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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주재-192화 (191/1,000)

192화. 용등술

융천경 후기를 뛰어넘고 바로 준 화천경이 된 목진은 만족하듯 미소를 지었다.

“준 화천경이라…….”

목진이 주먹을 꽉 쥐자 어두운 영력이 미친 듯이 흘러나와 검은색 연기처럼 하늘 높이 올라갔고 뇌우에도 끄떡없었다.

목진은 전보다 훨씬 강력해졌다.

수중의 백룡영주를 쳐다보자 전보다 더 어두워졌고, 그윽했던 하얀색 연기도 전처럼 밝지 않았다. 그러나 아직 영력이 남아있었는데 이는 목진이 일부러 남긴 것이었다.

이를 전부 흡수하면 분명 화천경에 이를 수 있지만 어렵게 다진 기초가 무너질 우려가 있었다. 작은 것에 눈이 멀어 큰 것을 포기할 수는 없었다.

목진은 다시 백룡영주 속 하얀 세상으로 들어갔다. 그러나 백룡 지존도 전처럼 또렷하지는 않았다.

“어려운 선택을 하였구나.”

백룡 지존이 미소를 지으며 하는 말에 목진은 어리둥절하였다.

누구나 이런 기회가 주어진다면 화천경에 이를 때까지 영력을 흡수할 텐데 자신은 그러지 않았으니 질타를 받을 거라고 여겼다.

“내가 남긴 영력이 의식은 없지만 누군가의 체내에 스며들면 쉽게 흡수할 수 있는 대신 스스로 수련한 영력과 일정한 차이가 있단다.”

백룡 지존은 담담하게 웃으며 말을 이어갔다.

“그 차이는 너무 미세하여 무시할 수 있을 정도지만 수련이란 정말 까다로워 그 미세한 차이가 언젠가 엄청난 후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 하여 실력이 폭등하는 엄청난 유혹을 이겨냈으니 어려운 결정을 했다고 한 것이다.”

백룡 지존은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목진을 바라봤다. 그는 목진의 결정이 절대 쉽지 않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이에 목진은 괜히 부끄러워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과찬이세요. 스스로 수련한 것이야말로 가장 안전하고 완벽한 것이죠. 이만큼 실력이 늘어난 것만으로도 충분해요. 더 욕심내면 몸이 받아들이지 못할 것 같아요.”

여태껏 수련에 게을리하지 않아 기초만은 누구보다 단단한 목진은 한순간의 유혹으로 이를 망치고 싶지 않았다. 지존은 비록 막강한 존재이나 언젠가 자신도 이 경지에 도달할 뿐만 아니라 반드시 이를 뛰어넘으리라 믿었다.

“내 의식이 남아있을 날도 얼마 남지 않았구나. 백룡영주에 남은 힘은 남겨뒀다가 사용하거라. 앞으로 강적을 만나면 백룡영주를 부수거라. 그러면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아마 통천경을 만나도 무사히 빠져나올 수 있을 것이다.”

백룡 지존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목진을 바라보더니 백룡을 쓰다듬으며 흐뭇하게 말했다.

“고마워요, 선배.”

목진의 말에 백룡 지존은 이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이건 네가 다른 이들과 달라서 하는 말인데 내 의식은 백룡영주의 영력으로 유지된단다. 네가 영력을 전부 흡수하였다면 지금 내가 하는 말과 남겨진 물건과도 인연이 없었을 것이다.”

백룡지존이 백룡을 툭툭 건드리자 놈은 빠르게 작아지더니 용린으로 만든 족자로 변하였고 그 위에는 상고의 글이 각인되었다.

용이 날아가는 것 같은 상고의 문자가 목진의 눈에 들어왔다.

“용등술(龍騰術), 용등술이라…….”

족자에 적힌 글을 본 목진은 구미가 당겼다. 용등술이 뭔지는 몰라도 지존이 선보인 물건인데 평범할 리 없었다.

“용등술은 내가 그해 우연히 얻은 물건인데 내가 조금 보완했다. 아직 완벽하지는 않지만 그 위력은 절대 무시할 수 없단다.”

백룡 지존은 담담하게 웃으며 용의 비늘로 만든 것 같은 족자를 쓰다듬다가 목진에게 넘겼다.

“완전한 게 아니라 등급을 정하진 않았지만 난 그해, 용등술로 3대 지존 강자와의 싸움에서 무사히 빠져나올 수 있었다.”

목진은 화들짝 놀랐다. 3대 지존급 강자와의 싸움이 상상이 가진 않았지만 분명 엄청날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백룡 지존이 무사히 빠져나왔다는 것은 정말 대단한 일이었다.

“용등술은 신법 관련 신결이라 너한테 막강한 공격력을 부여할 수는 없지만 어떤 상황에서든 무사히 빠져나오게 할 수는 있단다.”

