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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주재-185화 (184/1,000)

185화. 준비

“낙리는 어디 있어?”

목진이 주위를 훑으며 묻자 순간 정적이 흘렀다.

“왜 그래?”

목진은 바로 인상을 찌푸렸다.

“낙리는 지금 거처에서 요양 중이야.”

주령이 쭈뼛쭈뼛 말했다.

“그게 무슨 말이야?”

목진의 안색이 어두워져 주령을 바라봤다.

“도대체 무슨 일이야?”

목진의 재촉에 옆에 있던 엽경령이 애써 웃으며 답했다.

“네가 떠난 보름 동안 북창령원에도 많은 일이 있었어. 양홍은 비룡회를 없애고 그중 일부와 함께 요문(妖門)에 들어갔어.”

“요문?”

“요문은 천방 4위인 학요가 만든 세력인데 북창령원에서 인기와 실력이 엄청나. 이현통이 만든 현방, 심창생의 심판단을 빼면 요문이 제일이야.”

주령이 옆에서 차근차근 설명해줬다.

“학요?”

목진은 차가워진 눈빛으로 두 사람을 바라봤다.

“그게 낙리가 부상을 입은 거랑 무슨 상관이지?”

“양홍이 요문에 든 뒤로 낙신회를 겨냥했어. 양홍이 요문에 들고나서 너에 대한 두려움이 조금 줄어든 데다 네가 북창령원에 없으니 더 날뛰면서 자주 여기에 와서 난동을 부렸어.”

주령이 이를 갈며 말했다.

“내가 한 번은 참지 못하고 나섰는데 실력이 좋긴 하더라고. 벌써 융천경 후기에 이르러 내가 이길 수가 있어야지…….”

주령은 매우 부끄러웠다.

“주령 뿐만 아니라 따지려고 양홍을 찾아간 낙신회 회원들도 전부 다쳐서 돌아왔어.”

엽경령이 부들부들 떨며 말했다.

“처음엔 수련을 방해할까 봐 낙리한테 말하지 않았어. 그런데 무슨 이유인지는 모르겠으나 양홍이 갑자기 사람을 보내 낙신회를 없애라는 거야.”

목진의 눈빛이 점점 차가워졌다. 양홍이 아무리 멍청해도 자기 주제를 모르는 사람은 아니었다.

“이 일이 결국 커져 낙리가 알게 됐어.”

엽경령이 씁쓸하게 웃으며 말했다.

“낙리가 나서자 양홍은 바로 패배했지. 그런데 며칠 지나지 않아 요문에서 사람을 잔뜩 몰고 왔는데 그중에는 천방 20위권에 든 사람이 셋이나 있었어. 낙리 홀로 요문을 상대했는데 전부 달려들어도 낙리의 상대는 안 되더라고. 낙리는 결국 50명이 넘는 요문의 고수를 해결했고 부상을 입어서 아직 요양 중이야. 불행 중 다행은 요문에서 낙리의 실력 때문에 더는 사람을 보내지 않았고 양홍도 지금껏 잠자코 있어.”

엽경령이 이를 갈며 하는 말에 목진의 눈에 한기가 서렸다.

“미안해, 목진. 우리 실력이 너무 모자라 여인을 내세웠어.”

주령은 부끄러워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고 다른 낙신회 회원들도 고개를 숙였다. 낙리 혼자서 요문의 고수들과 싸워 승리한 일로 낙신회의 명망은 높아질 테지만 이렇게 얻은 명망에 고개를 들고 다닐 회원은 없었다.

“양홍은 절대 이런 일을 벌일 위인이 아니야. 분명 누군가 뒤에서 부추겼을 거야.”

“그게 누군데?”

엽경령이 흠칫하더니 순간 안색이 어두워져 물었다.

“설마 요문의 우두머리인 학요란 말이야?”

요문의 고수를 자유자재로 움직일 수 있는 사람은 학요 뿐이었다.

이에 목진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눈빛이 더 차가워졌다. 학요는 왜 낙신회를 노린 걸까?

목진은 갑자기 북창령원을 떠나기 전, 학요와의 만남이 생각났다. 그는 소훤의 임무에 동참하고 싶었지만 목진이 거절해서 무산되었다.

목진은 이를 아무렇지 않게 생각했는데 이것이야말로 학요가 낙신회를 노린 이유였다.

학요가 목진에게 본때를 보여주려고 벌인 짓이 분명했다. 하지만 낙신회에 엄청난 실력자인 낙리가 있을 줄은 몰랐겠지.

“학요라…….”

“어떻게 하려고? 요문을 찾아가려거든 우리도 동참할게. 낙신회에 겁쟁이는 없다는 걸 제대로 보여줄 거야.”

주령이 이를 갈며 말하자 목진은 가볍게 고개를 흔들며 웃었다.

“걱정하지 마. 이 일은 내가 해결할게.”

