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1화. 살기의 힘
소령아는 목진이 어쩌다 이렇게 공포스러운 몰골로 변했는지 몰랐지만 이내 눈물을 닦으며 물었다.
“뭘 하려는 거야?”
소훤조차 상대할 수 없는 백헌을 목진이 어떻게 하려는 것인지 그의 의도를 전혀 파악할 수 없었다.
“넌 저들을 데리고 떠나. 그리고 최대한 나한테서 멀리 떨어져. 알겠어?”
빨갛게 달아오른 목진의 눈은 핏기가 점차 줄어들었고 소리도 정상으로 돌아왔는데 무한한 살기만은 감추기가 어려웠다.
이에 잔뜩 놀란 소령아는 뒤로 물러나 목진을 관찰했다.
목진은 전력을 다하여 무언가를 억제하는 것처럼 보였는데 계속해서 반짝이는 핏대를 보니 체내에 있는 살육의 신을 억누르는 것 같았다.
소령아가 막연하게 고개를 끄덕이자 목진은 바로 뒤돌아서서 먼 곳을 향해 외쳤다.
“백헌, 당신이 원하는 것은 나한테 있어요. 가져갈 수 있을지는 당신한테 달렸어요.”
“드디어 되돌아왔구나.”
백헌은 무덤덤하게 웃으며 목진을 쏘아봤다.
“목진, 너!”
시간을 벌기 위해 안간힘을 다했는데 목진은 왜 다시 돌아왔을까?
목진의 흔들리던 눈동자가 움직임을 멈췄을 때 그는 서서히 주먹을 풀었다.
현재 목진의 체내에서는 무서운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살기의 힘이 미친 듯이 경맥을 타고 흘러 다니며 지극히 무서운 힘을 방출하였다. 그런데 그 힘이 목진의 경맥을 지날 때마다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의 엄청난 고통을 동반했다.
그러나 이 고통이 바로 정신을 부여잡는 목진의 유일한 동아줄이었다.
“정말 미친놈이네.”
한편, 기해에서 이를 지켜보던 구유작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난폭한 살기의 힘은 사람의 의식을 흐리게 하는데 목진이 그 힘에 지배되면 의식을 되찾기란 거의 불가능했고 그는 자연스레 살육의 노예가 되는 것이었다.
그런데 살기의 막강한 힘에 숨겨진 엄청난 위험을 무릅쓰고 달려들다니 목진은 제정신이 아닌 듯했다.
어느덧 안중의 파동이 철저하게 사라지자 목진의 기운도 사라졌다. 그는 그저 조용히 허공에 떠 있었다.
선홍빛 무늬는 벌레처럼 목진의 피부에 들러붙어 서서히 움직였는데 그 모습이 기괴하기 그지없었다.
“지금이 어떤 때인데 수작을 부리는 거야!”
백헌은 목진의 이상한 행동을 보더니 피식 웃었다. 목진이 무얼 하든 자신은 화천경 후기의 실력에 상품 영기까지 지니고 있었다. 그러니 융천경 중기밖에 안 되는 녀석을 처리하기란 식은 죽 먹기였다.
“죽어!”
백헌은 들끓는 영기를 수중의 혈창에 불어넣고 빠르게 목진을 공격했다.
“목진아, 조심해!”
소훤 등이 황급히 외쳤지만 목진은 미동도 없었다. 그러나 백헌의 혈창이 가슴에 닿으려고 할 때 갑자기 손을 뻗어 창날을 잡았다.
끼익.
날렵한 창날이 거슬리는 소리를 내며 목진의 손을 찔러 피가 흘러내렸는데 피부의 혈문이 더 짙어졌다.
백헌은 왠지 모르게 불안해졌다.
목진은 아예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다.
그는 날카로운 창날을 잡고 서서히 고개를 들었는데 혈안이 된 눈에서는 혈해가 들끓으며 엄청난 살기를 내뿜었다. 혈문이 가득한 그의 얼굴은 기괴하고 무서운 것이 피에 잔뜩 굶주린 수라 같았다.
