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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주재-186화 (185/1,000)

186화. 영진

요문 본부 앞에는 커다란 광장이 있는데 현재 그곳에는 수천 명의 요문 회원들이 모여 있었다. 그들은 목진이 처참하게 패배하는 모습을 볼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신생이 과연 어떤 필살기를 들고 올지 무척 궁금했다.

학요는 무덤덤하게 본부 앞쪽 자리에 앉아있었고, 그 뒤로 진후 등 요문의 핵심 회원들이 앉았다.

양홍은 변두리 쪽에 서 있었는데 더는 전처럼 우쭐대지 않고 차분했다.

요문의 명성을 빌어 양홍은 목진의 그늘에서 벗어날 수 있었고, 수련에 집중하면 다시 목진을 뛰어넘어 언젠가 북창령원의 가장 높은 자리에 오를 수 있다고 굳게 믿었다.

그때가 되면 목진은 물론, 학요도 전부 짓밟아 버릴 것이다.

광장 밖 허공에도 구경꾼들이 모여들었다. 그들은 목진을 상대하려고 단단히 준비한 요문을 보고는 수군댔다.

“목진 스스로 물러나라고 요문에서 이렇게 사람을 많이 모은 걸까?”

“학요는 천방 4위이고 진후 등 3인은 천방 20위권이며 그 외 천방 50위권에 있는 사람도 여럿 있어…… 요문은 역시 대단해.”

“목진이 사람을 잘못 건드렸네.”

“그 녀석도 참 말썽이야. 전에 서황과도 충돌이 있었다는데 어쩌다 학요와 엮였는지…….”

“그 녀석은 이번에는 절대 무사히 넘어가지 못할 거야.”

* * *

구경꾼들은 목진이 패배할 거라 굳게 믿었다.

다른 쪽 건물 위에 있는 한 무리도 광장을 유심히 바라봤는데, 그들의 우두머리는 서황이었고 그 옆에는 서청청이 주위를 살피며 피식 웃었다.

“목진은 참 말썽을 많이 피우네요. 이현통과 싸운 지 얼마나 지났다고 또 요문과 엮였을까요? 학요가 상대하기 쉬운 사람이라고 여기는 건 아니겠죠? 오라버니, 그 녀석이 정말 올까요?”

서청청이 앞쪽에 있는 서황한테 말을 건넸다.

이에 서황은 인상을 찌푸리고 주위를 훑었는데 아무리 봐도 목진은 보이지 않았다.

“목진은 반드시 나타나. 한 해만 더 지나면 그 녀석은 분명 천방 5위권에 들 엄청난 녀석이야.”

서청청은 언짢은 듯 콧방귀를 뀌었다. 그따위 녀석이 천방 5위권이라니! 이현통의 공격을 받아낸 건 아무것도 아니라고 여겨졌다.

“나타나겠지. 다만 이 상황을 어떻게 마무리할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네.”

서황은 요문 고수들이 모인 곳을 보더니 목진이 도대체 뭘 하려는 건지 당최 가늠이 되지 않았다.

* * *

소훤, 소령아, 여정 등도 멀지 않은 곳에서 지켜보고 있었다.

“언니, 목진은 왜 아직도 나타나지 않는 걸까요?”

주위를 둘러보던 소령아가 황급히 물었다.

“녀석도 참. 돌아오자마자 이 사달을 내다니. 학요는 절대 이현통 같은 성인군자가 아닌데 말이에요.”

“학요가 먼저 목진을 건드렸다고 들었어. 목진이 떠난 뒤 낙신회를 뒤집어놓았는데 낙리가 전부 물리쳤지. 게다가 낙리도 부상을 입었다더군.”

곽흉이 입을 열었다.

“목진과 학요 사이에 원한을 살만한 일은 딱히 없어. 아마 이번 임무에 자신을 넣지 않아서 목진이 자기 자리를 빼앗았다고 생각하나 봐.”

옆에 있던 여정이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그 말에 묵묵히 고개를 끄덕이던 소훤은 학요가 속 좁은 사람인 줄 알았지만 이런 일로 분풀이를 할 줄은 몰랐다.

