공격을 멈추고 자신을 향해 돌진하였다.
“얼른 떠나요!”
목진은 바로 안색이 어두워져 여정에게 말을 건네고 아수라장이 된 석전에서 빠르게 물러났다.
그러나 석상 수위는 포기를 모르고 살기 가득한 모습으로 두 사람의 뒤를 쫓았다.
이에 정호 등 세 사람은 긴장이 풀렸다.
“정호 형, 석상 수위의 실력이 막강하여 우리만으로 상대하기 어려울 것 같아요. 어렵게 따돌렸으니 이것으로 그만둘까요? 녀석이 어쩌다 석상한테 찍혔는지 몰라도 잡히면 분명 죽을 거예요.”
구도단의 두 우두머리가 숨을 고르며 말했다. 개죽음당할 뻔한 두 사람은 더는 석상과 보물을 빼앗고 싶지 않았다.
정호도 잠시 고민하더니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이곳을 정리한 뒤 지존 영장의 가장 깊은 곳으로 갑시다. 그곳에는 분명 더 좋은 보물이 있을 테니 우리가 힘을 합치면 3대 세력과 힘을 겨룰 수도 있을 거예요.”
“좋아요.”
구도단과 사호단은 단원들을 소집하여 함께 더 깊숙한 곳으로 향했고 목진은 석상이 자신을 노리는 것을 발견하고 미간을 잔뜩 찌푸렸다.
“목진, 이게 어떻게 된 일이야?”
여정은 석상이 자기와 목진을 따르는 것이 궁금했다.
“날 노리는 것 같은데 우리 일단 갈라서요.”
목진이 나지막하게 말했다.
“그럼 내가 뒤에서 따라갈게.”
여정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신속하게 방향을 틀었다.
석상은 역시나 용교령환을 착용한 여정을 무시하고 목진의 뒤를 쫓았다.
“젠장!”
석상을 상대한 적도 없는데 녀석이 왜 자신을 쫓아오는지 목진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뭐지?”
목진은 심각하게 생각하다가 아차 싶어 은색의 백룡 은패를 다시 꺼냈다. 그는 뜨거워진 은패를 바라보더니 갑자기 뭔가 떠올랐다.
석상 수위는 은패에 이끌려 목진의 뒤를 쫓는 것이 분명했다.
거대한 상고의 석상이 대지를 뒤흔들며 목진을 따라가자 앞길을 막는 물체들은 사정없이 짓밟혔다.
이에 사람들은 두려움에 떨며 피하기 바빴다.
목진은 흑염을 머금은 어두운 영력을 몸에 휘감고 전력을 다하여 달렸는데 수중의 은패가 점점 뜨거워지는 것을 느꼈다.
몇 번의 시도 끝에 석상이 은패 때문에 자신을 따라온다는 것을 알았다.
“은패가 도대체 무슨 작용을 하는 걸까?”
목진은 정말 궁금했다. 이 물건이 탄염망왕의 체내에서 발견됐다는 것은 일부러 숨겼다는 건데 목진이 화영선련을 찾고 구유작이 탄염망왕을 먹지 않았다면 절대 알려질 일은 없었을 것이다.
이토록 은밀한 곳에 숨겨진 물건이 절대 평범할 리 없고 은패에는 백룡의 무늬까지 새겨져 있으니 백룡 지존의 물건일 가능성이 컸다.
“계속 도망칠 수는 없어.”
목진은 사색에 잠겼다. 지존 영장을 찾으러 가야 하기에 최대한 빨리 상고의 석상 수위를 따돌려야만 했다.
목진은 곧바로 높은 곳을 찾아 기세등등하게 상고의 석상을 바라봤다. 대지를 가르며 달려오는 기세에 공기마저 자리를 비켜주는 것 같았다.