이는 절대 주령 등의 탓이 아니었으나 목진은 학요가 이렇게까지 속 좁은 인간일 줄은 몰랐다. 역시 소훤이 싫어하는 데는 다 이유가 있었다.

“어떻게 해결하려고?”

주령이 다시 묻는 말에 목진은 담담하게 웃으며 집으로 향했다.

“닷새 후, 나 목진이 직접 답례하러 간다고 전해.”

끼익.

목진은 꼭 닫힌 문을 열고 들어가 곧장 낙리의 방으로 향했다.

조용히 문을 열고 들어가자 은은한 향기가 퍼졌고 낙리는 얇은 옷 한 벌만 입고 창가에 기대어 쉬고 있었다. 옷 사이로 보이는 길고 가는 다리에서 영롱한 빛이 일었다.

그녀는 가녀린 팔로 다리를 감싸 안고 무릎에 머리를 기대고 있었는데 기다란 머리가 은하수처럼 흘러내린 채 잠든 듯 아주 조용했다.

목진은 사랑스러운 듯 소녀를 바라보다가 조용히 다가갔다.

그런데 그때, 소녀는 무언가를 감지하고 눈을 번쩍 뜨더니 잔뜩 경계하며 뒤를 돌아봤다. 그러다 눈앞에 나타난 사람을 확인하고 바로 긴장을 풀며 활짝 웃었다.

“돌아왔어?”

낙리의 창백한 얼굴을 본 목진은 마음이 아팠고 한편으로 더 화가 났다.

“다쳤다며?”

목진이 다가가 낙리의 얼굴을 어루만지며 인상을 찌푸렸다.

“아니, 괜찮아.”

낙리는 차가운 목진의 손에 흠칫 놀라더니 이내 웃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나한테까지 거짓말할 거야?”

목진이 눈을 부릅뜨며 낙리를 확 끌어안았다.

“악!”

낙리는 황급히 목진의 목을 잡더니 부끄러운 듯 괜히 째려보며 말했다.

“돌아오자마자 날 괴롭히는 거야?”

품속에 안겨 잔뜩 부끄러워하는 소녀의 모습에 목진은 마음이 간지러웠다. 평소 차갑기 그지없던 낙리에게서 이런 표정을 보는 건 극히 드문 일이었다.

낙리는 자기 입술을 빤히 쳐다보는 목진을 발견하고 얼굴이 빨갛게 달아오른 채 몸을 비틀었다.

“뭘 하려는 거야?”

“잠시 떨어졌더니 정말 그립더구나.”

목진은 히쭉 웃더니 어느새 그녀에게 입을 맞추었다. 이에 낙리는 온몸을 파르르 떨더니 결국 목진의 목을 감싸 안았다.

목진은 자신의 입맞춤에 부끄러워 발그레해진 낙리를 보더니 피식 웃었다.

“참 맛 좋은걸. 앞으로 이건 나만 먹을 수 있어.”

“꿈도 야무지지.”

목진의 말에 낙리는 몸 둘 바를 몰랐다.

“아직 부족했나?”

목진이 야릇하게 웃으며 자신을 더 꽉 끌어안자 낙리는 그를 노려보더니 몸을 휙 돌렸다.

이에 목진은 낙리의 침대에 앉아 그녀의 팔을 안고 걱정되어 물었다.

“상처는 좀 어때?”

낙리는 그제야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답했다.

“괜찮아. 힘을 너무 뺐더니 힘들어 그래. 사람은 많았지만 아무도 내 상대가 아니었어. 요문 중에 실력이 괜찮은 사람도 있던데 이럴 필요까지 있었을까 싶더라. 다만 요문의 우두머리가 골치 아프긴 해. 네가 곁에 없어서 난 늘 녀석이 신경 쓰였어.”

낙리가 홀로 요문의 수십 명을 때려잡은 걸 보면 실력은 화천경에 이른 게 분명했다. 그런데 학요가 나타나지 않아 그를 경계하려고 실력을 숨기려다 부상을 입은 것이었다.

“학요…….”

목진은 한기 어린 눈빛으로 녀석의 이름을 부르다가 이내 웃으며 말했다.

“녀석이 사람답지 못하니까 나도 이젠 그를 사람 취급하지 말아야겠어.”

“뭘 하려는 거야?”

낙리는 목진이 걱정되었다. 요문과 학요는 절대 호락호락한 상대가 아니었다.

“내 여인을 건드렸는데도 잠자코 있으면 사내가 아니지.”

목진이 씩씩거리며 하는 말에 낙리는 부끄러워 괜히 그를 흘겨봤으나 기쁜 마음만은 주체할 수 없었다.

“그럼 나도 함께 가.”

낙리는 학요의 실력이 보통이 아니라 목진 혼자서는 무리일 거라 여겼다.

“괜찮아. 이번 일은 내가 해결할게.”

목진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하는 말에 낙리는 조금 언짢았으나 승낙하는 수밖에 없었다. 낙리는 머리로 목진의 가슴팍을 때리더니 품에 쏙 안겨 서서히 잠이 들었다.

