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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주재-197화 (196/1,000)

197화. 비등

목진이 그곳을 떠난지 반 시진 정도 되었을 때, 근처의 무너진 산에 가볍게 바람이 일며 지팡이를 쥔 대머리 노인이 나타났다. 그는 혼탁한 눈으로 멀어져가는 목진을 바라보며 놀라운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구유작한테 저토록 짙은 불사조의 혈맥이 있었다니! 구유작 족에 엄청난 천재가 태어났구나. 이러다 원고의 불사조로 진화할 수도 있겠어. 그런데 어쩌다 인간 아이와 혈맥을 연결하였을까? 언젠가 치명적인 약점이 될 텐데…… 이를 구유작 족의 노인네가 알면 미처 팔짝 뛰겠는걸.”

대머리 노인은 호탕하게 웃더니 몸이 점차 흐릿해져 어느새 사라졌다. 그 후, 또 반 시진 정도 지나자 공간에 파동이 일더니 백발 머리의 사람들이 여러 명 나타났다.

이들 주위에 강대한 영력 파동은 일지 않았지만, 그 압박감만은 대단했다.

촉천 장로도 그중에 있었는데 그 또한 잔뜩 정색하며 파괴된 대지를 바라봤다. 그 속에는 무서운 신뇌의 힘이 조금 남아있었다.

“이건 흑신 뇌겁이네.”

그중 한 장로가 진지하게 말했다.

“영수가 이곳에서 흑신 뇌겁을 넘다니!”

흑신 뇌겁 이 네 글자에 장로들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그들도 이 겁난을 넘으면 영수가 신수로 거듭나 지존급 존재가 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신수는 북창대륙에서도 제일가는 존재인데 이곳 북창령원 외곽에 나타날 줄은 꿈에도 몰랐다. 또한, 이들은 이토록 놀라운 존재를 여태껏 눈치채지 못한 것에 또 한 번 놀랐다.

촉천 장로는 움푹 파인 대지를 바라보며 한숨을 쉬었다.

“아쉽구나.”

그들은 구유작이 겁난을 넘는 것을 직접 보지는 못했지만 이곳에 일어난 놀라운 대결이 어느 정도 상상이 갔다. 영수는 인간보다 수련에 걸리는 시간이 훨씬 길어 흑신 뇌겁에 맞설 만큼 수련하는 것 자체가 어려웠다.

“영수가 뇌겁을 넘지 못하고 죽었을 수도 있지만, 이 일은 일단 원장한테 알려야겠네.”

촉천 장로가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용마궁이 요즘 들어 북창대륙에서 활동이 빈번해졌다고 들었네. 북창령원을 없애고 싶어 안달 난 이들을 대비해서 신중해져 나쁠 건 없네.”

이에 기타 장로들도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이들에게도 용마궁이란 이름이 주는 위압감이 엄청났다. 하마터면 북창대륙을 통일할뻔 했던 이 조직에 주변 대륙의 세력들도 무서워 꼼짝하지 못했다.

그해, 용마궁 내부에 문제가 생기지 않고 북창령원에 북명룡곤이 없었다면 일이 어떻게 됐을지 알 수 없었다.

“이만 돌아갑시다.”

장로들이 떠나고 이곳은 그제야 안정을 되찾았다. 상처투성이인 대지만이 이곳에 일어났던 일을 말해주고 있을 뿐이었다.

* * *

목진은 곧바로 북창령원 신생 구역으로 돌아갔다. 안색이 창백해진 목진은 뇌신체 때문에 목숨은 건졌지만 중상을 입어 휴식을 취해야 했다.

또 수렵전까지 사흘밖에 안 남아 그 전에 몸 상태를 최상으로 되돌려야 했다.

집에 돌아온 목진은 검은색 치마를 입은 절세의 미녀가 방긋 웃으며 자신을 반기자 화색이 되어 다가가 그녀를 한아름에 안았다.

목진의 품에 쏙 안겨 미소를 지으며 킁킁대던 낙리는 이내 정색하였다. 목진의 몸에서 나는 이 은은한 향기는 분명 여인의 향기였다.

이를 눈치챈 목진은 왠지 불길한 느낌이 들었다.

“누구야?”

낙리의 얼굴에 살벌한 기운이 감돌았다. 부드러운 목소리였지만 목진은 낙리의 말에 소름이 쫙 끼쳤다. 역시 여인의 육감이란 무섭다.

목진은 입을 삐쭉 내민 채 자신을 바라보는 낙리를 흐뭇하게 바라봤다. 그녀가 질투하는 모습을 보자 목진은 너무 기뻤다.

“얼른 말해!”

목진의 생각을 읽은 낙리는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라 화난 척 목진을 노려봤다.

이에 목진은 가녀린 소녀의 허리를 꼭 끌어안고 사실을 알려주었다.

