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화. 사족(邪族)
어느덧 백룡영주는 한 갈래의 백광이 되어 뇌운을 뚫고 뇌하 속으로 들어갔다.
쿵!
그때 경천의 소리가 울리더니 주변이 흔들렸고 뇌광이 솟구치며 뇌운이 점차 사라졌다.
백 리 안에 까맣게 쌓였던 뇌운이 빠르게 사라지며 하늘에 수백 장 정도의 뇌하가 나타났는데 한 마리의 거대한 용처럼 빛을 발하며 울부짖었다.
뇌하는 전부 액체로 되어있었고 무서운 힘을 자랑했다. 이에 맞은 산은 순식간에 잿더미가 되었다.
그는 너무 무서워 곧바로 인뢰대를 닫았다. 그런데 산봉우리에 있어서 그런지 액체 벼락이 쏜살같이 목진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목진은 안색이 어두워졌다. 벼락의 속도가 너무 빨라 차마 피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쿵!
그때 들끓는 흑염이 갑자기 체내에서 흘러나와 거대한 흑염의 날개로 변해 목진의 몸을 감싸 안았다.
액체 벼락이 흑염의 날개를 가격하자 격렬한 파동이 일더니 서서히 사라졌다.
“고마워.”
목진은 이내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구유작이 아니었다면 목진은 액체 벼락 때문에 크게 다쳤을 것이다.
“백룡영주 내 봉인이 곧 해제될 것 같아.”
구유작의 말에 목진이 고개를 들어보니 뇌하에 잠긴 백룡영주가 난폭한 힘의 침식에 서서히 어두워지며 표면에 각인된 용문도 사라지고 있었다.
잠시 후, 용문이 완벽하게 사라지자 순수하고 막강한 영력 파동이 그 속에서 폭발하였다.
구속당했던 백룡영주의 영력이 드디어 자유를 되찾았다.
“봉인 해제야!”
고생 끝에 드디어 백룡영주의 봉인을 뚫었다.
슉.
목진을 보호하던 흑염이 들끓는 새는 바로 뇌하에 뛰어들어 백룡영주를 잡고 빠르게 돌아왔다.
목진은 백룡영주를 꽉 잡았는데 이제야 진정한 보물을 가진 것 같았다.
수중의 따뜻한 백룡영주를 보니, 목진은 기쁜 마음을 감출 길이 없었다. 그는 곧바로 정신을 차리고 벼락이 기승을 부리는 산봉우리에서 서둘러 뛰어내렸다.
백룡영주의 봉인을 푸느라 큰 소란을 피운 탓인지 사람들의 시선이 한곳에 모여들었다. 이를 눈치챈 목진은 더는 이곳에 머물 수 없었다.
그는 액체 벼락을 피해 낮게 날아갔고, 얼마 안 가 뇌운이 가득한 곳을 벗어났다.
무서운 벼락의 파동이 줄어들자 목진은 안도의 한숨을 쉬고는 속도를 끝까지 끌어올려 외진 곳을 찾아 내려앉았다.
그곳은 나지막한 언덕으로 우뚝 솟은 산들 속에 숨겨져 있어 눈에 띄지 않았지만 목진은 조심스럽게 주위를 살피고는 자리를 잡았다.
드디어 봉인이 풀린 백룡영주를 살펴볼 차례였다.
겉모습만 보면 별다른 게 없었는데 표면에 있던 백룡의 무늬가 사라지고 구슬 속 하얀색 안개가 구슬 표면을 맴돌기 시작하자 아주 신비로웠다.
목진은 백룡영주 속 막강한 영력을 느끼고는 이내 정색하며 합장했다. 그러자 어두운 영력이 스며 나와 영주를 감싸 안았다.
그때 백룡영주가 갑자기 눈부신 빛을 뿜어내 목진을 삼켰는데 그는 어느새 전혀 다른 곳에 와 있었다.
산봉우리 대신 목진 앞에 펼쳐진 세상은 온통 하얗게 물들었고 바다까지 하얀색으로 끝이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그 속에는 엄청난 영력이 깃들어있었다.
“이건…….”
이곳은 백룡영주 안이 분명했다. 봉인을 풀지 못했을 때는 목진을 거부하던 영주가 이젠 그를 받아들인 것이다.
목진은 잠시 머뭇거리다 아득한 하얀 세상 속으로 들어갔는데 발이 닿자 하얀색 연기는 금세 사라졌다.
잠시 후, 안개가 사라지고 아름다운 대자연이 눈앞에 펼쳐졌다. 이곳은 상상 이상으로 방대했다.
목진은 하늘 끝에 서서 낯선 세상을 바라보다가 저 멀리서 나타난 피의 기운을 발견했다. 선홍빛 물결이 음산한 기운을 안고 몰려왔는데 무고한 생명을 사정없이 집어삼켰고 이곳에 있던 힘들도 순식간에 오염되었다.