목진은 화색이 되어 고개를 끄덕였다. 목진은 백룡지구에서 회색 도포의 노인과 싸울 때, 사신성숙경을 선보였는데 교묘한 노인의 신법에 낭패를 볼 뻔했었다.

그런데 용등술이 신법 신결이라니, 이보다 더 좋을 순 없었다.

그때 백룡지존이 자리에서 일어나 말했다.

“용등술은 너무 심오하여 깨우치기 어려우니 의식이 소멸하기 전에 조금이나마 도와주마. 용등술을 부릴 테니 잘 보거라.”

백룡 지존은 이리 말하더니 갑자기 하늘 높이 날아올랐다. 기이한 걸음은 종잡을 수가 없었다.

목진은 용의 울음소리를 내며 걷는 백룡 지존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백룡 지존은 어느샌가 거대한 용으로 변하여 공간을 누비며 엄청난 속도로 날아갔고 용 울음소리가 울려 퍼지고 백광이 반짝이더니 백룡 지존이 다시 눈앞에 나타났다. 그는 이전보다 많이 흐려져 있었다.

한편, 목진은 용등술을 오래도록 되뇌다 드디어 정신을 차리고 초점을 잃었던 눈동자도 생기를 되찾았다.

“고맙습니다, 선배.”

목진은 곧 사라질 백룡 지존에게 감사 인사를 전하였다. 백룡 지존의 시연이 없었다면 아무리 천부적 재능이 뛰어난 사람이라도 용등술을 수련하는 데 애를 먹었을 것이다.

“마음에 드는 사람을 어렵게 만났는데 내가 해줄 수 있는 최선을 다해야하지 않겠느냐?”

백룡 지존은 담담하게 웃으며 말했다.

“선배의 은혜를 절대 잊지 않을게요. 뭐라도 해드리고 싶으니 말씀만 하세요.”

목진은 정중하게 인사를 올렸다. 비록 죽은 뒤 백룡영주의 영력을 빌려 겨우 연명하는 의식이었지만 목진은 이토록 막중한 은혜를 받고도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다.

목진의 말에 백룡 지존도 흠칫하더니 이내 중얼거렸다.

“내 소원은 고향에 돌아가는 것뿐이란다.”

그의 망연한 눈빛은 점차 또렷해져 목진을 쏘아보며 한참 침묵을 지켰다.

“정말 날 도울 것이냐?”

다시 입을 연 백룡 지존의 말에 목진은 한시의 망설임도 없이 답했다.

“최선을 다하여 도울게요.”

“그래, 좋구나.”

백룡 지존은 호탕하게 웃으며 말을 이어갔다.

“내가 죽은 뒤에 이렇게 훌륭한 소년을 만나다니, 목진이라고 했더냐?”

“네.”

“그래, 목진아, 내 소원을 들어주면 너에게 막강한 능력을 주마. 대신 네가 그것을 하든 말든 전부 너한테 달렸으니 너무 부담 갖지는 말아라.”

백룡 지존은 씨익 웃으며 주먹을 쥐었는데 한 갈래의 백룡 광문이 형태를 이루어 쏜살같이 목진의 체내로 들어갔다.

그러나 목진은 전혀 놀라지 않고 어리둥절하여 백룡 지존을 바라봤다.

“내 소원은 고향을 침범한 역외 혈사족을 쫓아내는 것이다.”

백룡 지존은 목진을 쏘아보며 말했다.

“이것만 해내면 내가 줄 보상은 너를 절대 강자로 만들어줄 것이다.”

목진은 눈이 휘둥그레졌다. 무려 한 위면을 멸망에 이르게 한 종족을 죽이라니, 이는 지존이 되어도 불가능할 것 같았다.

염제나 무조 등과 같은 거장이 되지 않는 이상 위면을 토벌하기란 불가능했다.

“왜, 자신 없느냐?”

백룡 지존의 질문에 목진은 안색이 어두워져 고개를 끄덕였다.

“선배의 은혜를 갚아야 마땅한데 지금의 저는 결코 해낼 수 없는 일이에요. 대신 언젠가 능력이 되면 꼭 혈사족을 선배의 고향에서 내쫓을게요.”

“그래!”

차분하던 백룡 지존은 마음에 파동이 일었다. 오늘 자신이 만난 사람이 대성할지는 모르지만 일말의 희망이라도 있어 뿌듯하였다.

“네 체내에 남긴 백룡광문은 어느 정도 실력이 되면 내 고향의 위치를 알려줄 것이다. 그리고 내 소원이 이뤄지면 네가 받게 될 보상도 자연스레 알게 될 것이니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백룡 지존은 어느덧 진정하고 목진을 바라보며 말을 이어갔다.

“이루지 못해도 괜찮으니 자신을 너무 괴롭히지는 말거라. 어려운 일이라는 걸 나도 충분히 안다.”

“네, 선배.”

목진은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정말 능력이 되면 반드시 백룡 지존의 고향에 가서 살육과 파괴밖에 모르는 역외 혈사족을 내쫓고 위면에 생기를 불어넣어 주리라 다짐했다.

