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주재-182화 (181/1,000)

182화. 지원군

목진의 어깨를 관통한 장창을 바라보던 백헌은 빨갛게 물든 목진의 이글거리는 얼굴에 시선이 모였다.

“미친놈!”

목숨을 내던진 목진 때문에 백헌은 순간 싸울 의지를 잃어버렸다.

목진은 바로 이 순간을 노려 살기를 머금은 힘을 손가락에 모아 빠르게 숨통을 찔렀다.

이에 백헌은 황급히 손바닥을 내밀어 방어했지만 체내의 영기를 전부 모은 목진의 손가락에 찔려 구멍이 났고 결국 숨통까지 관통되었다.

백헌의 몸이 순간 경직되었다. 그는 눈을 부릅뜨고 뭐라 말하고 싶었지만 더는 입을 열 수가 없었다.

이때, 목진이 서서히 고개를 들었는데 혈안이 되었던 눈은 서서히 정상으로 돌아왔다.

“이성을 잃은 게 아니라 살기의 힘을 빌렸을 뿐입니다.”

피가 흥건한 목진은 계속해서 피를 토하는 백헌을 보며 씨익 웃었다.

“날 죽이려면 그 대가를 치러야 합니다.”

목진은 백헌의 얼굴을 가볍게 때리고 살짝 밀었는데 맥없이 산봉우리에 떨어졌다. 그리고 목진 자신도 휘청이다 추락했다.

퍽!

중상을 입은 목진은 다시금 피를 토하며 파르르 떨고 있는 백헌을 노려봤다.

“너, 너희는 결국 이곳을 벗어나지 못할 거야!”

목진은 드디어 숨이 멎은 백헌을 보더니 이내 인상을 찌푸렸다. 어떻게 죽으면서까지도 그런 망언을 내뱉을 수 있을까? 이제 와 자신을 무슨 수로 막는단 말인가?

목진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지만, 왠지 모르게 불안했다. 그러나 움직일 힘조차 없이 무기력했고 체내에서 전해지는 고통에 상처가 엄청나다는 것을 느꼈다.

슉.

바람을 가르는 소리와 함께 소훤 등이 빠르게 날아와 숨을 거둔 백헌과 바닥에 누워 꼼짝달싹 못 하는 목진을 넋 놓고 바라보았다. 그들은 한참을 살펴보더니 이내 정신을 차리고 서로 눈을 마주쳤다.

녀석이 무려 화천경 후기인 백헌을 죽였다.

“괜찮아?”

소령아가 황급히 달려와 피투성이가 된 목진을 조심스럽게 일으켜 세웠다.

“당장 이곳을 떠나야 해.”

목진은 마지막 힘을 다해 겨우 입을 열었다.

이에 소훤 등은 더는 묻지 않고 목진과 함께 떠나려 했는데 갑자기 어디선가 비웃는 듯한 소리가 들려왔다.

“백헌을 죽이다니, 역시 북창령원은 대단해.”

소훤 등이 다급히 고개를 돌려보니 앞쪽 산봉우리의 소나무에 장검을 짊어진 검은 도포의 청년 한 명이 방긋 웃으며 이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청년은 평범한 생김새에 미간에 마룡이 도사리고 있는 듯한 검은색 무늬가 그려져 있었다. 웃을 때 마룡의 표정이 이글거리는 것 같았다.

청년을 발견한 소훤 등의 표정이 순간 어두워졌다.

“마룡자(魔龍子)?”

목진은 멈칫하였다.

마룡자는 다름 아닌 북창령원 현상방 2위에 오른 이였다.

며칠 전, 목진은 소훤 등과 북창령원 현상방에 대해 말하다가 마룡자가 북창대륙에서 악마처럼 무서운 존재란 걸 알았다.

그는 그 누구보다 천부적인 재능을 가졌고 잔혹하기 그지없어 용마궁에서 전력을 다해 키우는 인재였다. 하여 북창령원 학생이 그와 마주치면 살아남는 사람이 거의 없었고 피가 흥건한 향 3개를 머리에 예쁘게 꽂아 놓는다고 들었다.

