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화. 태창 원장
이현통의 영력 파동에 익숙한 목진은 고개를 돌리지 않았음에도 그를 알아봤다. 역시나 그는 사람들을 이끌고 나타났다.
이현통은 목진과 낙리 옆에 멈춰서서 복잡미묘한 눈길로 낙리를 바라보고는 목진에게 고개를 돌렸다.
“실력이 좋아졌군.”
“그러지 않고서야 어찌 감히 이곳에 왔을까요?”
목진은 오만하지도 겸손을 떨지도 않았다. 이현통 같은 사람을 상대하면서 겸손을 떠는 것은 꼴불견이었다.
“수렵전에 참가하려나 보네.”
이현통이 담담하게 웃으며 말했다.
“수렵전에서 마주치면 지난번처럼 봐주지는 않을 거야.”
“얼마든지요.”
목진도 이현통을 노려보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이현통 뒤에 있던 학생들은 목진의 태도에 조금 불쾌함을 느꼈다. 제아무리 이현통의 공격을 막아냈다고는 해도 그와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함부로 나서지는 못하고 속으로만 끙끙 앓으며 목진을 노려봤다.
“나도 목진과 함께 수렵전에 참가할 거야. 이제 만나면 제대로 붙어보자.”
옆에 있던 낙리가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하자 이현통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목진을 바라봤다.
“요문 본부를 부쉈다며?”
목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북창령원 전체가 아는 일이라 이현통이 아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도가 지나친 것 같구나.”
이에 목진이 인상을 찌푸리며 입을 열려고 하자 이현통이 피식 웃으며 말을 이어갔다.
“그래도 남자다웠어. 네가 그리하지 않았으면 내가 너를 찾아가려고 했어. 이곳에서도 낙리를 지켜내지 못하는데 내가 뭘 믿고 낙리를 계속 너한테 맡길 수 있을까?”
이현통의 말에 목진은 낙리의 가녀린 손을 꼭 잡으며 웃었다.
“이현통 선배, 내가 지금은 평범해도 누군가 낙리를 해치려 한다면 반드시 나를 먼저 밟고 지나가야 할 거예요.”
목진의 말에 낙리는 소년의 훤칠한 옆모습을 보며 방긋 웃었다. 그녀의 웃음에서 절대적인 믿음이 묻어났다.
이현통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수렵전에서 학요 녀석을 만나면 내가 먼저 처리할 거야.”
이에 목진은 피식 웃었다.
“선배가 누굴 죽이든 나와는 상관이 없어요. 하지만 내가 먼저 그와 마주치면 선배는 손 쓸 기회도 없을 거예요.”
“말만 앞선 것은 아니고?”
이현통은 웃으며 말을 이어갔다.
“그럼 수렵전에서 네 활약을 기대할게. 종점에 도착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이에 목진은 바로 낙리와 함께 허공으로 날아올랐다.
그 뒤로 소훤, 서황 등 천방 순위권 앞쪽에 있는 사람들이 속속 도착했다. 목진은 인파 속에서 야심만만한 사람들의 뜨거운 눈빛을 느꼈다.
그들은 천방 10위권을 보고도 전혀 두려워하지 않았다. 역시 북창령원에는 실력을 드러낸 자가 극소수였고, 대부분은 한방을 노리고 온 것이다.
수렵전은 그들에게 가장 좋은 기회였다.
그때 맑은 종소리가 사람들의 소란스러운 소리를 덮으며 주위에 울려 퍼졌다.
학생들은 곧바로 조용해졌고 경외의 눈빛으로 북창령원의 가장 깊은 곳을 바라봤다. 그때 그곳에서 청색의 거대한 새가 나타났는데 엄청난 바람과 함께 광장에서 유일하게 빈 구역의 하늘 위에 멈춰 섰다.
새의 등에는 연세가 꽤 있어 보이는 사람들이 서 있었고, 그중 한 명은 일반 노인과 다를 바 없어 보였지만 아무도 그를 무시하지는 않았다. 그 속에는 천지를 뒤엎을 만큼 막강한 힘이 숨어 있었다.
맨 앞에는 청색 도포를 입은 중년 남자가 서 있었다. 그는 온화한 인상에 그윽한 눈빛을 지니고 있어 마주치면 빠져나오기가 매우 어려웠다.
세상이 그의 눈에 담겨있는 것만 같았다.
중년 남자는 미소를 지은 채 경외에 찬 눈빛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학생들을 쓰윽 훑었는데 무한의 세월을 견디며 득도한 사람처럼 눈빛이 그윽했다.
“저분은…….”
목진도 청색 도포를 입은 중년을 바라보며 물었다.
“저분이 바로 북창령원의 태창 원장이야.”
이현통이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오만한 이현통의 말투에서 원장에 대한 경외심이 묻어났다.