“구유작이라니?”

구유작이 흑신 뇌겁을 넘었다는 말에 낙리는 흠칫 놀랐다.

낙신족 출신인 낙리도 강대한 영수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영수 종족 중에서도 상위에 속하는 구유작이 목진의 몸속에 들어있을 줄은 몰랐다.

“네가 정말 흑신 신뇌를 받아?”

낙리는 눈이 휘둥그레져 물었다.

지존경도 감히 맞서지 못하는 흑신 신뇌에 잘못 맞서면 죽는 건 한순간이었다.

“구유작과 혈맥이 연결돼 있어 그녀가 죽으면 나도 결코 살아남지 못할 거야.”

목진은 웃으며 말을 이어갔다.

“그래서 그녀가 눈앞에서 죽는 꼴을 두고 볼 수만은 없었어.”

“혈맥까지 연결했다니!”

낙리는 목진의 가슴팍을 있는 힘껏 밀었다.

“제정신이야?”

혈맥 연결에 관해 알고 있는 낙리는 목진과 구유작의 목숨이 긴밀하게 연결되어 어느 한쪽이라도 위독해지면 안 된다는 걸 잘 알았다.

이에 목진은 머쓱하여 머리를 긁적였다. 혈맥을 연결한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고 낙리는 그저 질투하는 것뿐이란 걸 잘 알아 목진은 묵묵히 그녀를 꼭 끌어안았다.

“나쁘지만은 않네. 흑신 뇌겁을 넘었으니 깨어나기만 하면 지존급이잖아. 그럼 너도 더 안전해질 테니까.”

어느새 정신을 차린 낙리는 목진에게 속삭였다.

목진은 낙리가 언젠가 낙신족에 돌아가 무거운 짐을 혼자 거머쥐고 차기 여황이 될 것을 생각하자 마음이 아팠다.

“난 네가 걱정이야.”

“너도 이긴 나인데 뭐가 걱정이야?”

낙리가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

목진은 장난칠 기분이 아닌 듯 낙리를 뚫어지라 쳐다봤다.

“왜 그래?”

“낙리야.”

목진은 진지하게 말을 이어갔다.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나든 꼭 기다려줘. 네가 제일 힘들 거라는 걸 잘 알지만 너를 위해서라면 난 정말 강해질 거야. 언젠가 우리가 했던 약속을 지킬 거야.”

그 말에 낙리는 저도 모르게 울컥했다. 목진이 자신과 한 약속을 지키기 위해 얼마나 더 고생해야 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 목진 특유의 해맑은 웃음을 더는 보지 못할지도 모른다.

이런 생각에 낙리는 너무 마음이 아팠다.

“그래, 알겠어.”

한없이 부드러운 낙리의 목소리는 사르르 녹을 것 같았고 유리알같이 맑은 눈동자에는 목진에 대한 사랑이 듬뿍 담겼다.

낙리의 눈빛에 어느새 정신을 놓은 목진은 그녀를 더 꽉 끌어안았다.

“안 돼.”

소녀는 눈치라도 챈 듯 반항하려 했지만 목진이 강력하게 밀어붙이자 항복하고 말았다.

그녀는 결국 목진의 품속에서 녹아내렸다.

* * *

수렵전을 사흘 남기고 북창령원은 점차 떠들썩해졌다.

수렵전은 북창령원에서 가장 성대한 활동으로 수련에만 매진해온 실력 있는 자들이 이름을 날렸고 수렵전이 끝나면 천방 순위도 크게 변했다.

이에 격렬한 혈투는 불가피했는데 결국 새로 나타난 강자와 기존에 이름을 날린 우수한 학생과의 싸움이었다. 자리를 지킬 것인지, 빼앗길 것인지는 결국 그들의 숨겨진 필살기에 달렸다.

취영진과 뇌역 밖에서 수련에 매진하는 사람들이 적잖게 보였는데 주위에 전부 막강한 영력 파동이 느껴졌다. 이들은 오랜 시간의 수련을 마치고 북창령원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그들 역시 이번 수렵전에서 놀라운 실력을 선보여 두 번째 심창생이 되어 영예를 꿰찰 계획을 품고 있었다.

이에 수렵전에 대한 사람들의 기대는 최고치에 달했다.

* * *

어느덧 사흘이 지나 북창령원의 하늘에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목진과 낙리도 일찌감치 신생 구역의 호수 옆 광장에 도착했고, 그 주위를 엽경령, 주령 등 낙신회 회원들이 둘러쌌다. 신생 중 수렵전에 참석할 자격이 있는 자는 낙리, 목진 등으로 극소수였다.

“목 형, 힘내요! 수렵전에서 잘하면 바로 북창령원에 이름을 날리는 거예요.”

낙신회 회원 중 누군가가 흥분하여 말했다.