마룡자의 잔혹함에 북창령원의 고위층들도 잔뜩 화가나 형벌조를 여러 차례 파견했는데 상대방에게 타격은 입혔지만 그에 따른 대가도 엄청났다. 더구나 마룡자는 매번 도망갔고 다시 나타났을 때는 더 상대하기가 어려웠다.

그래서 북창령원 학생들은 외출하면 마룡자만 마주치지 말았으면 하는 바람뿐이었다.

한편, 소훤 등은 장검을 짊어지고 청송 위에 서서 자신들을 비웃는 마룡자를 보고는 섬뜩해졌다.

이곳에서 마룡자와 마주칠 줄은 몰랐다. 그는 백헌보다 훨씬 더 무서운 존재였다.

백헌과는 힘이라도 겨룰 수 있었지만 지금은 도망칠 기회조차 없을 거란 생각에 소훤은 조금 무기력해졌다.

“우린 오늘 이곳에서 생을 마감하겠구나.”

씁쓸하게 웃는 곽흉의 얼굴에서 절망스러운 표정이 드러났다.

입가의 피를 힘겹게 닦아내고 맞은편을 바라보는 목진도 마찬가지였다. 이미 중상을 입은 그가 또 한 번 싸우면 그땐 진짜 어떻게 될지 모르는 일이었다.

또한, 체내의 살기를 소진해 이젠 구유작의 힘을 빌려야만 하는데 그럼 몸에 주는 피해는 더 커질 것이다.

별다른 수가 없으면 그렇게 해야 했다. 그것이 이곳에서 마룡자의 손에 죽는 것보다는 나았다.

“왜 다들 그런 표정일까? 백헌을 죽였다는 건 실력이 좋다는 뜻이고 북창령원에서도 무명 인사는 아니지 않나? 천방 몇 위지, 다들?”

마룡자가 미소를 지으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그게 너와 무슨 상관이야!”

곽흉이 이를 갈며 말했다. 그는 북창령원 학생을 수없이 죽인 살인마를 극도로 혐오했다.

“네 담력과 기백만은 높이 사지.”

마룡자는 웃으며 곽흉을 향해 엄지를 내밀더니 갑자기 공격을 개시했다.

“조심해!”

소훤은 순식간에 손을 들어 올렸고 중수영주가 눈부신 빛을 발하며 푸른색 파도가 일어나 두툼한 방어벽을 형성했다.

슉.

바람을 가르는 소리와 함께 흑광이 방어벽을 깨고 곽흉의 팔뚝을 가격해 구멍 난 팔에서 피가 철철 흘러내렸다.

상처를 입어 얼굴이 창백해진 곽흉은 이를 악물고 마룡자을 노려봤다.

그때 목진이 입을 가리고 격렬하게 기침하더니 차가워진 눈빛으로 상대방을 바라봤다.

“이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을까? 궁지에 몰리면 난 당신과 함께 죽을 수도 있어.”

소훤 등은 깜짝 놀랐다. 이토록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백헌을 죽인 목진이 하니까 괜히 믿음이 갔다.

이들은 여태껏 화천경에도 이르지 않은 소년이 얼마나 놀라운 기적들을 만들어냈는지 직접 봐왔다.

목진의 말에 마룡자도 인상을 찌푸리더니 서서히 입을 열었다.

“네가 백헌을 죽였지? 융천경 중기의 실력으로 어찌 그게 가능한지는 모르겠지만…… 대단하구나. 그런데 네가 나를 위협할 자격이나 있다고 생각해?”

마룡자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미간에 있던 검은색 마의 용문이 이글거리며 퍼졌다.

“어디 해보시지.”

목진은 소령아의 손을 뿌리치고 천천히 앞으로 나아갔다. 검은색 눈동자와 몸 전체에서 흑염이 들끓기 시작했고 주위 온도도 서서히 올라갔다.

“목진아!”