“언니, 목진이 위험해질 것 같으면 도와줘요.”

소령아의 말에 소훤은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 일은 나한테도 책임이 있으니 절대 학요 마음대로 되지는 않을 거야. 대신 목진을 너무 쉽게 생각하지 마. 분명 믿는 구석이 있는 거야. 마룡자 앞에서도 선뜻 나서는 녀석이 학요의 위협에 과연 겁먹었을까?”

옆에 있던 여정과 곽흉도 소훤의 말에 동의하는 눈치였다. 보름 동안 함께 지내며 목진이 얼마나 경이로운 녀석인지 알았기에 결과가 어떻게 나올지는 모르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낙신회다!”

이때 주위가 들썩이며 다들 광장 밖으로 눈길을 돌렸다.

낙신회 회원 수백 명이 우르르 몰려왔는데 대부분 신인이었다. 그들은 요문의 태도에 조금 겁먹었지만 이를 악물고 맞섰다.

무리의 맨 앞에는 검은색 현의를 입은 소녀가 서 있었다. 정교한 얼굴에 맑은 눈망울이 아주 그윽하였고, 머리카락은 은하수처럼 허리까지 내려왔다.

다들 현의 소녀를 보더니 눈이 휘둥그레졌다.

“저 아이가 낙리야? 역시 듣던 대로 훌륭하구나. 목진이 마음을 줄 만해.”

소훤은 남다른 소녀의 모습을 보고는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이에 소령아는 언짢은 듯 입을 삐죽 내밀었지만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낙리는 얼굴이든 기품이든 흠잡을 곳 하나 없이 완벽했다.

낙신회 회원들은 낙리와 함께 커다란 광장에 발을 들였다.

학요 뒤에 있는 진후 등은 낙리를 보자마자 눈을 피하기 바빴다. 그날, 수십 명이 낙리 한 사람과 싸워 진 것만으로 체면이 깎였고, 사람이 그렇게 많은데도 전혀 밀리지 않는 것이 정말 놀라웠다.

그날 이후로 이들은 신생 중 으뜸은 목진이 아니라 여태껏 실력을 감추고 있는 예쁜 소녀란 걸 깨달았다.

학요도 낙리한테서 눈길을 떼지 못했다. 북창령원에서 미모와 실력으로 볼 때, 가장 뛰어난 여인은 지금까지 소훤이었다. 그런데 눈앞에 있는 소녀는 소훤보다 더 뛰어나 보였다.

녀석, 여인 복은 타고났네.

학요는 이리 생각하며 주위를 살피고는 담담하게 말했다.

“목진은? 오늘 직접 요문에 오겠다더니 왜 때가 되었는데 그림자조차 보이지 않는 거지?”

“그 사람이 온다고 했으면 반드시 올 거니까 잠자코 기다리세요.”

낙리의 맑은 목소리에는 전혀 흔들림이 없었다.

“기다리라니, 녀석이 뭔데 감히 우리더러 기다리래?”

학요는 조금 어이가 없었다. 자신이 어떤 사람이고 목진 따위가 뭔데 낙리가 이런 말을 내뱉나 싶었다.

이에 낙리는 고개를 조금 젖히고 말했다.

“기다리는 것이 지겨우면 일단 나와 싸울까요? 대신 천방 4위에서 밀려날 수도 있다는 점은 각오해요.”

주위는 순간 떠들썩해졌다. 예쁜 소녀의 입에서 이런 말이 나올 거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목진과 닮았네.”

소훤이 웃으며 말했다.

그 말에 학요는 안색이 어두워져 서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를 4위에서 내치겠다? 네가 그리 말할 자격이 있을까?”

말이 끝나기 바쁘게 놀라운 영력의 위압감이 체내에서 퍼졌다. 낙리의 말에 잔뜩 화가 난 것이다.

이에 뒤에 서 있던 엽경령 등은 순간 안색이 어두워졌으나 낙리만은 무덤덤하게 가벼운 발걸음으로 나아갔다.

