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화. 뇌역에 다시 들어가다
남다른 기품을 가진 낙리에게 호감을 느낀 여자들은 이내 웃으며 담소를 나누었다.
“학요를 조심해.”
소훤이 갑자기 정색하여 목진을 바라봤다.
“내가 제대로 느낀 거라면 그는 분명 실력을 감췄어.”
목진은 흠칫하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그도 학요한테서 위험을 감지했다.
“내가 이렇게까지 했는데도 실력을 숨기네요.”
목진은 도무지 그 이유를 알 수 없었다.
“다음 달에 수렵전이 열리잖아.”
“수렵전에서 실력 발휘하려고 저런다고요?”
목진은 조금 놀랐다.
“당신을 이기고 싶어서 그러는 걸까요?”
“내가 진정한 목표는 아닐 거야.”
소훤의 말에 목진은 눈이 휘둥그레져 물었다.
“설마…… 이현통?”
역시 실력을 숨기는 데는 다 이유가 있었다. 이현통이 이에 대비할까 봐 일부러 숨기는 것이었다.
“학요는 자부심으로 똘똘 뭉쳐 절대 누군가의 밑에 있지 못해. 그는 북창령원에서 열리는 수렵전에서 이현통을 뛰어넘어 명성을 떨치려 할 거야.”
이에 목진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이현통의 실력을 잘 아는 목진은 학요가 이와 맞선다는 말에 그를 다시 보게 되었다.
그리고 학요와 사이가 틀어진 이상, 수렵전에서 자신을 사냥감으로 삼겠다고까지 했는데 그때까지 소훤의 도움을 구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학요의 음산한 눈빛이 떠오른 목진은 이내 웃으며 말했다.
“알겠어요, 소훤 선배.”
일이 이렇게 된 이상, 학요가 실력을 얼마나 감췄든 상관없었다. 그는 절대 쉽게 자신을 제압할 수 없을 것이다.
소훤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학요의 실력이 아무리 좋아도 당하고만 있을 목진이 아니었다.
목진은 잠시 담소를 나누다가 떠난 소훤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사색에 잠겼다.
“수렵전에 참가할 거야?”
낙리가 물었다.
“수렵전에 참가하면 얻을 것이 그렇게나 많은데 포기할 수는 없지.”
목진이 웃으며 말했다. 영광 관정은 수련에 큰 도움을 주기 때문에 포기하기가 아쉬웠다.
“그럼 학요는…….”
낙리는 잠시 머뭇거렸다. 수렵전에는 규칙 따위는 없어서 사람을 죽기 직전까지 때려도 반칙이 아니었다.
게다가 잔꾀가 많은 학요는 절대 호락호락한 상대가 아니었다. 늘 긴장의 끈을 놓지 말아야 한다. 그러다 언제 어디서 어떻게 당할지 모르는 일이었다.
“걱정하지 마. 비록 학요가 실력을 감췄다 해도 나도 그리 쉬운 상대는 아니야.”
목진이 웃으며 말했다.
“그리고 아직 한 달이나 있잖아? 난 한 달 동안 뇌역에서 수련할 계획이야. 수렵전을 위해 준비해야하지 않겠어?”
목진은 백룡영주를 제대로 연구해보기로 마음먹었다.
수렵전에는 뛰어난 실력자들이 많을 것이 분명했고, 학요처럼 강력한 상대가 있으니 노력하지 않으면 뒤처질 것이다. 이는 목진이 절대 원치 않는 상황이었다.
“그럼 나도 함께 가자.”
낙리의 말에 목진은 피식 웃었다.
“남아는 검을 뽑아 들고 적을 물리치고 여인은 그대의 곁을 지키리라…… 이건가?”
그 말에 낙리는 부끄러워 빨갛게 달아오른 얼굴로 목진을 노려보고는 엽경령과 함께 떠났다. 목진도 호탕하게 웃고는 바로 그 뒤를 따라갔다.
* * *
학요는 침울한 얼굴로 폐허가 된 요문 본부를 쓰윽 훑었다.
“형님.”
뒤에 있는 진후 등의 안색도 보기 안 좋았다. 목진의 방문으로 요문은 체면이 구겨질 대로 구겨졌다.
“형님이 나섰더라면 녀석이 이렇게까지는 우쭐대지 못했을 거예요.”
진후가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는 요문의 핵심이라 학요에 대해 잘 알았다.
“내 상대는 이현통이야. 신생 따위 때문에 진정한 실력을 보여줄 수는 없지.”
학요는 차가운 얼굴로 진후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럼 이대로 녀석을 놔줄 건가요?”
이때, 학요는 살기를 내뿜으며 영력을 끌어올렸는데 한 갈래의 방대한 영력 기(氣)의 회오리가 폐허를 휩쓸어 바위가 전부 부스러졌다.
요문 회원들은 차마 움직이지도 못했다.
