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0화. 죽지 않아!
검은색 마의 기둥은 놀라운 살기를 품은 상고의 절세 흉수처럼 무작정 목진의 기해에 파고들었다.
목진은 기해가 찢어지는 듯 엄청난 고통을 느꼈다.
그러나 선홍빛 살기는 계속해서 기해에 스며들었고 검은색 마의 기둥도 계속 울부짖으며 주도권을 선포하였다.
이에 목진의 신백은 영력 광륜에서 일어나 엄숙하게 살기를 바라봤고 구유작은 만다린 꽃 위에 서서 흑염이 들끓는 날개를 퍼덕이며 목진 뒤에 서서 검은색 마의 기둥을 경계하였다.
“내가 잠시 저 물건을 막아볼 테니 얼른 만다린 꽃을 소환하거라.”
“알겠어.”
목진의 신백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만다린 꽃에 다가가 앉았다. 비록 신비로운 검은색 종이에서 나온 만다린 꽃을 완벽하게 조종할 수는 없지만 오랜 시간 함께 하여 어느 정도 융합되었다.
이때, 구유작이 목놓아 울며 날개를 퍼덕이자 구유화가 검은색 불바다처럼 퍼져 살기 가득한 검은색 마의 기둥을 막았다.
그러자 검은색 마의 기둥은 더 큰 소리로 울었고 혈해도 더 그윽해지며 쌍방은 계속해서 서로를 침식했다.
구유작의 실력이 완벽하게 돌아오지는 않았지만 마의 기둥도 전성기는 아니어서 막상막하로 대치를 이뤘다.
그러나 이런 상황은 목진에게 좋지 않았다. 살기가 너무 난폭해 체내에 오래 머무를수록 타격이 커 최대한 빨리 해결하는 것이 상책이었다.
한편, 목진은 스스로 외부의 간섭을 차단하고 조금씩 만다린 꽃에 스며들었는데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광활하고 신비로운 느낌에 사로잡혔다.
이와 동시에 목진이 앉아있는 만다린 꽃은 암자색 빛을 발하며 서서히 피어났다. 유난히 예쁜 꽃 속에 지극히 무서운 힘이 깃들어 있었다.
곧 암자색 빛이 만다린 꽃 주위를 감쌌고 상고의 범음이 기해에서 울려 퍼져 난폭했던 살기의 혈해에 물결이 일었다. 그 속에 숨어있던 검은색 마의 기둥에도 혈문이 반짝이기 시작했다. 범음이 그를 불편하게 한 것이다.
“이젠 풀어줘.”
구유작은 흠칫 놀라더니 다시 살기를 막으려 했지만 뒤쪽에서 들리는 소리에 저도 모르게 동작을 멈췄다. 뒤를 돌아보니 만다린 꽃 위에 앉아있는 목진이 어느새 눈을 떴는데 그 속에 깃든 암자색 빛이 특이했다.
목진이 이리 외치며 뛰어나오자 만다린 꽃에서 암자색 빛이 발하더니 서로 얽히고설켜 보랏빛 광망을 형성하였고, 그 광망이 검은색 마의 기둥으로 향하자 살기 가득한 혈해가 빠르게 없어졌다.
위잉!
검은색 마의 기둥도 이상을 느꼈는지 몸체를 흔들며 부단히 형태를 바꿔 그 속에서 빠져나오려고 하였다.
그러나 보랏빛 광망은 그저 빛줄기가 아닌 수많은 신기한 부적으로 만들어진 것으로 결코 검은색 마의 기둥을 놓아주지 않았다.
이때, 암자색 만다린 꽃이 서서히 움직여 검은색 마의 기둥이 조금씩 끌려갔는데 꼭 식인화에 잡힌 먹잇감 같았다.
쾅! 쾅!
검은색 마의 기둥이 발버둥 치며 혈해를 내뿜자 상고의 살기에 만다린 꽃이 점차 동작을 멈췄다.