이때, 목진의 체내에서 살기가 들끓는 혈해처럼 넘쳐흐르더니 하늘을 빨갛게 물들였고 그의 피부에도 혈흔이 생겼다.
살기의 힘이 너무 강력하여 아무리 튼튼한 목진의 육신이라도 받아들이기 어려운 듯했다.
“이건…….”
백헌과 소훤 등은 잔뜩 놀라 눈 앞에 펼쳐진 광경을 바라봤는데 그 모습이 어디선가 본 듯 익숙했다.
그 모습이 백룡영장에서 검은색 마의 기둥이 봉인을 뚫고 나왔을 때와 똑같았다. 그러나 지금은 그때보다 살기가 더 엄청났다. 어찌 목진한테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다행히 목진의 말이 떠오른 소령아는 얼른 달려와 상처투성이인 소훤 등을 데리고 그와 멀리 떨어졌다.
소령아 등이 어느 정도 멀리 떨어지자 목진은 혈문이 가득한 얼굴로 씨익 웃었는데 그가 내뿜는 살기에 백헌도 흠칫하였다.
“괜히 발버둥 치지 마!”
백헌은 이리 외치며 혈장을 거두고 다시 한번 도발했다.
이에 체내에서 흘러나온 선홍빛 살기는 목진의 피부에 빨간 갑옷을 만들어 백헌의 날렵한 창에 맞섰다.
살기는 혈창에 깃든 놀라운 영력을 삼켰지만, 영력은 결국 목진의 몸에 얕은 혈흔을 남겼다.
목진은 더욱더 빨개진 눈으로 기합을 내지르며 주먹을 쥐더니 살기의 힘이 가득한 선홍빛 장창을 만들었다.
슉슉.
목진도 살기가 깃든 혈창을 휘둘러 백헌에게 맞섰는데 강력한 충격파가 일어나 주위의 산들에 거대한 균열이 생겨 서서히 무너졌다.
멀리서 이를 바라보던 소훤 등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지금의 목진은 백헌과 정면 승부를 겨뤄도 전혀 밀리지 않았다.
“목진의 실력이 갑자기 저리 늘었을 리가!”
곽흉이 드디어 참지 못하고 입을 뗐다.
“저건 영장에서 봤던 검은색 마의 기둥에서 내뿜는 살기와 똑같아. 아마 목진의 몸에 살기가 깃들었을 거야.”
소훤의 말에 소령아가 걱정되어 물었다.
“그럼 목진은 어떻게 되는 거예요?”
“그는 아마도 이 힘을 빌려 백헌을 내치고 그와의 싸움을 통하여 체내의 살기를 없애려는 거야. 그런데 그건 아주 위험한 시도야. 자칫 잘못하면 의식을 잃고 살육의 노예가 될 수도 있어.”
소훤은 가볍게 한숨을 쉬며 붉게 물든 목진을 바라봤다.
“그런데 지금으로서 목진한테 희망을 걸 수밖에 없구나.”
* * *
두 자루의 창이 부딪히자 기랑이 일고 공기마저 일그러졌다.
백헌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하였다. 그는 목진이 자신과 수십 번 힘을 겨뤘는데도 전혀 뒤처지지 않는 것이 도저히 믿기지 않았다.
목진의 실력이 자신을 따라잡은 것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짐작 가는 바가 있었다.
“체내에 깃든 살기의 힘을 빌린 거냐?”
백헌은 어두운 표정으로 혈문 가득한 목진의 얼굴을 바라보더니 인간의 정서라곤 찾아볼 수 없고 살육밖에 모르는 사람이 된 목진을 향해 씨익 웃었다.
“지금의 넌 살육밖에 모르는 야수와 다를 게 뭐야?”
살기의 힘을 빌린 목진은 실력이 폭등했지만 이성을 잃고 살육의 노예가 되었다고 여겼다.
