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주재-193화 (192/1,000)

193화. 대머리 노인

결정을 내린 목진은 바로 움직여 용이 솟아오르듯 수막으로 향했다.

그는 사람들의 잔뜩 놀란 표정 속에서 전력을 다해 용등술을 선보였다.

목진은 빠른 속도로 나아갔지만 뇌하의 난폭하고 무거운 힘에 맞아 피를 토하며 튕겨 나갔다. 뇌하가 쏟아지는 순간 빈틈을 노리는 것은 절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역시 대단해.”

백룡영주의 힘을 얻기 전이라면 목진은 이미 중상을 입었을 것이다.

한편, 몰래 목진을 바라보던 사람들도 이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고, 목진을 수막을 뚫으려는 무모한 사람으로 여겨 곧 포기할 거라 여겼다.

현재 북창령원에서 8단계에 진입할 수 있는 사람은 심창생과 이현통 둘 뿐이었고, 나머지 사람들도 시도해봤지만 성공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하여 목진의 속도에 놀라긴 했어도 아직 자격 미달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를 알 리가 없는 목진은 계속해서 쏟아져 내리는 뇌하 수막을 뚫어져라 쳐다보고는 숨을 고르며 마음을 안정시켰다.

어느덧 차분해진 목진은 외부를 차단하고 뇌하수막에만 집중했다.

그러다 다시 빛을 발하고는 백룡 지존이 선보였던 용등술을 되새기며 뇌하 수막 앞에 반 각이나 서 있었다.

이에 다들 어리둥절하였고 목진이 대체 뭘 하려는지 궁금했다.

그때 목진이 서서히 눈을 감자 주위에 빛이 모여들었고 용의 울음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는 어느새 잔영만 남긴 채 앞으로 나아갔다.

그는 이번에도 뇌하에 맞았지만 더는 튕겨 나가지 않았고 서서히 사람들 눈앞에서 사라졌다.

“녀석이 뇌하 수막을 뚫었어!”

인뢰대에 앉아있던 누군가가 벌떡 일어나 외쳤다.

사람들은 조금씩 사라지는 잔영을 바라보며 아무도 튕겨 나오지 않는 것을 확인하자 눈이 휘둥그레졌다.

“도대체 누구기에 뇌하 수막을 뚫었을까?”

북창령원에 8단계에 진입한 사람이 생겼단 사실에 다들 경악을 금치 못했다.

* * *

이와 동시에 북창령원의 뇌역 밖도 떠들썩해졌다.

방대한 석대에 있는 뇌역비에서 갑자기 눈부신 빛이 뿜어져 나오자 사람들의 눈길이 한곳으로 모였다. 이는 뇌역에 중대한 변화가 생겼을 때만 일어나는 현상이었다.

석비에 눈부신 은광이 미친 듯이 솟아오르더니 소훤, 학요 등을 제치고 누군가의 이름이 3위에 멈춰 섰다.

“목진, 뇌역 8단계!”

사람들은 순간 들끓었다.

“목진이라니!”

“그 신생 말이야? 학요도 뚫지 못한 뇌역 8단계를 목진이 어떻게 뚫었을까?”

“뇌역비는 절대 거짓을 고하지 않아. 녀석이 8단계에 진입한 것이 확실해!”

“도대체 어떻게 해낸 걸까?”

목진은 이현통과는 공격을 3번 받아냈을 뿐이었고 요문에 찾아갔을 때는 학요가 실력을 숨긴 것도 있었지만 미리 영진을 그려 다들 그의 진정한 실력을 몰랐다.

사람들은 뇌역비를 보고 나서야 비로소 북창령원의 유명인사 목진의 실력을 가늠했다. 이는 비록 천방보다는 못 했지만 목진의 실력을 증명하는 데는 충분했다.

자연스레 8단계에 진입한 목진의 실력이 학요 등을 초월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뇌역비의 변동은 어느새 북창령원에 쫙 퍼져나갔고, 대부분 믿기지 않은 듯 재차 소식의 사실 여부를 확인했다.

한편, 아직 본부를 수리 중인 요문에서 학요가 가장 윗자리에 앉아 무덤덤하게 이 소식을 들었다.

“목진이 뇌역 8단계에 진입했다니!”

옆에 있던 진후가 믿기지 않은 듯 외쳤다.

그러나 학요는 아무렇지 않게 찻잔을 서서히 내리며 말했다.

“뇌역 8단계에 들어가는 것이 쉽지는 않으나 머리를 조금만 굴리면 불가능할 것도 없어.”

“네.”

진후가 이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형님도 실력을 숨기지만 않았으면 8단계를 뚫고도 남았어요.”

이에 학요는 담담하게 웃더니 한기 어린 눈빛으로 앞을 바라봤다.

