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6화. 흑룡과 백룡
“곧 없어질 영력 잔상일 뿐인데 참 위풍당당하구나, 백룡 지존.”
다들 빛의 그림자에 부들부들 떨고 있을 때, 비웃는 듯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 목소리의 주인공은 백룡성 성주 백헌이었는데 그는 차가운 눈빛으로 빛의 그림자를 노려봤다.
“미친 거 아니야?”
사람들은 백헌의 행동을 당최 이해할 수 없었다. 비록 실력은 괜찮으나 백룡 지존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한 실력이었다.
그때 빛의 그림자도 하얀색 동공을 굴려 백헌을 바라보았는데 천지의 영기가 순간 폭동을 일으켰다.
“용마궁에서 역시 사람을 보냈구나.”
빛의 그림자의 목소리가 쩌렁쩌렁 울려 퍼졌다.
“백룡 지존, 난 더 이상 용마궁의 배신자인 당신을 존경하지 않아. 그런데 무려 지존이 이런 곳에서 죽었으니, 참 안타까워.”
백헌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용마궁에서 가져간 물건을 돌려줘. 그해에 네가 한 짓 때문에 용마궁은 북창령원과의 싸움에서 패배했고, 더는 이곳 북창대륙의 패주가 아니야. 그로서 넌 용마궁의 대역 죄인이야!”
이에 빛의 그림자는 백헌을 넌지시 바라보더니 시선을 거두었다. 비록 영력 잔상밖에 남지 않았지만, 지존의 위엄은 여전했고 백헌 따위를 상대할 필요도 없었다.
“백룡 지존이 나한테는 관심이 없나 보지? 그럼 당신이 관심을 가질만한 엄청난 인물을 보여주지.”
백헌은 무덤덤한 백룡 지존을 보며 씨익 웃더니 주먹을 쥐었다. 그러자 손바닥에 흑광이 일더니 한곳에 모여 용안 정도 크기의 검은색 구슬이 나타났다.
백헌은 히쭉거리더니 무서운 영력 파동이 이는 신비로운 검은 구슬을 으깨어버렸다.
쿵!
엄청난 소리와 함께 더없이 무서운 검은색 빛기둥이 하늘 높이 솟아올랐고 엄청난 위압감이 이곳을 휘어잡았다.
검은색 빛기둥에서 검은색 그림자가 서서히 걸어 나왔는데 천지가 그 발아래에서 파르르 떠는 것만 같았다.
“백룡, 수백 년 만에 보는구나.”
검은색 그림자는 나타나자마자 하얀색 도포를 입은 빛의 그림자를 보며 담담하게 웃었다.
이에 목진 등은 화들짝 놀랐다. 검은색 그림자도 지존이란 말인가!
검은색 그림자가 나타나자 천지의 영기는 폭동을 일으켰고 소름 끼치도록 엄청난 위압감이 주위에 퍼졌다.
검은색 그림자도 천지의 영기를 마음껏 움직일 수 있었다.
“저건…… 지존의 분신인가?”
사람들은 백룡 지존 못지않게 무서운 검은 그림자를 바라보더니 다리가 후들거렸다. 갑작스러운 변고에 사람들은 너무 놀라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들은 백헌이 어떻게 지존의 분신을 소환한 건지 이해할 수 없었지만 백룡성에 지존이 있다는 생각에 아찔했다.
백룡성처럼 강한 세력이 어찌 백룡지구에 숨어있는지도 이해가 안 되긴 마찬가지였다.
천강검파와 지행종도 경악을 금치 못했다. 백룡성과 함께 여태껏 백룡지구의 3대 세력으로 불렸지만, 그 차이는 엄청나다는 걸 지금에서야 깨달았다.
“방금 백룡 지존의 잔상이 용마궁이라고 했어?”
“설마 수백 년 전에 북창대륙을 통일해 북창대륙의 패주가 될 뻔한 엄청난 세력을 말하는 건가?”
“백룡성이 정녕 용마궁의 세력이란 말인가?”
* * *
이 일이 알려지면 북창대륙에서 큰 파동이 일 것이다.
그러나 백헌은 사람들의 시선 따위는 개의치 않고 경외에 가득 찬 눈빛으로 검은색 그림자를 바라봤다. 이곳 임무만 완성하면 다시 용마궁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생각에 신분이 노출되든 말든 상관없었다.
“저건 지존의 분신이야…….”
소훤은 하늘을 쳐다보더니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백헌이 이토록 엄청난 걸 갖고 있을 줄은 몰랐네. 역시 백룡 지존의 영장을 얻기 위해 단단히 준비했어.”
이에 목진 등도 눈이 휘둥그레져 고개를 끄덕였다. 백헌이 쥔 패가 백룡 지존의 잔상을 상대하기 위해 준비한 것이라 다행이었다.
“흑룡…….”
백룡 지존은 하얀 눈동자로 검은색 그림자를 노려보더니 태연하던 안색에 드디어 파동이 일었다.