이에 사람들이 애써 막으려 했지만, 선홍빛 물결에는 전혀 상대가 안 되었다. 그러자 절망 가득한 비명이 사방에서 울려 퍼졌고 그곳은 곧 멸망에 이르렀다.
생기 가득했던 세상이 사라지고 있었다.
그 모습에 목진은 소름이 쫙 끼쳤는데 한편으로 이곳에 퍼진 선홍빛 물결의 정체가 궁금해졌다.
그때 그 속에서 빨간 비늘을 뒤집어쓴 그림자가 서서히 걸어 나오더니 악마 같은 모습으로 갑자기 목진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목진이 깜짝 놀라 뒷걸음치는데 눈앞의 장면이 또다시 변했다. 이곳은 멸망 직전의 어딘가였다.
하늘 높이 우뚝 솟은 산봉우리에 여러 갈래의 공간 균열이 나 있었고, 선홍빛 물결은 이 세상을 망치고 나서 균열을 통해 도망쳤다.
그리고 그 앞에는 백발의 낯선 누군가가 서 있었다.
“저건…… 백룡 지존인가?”
눈앞에 펼쳐진 세상은 스스로 시간을 휘감듯 목진의 옆을 스쳐 지났고 다시 정신을 차려보니 주위는 다시 하얀 세상으로 되돌아와 있었다.
그 광경에 큰 충격을 받은 목진은 온몸이 땀으로 흥건해져 쉽게 진정할 수가 없었다. 기괴한 선홍빛 생물은 도대체 뭐란 말인가?
그리고 곧 멸망할 세상에서 도망쳐 나온 그 사람은 설마 백룡 지존인가?
“그래, 내가 바로 그곳에서 도망쳐 나온 유일한 생존자란다.”
갑자기 들려온 목소리에 목진이 고개를 들자 용의 울음소리와 함께 안개가 한데 모여 커다란 백룡을 이루었다.
백룡은 하늘을 날다가 목진 앞에 내려앉았는데 그의 반짝이는 머리에 누군가 앉아있었다. 그는 백발에 소년의 얼굴을 하고 있었고, 동공이 하얀 것이 조금 이상해 보였다.
백룡을 탄 누군가가 목진에게 눈길을 돌렸다.
“네가 백룡영주에 남긴 봉인을 해제했구나.”
그의 담담한 웃음소리가 울려 퍼졌다.
“백룡…… 지존?”
목진은 눈가가 파르르 떨렸다. 그날, 영장 공간에서 본 흐릿했던 사람이 지금은 더없이 또렷하게 보였다.
비록 생은 마감하였지만, 지존의 위압감은 역시 대단했다.
“저 목진이 우연히 백룡영주를 얻어 봉인을 해제했는데 폐를 끼치지는 않았는지 모르겠네요.”
목진이 정중하게 인사를 올렸다.
백룡 지존은 오래전에 사망했지만 영력을 모아 생성한 허상만으로도 손쉽게 그를 죽일 수 있었다.
한편, 백룡 지존은 하얀색 동공을 굴리며 목진을 바라보더니 피식 웃었다.
“내가 남긴 백룡영주를 네가 가졌다는 건 나와 인연이 있다는 말이다.”
목진은 고개를 끄덕이고 잠시 머뭇거리다가 결국 물었다.
“일전에 제가 본 장면은 뭔가요?”
보는 것만으로도 소름 끼친 목진은 사건의 전말이 궁금했다.
“내가 겪었던 일이란다.”
백룡 지존은 담담하게 웃으며 말을 이어갔다.
“광활한 대천세계는 여러 위면의 교집합으로 그에 깃든 위험을 네가 알 방법이 없지.”
목진은 이 같은 일을 직접 겪지는 않았지만 보는 것만으로도 무서웠다.
“혈조는 도대체 뭔가요?”
목진은 그중에서 혈조가 가장 무서웠다.
“이는 역외사족의 한 갈래인데 혈사족이라 부른단다. 방금 네가 본 멸망한 세상이 곧 내 고향인데 사실 난 하위면에서 이곳 대천세계로 도망쳐온 거란다.”
이리 말하며 웃는 백룡 지존의 얼굴에서 처량함이 묻어났다.
“역외사족은…… 또 뭔가요?”
“나도 그들에 대해 아는 바가 거의 없어. 넌 대천세계에서 태어났으니 이들을 마주칠 일이 거의 없다고 봐야지.”
백룡 지존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말했다.
“그런데 이는 하위면 사람한테 가장 무서운 존재야. 이들이 가능성을 본 하위면에는 네가 봤던 그 장면이 재연되어 멸망하는 거란다. 믿기 어렵겠지만 사실이란다…… 혹시 무조라고 들어봤느냐?”
백룡 지존이 목진을 바라보며 물었다.
“무조 임동(林動)이요?”
목진은 흠칫 놀랐다.