“걱정하지 마. 내 반드시 수렵전에서 녀석한테 오늘 한 일에 대한 대가를 물을 테니까. 신생 주제에 겁도 없이 나 학요의 머리 위에 올라타?”
학요는 살기 가득한 얼굴로 말하고는 옷깃을 휘날리며 떠났다.
“한 달 동안이라도 마음 편히 살게 해주지.”
북창령원에 어느새 밤이 깃들었다. 목진은 침대에 앉아 손에 거머쥔 매끄럽고 둥근 구슬을 바라봤는데 백광이 흐르는 구슬 안에 백룡이 날아가며 울부짖었다.
이에 공기마저 파르르 떨었다. 목진은 어리둥절하여 이를 쳐다봤다. 이 속에는 엄청난 영력이 깃들어 있고 그중 일부는 이미 조종 가능하였다.
다만, 이게 전부가 아닐 거란 생각에 목진은 계속 백룡영주 내부를 탐색했는데 자꾸 튕겨 나가기만 했다.
튕겨내는 힘에 목진도 함부로 덤비지 못했다. 잘못하면 크게 다칠 수도 있었다.
“백룡영주 내부에도 봉인이 있는 것 같네.”
목진이 인상을 찌푸리며 중얼거렸다.
“네 예측대로란다.”
구유작이 갑자기 입을 열었다.
“어떻게 된 일인지 알아?”
“백룡영주는 백룡 지존의 계승을 상징하는 물건인데 내부를 봉인하여 들어갈 수 없다. 그리고 지금 너의 실력으로는 절대 뚫을 수 없다.”
“넌 봉인을 뚫을 수 있어?”
“지금은 좀 어려울 것 같다.”
구유작 역시 기력을 완전히 회복한 건 아니었다.
“그럼 어떡해?”
봉인을 뚫지 못하면 엄청난 보물을 앞에 두고도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외부의 힘을 빌리면 어떨까?”
“외부의 힘? 그게 무슨 말이지?”
도대체 어디에서 이토록 강력한 외부의 힘을 빌리란 말인가?
“내일 갈 곳…….”
목진이 화들짝 놀라 물었다.
“설마…… 뇌역?”
목진은 이내 눈이 반짝이었다. 뇌역에는 방대하고 무서울 만큼 막강한 외부의 힘이 있어 그 힘을 빌리면 백룡영주의 봉인을 뚫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
고개를 끄덕이는 목진은 의욕이 넘쳐 당장 뇌역에 들어가고 싶었다.
“그럼 내일 바로 뇌역으로 가자!”
목진의 말에 구유작도 흥분하였다.
“이번에 난 그 속에서 천뇌주를 충분히 제련해야겠어. 200만 정도만 모으면 북명룡곤의 정혈을 살 수 있다고 했지?”
이에 목진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 천급 임무를 통하여 450만 영치를 얻어 700만인 북명룡곤의 정혈까지 아직 200만 조금 넘게 남았다.
비록 적은 숫자는 아니었지만 목표에 점차 가까워졌다.
목진은 백룡영주를 쓰다듬으며 생각했다.
만약 구유작이 북명룡곤의 정혈을 얻으면 완벽하게 기력을 회복할 수 있을 것이고 그때가 되면 진정한 신수가 될 거란 기대에 잔뜩 부풀었다.
목진은 하루빨리 구유작이 완전히 회복된 모습을 보고 싶었다.
* * *
이튿날 이른 아침, 목진은 낙리와 작별 인사를 하고 바로 뇌역으로 향했다.
일그러진 공간 밖 허공에 뜬 석대들에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들었다. 다들 이곳을 통해 뇌역에 들어갔는데 그중에는 영력 파동이 막강한 사람들이 적잖게 존재했다.
그들 모두 다음 달에 있을 수렵전을 위하여 수련하러 온 것이다.
목진은 거대한 석대에 올라가 주위를 쓰윽 살피다 석대 변두리에 있는 은색 비석에 눈길이 갔다. 거대한 비석에서 벼락이 번쩍였다.
그 주위에는 사람들이 잔뜩 모여 거대한 은색 비석에 관해 말하고 있었는데 가끔씩 번쩍이는 비석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
목진도 서서히 그곳으로 다가갔다. 비석에 이름들이 적혀있었는데 왠지 심상치 않았다.
“저건 뭔가요?”
“이건 뇌역비로 뇌역을 돌파한 우수한 학생들의 이름이 적혀있는 비석인데 일종의 성적이라고 봐도 무관하지.”
옆에 서 있는 노참이 웃으며 답했다.
이에 목진은 비석을 쓰윽 훑었는데 눈에 익은 이름이 수두룩했다.
심창생, 뇌역 돌파 최고 단계 : 9단계.
이현통, 뇌역 돌파 최고 단계 : 8단계.
소훤, 뇌역 돌파 최고 단계 : 7단계.