만다린 꽃도 신비롭고 강력했지만, 검은색 돌기둥도 만만치 않았다.
“구유작, 공격해!”
검은색 돌기둥의 발악에 목진은 바로 구유작을 다그쳤다.
이에 구유작이 고개를 끄덕이고 날개를 퍼덕이자 흑염이 모여 심오한 검은색 깃털이 되었다. 비록 흑염이 전혀 보이지 않았지만 흑망이 맴도는 깃털은 무서운 힘을 지녔다.
슉!
검은색 깃털은 빛줄기를 형성하며 번개같이 날아가 상대방을 내리쳤고, 검은색 마의 기둥은 파르르 떨더니 광망에 의해 바로 만다린 꽃으로 빨려 들어갔다.
광문이 맴도는 아름다운 꽃잎이 피어올라 보라색 광문 쇠사슬이 되어 검은색 마의 기둥을 옥죄었다.
기둥은 어떻게든 벗어나려고 미친 듯이 발버둥 쳤지만, 쇠사슬이 계속 그를 감싸 꼼짝 못하게 했다.
목진은 한시름 놓은 듯 구유작과 동시에 숨을 내쉬었다. 그는 조심스럽게 다가가 만다린 꽃에 우뚝 솟은 검은색 마의 기둥을 관찰하였다.
“드디어 해결했네.”
목진은 씨익 웃으며 곧 부서질 것 같은 검은색 마의 기둥을 빤히 쳐다보더니 화들짝 놀라 말했다.
“기둥에 글이 적혀있어.”
“대… 수미… 마주?”
목진이 중얼거렸다.
“대수미마주(大須彌魔柱)라, 이 물건의 이름일까? 오래 살았다고 들었는데 넌 알지?”
목진이 구유작에게로 고개를 돌리며 물었다. 구유작 정도라면 적어도 자신보다는 많이 알 것 같았다.
이에 구유작은 흠칫하더니 목진을 노려보며 날개를 퍼덕였다.
“나도 구유작 족에서 갓 성인이 된 새란다!”
“막 성인이 되었는데 실력이 그렇단 말이야?”
목진은 자못 놀라 물었다.
“인류만 천재가 있는 건 아니니까.”
구유작이 으쓱하며 고개를 치켜들고 하는 말에 목진은 할말이 없었다.
“넌 일단 아수라장이 된 네 체내를 정리할 생각이나 하거라. 검은색 마의 기둥은 제압했지만, 그가 남긴 대량의 살기는 최대한 빨리 없애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언젠가 네 몸을 파고들 것이다.”
구유작이 느긋하게 기지개를 켜며 하는 말에 목진은 히쭉 웃었다. 체내의 상황을 누구보다 더 잘 아는 그는 전혀 당황하지 않았다.
“살기도 일종의 힘이지……. 난 이 힘을 빌려 뭔가를 해보려고 해.”
강력한 영력 충격이 드넓은 숲에 폭풍처럼 휘몰아쳐 순간 평지를 만들었고 소훤 등이 날린 푸른 물결, 적룡, 이무기는 혈광에 닿자마자 맥없이 물러났다. 역시 소훤 등은 백헌을 상대하기가 버거웠다.
소훤과 여정은 안색이 창백해졌다. 특히 여정은 상품 영기인 용교령환을 지녔지만 숨을 허덕이며 겨우 버티고 있었다. 만약 소훤이 아니었으면 그녀는 이미 죽었을지도 몰랐다.
형세는 점차 그들에게 불리해졌다.
“너희가 얼마나 더 버틸 수 있을까?”
혈색 기(氣)의 회오리 속에 있는 백헌은 수중의 혈창으로 계속해서 공격을 날렸고, 음산한 눈빛으로 뒤로 물러나기만 하는 두 소녀를 바라보더니 씨익 웃었다.
“난 더 이상 너희들과 시간 낭비하고 싶지 않아!”