“오늘 일은 내가 해결할게.”

그때, 명쾌한 웃음소리가 울려 퍼졌다.

이는 광장 밖 우뚝 솟은 건물 위에 앉아있는 소년의 목소리였다. 그는 한기 가득한 얼굴로 학요 등 광장에 모인 요문 사람들을 노려봤다.

“목진이다!”

소년을 본 사람들은 입이 쩍 벌어졌고 낙신회 회원들은 화색이 되었다. 목진이 드디어 나타났다.

“나타나긴 했는데 수습은 어떻게 할 거야? 이현통과 싸워 어렵게 얻은 명성을 잃지나 말지.”

서청청이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

이에 서황은 목진을 묵묵히 지켜봤는데 조금은 지쳐 보이는 소년한테서 두려움이란 전혀 찾아볼 수가 없었다.

“저 녀석…… 도대체 뭘 하려는 거야?”

서황이 인상을 찌푸리며 중얼거렸다.

“드디어 나타났군.”

광장에 있는 학요도 차가운 눈빛으로 목진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요문이 우리 낙신회를 방문했다고 들어서 내가 직접 이곳에 왔어요.”

“용건이 뭐야?”

목진이 히쭉 웃으며 학요를 바라보자 학요도 피식 웃으며 물었다.

“간단해요. 낙신회에 소란을 피우러 왔던 자식들더러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사과하도록 하세요. 그리고 양홍을 요문에서 내치세요. 그자는 심술이 고약해 언젠가 큰 사달을 낼 거예요.”

목진이 담담하게 웃으며 하는 말에 주위가 떠들썩해졌다.

“꿈 깨!”

학요 뒤에 서 있던 진후 등이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하여 말했고 옆에 있던 양홍도 안색이 안 좋았다. 어렵게 구한 뒷배인데 이대로 쫓겨나면 앞으로 더는 얼굴을 들고 다닐 수 없을 것이다.

목진의 과한 요구에 학요도 눈빛이 차가워지며 언짢은 듯 입가가 파르르 떨렸다.

“네가 뭔데 요문 일에 참견이야? 후배들에게 원내 규칙을 가르쳐주려고 낙신회에 간 거뿐이야. 그런데 고마워하지도 않고 전부 내쫓아? 이 일로 내가 찾아가지도 않았는데 먼저 찾아오다니, 정말 어이가 없네.”

적반하장도 유분수지, 낙신회 회원들은 순간 안색이 어두워졌다.

“당신은 뭔데 낙신회에 참견인가요? 당신이 그럴 자격이나 되나요?”

목진이 눈을 내리깔며 웃자 순간 정적이 흘렀다. 감히 학요한테 이런 말을 하다니, 목진은 역시 호락호락한 사람이 아니었다.

학요의 안색이 점점 어두워지며 주위를 맴돌던 영력 파동이 갑자기 난폭해졌다. 그는 피식 웃으며 다시 의자에 앉았다.

“패기는 인정하지만 네 요구는 들어줄 수 없어. 그리고 사과해야 하는 건 요문이 아니라 너희 낙신회야.”

그는 목진을 째려보며 말을 이어갔다.

“오늘 너희들이 우리 요문에 사과하지 않으면 너희 중 두 발로 온전히 이곳을 걸어 나가는 사람은 없을 거야.”

말을 마친 학요는 느긋하게 의자에 기대었다. 목진 따위가 무슨 재주로 요문 본부에서 이따위로 떠드는 건지 지켜보기로 했다.

낙신회에서 그나마 봐줄 만한 사람은 목진과 낙리 뿐이었다. 두 사람이 요문 전체를 흔들기에는 절대 불가능했다.

학요가 말을 마치자 다들 목진에게 눈길을 돌렸다. 학요가 이렇게까지 말한 이상, 목진의 반응이 궁금했다.

목진은 학요를 바라보더니 피식 웃었는데 그 모습이 왠지 모르게 싸늘했다.

“그렇다면…….”