학요, 뇌역 돌파 최고 단계 : 7단계.
이팽(李彭), 뇌역 돌파 최고 단계 : 7단계.
* * *
뇌문으로 새겨진 빽빽이 박혀있는 이름은 그 성과를 뜻하였다. 뇌역은 10개 단계로 나뉘었는데 뒤로 갈수록 그 힘이 강력해져 실력이 부족하면 절대 그곳에 머무를 수 없었다.
뇌역비로 북창령원에 숨은 능력자가 얼마나 있는지도 알 수 있었다.
심창생, 이현통은 사람들과 어느 정도 실력 차이가 났지만 그 뒤로 10명 가까이 되는 사람들은 바로 소훤과 학요 뒤에 따라붙었다. 그중 대부분은 천방에조차 오르지 않은 낯선 이들이었다. 그런데 이들의 실력도 절대 무시할 수 없었다.
“역시 심창생이야.”
목진은 감탄하였다. 자신도 기껏해야 4단계까지밖에 뚫지 못했는데 심창생은 9단계라니, 조금만 더 나아가면 곧 뇌역의 마지막 단계였다.
이토록 놀라운 실력을 지녔다니 목진은 충격이 컸다.
그리고 이현통도 만만치 않았다. 그는 8단계로 심창생 뒤를 바짝 쫓아가고 있었으니, 역시 심창생과 힘을 겨룰 만한 대단한 인물이었다.
“나는 어디까지 뚫을 수 있는지 궁금하네.”
지난번에 왔을 때 신백경 밖에 안 되었던 목진은 어느새 융천경에 이르렀고 수단도 훨씬 강력해졌다.
목진은 뇌역비를 힐끗 보더니 바로 일그러진 공간에 뛰어들었다. 번개가 일더니 어느새 뇌역 내부로 들어갔다.
뇌역 하늘은 역시나 음침했고 번개가 계속 내리꽂혔으며 쩌렁쩌렁 울리는 소리에 천지마저 흔들렸다.
뇌역이 처음이 아닌 목진은 이곳이 조금은 익숙하였다. 그는 첫 단계를 지나 바로 전력을 다하여 더 깊은 곳으로 향했다.
지난번에 왔을 때보다 더 강해진 목진은 1각도 안 되는 사이에 4단계에 도착했다.
그런데 4단계도 이젠 목진에게 아무런 위협이 되지 않았다.
4단계까지는 일반 융천경의 실력으로 충분했으나 5단계부터는 위력이 대폭 증가해 융천경 후기나 준 화천경이라야 용기를 낼 수 있었다. 그 뒤로는 실력이 뛰어나야 했기에 더 까다로웠다.
그렇다고 경지가 유일한 판단 기준은 아니었다. 목진 같은 사람도 적잖게 있었다.
어느덧 5단계에 도착한 목진은 잠시 머뭇거리더니 바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떠났다.
백룡영주의 봉인을 뚫기엔 5단계도 부족했다.
이렇게 1각 조금 넘게 지나 목진은 뇌역의 6단계 문 앞에 도착했는데 주먹을 휘두르자 난폭한 영력 기(氣)의 회오리가 보호막을 깨버렸다.
꽈르릉!
6단계의 우렛소리에 목진은 피가 들끓는 것 같았다.
이곳 하늘은 더 어두웠고 뇌운은 끝도 없이 하늘에 퍼졌으며 거대한 이무기처럼 이글거리는 번개에 세계가 꼭 종말이 닥친 것 같았다.
목진은 천지에 들끓는 난폭한 영기를 한참 동안 느끼고는 바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아직 부족해!”
더 나아가면 7단계인데 화천경 초기의 실력자도 그곳의 번개에는 견디기 힘들어했다.
“화천경 중기의 힘이 필요하군…….”
목진은 잠시 고민하더니 결국 더 깊숙한 곳으로 향했다. 백룡영주의 봉인을 뚫으려면 뇌역의 막강한 힘을 빌려야 하는데 그러려면 앞으로 나아가는 수밖에 없었다.
화천경 중기의 힘은 드세긴 했으나 목진을 막기란 쉽지 않았다.
목진은 주먹을 꽉 쥐고 앞으로 나아가다가 앞쪽 공간이 다시금 일그러지자 서서히 멈춰 섰다.
보호막 밖에는 석대가 수두룩하였고 그 위에서 수련하는 사람 또한 많았다. 이곳에 머무를 수 있는 사람은 전부 강한 사람들뿐이었고, 다들 7단계의 벽을 뚫기 위해 열심히 수련하였다.
그러나 오히려 목진이 그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다들 그의 실력에 화들짝 놀랐다. 융천경의 실력으로 6단계까지 왔단 말인가?
그러나 목진은 전혀 개의치 않고 거대한 보호막에 다가가며 서서히 주먹을 쥐었다. 그는 반드시 이것을 뚫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