소훤 등은 목진이 너무 걱정되었다. 아무리 선보이지 않은 필살기가 있더라도 이미 중상을 입은 목진이 또 한 번 싸운다는 건 너무 위험한 일이었다.

목진은 손을 절레절레 흔들더니 흑염이 들끓는 눈으로 마룡자를 노려봤다. 그에게 물러날 길이란 없었다.

마룡자는 기괴한 흑염이 들끓는 목진을 바라보더니 웃음기가 살짝 가셨다. 목진한테서 위협을 감지한 것이다.

“재미있는 친구군. 그러니까 네가 무슨 재주가 있는지 더 궁금해지네.”

마룡자가 씨익 웃으며 말했다. 목진의 말은 잔혹하기로 소문난 그에게 아무런 타격도 주지 않았다.

역시 대결은 피할 수 없었다.

체내에서 전해지는 고통에 식은땀이 흘러나왔지만 목진은 이를 악물고 나갔다.

이에 마룡자도 미소를 머금고 장검을 쥐고 가볍게 흔들었다. 하늘 높이 울려 퍼지는 검음과 함께 놀라운 검기가 느껴졌다.

장검을 쥐었을 뿐인데도 마룡자 주위에 검기가 모여들어 아래에 있는 소나무와 암석이 부서졌다.

“내가 북창령원을 상대로 용린검(龍鱗劍)을 드는 것도 오랜만이야. 오늘 너를 상대로 이걸 빼든 걸 영광으로 알아.”

마룡자는 장검을 천천히 들어 올려 목진에게 겨눴는데 검기가 퍼지며 용의 울음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이에 소훤 등은 안색이 더 창백해졌다. 그는 분명 목진한테 살수를 두려고 용린검을 빼 든 것이었다.

“전부 물러나요.”

목진이 작은 목소리로 말하자 소훤 등은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이고 뒤로 물러났다.

마룡자는 서서히 허공에 떠오르며 목진을 향해 씨익 웃더니 용의 비늘로 만든 것 같은 장검을 휘둘렀다.

“용린검결, 참룡!”

마룡자의 공격은 공기마저 찢어버릴 듯했고 무서운 검기가 포효하며 용의 형태를 갖춰 놀라운 속도로 다가왔다.

대결을 피할 수 없게 된 목진은 깊게 숨을 들이쉬더니 정색하며 합장하였다. 구유작의 힘을 빌리기로 한 것이다.

그런데 그때, 뒤쪽 하늘에서 암금색 장창이 하늘을 가르며 황금빛 혜성처럼 내려와 용영검기를 가격했다.

쿵!

엄청난 소리와 함께 검기와 창망이 부딪쳐 공간이 일그러졌다.

목진은 흠칫 놀라 눈앞에 벌어진 상황을 지켜봤다. 도대체 누가 나섰단 말인가?

어느덧 검은색 장창이 검영을 물리치고 휙 돌아 허공에 멈춰 섰는데 놀랍고 위엄있는 파동이 퍼졌다.

흉악한 외형을 가진 황금빛 장창의 창끝은 금련과 같았는데 연꽃잎이 아우러져 날렵해진 창끝에서 흘러나오는 황금빛은 하늘마저 찢어버릴 것 같았다.

“저건…….”

황금빛 장창에 흠칫 놀란 소훤 등은 금세 화색이 되었다.

“천련전신창(天蓮戰神槍)이야!”

반면, 황금빛 장창을 본 마룡자는 안색이 어두워져 주위를 훑으며 웃었다.

“천련전신창이라, 심창생. 넌 정말 거머리같이 떨어지지도 않는구나.”

“심창생이라니!”

목진은 흠칫 놀랐다. 정녕 북창령원의 전설 같은 인물, 천방 1위인 심창생이란 말인가?

그때 한 줄기의 금광이 난폭하게 바람을 가르며 금세 만 장을 뛰어넘어 하늘에 나타나 손을 내밀었다.

이에 황금빛 전창은 위잉 울며 그 손으로 돌아갔다.