목진은 품속에서 단잠에 든 소녀를 바라보더니 빙긋 웃었다. 그러나 다시 고개를 들었을 때는 어느새 한기가 드리워져 있었다.

‘학요, 너와 엮이고 싶지 않았는데 먼저 딴지를 걸었으니 나도 가만있지 않겠어.’

* * *

목진은 조용히 낙리의 방에서 나와 옥탑으로 올라갔다. 그리고 영치패를 꺼내어 영치전의 물건을 훑었다.

목진은 이번에 제대로 화가 났다. 싹을 자르지 않으면 앞으로 이런 일이 계속 생길 것 같았다. 그래서 목진은 이번에야말로 학요한테 본때를 보여주기로 다짐했다.

화천경 후기인 백헌도 자기 손에 죽었는데 학요 따위는 두려워할 필요가 전혀 없었다.

목진은 영치전의 물건을 쓰윽 훑다가 원하는 물건이 나타나자 영치패를 거두고 한 줄기 빛이 되어 영치전으로 향했다.

* * *

이튿날, 목진은 낙리와 인사하고 바로 사라졌고 주령 등은 목진의 말을 요문에 전했다.

이에 요문이 떠들썩해졌다. 다들 목진이 겁도 없이 달려드는 것이라고 여겼다. 비록 일전에 영투장에서 놀라운 모습을 보여줬고 이로써 북창령원에서 이름을 날렸지만 다들 그가 천방 10위권의 실력자와 어깨를 나란히 할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더구나 요문에는 천방 4위의 학요까지 있는데 목진 따위가 무슨 풍파를 일으킨단 말인가?

이 일은 금세 사람들의 이목을 끌었다.

다들 이현통의 공격을 받아낸 목진에 대한 인상이 깊었는데 목진이 학요를 어떻게 상대할지 무척 궁금해했다.

역시 사흘도 안 되는 사이에 이 일은 북창령원 전체로 퍼져나갔다. 그러나 주인공인 목진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없었다. 이에 누군가는 목진이 두려워 다시 숨었다고 빈정댔다.

그러나 주령 등은 목진에 대한 무조건적인 믿음이 있어 아무렇지도 않았다. 그들은 분명 목진이 할 일이 있어 사라졌다고 굳게 믿었다.

시간은 사람들의 추측 속에서 빠르게 흘러갔다.

* * *

요문 본부는 북창령원 북쪽 건물이 가득한 곳에 있었는데 전부 요문 회원으로 요문 전문 구역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한편, 사람들은 요문의 중심 구역의 방대한 건물에 모여들었다. 그 대청의 제일가는 자리에 학요가 무덤덤하게 앉아 차를 마시고 있었고, 오른쪽에는 양홍이, 주위에는 요문의 핵심 회원들이 서 있었다.

“형님, 내일이 곧 목진이 통보한 다섯 번째 날인데 목진은 도대체 뭘 하려고 아직도 나타나지 않는 걸까요?”

옆에 있는 메마른 남자가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그의 이름은 진후로 북창령원에서 어느 정도 이름을 알렸고 천방 18위로 화천경 초기에 이르렀지만 낙리와의 싸움에서 패배했다.

주위 사람들도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약속된 시간이 다가올수록 사람들은 어리둥절하였다. 목진이 숨어들었단 소문에 점차 믿음이 간 것이다.

학요가 담담하게 웃으며 찻잔에서 피어오르는 연기를 바라보자 차가 순식간에 얼었고 주먹을 쥐자마자 찻잔은 가루가 되어 흩날렸다.

“내일이 되면 답이 나오는데 뭐가 그리 급해? 이현통의 공격을 막아냈다고는 하지만 신생일 뿐인데 그따위 실력으로 뭘 할 수 있겠어.”

고개를 들며 말하는 학요의 얼굴에는 비웃는 기색이 가득했다.

“그가 나타나기만 하면 이곳 북창령원에서 감히 요문을 상대로 우쭐댈 수 없다는 걸 제대로 보여줄 거야.”

오늘, 요문 본부는 유난히 떠들썩하였다. 건물 옥상에는 사람들이 꽉 찼고, 먼 곳에서부터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계속 들려왔다.

닷새 사이에 목진과 요문 사이의 일이 널리 알려졌다.

그러나 사람들은 제아무리 목진이라고 해도 학요를 상대하기엔 버겁다고 생각했다.

이현통의 공격을 막아냈던 건 목진이 천부적인 재능이 있다는 것이지 실력이 좋다는 뜻은 아니었다. 진정으로 대결을 펼치면 절대 이현통 같은 강자와는 상대가 안 될 거라고 여겼다.

또 학요는 실제 실력은 3위권에 들 수 있을 만큼 강하지만 실제로는 일부러 실력을 숨기는 것이라고 했다.

하여 목진이 요문을 찾아가는 건 그다지 좋은 선택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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