“네가 내 앞에 나타날 줄은 몰랐구나. 북창령원의 그놈들이 눈치챌까 봐 두렵지도 않나 보지?”
“분신일 뿐이야. 그들은 절대 알지 못해.”
흑룡이라 불리는 검은색 그림자가 백룡 지존을 바라보며 씨익 웃었다.
“백룡, 내 궁중의 보물을 여태껏 숨겼으면 이젠 돌려줘야지?”
“이렇게 오랜 시간이 지났는데도 잊지 않았구나.”
백룡 지존은 가볍게 한숨을 쉬며 말했다.
“백룡, 넌 한때 친구였던 나를 배신했어. 설마 멸족의 아픔을 벌써 잊은 거야?”
흑룡 지존은 고개를 살짝 숙이며 말했다.
“너흰 복수에 눈이 멀었어.”
백룡 지존은 이내 한숨을 쉬었다.
“복수를 위해서라면 뭔들 못할까?”
흑룡 지존도 피식 웃더니 한숨을 내쉬었다.
“넌 죽어서도 깨우치지 못했구나. 그럼 오늘 내가 네 잔상을 없애고 보물을 되찾겠어. 그리되면 우리 용마궁은 다시 북창대륙의 패주가 될 거고 그때부터 진정한 복수가 시작되는 거야.”
말을 마친 흑룡은 천지를 뒤흔들며 무궁무진한 영력을 주위에 모았다.
그 속에서 난폭한 용의 울음소리가 들렸는데 어느덧 검은색 비늘을 덮어쓴 거대한 용이 하늘 높이 솟아올랐다.
이에 흑룡 지존은 한 줄기의 흑광이 되어 천지를 파괴하고도 남을 힘을 지닌 흑룡과 융합하더니 바로 광막 위에 앉아있는 백룡 지존에게 향했다.
쿵!
그의 공격에 갑자기 매서운 소용돌이가 일었고 대지가 갈라지기 시작했다.
백룡 지존은 다시 한숨을 쉬더니 무한한 영력을 끌어모았는데 몸에서 빛이 발하며 하얀색의 거대한 용이 나타났다.
눈부신 빛을 발하는 백룡의 덩치는 흑룡 못지않았고 숨을 내뱉으면 구름이 형성되었다.
두 용의 등장으로 무서운 영력 파동이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용의 울음소리와 함께 두 마리의 거대한 용이 하늘 높이 솟아올라 힘차게 부딪쳤는데 순식간에 천둥이 치고 폭풍이 일었다.
한편, 목진 등은 충격에 휩싸인 채 하늘을 바라봤다. 멀리 떨어져 있었지만, 그 영력의 충격에 소름이 끼쳤다.
지존의 분신일 뿐인데도 이 정도인데, 직접 싸우면 이곳은 아수라장이 될 것 같았다.
“광막이 느슨해졌어.”
소훤이 갑자기 입을 열었다.
아니나 다를까 흑룡과 백룡의 싸움이 치열해질수록 광막은 점차 어두워졌다.
“백룡 지존은 이미 사망해 사용할 수 있는 영력이 얼마 없어요. 그런데 흑룡 지존의 분신과 싸우려면 전력을 다해야 하니까 광막이 빠르게 빛을 잃는 거죠.”
목진이 나지막하게 한 말에 소훤도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후면 광막은 더는 우리를 막을 수 없을 거야. 다들 조심해, 백룡성에서 보물을 호시탐탐 노리고 있어. 그들이야말로 보물을 차지할 가장 강력한 후보야.”
이에 목진은 피식 웃더니 주위를 쓰윽 훑었다.
“실력이 너무 막강해도 안 좋아요. 다른 세력이 힘을 합쳐 막을 것이 뻔하니까요. 그런데 우리는 그 기회를 노려 보물을 얻을 수 있을지도 몰라요.”
“상황을 보면서 결정해. 만약 불가능할 것 같으면 일단 철수하자. 목숨을 보전하는 것이 가장 중요해.”'
소훤이 나지막하게 말했다.
이에 목진 등도 동의하였다. 보물이 아무리 좋다 한들 자기 목숨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한편, 광막의 변화를 알아본 다른 세력들과 강자들은 눈이 이글거리기 시작했다. 가장 무서운 존재인 백룡 지존을 상대하는 사람이 따로 있으니 이제부터는 각자의 실력에 달렸다.
그들은 백룡성의 진짜 신분에 놀라긴 했지만, 백헌 등이 백룡 지존만큼 무서운 존재는 아니었고, 용마궁이 강대하긴 하나 북창령원이 있으니 감히 일을 벌이지는 못할 것이다.
“준비해.”
백헌은 물결이 이는 광막을 주의 깊게 바라보다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누구든 우리 앞을 막으려 하면 죽인다.”
“예!”
회색 도포를 입은 노인은 포악한 기색을 내뿜으며 답했다.