목진이 뒤돌아보니 금광이 점차 사라지면서 검은색 옷을 입은 청년이 나타났다. 흑발에 강인한 인상을 주는 청년의 그윽한 두 눈에는 여유가 보였다.

그는 황금빛 장창을 들고 허공에 서서 경멸의 눈빛으로 마룡자를 바라봤다.

“역시 심창생 선배였어.”

오만한 자태에 곽흉은 순간 마음이 들끓었고 상처도 전혀 아프지 않았다.

소훤 등도 이내 시름이 놓였다. 북창령원에서 얼굴조차 안 비추던 심창생이 나타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이때, 황금빛 장창을 거머쥔 청년이 고개를 들어 씨익 웃으며 말했다.

“마룡자, 내 후배들은 보내주고 나랑 싸우자.”

맑은 하늘 아래 황금빛 장창을 거머쥔 청년이 내뿜는 기세는 혜성처럼 눈부셨고 이목을 끌었다.

목진도 눈이 휘둥그레져 그를 바라보았다. 북창령원에 들어서부터 그에 관한 정보를 수없이 들어왔다. 그는 북창령원 학생들 마음속의 유일한 패주였다. 그런 사람을 이곳에서 볼 줄은 정말 몰랐다.

멀지 않은 곳에서 마룡자가 차가운 얼굴을 하고 심창생을 노려보더니 장검을 꽉 쥐며 웃었다.

“날 두 달이나 쫓아다녔는데 지겹지도 않아?”

“내가 현상 임무를 받았는데 그 상대가 바로 너야. 그래서 네 목을 베지 않으면 북창령원에 돌아갈 수 없어.”

심창생이 가볍게 황금빛 장창을 흔들며 웃었다.

“넌 절대 날 못 죽여.”

마룡자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더니 느긋하게 말했다.

“네가 실력이 좋은 건 알지만 북창령원 형벌조도 해내지 못한 일을 혼자서 해낼 수 있을까.”

“하지만 네 뒤를 쫓아다니면 적어도 다른 사람을 죽이는 건 막을 수 있겠지.”

심창생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난 기회를 잘 잡는 편이야. 네가 일단 틈을 보이면 그대로 내 손에 죽는 거야.”

그의 말에 마룡자가 미간을 찌푸리자 마룡의 무늬가 한껏 일그러졌다.

“그럼 널 죽이는 편이 좋겠네?”

“그럼 나와 싸우자.”

심창생이 수중의 황금빛 전창을 겨누며 하는 말에 마룡자의 눈빛이 차가워졌다. 그리고 주위에 만 갈래의 검망이 서서히 형태를 갖췄는데 그곳 공기마저 잔뜩 일그러졌다.

심창생 역시 수중의 황금빛 전창을 휘두르자 황금빛이 일며 몸 전체가 눈부신 황금빛 태양이 되어 전쟁의 신처럼 우뚝 솟아올랐다.

“나를 여원 같은 멍청이로 생각하면 안 될 거야.”

마룡자가 피식 웃더니 이내 정색하며 수중의 장검을 휘둘렀다. 그러자 만 갈래의 검이 울부짖었고 뒤쪽에서 어두운 빛이 일어 하늘을 뒤덮는 검영을 이루었는데 실체가 있는 물건인 양 하늘 높이 솟아올랐다.

“용린검결, 만검열공(萬劍裂空).”

위잉!

만검의 울음소리와 함께 검우가 되어 놀라운 기세로 심창생한테 쏟아져 내렸다.

이토록 매서운 공격은 처음이었다. 보아하니 그는 이미 통천경에 이른 것 같았다.

젊은 나이에 통천경이라니, 마룡자는 소문대로 천부적 재능이 뛰어난 미친놈이었다. 역시 이 세상에 천재와 미친놈은 넘쳐났다.

목진은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마룡자는 기껏해야 자기보다 나이가 다섯 살 정도밖에 많지 않은데, 북창령원 현상방 2위에 오를 만큼 실력이 좋았고 형벌조 조차 잡지 못하는 무서운 사람이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