“언젠가 그날이 왔으면 좋겠구나…….”

백룡 지존은 미소를 지으며 서서히 눈을 감더니 점차 사라졌다. 이에 목진은 곧바로 백룡영주에서 빠져나왔다.

서서히 눈을 뜬 목진은 잔뜩 어두워진 백룡영주를 보며 진지하게 말했다.

“걱정하지 마세요, 선배. 난 언젠가 선배의 고향에 가서 녀석들을 물리칠게요.”

이때, 백룡영주는 목진의 말을 듣기라도 한 것처럼 미세하게 반짝였다.

목진은 백룡영주를 한번 쓰다듬고는 주머니에 넣고 일어섰는데 온몸에서 눈부신 빛이 뿜어져 나오며 뼈 마디마디에서 경쾌한 소리가 났다.

목진은 체내의 힘이 치솟는 것 같았다.

“엄청난 힘이네.”

목진은 주먹을 꽉 쥐고 체내에서 용솟음치는 힘을 느끼고는 피식 웃었다. 그는 보름 전과 완전히 다른 모습이었다.

이제 화천경 초기의 고수는 물론이고 화천경 중기까지도 충분히 맞설 수 있었다. 이제 화천경 중기가 더는 두렵지 않았다.

“지금 당장 이현통과 대결하면 어떨까?”

목진은 결과가 자못 궁금했다. 그날엔 온갖 수법을 써가면서도 겨우 상대방의 공격을 받아냈지만 더는 그렇지 않을 거라 자신했다.

그는 이번 뇌역행에서 엄청난 수확을 얻었다.

“7단계의 벼락의 힘으로 뇌영주를 만들기에 너무 느린 것 같은데 우리 앞으로 더 나아가자꾸나. 뇌영주가 더 필요하단다.”

구유작이 갑자기 입을 열었다.

“얼마나 제련했는데?”

목진이 수련할 때, 구유작도 한시도 쉬지 않았다.

“2천 개밖에 안 돼.”

구유작이 언짢아 답했다.

2천 개면 40만 영치였다. 절대 느리지 않은 속도였지만 250만 영치를 모으기에는 아직 부족했다.

“그럼 다음 단계로 가보자.”

목진은 7단계를 유심히 바라보며 말했다. 실력이 폭등했으니 뇌역 7단계는 더 이상 그에게 도움이 되지 않았고, 나머지 3단계가 어떤 곳인지도 알고 싶어졌다.

목진은 씨익 웃더니 용 울음소리와 함께 나아갔는데 곧바로 수천 장 밖에 나타났다. 목진은 전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속도가 빨라졌다.

비록 용등술을 완벽하게 터득하지는 못했지만 한번 본 것만으로도 전보다 신법과 속도가 훨씬 좋아졌다.

어느새 목진은 하늘 저편으로 사라졌다.

드넓은 뇌역 7단계에서 용의 울음소리와 함께 한 줄기의 빛이 놀라운 속도로 지나갔다.

이를 발견한 이들은 눈 깜짝할 사이에 이미 하늘 저편에 나타난 빛줄기에 눈이 휘둥그레졌다.

목진은 상상했던 것보다 더 훌륭한 용등술에 화색이 되었다. 그가 전력을 다하여 달릴 때보다도 훨씬 빨랐다.

용등술이 있는 한, 앞으로 누굴 만나든 살아남을 수 있었다.

이렇게 1각도 안 되는 사이에 목진은 뇌역 7단계의 가장 깊은 곳에 도착했다.

8단계를 통하는 문은 벼락의 광막이 아니라 거대한 벼락 하천이었는데 수막을 만들어 7단계와 8단계를 갈라놓았다.

“이것이 바로 8단계의 보호막이란 말인가?”

목진은 눈 앞에 펼쳐진 광경을 보고 중얼거리며 주위를 쓰윽 훑었는데 백 리 안에서 강력한 영력 파동이 느껴졌다. 바로 주위에서 수련하는 학생들의 것이었다.

이들도 목진을 발견했지만 몰래 숨어 관찰만 하였다. 이곳에 올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실력이 뛰어난 것이기에 충돌이 생기면 수습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러나 목진은 이들은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오로지 뇌하 수막에 집중하였다.

뇌하를 뚫고 지나려면 그 속에 깃든 무서운 벼락의 힘을 견뎌야 하는데 이는 화천경 중기라도 어려워 정면 돌파는 거의 불가능했다. 목진은 뇌하를 한참 쳐다보다가 드디어 무언가를 발견했다.

계속해서 쏟아지는 뇌하에서 잠시나마 생긴 빈틈을 노리면 수막을 지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신 너무 짧은 순간이라 엄청난 속도가 필요했다. 만약 뇌역에 들기 전이라면 이를 지날 엄두조차 내지 못했겠지만, 용등술을 익힌 지금은 시도는 해볼 정도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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