그 옆에 있던 백동은 목진을 노려보더니 검은색 분지에 들어가면 절대 그를 가만두지 않으리라 다짐했다.
이렇게 검은색 분지 주위에 모인 사람들은 흥분한 마음을 간신히 가라앉히고 머리 위에서 흑룡과 백룡이 격렬하게 싸우는 것을 바라보면서 조용히 때를 기다렸다.
용들의 포효소리와 무서운 영력이 천지를 뒤흔든 지도 어느덧 1각이 넘어가자 광막이 점차 흐려지더니 곧 사라질 것 같았다.
바로 지금이다.
“가자!”
백헌이 손을 휘두르며 백룡성 사람들과 함께 쏜살같이 다가가 일정한 거리를 두고 광막에 주먹을 휘둘렀고 뒤따른 백룡성 사람들도 수중의 흑창으로 곧 사라질 광막을 공격했다.
광막은 격렬하게 흔들리다가 점차 희미해졌고 어느덧 수십 척 정도의 균열이 생겼다.
이에 백헌 등은 곧바로 균열 사이로 들어갔다.
그 뒤로 사람들이 황급히 움직이자 광막은 계속해서 찢어졌고, 바람을 가르는 소리와 함께 사람들이 속속 검은색 분지로 들어갔다.
“우리도 가자.”
소훤의 말에 목진 등도 광막으로 향했다.
어느새 광막에 도착한 소훤 일행은 힘을 합쳐 균열을 냈는데 어두운 분지는 꼭 먹이를 기다리는 커다란 입처럼 사람들을 삼켜버리는 것 같았다.
“조심해.”
소훤은 다시금 주의를 주며 균열로 들어갔고, 여정, 곽흉, 소령아가 그 뒤를 따랐다.
그러나 목진은 광막 뒤에 숨겨진 어둠이 정말 궁금했다. 지존 두 분이 말했던 보물이 이곳에 있을 것 같은데 과연 뭘까.
목진은 피식 웃더니 어둠 속으로 성큼 발을 들였다.
* * *
균열 속은 빛이 하나도 없는 암흑이었으나 곧바로 적응할 수 있었다. 그러나 바깥세상에서 전혀 보이지 않는 한기가 득실거렸다.
목진 주위에는 사람이 적잖게 있었는데 모두 균열을 뚫고 들어온 강자들이었다. 그들은 무리를 지어 서로를 경계하며 안전거리를 유지하였다.
아직 아무런 일도 일어나진 않았지만 다들 잔뜩 경계하며 검은색 분지를 천천히 거닐었다.
목진 역시 어둡고 거대한 분지를 쓰윽 훑더니 앞쪽에 시선을 멈췄고, 검은색 경천 돌기둥이 어둠 속 맹수처럼 사람들을 노리는 것 같았다.
“왜 이렇게 조용하지?”
소령아가 속삭였다. 위험천만해야 마땅할 지존 영장이 너무 조용했다.
소훤도 궁금하긴 마찬가지였으나 묵묵히 영력을 끌어올려 주위에 신경을 썼다.
목진도 서서히 주위를 훑어봤는데 왠지 모르게 거대한 돌기둥이 자꾸 신경 쓰였다.
그러다 앞쪽에서 빠르게 돌기둥을 지나는 사람을 바라보던 목진은 검은색 돌기둥에서 조금씩 떨어지는 돌 부스러기를 목격했다.
“조심해요!”
목진은 바로 소훤 등 일행을 막아 나섰다.
쿵!
목진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돌기둥들이 무너졌고 그 속에서 거대한 검은 손이 뻗어 나와 사람들을 으깨어버렸다.
애처로운 비명과 함께 피가 사방으로 튀었다. 갑작스러운 변고에 다들 화들짝 놀랐지만, 지금부터가 진짜 시작이었다.
거대한 돌기둥들은 계속해서 부서졌고 그 속에서 몸통 전체가 검은 석상들이 튀어나와 혈안이 되어 사람들을 살폈다.
그들 주위에 놀라운 영력의 파동이 일었고 목진이 얻은 석상 수위 못지않았다.
스읍.
돌기둥에서 걸어 나온 석상을 바라보던 목진은 저도 모르게 숨을 들이켰다. 이곳은 역시 위험천만했다.
이에 소훤 등도 안색이 어두워져 경계 수위를 높였다.
“우리 힘을 합쳐 석상을 전부 없애버립시다!”
갑작스러운 변고에 다들 놀랐지만, 광막에서의 일을 경험으로 삼은 실력자들은 빠르게 힘을 모아 석상으로 향했다.
어느덧 두 갈래의 힘이 부딪치며 격렬한 대전이 일어났고 난폭한 영력이 대지를 갈기갈기 찢었다.
그러나 사람들이 전투에 특화되어 아픔을 모르는 석상 쉬를 너무 쉽게 생각했다. 제아무리 수가 많다고 해도 석상의 방어를 뚫고 들어가기란 무척 어려웠고 그로 인해 치러야 할 대가는 엄청 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