“걱정하지 마. 수렵전에서 내가 반드시 목진의 코를 납작하게 만들 거야.”

* * *

북창령원의 한 산봉우리에서 이현통이 소식이 적힌 종이를 보더니 이내 정색하며 종이를 태웠다.

목진이 비록 전보다 실력이 좋아졌지만 수렵전에서 다시 만나면 전처럼 봐주지 않을 거라고 다짐했다.

용의 울음소리가 들리더니 뇌하 수막 저편에 목진이 귀신같이 나타났다.

어느덧 주위를 맴돌던 빛이 사라지자 목진은 숨을 길게 내뱉었다. 뇌하 수막의 충격은 역시 대단했다.

북령원에 있을 때, 막사의 도움으로 목진은 이와 비슷한 수련을 했었지만, 그에 비해 수천 배는 무서운 뇌하 수막이라 용등술이 없었으면 어떻게 됐을지 모르는 일이었다.

“심창생과 이현통은 어떤 방법으로 뇌하 수막을 뚫었을까, 정면 승부를 봤을까?”

목진은 중얼거리며 생각했다.

그가 잔꾀를 부려 8단계에 진입했다고 볼 수도 있지만 속도도 실력의 하나로 절대 무시할 수 없었다.

목진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뇌역 8단계를 둘러봤다. 이곳은 예상외로 밝았고 하늘에 먹구름 하나 없이 맑고 깨끗한 것이 공간 전체가 평화로웠다.

목진은 조금 당황했다.

“이곳에는 왜 뇌운이 없지?”

그는 인상을 찌푸리며 주위를 둘러봤는데 강력한 벼락의 힘은 어디에도 없었다.

“왼쪽으로 백 리 정도 가보거라.”

목진보다 감각이 예민한 구유작이 갑자기 입을 열었다. 이에 목진이 고개를 끄덕이며 왼쪽으로 향했다. 몇 분 지나지 않아 그의 눈앞에 엄청난 광경이 펼쳐져 목진은 눈이 휘둥그레졌다.

드넓은 평원에 수백 장 정도의 방대한 하천이 흐르고 있었는데 이는 은색을 띤 뇌강이었다.

뇌강은 바닥과 일정한 거리를 두고 허공에 뜬 채 서서히 흘렀는데, 거대한 은룡이 움직이는 것 같았다.

목진은 순간 소름이 끼쳤다. 벼락의 힘이 모여 강을 이루었다니, 8단계가 이렇게나 무서운 곳일 줄은 몰랐다.

그는 십수 일 동안 뇌운을 모아서야 겨우 자그마한 하천을 이뤘는데 이곳에 비하면 새 발의 피였다. 더구나 이런 강은 한 갈래가 아니었다.

“역시 뇌역 8단계는 대단해.”

목진은 감탄하며 8단계에 들어오는 조건이 까다로운 건 다 이유가 있다고 생각했다. 만약 실력이 부족하면 들어와도 수련에 크게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

“지금부터 천뇌주를 만들자.”

목진은 구유작에게 말을 건넸다. 그의 실력으로는 너무 오래 걸리기 때문에 이는 구유작에게 전적으로 맡기는 편이 좋다.

“내가 나설 때가 되었구나.”

구유작은 말이 끝나기 무섭게 날개에 흑염이 타오르는 작은 새로 변하여 흑염을 분출해 뇌강에 거대한 흑염 돌풍을 일으켰다.

평온하던 뇌강에 폭동이 일어나 나지막한 천둥소리와 함께 난폭한 벼락의 힘이 미친 듯이 흑염 폭풍을 향해 돌진했다.

이에 흑염은 놀라운 수법으로 벼락의 힘을 빠르게 응결시켜 순수한 벼락의 힘이 깃든 천뇌주를 만들었다.

목진은 눈 앞에 펼쳐진 장관에 혀를 끌끌 차다가 옆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구유작이 천뇌주를 만들려면 시간이 걸릴 것이다. 다행히 8단계에 들어오는 사람이 몇 없어 목진은 한시름 놓고 수련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때, 목진은 뇌역의 가장 깊숙한 곳에서 이상 현상을 감지하였다.

유달리 어두운 공간에 커다란 검은색 태양이 걸려 있었고, 수많은 검은색 암장은 용이 춤을 추듯 쏟아져 내렸다.

그리고 그 아래에서 무언가 서서히 눈을 떴는데 검은색 암장은 커다란 눈에 스며들었다.

“이건 설마…… 구유화인가? 구유작이 왜 이곳에…….”

누군가의 말소리도 함께 들려왔다.