인내심을 잃은 백헌은 정색하며 말했다. 현재 전세는 자신한테 기울었으나 만일의 경우를 대비해 최대한 빨리 마무리 짓고 싶었다.
말이 끝나기 무섭게 백헌은 보다 음침해진 눈빛으로 혈창을 꽉 쥐더니 엄청난 영력을 내뿜었다.
혈광이 들끓더니 하늘에서 백 장 정도의 혈광거망(血光巨蟒:거대한 핏빛 이무기)을 응결하였다. 녀석은 살기 가득한 눈으로 소훤 등을 노려봤다.
“혈망진혼(血蟒鎮魂)!”
백헌이 눈부신 혈광을 내뿜는 혈창을 휘두르자 뒤쪽에 있는 혈망이 포효하며 꼬리를 흔들다가 어느덧 혈창과 한 몸이 되어 소훤 등을 공격했는데 그 기세가 예사롭지 않았다.
“중수지산!”
이에 심각해진 소훤이 체내의 영력을 모조리 끌어모으자 푸른빛 파도는 층층이 쌓여 수산을 형성하였고 그곳 공간은 수산의 중력을 못이겨 일그러졌다.
“용교령환, 용교살!”
여정도 전력을 다하여 용교령환을 소환하자 적광과 함께 적룡과 이무기가 나선형의 적색 기(氣)의 회오리가 되어 상대방을 향했다.
그러다 쌍방의 공격이 부딪쳐 난폭한 영력 충격이 일었는데 이 땅에 돌풍이 휘몰아쳤다.
“너희 따위가 감히 나를 막으려 해?”
백헌은 공격이 부딪힌 곳을 바라보다 갑자기 주먹을 쥐었다. 그러자 선홍빛의 거대한 이무기가 살기가 폭등해 울부짖으며 푸른빛 수산으로 돌격하였다.
쿵!
매서운 공격에 수산에 균열이 일더니 이내 폭발하였고 혈망은 계속해서 적룡과 이무기에게 다가갔다.
잠시 후, 적룡과 이무기가 비명을 지르며 서서히 빛을 잃고 결국 여정의 손으로 돌아갔다.
풉!
여정과 소훤은 거의 동시에 피를 토하며 튕겨 나갔는데 중상을 입은 것이 분명했다.
그런데도 혈망은 멈추지 않고 두 소녀에게로 돌진했다.
“중산지순(重山之盾)!”
이에 곽흉 수중의 방패에서 강렬한 빛이 일더니 산악 광문이 나타나 그 견고함을 과시했다.
쿵!
혈망이 광의 방패에 부딪히자 엄청난 소리와 함께 곽흉이 뒤로 밀려났고 방패를 든 손이 찢어져 피가 철철 흘러내렸다.
그러나 곽흉은 아랑곳하지 않고 어떻게든 상대방의 공격을 막아보려고 애썼다. 그는 소훤 등과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겨우 멈춰 섰다.
곽흉은 드디어 영력을 전부 발산하고 서서히 사라지는 혈망을 두고 씩씩거리며 숨을 돌렸고, 그는 팔을 파르르 떨며 뒤를 돌아봤다.
“괜찮아?”
이에 소훤과 여정은 씁쓸하게 웃기만 했다. 백헌의 실력이 너무 막강해 그들이 힘을 합쳐도 그를 상대할 수가 없었다.
“백헌은 내가 어떻게든 막을 테니 너흰 도망쳐.”
곽흉이 이를 악물며 말했다.
“혼자서는 절대 못 막아!”
소훤이 주먹을 꽉 쥐고 고개를 숙이더니 머지않은 산봉우리에서 애타게 기다리는 동생에게 외쳤다.
“당장 목진을 데리고 떠나!”
“언니!”
소령아는 눈물이 글썽하여 어쩔 바를 몰라 발을 동동 굴렀다. 그녀는 절대 소훤 등을 버리고 떠나고 싶지 않았다.
“우리 죽음을 헛되이 하지 마!”
소훤이 이내 호통쳤다.