목진은 중얼거리며 서서히 눈을 감았다.

다들 눈이 휘둥그레져 목진을 바라봤다. 아무도 그가 뭘 하려는 건지 몰랐다.

학요와 요문 회원들도 잔뜩 경계하였다. 목진의 반응이 너무 이상해 정말 엄청난 수법이라도 선보이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분위기는 더없이 싸늘해졌는데 아무리 기다려도 목진은 끄떡없었다.

“도대체 뭘 하려는 걸까요?”

소령아도 다른 사람들처럼 목진을 당최 이해할 수가 없었다. 동생의 질문에 소훤은 미간을 찌푸리며 목진을 바라봤다.

잠시 후 특이한 파동이 조금씩 느껴졌는데 이는 목진의 영력 파동이 아니었다.

파동은 어느덧 요문 본부 전체를 감쌌다. 그때 쿵! 하는 소리와 함께 사람들이 고개를 돌려보니 목진과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의 우뚝 솟은 건물 하나에 커다란 균열이 생겼다.

뒤이어 위에서 바위가 떨어졌고 빛을 발하더니 영력 광선이 서서히 주위에 퍼졌다.

이때, 다른 쪽에 있는 건물도 무너지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건물이 무너지는 소리를 따라 시선을 계속 움직였는데 얼마 안 되는 사이에 광장 주위에 있던 건물이 10채나 무너졌다.

그리고 눈부시기 그지없는 빛이 하늘 높이 날아올라 요문 본부 전체를 둘러쌌다.

“저건 뭐지?”

사람들은 떠오르는 열 갈래의 거대한 빛덩이가 무엇인지 도무지 모르는 눈치였다.

열 갈래의 거대한 빛덩이는 난폭한 영력 파동을 선보이며 어느새 이곳에 자리를 잡았다.

“저건…….”

소훤, 서황 등 실력이 최상위를 달리는 사람들은 서서히 퍼지는 빛덩이를 보고는 영력이 움직이는 궤적에 동공이 파르르 떨렸다.

“영진?”

“저건 다 영진이었어.”

소훤이 가볍게 숨을 들이켜며 말했다.

“네?”

소령아가 화들짝 놀라 물었다.

“전부 영진이라니요? 목진이 한꺼번에 이렇게 많은 영진을 소환했단 말인가요? 그러려면 영인을 아주 많이 만들어야 가능하지 않아요?”

영진의 규모로 보면 적어도 3급 영진이었는데 단숨에 3급 영진 10개를 소환하려면 최소 5급 영진사라야 가능했다.

그러나 목진은 절대 5급 영진사일 리가 없었다. 5급 영진사는 통천경 강자와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는데 목진이 그런 실력자였으면 북창령원의 일인자가 되고도 남았을 것이다.

“이 영진들은 미리 각인한 거야.”

소훤은 다시 인상을 찌푸리며 눈을 감은 목진을 유심히 바라봤다. 목진은 닷새 동안 이곳에 숨어 영진도를 각인한 것이었다. 적당한 때에 영진을 소환할 영인만 만들어내면 바로 영진을 사용할 수 있었다.

3급 영진 10개를 동시에 움직이면 그 위력은 상상하지 못할 만큼 대단할 텐데 목진이 과연 이를 동시에 조종할 수 있을까?

“제법이군.”

요문 본부 주위를 둘러싼 빛덩이들을 본 서황의 안색도 조금 어두워졌다.

“녀석은 회피하려던 것이 아니라 요문 본부에 숨어들어 몰래 영진도를 그렸던 거였어. 처음부터 이럴 계획이었어.”

“영진도를 그리면 뭐 해요? 녀석의 실력으로 그 많은 영인을 만들어낼 수나 있을까요?”

서청청도 눈앞에 벌어진 광경에 화들짝 놀랐지만 목진을 절대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서황은 고개를 끄덕이며 목진을 유심히 관찰했다. 녀석이 정녕 그 정도로 실력이 늘었단 말인가?

갑작스러운 변고에 요문 회원들도 점차 불안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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