목진은 수중의 은패를 번쩍 들어 영력을 불어넣었다. 그러나 아무런 반응도 없었고 석상은 계속해서 달려왔다. 그 공격에 맞으면 적어도 중상이란 생각에 목진은 저절로 식은땀이 났다.
“설마 쓸모없는 물건인가?”
목진은 입이 바짝 말랐지만 은패에 영력을 불어넣는 것만은 멈추지 않았다.
쿵!
석상이 갑자기 하늘 높이 뛰어올라 목진이 있는 곳에 내려섰다.
이에 목진은 잔뜩 긴장하여 도망칠 준비를 하려는데 수중의 은패가 드디어 반응을 보이기 시작했다. 은패에 수놓은 백룡의 무늬는 부활한 것처럼 나지막하게 울기 시작했고 백광을 내뿜어 상고의 석상을 비췄다.
그러자 기세등등하던 상고의 석상은 놀라운 속도로 작아져 눈 깜짝할 사이에 손바닥만 해졌다.
“이건…….”
목진은 수중에 뛰어오른 석상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손바닥만 한 알록달록한 녀석의 몸뚱이에 희미하게 광문이 일어나는 것이 자신의 뒤를 쫓던 석상 수위가 확실했다.
보아하니 수중의 은패는 영기와 비슷한 존재로 석상 수위를 조종하거나 복종하게 만드는 일종의 수단 같았다.
“역시 은패가 쓸모없는 물건은 아니었어.”
목진은 은패를 거두고 자그마한 석상을 넌지시 바라보다가 다시 그 속에 영력을 불어넣었다.
위잉.
석상은 다시 빛을 발하며 백 척의 거대한 몸으로 되돌아왔고, 그는 더는 목진을 공격하지 않고 충성을 맹세한 수위처럼 조용히 곁에 서 있었다.
그는 이제 석상을 완벽하게 조종할 수 있게 되었다.
쿵!
석상은 목진의 조종에 따라 옆에 있던 돌기둥을 한방에 부쉈는데 이를 상대하려면 화천경 초기라도 쉽진 않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석상은 전쟁을 위해 태어난 물건이었다.
“대단한걸.”
수백 년이란 긴 시간이 지났는데도 이토록 무서운 힘을 보존하고 있으니, 지존 영장은 역시 엄청난 존재가 틀림없다.
목진은 비록 상품 영기를 얻지 못했지만 신박한 석상 수위를 얻은 것만으로도 아주 만족했다. 백동 등을 만나도 더는 두려워할 필요가 없었다.
이때, 갑자기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들려 목진은 석상 수위를 재빨리 주머니에 넣었다.
잠시 후 눈앞에 여정이 나타났다. 그녀는 목진이 무사한 것을 보고 안심하고 두리번거리며 물었다.
“석상 수위는 어떻게 됐어?”
“해결했어요.”
목진이 히쭉 웃으며 하는 말에 여정은 화들짝 놀랐다. 석상 수위마저 손쉽게 해결하는 목진의 진정한 실력은 과연 어느 정도일까?
여정은 이런 목진이 궁금했지만, 그저 힐끗 쳐다보고는 넘겨버렸다. 다들 알리고 싶지 않은 것이 있기 마련이니 굳이 따져 묻지 않기로 했다.
“해결했으면 얼른 소훤을 찾으러 가자.”
강자들이 우르르 몰려드는 상황에서 조금만 더 지체하면 지존 영장의 제일가는 보물을 만나볼 기회조차 없을 것 같았다.
목진도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아직 지존 영장의 가장 깊숙한 곳에 들어가지도 않았는데도 화영선련, 용교령환, 석상 수의가 나타났으니 앞으로는 무엇이 나타날지 흥미진진하였다.
과연 백룡 지존이 가장 아끼는 물건이 무엇이고, 그 위력은 얼마나 놀라울까?
만약 이를 얻을 수 있으면 목진의 전투력은 필경 폭등할 것이고 화천경의 강자를 만나도 태연하게 맞설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