“고통스러운 것 같은데 내가 너를 도와주지.”
백헌은 갑자기 하늘 높이 뛰어오르더니 들끓는 영력이 뒤에서 형태를 이루었다. 그 모습이 마치 거대한 선홍빛 영수 같았다.
“혈마수, 혈해정련.”
거대한 선홍빛 영수는 들끓는 혈해가 되어 이곳 전체를 물들였고 곳곳에 피비린내가 진동하였다. 그 놀라운 힘에 산봉우리가 우르르 무너졌다.
“죽어!”
그때 목진은 서서히 고개를 들더니 기괴한 혈문이 가득한 얼굴로 백헌을 조롱하듯 씨익 웃었다. 혈안이 된 눈에 다시금 파동이 일었다.
목진은 체내에서 무궁무진한 살기를 내뿜더니 별이 빛나는 선홍빛 하늘을 형성하였고 그 속에서 거대한 백호가 형태를 갖추었는데 그 눈도 빨갛게 변해있었다.
백호신인 자체에 이미 살기가 깃들어 있는데 거기에 또 다른 살기의 힘까지 더하여 천지마저 두려워 파르르 떨었다.
목진은 거대한 백호 앞에 서서 혈흔 가득한 얼굴을 하고 콧방귀를 뀌었다.
“죽어야 하는 건 당신이야!”
백호의 눈에는 무서운 살기가 가득 찼는데 그 기운에 천지가 흔들렸고 백 리 안에 있는 영수가 전부 두려움에 치를 떨었다.
멀지 않은 곳에서 이를 지켜보는 소훤 등도 놀라운 기색이 역력하였다. 목진이 이현통과의 대결에서 백호신인을 선보인 적 있어 그 위력을 익히 알고 있었지만, 그날과 달리 오늘의 백호는 실제 영수처럼 무한한 살기를 품었다.
백호가 울부짖어 체내에서 뿜어낸 살육의 빛에 공간이 일그러지며 다가오는 혈해에 맞섰다.
백호와 혈해가 부딪쳐 만들어낸 영력 충격은 돌풍처럼 미친 듯이 휘몰아쳐 숲은 순식간에 평지가 되었고, 산들은 전부 무너졌다. 그리고 혈해는 용암을 만난 잔설처럼 빠르게 녹아 없어졌다.
목진이 수련한 백호신인은 살육에 강한 것으로 유명한데 무서운 살기의 힘까지 더하여 그 위력은 두려움 그 자체였다.
“이럴 수가!”
백헌도 순간 안색이 어두워졌다. 자신의 살수가 목진한테 전혀 먹히지 않을 줄은 몰랐다.
“의식이 남아있었어?”
백헌은 이를 갈며 말했다. 도대체 어떤 괴물이기에 이토록 무서운 살기가 깃들었는데도 의식이 남아있을까?
“막아!”
백헌은 포효하며 수중의 혈창을 힘껏 휘둘러 엄청난 영력을 계속 혈해에 불어넣었다. 그는 화천경의 실력으로 목진의 공격을 막아보려 하였다.
그러나 백호가 울부짖으며 한 장 크기로 빠르게 작아졌는데도 그 속에서 내뿜는 살기의 광인이 엄청났다.
광인이 닿는 곳마다 혈해가 무너졌고 살기는 어느덧 이곳을 수라 전장으로 만들었다.
그리고 백호신인은 혈해를 계속해서 와해시키며 그 뒤에 있는 백헌에게 향했다.
“난 반드시 널 죽이고 말 거야.”
기세등등한 백호신인에 백헌도 점차 혈안이 되었다. 무려 화천경 후기인 자신이 융천경 중기밖에 안 되는 목진에게 이런 낭패를 봤으니, 절대 참고 넘길 수가 없었다.
이에 백헌은 기합 소리를 내며 결인하였고 들끓는 영력이 머리 위에 모이더니 수백 장 정도의 커다란 선홍빛 전창을 이뤘다.