목진은 비록 북창령원에서 무명인사는 아니었지만 심창생, 이현통 등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이에 목진이 피식 웃었다. 그는 이런 일에 관심이 없었지만 영광 관정만은 최대한 많이 받고 싶었다.

“우리도 가자.”

낙리가 웃으며 말했다.

“그래.”

떠나가는 두 사람 뒤를 엽경령과 주령 등이 따라붙었다. 이들은 수렵전에 참가하지는 않지만 북창령원의 대사를 그냥 넘길 수는 없었다.

* * *

새로 지어진 요문 본부에서 학요도 많은 회원을 거느리고 그곳을 떠났다. 그는 음산한 눈빛으로 신생 구역 쪽을 바라보며 씨익 웃었다.

‘목진, 수렵전에서 나를 마주치지 않기만을 기도해. 안 그러면 너 따위 신생은 아직 갈 길이 멀다는 사실을 제대로 알려 줄 테니까.’

* * *

호수의 중심에 자리한 섬에서 소훤과 소령아는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계속해서 들리는 하늘을 바라보더니 피식 웃었다. 북창령원이 가장 떠들썩할 때가 되었다.

“가자.”

소훤은 미소를 짓고 나아가다가 흠칫하고는 영력을 다시 거두었다.

“언니, 이번에는 이현통을 꺾고 천방 2위를 따내요.”

소령아가 방긋 웃으며 말했다.

“그게 어디 쉬울까? 3위를 지키는 것도 어려울 것 같아.”

소훤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소령아와 함께 북창령원의 중심 구역으로 향했다.

* * *

산봉우리에서 늘씬한 모습의 누군가가 걸어 나오자 사람들이 이내 환호하였다.

“형님!”

이에 이현통은 담담하게 웃고는 손을 휘저으며 말했다.

“이만 떠나자.”

“네.”

“심창생, 부디 돌아와. 올해는 널 꺾고 반드시 천방 1위에 오를 거야.”

어느새 사람들과 함께 산봉우리의 끝자락에 도착한 이현통은 북창령원 밖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가자!”

이현통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그들은 한 줄기의 빛이 되어 떠났다.

수많은 이들이 북창령원 중심에 모여들었다. 여태껏 참고 견디며 수련한 것이 드디어 빛을 발한 순간이 온 것이다.

실력자들은 이글거리는 눈을 하고 수렵전의 시작을 애타게 기다렸다.

북창령원 중심에는 웅장한 광장이 하나 있었다. 그곳은 북창령원에서 아주 유명한 북명 광장으로 북명룡곤의 수련지였다. 북창령원을 세우면서 자연스레 광장이 되었고 성대한 일이 있을 때만 이곳을 사용했다.

수렵전도 그중 하나에 속했다.

수십만 명을 다 수용할 수 있는 북명 광장은 끝도 없이 밀려드는 인파에 묻혀 종적을 감췄고, 그 기세는 백 리 밖에서도 확실하게 느껴졌다.

목진도 등도 어느새 도착해 인파를 보고는 혀를 끌끌 찼다. 역시 북창령원은 남달랐다.

그들은 허공에 멈춰서서 북명 광장을 쓰윽 훑었는데 사람으로 가득 찬 뒤쪽과 달리 광장의 앞쪽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곳에는 청동으로 만든 조각상이 있는데 곤의 몸에 용의 꼬리와 발을 가진 조각상에서 공포스러운 위압감이 퍼졌다. 조각상만으로도 이러한 파동을 일으키니 실물은 더 말할 것도 없었다.

“저것이 곧 북창령원의 진원 신수인 북명룡곤이야?”

목진은 조각상에서 받은 위압감에 몰래 혀를 끌끌 찼다.

“북명룡곤은 북창령원에서 지위가 아주 높아. 천석 장로마저도 깍듯하게 대하셔.”

낙리가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이에 목진은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북명룡곤은 신수 중에서도 상위에 속했고, 여태껏 수련하여 얻은 실력은 분명 괴물급일 것이다. 북창령원에서 이를 뛰어넘을 영수는 거의 없었다.

그때 목진이 눈길을 다른 쪽 하늘로 옮겼는데 학요가 자신을 빤히 노려보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목진은 그 모습을 보고 씨익 웃었다. 만약 한 달 전이라면 잔뜩 경계를 했겠지만 지금은 그를 상대로조차 취급하지 않고 있었다.

만약 힘을 겨룬다고 해도 목진은 절대 학요가 우세를 차지하게 놔두지 않을 것이다.

이에 학요는 차가운 눈빛을 거두었다. 목진은 그가 절대 자신을 가만두지 않을 거란 걸 잘 알고 있었다. 속이 좁은 학요는 지난번 일을 그대로 흘려보낼 위인이 아니었다.

그때 갑자기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들렸고, 목진은 익숙한 영력 파동을 느꼈다.

“이현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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