* * *

목진은 뇌하의 엄청난 움직임을 주의 깊게 바라보며 기지개를 켰다. 구유작이 천뇌주를 만든 지도 벌써 2각이 지났지만 아직도 턱없이 부족했다.

“구유작이 나서도 200만 개의 천뇌주를 만드는 데는 며칠 걸리겠구나.”

목진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눈을 감았는데, 이상을 느끼고 뒤돌아보니 멀지 않은 곳의 거대한 암석 위에 누군가 서 있었다.

‘누구지?’

목진이 화들짝 놀라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보니 그곳에는 후줄근한 검은색 옷차림의 대머리 노인이 앉아있었다. 침침한 눈에 잔뜩 야윈 노인은 곧 죽을 것 같이 안쓰러워 보였는데 지팡이에 기대어 목진을 노려보고 있었다.

목진은 아찔한 기분을 느꼈다. 노인이 그곳에 있은 지 꽤 오래된 것 같은데 여태껏 발견하지 못한 것이다.

구유작도 왠지 불안해 황급히 흑염을 거두자 은색 흐름이 구유작을 향해 날아왔다. 이것은 천뇌주로 구유작이 여태껏 힘들게 만든 것이었다.

그런데 그때 대머리 노인이 손을 쓰윽 휘두르자 천뇌주가 구유작의 손에서 벗어나 노인에게로 갔다. 목진과 구유작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기괴한 노인을 보고 불안해진 구유작은 차마 손을 쓰지 못했다.

“조심해, 저 노인이 심상치 않아.”

구유작이 진지하게 말했다.

노인은 아무렇게나 손을 휘두르는 데도 위압감이 엄청났다. 목진은 심상치 않음을 느끼고 씁쓸하게 웃었다.

“저기요…….”

목진은 아무렇지 않은 척 다가가 인사를 올렸다.

“자신을 갈고닦으라고 만든 뇌역인데 구유작의 힘을 빌려 천뇌주를 만들다니, 이건 반칙이다.”

대머리 노인이 고개를 들며 하는 말에 목진은 부끄러워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이는 목진도 인정하는 바였다.

이에 검은색의 작은새로 변해 목진의 어깨에 내려앉은 구유작은 몸에 흑염을 휘감고 수틀리면 바로 목진을 데리고 도망갈 준비를 하였다.

“구유작 일족 중 나이를 먹은 녀석이면 몰라도 갓 성년이 된 어린 녀석이 내 앞에서 잔꾀를 부리려 하다니.”

자신을 노려보며 씨익 웃는 대머리 노인의 말에 구유작은 순간 정색하였다.

“그런데 구유작이 어찌 이렇게 나약한 인간과 혈맥을 맺었을까? 족 내에서 알기라도 하면 넌 큰코다치겠구나.”

노인은 구유작과 목진을 번갈아 바라보다가 힘없이 말을 내뱉었는데 그 내용에 두 사람은 소름이 끼쳤다.

한눈에 목진과 구유작의 관계를 알아챈 노인의 눈썰미가 엄청났다. 이에 목진은 씁쓸하게 웃으며 말했다.

“선배, 이번 일은 우리 잘못이에요. 더는 천뇌주를 만들지 않고 이곳을 떠날게요.”

노인은 북창령원의 고층으로 추정되어 적어도 생명의 위협은 없을 것 같았다. 하여 목진은 노인이 반대하지 않으면 바로 떠나려고 천천히 뒤로 물러났다.

“보아하니 구유작이 진화에 실패한 것 같은데 북명룡곤의 정혈로 신수가 되려는 것이냐? 이곳에서 전력을 다하여 천뇌주를 만드는 것도 영치로 바꿔 팔려는 속셈이지?”

노인의 말에 목진은 그저 웃음밖에 나오지 않았다.

“천뇌주를 더 얻고 싶으냐?”

대머리 노인이 씨익 웃으며 물었다.

“어린 녀석이 성실하구나.”

목진이 고개를 끄덕이자 노인은 지팡이를 무릎에 내려놓고 혼탁한 눈으로 흥미진진하여 목진을 바라보았다.

“네가 내 분신의 공격을 한 번이라도 받아내면 방금 빼앗았던 천뇌주를 돌려주고 보상까지 주겠다. 여태껏 성공한 학생은 둘 뿐이었단다.”

“둘이요?”

목진은 흠칫 놀라 물었다.

“혹시 심창생과 이현통인가요?”

노인은 고개를 끄덕이며 웃었다.

“두 녀석은 천부적 재능이 남다르더구나. 그런데 난 준 화천경의 실력으로 8단계에 온 네가 더 놀랍단다.”

목진은 잠시 생각하더니 이내 결심했다. 심창생과 이현통도 해냈는데 자기라고 못 할 리 없었다.

“좋아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