이는 막강한 위력의 공격 영결이었다.
피를 잔뜩 뒤집어쓴 전창은 장렬한 기운을 머금고 백호신인에 맞섰다.
쿵!
경천의 세찬 소리와 함께 영력 충격이 폭발하였다.
그 충격으로 목진과 백헌은 멀리 튕겨 나가 산봉우리에 부딪혔고 그곳에는 순식간에 거대한 균열이 일었다.
풉!
백헌은 잔뜩 화가 난 채 피를 토하며 멀지 않은 곳의 목진을 바라보았다. 그는 어느새 균열 속에서 걸어 나왔는데 온몸에 난 상처에서 피가 계속해서 흘러내렸다. 게다가 빨갛게 달아오른 눈동자에서 내뿜는 살기는 소름이 끼칠 정도였다.
그런데도 목진은 고통이 거의 느껴지지 않았고 그나마 느껴지는 체내의 고통은 전부 무시했다.
목진은 한시도 쉬지 않고 공격을 개시했다.
“저런 미친!”
아무리 백헌이라도 지금의 목진은 두려웠다.
목진은 상처 따위는 무시하고 백헌을 노려보며 입가의 피를 핥더니 씨익 웃었다. 그의 얼굴이 점차 일그러져 무서웠다.
그리고는 다시금 공격을 개시했다.
“널 반드시 죽일 거야!”
백헌이 포효하며 놀라운 영력을 끌어모아 목진의 공격에 맞섰다.
이렇게 매서운 공격이 수십 번을 오갔고 어느덧 만신창이가 된 두 사람의 몸에서는 계속 피가 흘러내렸다.
백헌은 옷이 갈기갈기 찢어졌고 몸에 피가 가득하였는데 그중 한 곳은 곧 심장을 찌를 만큼 깊숙이 파였다.
이에 소훤 등은 순간 소름이 끼쳤다. 두 사람 모두 미친 것 같았다.
목진은 살기의 힘을 빌려 싸우느라 의식이 흐릿해서 그렇다지만 백헌은 온전히 목진 때문에 미쳐갔다.
몸을 사리지 않는 목진의 공격에 똑같이 맞서지 않으면 죽는 건 자신이었다. 백헌은 더 이상 버티지 못할 것 같았다.
제아무리 흉악한 사람이라도 두려움을 느끼는데 목진은 전혀 그런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것 같았다.
그때 목진과 백헌은 또 한 번의 힘겨루기에 피를 토하며 튕겨 나갔다.
백헌은 자기 몸에 난 상처를 보더니 엄습해오는 고통에 파르르 떨었고 눈에서는 살기가 아닌 공포가 느껴졌다.
“이대로는 안 되겠어. 저 미친놈은 언젠가 살기가 몸을 지배해 죽을 텐데 그런 사람과 시간 낭비할 필요는 없잖아.”
백헌은 조금 전까지만 해도 목진 때문에 이렇게 궁핍한 상황에 몰릴 줄 몰랐다.
그는 후퇴하며 검은색 옥편을 꺼내어 터뜨렸다.
한 줄기의 흑광이 사라지던 이때, 피를 뒤집어쓴 목진은 다시 미친 듯이 따라잡아 백헌의 숨통을 겨눴다.
그러나 백헌은 더는 싸움을 이어가고 싶지 않아 공격을 회피했지만 소용없었다. 목진은 이미 살육에 맛을 들였다.
“당장 죽여버릴 거야!”
계획대로 움직이던 판이 지금은 철수조차 하지 못하는 난감한 상황을 빚어내자 백헌은 화가 나 어쩔 줄을 몰랐다.
그러다 그는 곧바로 기회를 잡고 목진의 심장을 겨눴는데 목진은 전혀 피하지 않고 몸을 젖혀 장창이 어깨를 관통하도록 방치하고 백헌에게 다가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