소령아는 언니의 이런 모습은 처음인지라 눈물이 앞서더니 바로 목진을 일으켜 도망치려 하였다.
“참 대단하구나. 그런데 그건 정말 쓸데없는 짓이야.”
백헌은 무덤덤하게 이들을 바라보더니 콧방귀를 뀌었다.
“너희 따위가 날 막을 수 있다고 생각해?”
“어디 해보든가!”
곽흉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이에 백헌은 한기 어린 눈빛으로 곽흉을 보더니 순식간에 그 앞에 나타나 살기 가득한 혈창을 휘둘렀다.
곽흉은 깜짝 놀라 황급히 방패를 빼 들었는데 불꽃이 튕기더니 방패에 빠르게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다.
“부숴버려!”
백헌이 팔을 휘두르자 광의 방패는 폭발하였고 장창은 곽흉의 가슴으로 향했다.
그때 다행히 푸른색 파도가 몰려와 창은 결국 곽흉의 팔을 뚫었다.
소훤과 여정은 팔이 피범벅이 되어 물러난 곽흉의 앞을 막아서며 자신들을 먹잇감 놀리듯 조롱하는 백헌을 노려봤다.
“너희가 도망가면 네 언니와 일행들은 곧바로 내 손에 죽게 될 것이다.”
백헌은 씨익 웃으며 목진과 함께 도망치려는 소령아를 바라봤는데, 그 모습이 소름 끼칠 정도로 무서웠다.
소령아는 잠시 멈칫했으나 입술을 꽉 깨물고는 그치지 않는 눈물을 애써 닦아내며 가던 길을 계속 갔다. 이곳에 남으면 소훤, 여정, 곽흉의 노력이 헛되이 사라진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백헌이 곧바로 살기 가득한 얼굴로 혈창을 휘두르자 소훤 등은 매서운 공격에 휩싸였다. 백헌의 전력을 다한 공격에 그들은 바로 죽을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네 언니가 곧 죽을 것 같네.”
멀리서부터 들려온 백헌의 차가운 웃음소리가 파르르 떨고 있는 여린 소녀의 귀에 들어갔다.
“백헌, 난 절대 너를 가만두지 않을 거야!”
소령아가 애써 눈물을 참으며 처량하게 외쳤다.
“이들을 죽이고 난 다음은 너야.”
백헌은 무덤덤하게 웃더니 점차 쇠약해지는 세 명에게 수중의 혈창을 내던졌다.
풉!
그들은 동시에 피를 토하고는 멀리 튕겨 나갔다.
“한 발자국만 더 움직이면 네 언니는 진짜 죽을 거야!”
백헌은 이리 말하더니 수중의 혈창으로 소훤의 목을 겨눴다.
혈창의 바람을 가르는 소리에 소령아는 드디어 가던 길을 멈추고 흐느끼며 말했다.
“백헌, 언젠가 내 손으로 널 죽일 거야!”
소령아는 눈이 빨갛게 달아오른 채 이곳을 떠나려 하였다.
그런데 그때 튼실한 팔이 앞을 막아섰다. 소령아가 흠칫하며 돌아보니 목진이 서서히 고개를 들었다.
목진은 여전히 핏발 선 얼굴에 눈은 빨갛게 충혈되어 있었는데 그 속에 살기가 가득하였다. 심지어 몸에도 핏대가 섰고 모공에서 피가 스며져 나오는 것처럼 무시무시했다.
지금의 목진은 피에 잔뜩 굶주린 수라처럼 무서웠다.
“목진아, 너…….”
소령아는 목진의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랐으나 바로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너라도 제발 살아남아. 안 그럼 저들의 죽음을 헛되이 하는 거야. 얼른 나와 함께 이곳을 떠나자.”
목진의 살기 가득한 눈이 파르르 떨리더니 익숙한 웃음을 보이며 핏대가 선 손으로 소녀의 눈물을 닦아냈다.
“걱정하지 마. 아무도 죽지 않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