이에 백룡 지존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무조도 하위면에서 왔고 그의 고향 또한 역외 사족의 공격을 당했다. 다만 무조는 그들을 물리치고 사족의 한 갈래 황족마저 죽였단다. 사족의 한 갈래일 뿐이었지만 하위면을 위협하는 치명적인 힘을 가진 그들을 하위면 출신인 무조가 죽이다니, 너무 근사하지 않느냐? 우리에 비하면 그는 정말 대단한 존재인 것 같구나.”
목진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대천세계는 하위면에 비해 엄청나게 강했고 이곳 실력자들도 하위면보다 강했는데 무조는 하위면의 제한된 조건에서도 그렇게까지 성장했다니, 역시 대천세계에서 무경을 만든 사람다웠다.
“오랜만에 입을 열었더니 말이 길어졌구나.”
백룡 지존은 씨익 웃더니 정신을 차리고 목진을 바라봤다.
“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이니 백룡영주를 얻어 봉인까지 해제한 너에게 도움을 주마.”
말을 마친 백룡 지존이 옷깃을 휘젓자 갑자기 안개가 몰려왔다. 그 속에는 순수하기 그지없는 막강한 영기가 깃들어있었다.
백룡 지존이 담담하게 웃으며 손을 튕기자 파도와 폭풍이 일며 순수한 영력이 목진의 몸에 미친 듯이 스며들었다.
“내가 남긴 힘을 능력껏 가져가거라.”
백룡영주에서 강력한 영력이 계속 뿜어져 나와 체내에 주입되자 목진은 순간 몸이 부풀어 오르는 것 같았다.
백룡영주의 영력이 엄청났다.
“흡수가 전혀 안 돼.”
목진이 곧바로 움직여 가장 가까운 인뢰대에 내려앉아 이를 가동하자 뇌운이 다시금 몰려왔는데 결이 전보다 훨씬 부드러웠다.
그러나 뇌역 7단계의 벼락의 힘은 매우 웅장해 화천경 초기라도 감당하기 어려웠다. 목진도 혼자 힘만으로는 절대 이곳에 들어올 수 없었을 것이다.
먹구름이 몰려와 뇌우가 떨어졌는데 목진의 몸에 빨간 자국이 나며 벼락의 힘과 백룡영주의 영력이 부딪쳤다.
영력을 정련하는 효과가 있는 벼락의 힘에 백룡영주의 영력은 순간 줄어들었고 그 색은 점차 깊어져 실체가 있는 물건처럼 보였다.
벼락의 힘을 빌린 목진은 간신히 숨을 돌리고 대부도결을 소환하였다. 그는 계속 정련한 영력을 기해에 넣어 그 속에 자리 잡은 신백에게 넘겼다.
이에 신백의 수련 속도가 수십 배나 빨라졌고 순수한 백룡영주의 영력이 목진을 배척하지 않은 덕분에 더욱 수월했다.
이렇게 기해 속 자그마한 신백이 빛을 발하며 영력을 삼키자 몸체가 점차 커졌고 발산하는 영력 파동도 강력해졌다.
그러다 백룡영주가 목진을 빛으로 감싸 안았는데 먹구름이 계속 쌓이며 목진을 향해 뇌우를 퍼부었고 벼락의 힘도 계속해서 몸을 때려 백룡영주의 영력을 정련하였다.
목진은 두 눈을 꼭 감고 대부도결을 소환하였고, 그는 최선을 다해 백룡영주의 힘을 받아들이기만 하면 되었다.
다만 실력이 폭등한다고 다 좋은 것은 아니었으니 이를 넘어서면 기초마저 무너질 수 있었다. 이는 절대 좋은 일이 아니었다.
다행히 목진은 아직 그 한계치에 도달하지는 않았다.
그 후로 닷새가 지났는데 광활한 뇌역 7단계에 들어올 수 있는 사람은 극히 적은 데다 목진이 머문 곳이 외져 수련을 방해하러 오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목진의 체내에서 발산하는 영력 파동은 놀라울 정도였다.
쏴아!
발가벗은 산봉우리의 인뢰대에 메마른 소년이 앉아 벼락의 힘이 깃든 뇌우를 계속 맞았다.
그의 옷은 어느새 사라졌고 벼락의 힘에 피부에는 은은하게 은광이 일었으며 백룡영주가 두 손 사이에서 회전하며 순수한 영력을 계속해서 목진에게 주입해 주었다.
한참 후에 목진이 갑자기 눈을 뜨자 뇌광이 깃든 검은색 동공에서 벼락같은 빛을 쏘며 막강한 영력 파동이 일어나 인뢰대 주변에 있는 암석이 전부 부서졌다.
뇌우마저 목진의 주위에서 반 장 정도 물러났다가 금세 다시 몰려왔다.
목진은 뇌광이 깃든 하얀색 기를 길게 내뿜고는 기해 속 변화를 관찰하였다.
두 배로 커진 신백 주위에서 영력의 빛이 부단히 빛을 발했고 그 속에서 막강한 영력 파동이 일었는데 이는 융천경 후기를 훨씬 넘었다.
목진은 어느덧 준 화천경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