목진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쉽게 만날 수 없었던 원장마저 수렵전에 나타났다.
“1년 만에 보는구나. 실력이 증진한 것 같아 보기 좋구나.”
청조 위에 올라탄 태창 원장은 흐뭇하게 학생들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그러자 그의 맑은 목소리에 영력이 순화되었고, 정신이 번쩍 들었으며 몸 상태도 더 좋아졌다.
“대단한 능력이야.”
목진도 몸에서 일어난 변화에 화들짝 놀랐다. 대체 어떤 경지에 이르면 말만으로도 이토록 많은 사람에게 영향을 미칠까?
그의 목소리는 강력하기 그지없었다.
“태창신음(太蒼神音)이야.”
이번엔 낙리가 입을 열었다.
“이는 신전에서 비롯된 신법인데 그해, 원장은 태창신음으로 지존 한 명을 죽였어.”
“목소리로 지존을 죽였다고?”
목진은 순간 아찔했다. 아무리 실력이 좋아도 이건 무서운 것을 떠나 공포 그 자체였다.
“다들 잘 알고 있으리라 생각해 수렵전의 규칙 설명은 생략하겠다. 대신 올해에 진수자(*최종 수비)가 3명이란 점은 잊지 말거라.”
태창 원장이 씨익 웃으며 옷깃을 휘두르자 앞쪽 공간에 파문이 일더니 거대한 거울을 만들었다. 그 속에는 험준한 산이 있었는데 3개의 산봉우리를 뒤덮은 안개 속에 강대한 존재가 숨어 있었다.
진수자를 이겨야 최후의 영광 관정을 받을 수 있었다. 안 그러면 제아무리 영광(靈光)을 많이 획득해도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원래 1명뿐이던 진수자(*최종 수비)가 이번에는 3명으로 늘었고, 다들 그 진수자가 누구인지는 몰랐다.
사람들의 주시하에 안개가 서서히 걷히더니 3명의 진수자가 조용히 자리에 앉아있는 것이 보였다. 풍기는 기세가 용맹한 용처럼 천지를 휩쓸었다.
그 모습에 이현통마저 안색이 어두워졌고 감각이 뛰어난 학생들도 사색이 되었다.
“진수자는 형벌전의 삼대장으로 지난 기수 천방 3위권에 들었던 이들이다.”
태창 원장의 말에 다들 눈이 휘둥그레졌다. 형벌전 삼대장이 직접 나섰다니, 난도가 높았다.
“저들이 형벌전의 삼대장이야?”
목진은 정색하며 안개 때문에 은은하게 보이는 삼대장을 빤히 쳐다봤다. 그들한테서 놀라운 기운이 느껴졌는데 그것만으로도 그들의 실력이 엄청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올해 마지막 진수자는 역시 저들이었어.”
이현통이 중얼거렸다. 그는 천방 3위권에 들었던 삼대장에게 위압감을 느꼈다.
“3명이 함께 나서다니, 마지막 관문이 많이 어려워졌네.”
이현통은 이내 인상을 찌푸렸다. 실력은 뒤처지지 않는다고 자부할 수 있었지만 혼자서 3명을 감당할 정도는 아니었다.
그들은 이현통이 북창령원에 들어왔을 때부터 우상과 같은 존재였다.
수렵전의 규칙은 간단했다. 제아무리 영광(靈光)을 많이 얻어도 마지막 관문을 뚫지 못하면 목숨을 걸고 얻은 영광은 결국 무용지물이었다. 그러면 영광 관정도 얻을 수 없다.
그래서 사람들은 인상을 찌푸리고 주위를 훑으며 자기편이 되어줄 강력한 존재를 찾았다.
“왜 심창생이 없지?”
“그가 나타나지 않으면 마지막 관문은 뚫기 어려운데…….”
“그러니까, 이현통만으로는 삼대장과 맞서긴 어려워.”
* * *
사람들은 북창령원의 천방 1위를 찾고 있었다. 그가 나타나야 영광 관정을 얻을 수 있는 희망이라도 가질 수 있다.
그러나 목진은 태연하게 앞만 바라봤다.
다른 사람에게 기대는 것은 하수나 하는 행동이었다. 심창생이 수렵전에 참가하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희망을 타인에게 걸고 싶지는 않았다.
이는 이현통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사람들이 뭐라 말하든 표정에 한 치의 변화도 없었다.
그때 청조 위에 서 있던 태창 원장이 미소를 지은 채 떠들썩한 광장을 훑으며 물었다.
“이번 수렵전에 이의라도 있느냐? 없으면 이대로 영광계를 열 것이다.”
영광계는 북창령원에서 수렵전을 위해 따로 만든 자그마한 공간으로 매년 이 시기에만 열린다.
그 말에 사람들은 고개를 끄덕이는 수밖에 없었다. 사람들은 심창생이 나타나지 않을 것 같자 승산이 없다며 다들 시무룩해졌다.
삼대장은 북창령원 뿐만 아니라 북창대륙에서도 명성이 자자했기 때문에 무조건 마지막을 관문을 뚫는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그와 이현통이 힘을 합치면 충분히 승산이 있었다.
학생들 반응에 태창 원장은 피식 웃더니 옷깃을 휘날렸다. 그러자 앞쪽 공간이 일그러지더니 거대한 문이 생겼다. 그 속에서 기이하고 아득한 영력 파동이 일었다.
“올해의 수렵전을 지금부터 시작한다!”
태창 원장은 공간의 문을 열고 호탕하게 웃으며 말했다.
학생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마음을 고쳐먹었다. 마지막까지 포기하지 않는 북창령원의 정신을 본받아 심창생이 없더라도 마지막까지 싸워보기로 하였다.
이제 다들 영광계에 뛰어들려고 하는데 저 멀리 하늘에서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빠르게 들려왔다.
놀라운 영력 파동과 함께 누군가의 목소리가 쩌렁쩌렁 울려 퍼졌다.
“수렵전에 내가 빠지면 섭섭하지.”
그의 호탕한 웃음소리에 광장은 발칵 뒤집혔고 학생들은 잔뜩 흥분하였다.
“심창생 선배야!”
“드디어 돌아왔어!”
천방의 패주가 드디어 마지막 순간에 돌아왔다.
사람들의 환호 속에서 검은색 옷을 입은 청년은 기세등등하게 하늘에 나타났고 날렵한 눈빛은 더없이 빛났다.
사람들은 경외에 찬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그는 역시 북창령원 학생들의 진정한 패주였다. 그의 자리를 흔들 사람은 아직 나타나지 않았다.
“드디어 나타났군.”
이현통은 검은색 옷을 입은 청년을 바라보며 담담하게 웃었는데 전투 의지가 활활 타오르는 것을 느꼈다.
이번 수렵전에 심창생이 없으면 무미건조했을 것이다.
“저 사람이 심창생 선배야?”
주령, 엽경령 등도 신기한 듯 하늘을 쳐다봤다. 북창령원에 들어오자마자 천방 패주의 이름을 지겨울 만큼 많이 들었지만 직접 보는 건 오늘이 처음이었다.
이에 목진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북창령원에서 절대적인 호소력을 가진 사람은 심창생 뿐이었다. 제아무리 실력이 좋은 이현통도 그보다는 못했다.
“원장님, 너무 늦은 건 아니죠?”
심창생이 푸른 새 위에 서 있는 태창 원장을 바라보며 히쭉 웃었다.
“마룡자의 현상 임무를 받지 않았어? 설마 임무를 완성하고 돌아온 거야?”
태창 원장은 흐뭇하게 웃으며 심창생을 바라봤다.
태창 원장의 말에 다들 눈가가 파르르 떨렸다. 마룡자는 무려 현상방 2위인 미친놈이었다.
“몇 차례 힘겨루기는 했는데 결국 놓쳤어요. 아마 이번 수렵전에서 영광 관정을 받으면 놈을 잡을 수 있을 거예요.”
심창생이 머쓱해 웃으며 하는 말에 다들 안색이 어두워졌다. 심창생이 어느덧 마룡자와 동급이 되었다니, 죽어도 그를 따라잡지 못할 거란 생각에 마음이 무거워졌다.
그러나 이현통만은 점차 의욕이 끌어 올랐다.
“이현통, 오랜만에 봤는데 그렇게까지 날 노려볼 필요가 있을까?”
이현통의 뜨거운 눈빛에 심창생이 고개를 돌려 웃으며 말을 건넸다.
“안 본 사이에 실력이 늘었는지 확인했을 뿐이야. 올해는 절대 봐주지 않을 거야.”
이현통이 담담하게 웃으며 답했다.
“나도 네 천현신결이 얼마나 진보했는지 궁금하구나.”
천방에서 심창생의 주의를 끌 수 있는 건 이현통 뿐이었다. 그는 학요 등은 신경조차 쓰지 않았다.
심창생은 담담하게 웃으며 주위를 쓰윽 훑었다. 학요, 서황 등 천방 10위권을 넘어 마지막에 목진에게 눈길이 멈췄다.
그날 융천경의 실력으로 백헌을 죽이고 마룡자 앞에서도 태연한 그의 태도가 마음이 들었다.
심창생의 눈길에 목진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기다리던 사람이 왔으니 이만 시작해볼까?”
태창 원장은 학생들을 바라보며 씨익 웃었다. 심창생 때문에 다들 마음이 놓인 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