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화. 영광계(靈光界)
원장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공간의 문에서 눈부신 빛이 뿜어져 나왔다.
“여러분, 얼른 움직입시다. 이현통, 우린 영광대에서 보자!”
심 창생은 호탕하게 웃더니 한 줄기의 빛이 되어 거대한 공간의 문으로 뛰어들었다.
이에 이현통도 사람들을 거느리고 눈부신 빛을 내뿜는 거대한 문으로 향했다.
“우리도 움직이자.”
목진의 말에 낙리도 고개를 끄덕였다.
“목 형, 힘내!”
낙신회 회원들의 응원에 목진은 그들과 인사를 나눈 뒤, 낙리와 손잡고 영광계에 뛰어들었다.
푸른 새 위에 있는 태창 원장은 흐뭇하게 이 광경을 바라보다가 허공에 떠 있는 방대한 거울로 고개를 돌렸다. 거울은 영광계의 종점인 영광대를 비추고 있었는데 삼대장도 그곳에 있었다.
“이번 수렵전은 재미있겠구나. 과거의 천방 1, 2, 3위와 현재의 천방 1, 2, 3위 중 과연 누구의 실력이 더 좋을까?”
그 말에 뒤에 있던 노인들이 가볍게 웃었다. 학생들은 기세등등하게 영광계로 들어갔으나 삼대장을 흔들기엔 아직 실력이 부족했다. 아마 다들 아무런 보상도 받지 못할 수도 있었다.
영광계는 혼돈의 세계로 어둡고 기이한 곳이었다. 게다가 무서운 영기가 넘쳐나 영운이 하늘에 떠다녔고 바람이 일면 가끔 영기가 깃든 안개가 퍼져 나왔다.
그곳은 북창령원에서 수렵전을 위해 만든 특수한 공간이었기 때문에 영력이 가득했지만, 생기가 없어 고요했다.
그런데 오늘 드디어 이 고요함이 깨졌다.
여러 갈래의 빛줄기가 미친 듯이 하늘에서 내려와 외곽에 내려앉았다. 영광계는 비록 크지는 않았지만 북창령원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큰 편이었다. 학생들이 아무리 많이 들어와도 전혀 비좁지 않았다.
목진과 낙리는 한 산봉우리에 내려 흥미진진한 얼굴로 영광계를 둘러보며 감탄했다.
“천지의 영기가 정말 그윽하네.”
영광계에 깃든 천지의 영기는 북창령원의 7급 취영진과 비슷했는데 공간은 그보다 훨씬 컸다.
“그런데 생기를 전혀 느낄 수 없어.”
목진은 그곳의 결함을 바로 눈치챘다.
“이곳은 개척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생기가 있을 수 없고, 사람이 오래 머물러서도 안 돼.”
낙리가 주위를 훑어보며 말했다.
이에 목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북창령원에서 학생들을 이곳에 들이지 않는 데는 다 이유가 있었다.
“이제 움직이자. 영광(靈光)을 최대한 많이 얻어야지.”
목진은 낙리에게 영광 관정에 관해 말했다.
이곳에서 영광을 얻는 방식은 오직 하나뿐이었는데, 바로 영병을 죽이는 것이었다.
영병이란 천지의 영기가 모여 사람의 형태를 이룬 병사로 의식만 없을 뿐, 힘은 강력했다.
영광계의 영병은 실력이 세 단계로 나뉘어져 있었는데, 융천경 실력의 보통 영병, 화천경 실력의 영장, 최강 영병인 영왕이 있었다.
그중 영장은 화천경 후기의 실력자들만큼 강력했고 영왕은 만나면 바로 도망쳐야 할 정도로 무서운 존재였다. 그는 약간의 의식을 가진 통천경의 실력을 지녔기 때문에 상대하기가 버거웠다.
영왕 체내의 영광은 영광 관정으로 가장 좋은 재료였지만 이를 건드리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통천경의 실력자를 건드렸다가 죽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가자.”
목진은 앞쪽을 살피고는 낙리와 함께 산봉우리를 떠났다. 구체적인 목표는 없었지만 일단 영광계의 깊은 곳으로 향하기로 했다.
수렵전에 참가한 학생들은 결국 그곳에 모일 것이고, 그곳에는 학생들의 최후의 적인 진수자가 기다리고 있었다.
이렇게 두 사람은 하늘 높이 날아올랐는데 천지 영기가 너무 그윽한 탓에 속도가 느려졌다. 영력을 끌어올려 주위에서 오는 압박에 저항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1각 정도 지나자 목진은 앞쪽에서 보이는 빛에 서서히 속도를 줄였다. 누군가 웅장한 영력을 발산하며 비행하는 것 같았다.
그때 그쪽에서도 이상한 파동을 느끼고 바로 목진과 낙리에게 돌진했다.
“속도가 제법이구나.”
이에 목진은 피식 웃더니 난폭한 영력을 끌어올려 상대의 가슴팍을 있는 힘껏 때렸다.
목진은 눈부신 빛이 사라지고 체내에서 담홍색 빛을 내뿜는 상대방을 덥석 잡았다.
이에 담홍색 빛이 조금씩 작아지더니 용안만큼 작은 붉은 광점이 되었다. 그 속에는 의식이 전혀 없는 극히 순수한 천지의 영기가 깃들어있었다.
“이게 바로 영광이겠지?”
목진은 흥미진진하여 붉은색 광점을 바라봤다. 이렇게 작은 물건에 이토록 순수한 영기가 깃들어있다니 너무 신기했다.
“보통 영병이야.”
낙리가 입을 열었다. 이 영광은 너무 미약하여 이것만으로 영광 관정을 하기엔 턱없이 부족했다. 좀 더 실력 좋은 영장을 찾아 없애야 했다.
“천천히 찾으면 돼.”
목진은 수렵전이 처음이라 이곳에 대해 아는 것이 하나도 없었다. 그리고 이곳에 관련된 정보를 공유할 사람도 없었다.
그런데도 낙리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목진과 함께라면 수렵전에서 아무런 수확이 없어도 괜찮았다.
하지만 그건 목진이 원하는 것이 아니었다. 낙리에게 시간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고 있는 목진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서로의 힘을 키우고 싶었다. 그래야 낙리가 낙신족에 돌아갔을 때 좀 더 도움이 될 거라 여겼다.
“앞으로 가보자.”
목진은 낙리와 함께 앞으로 나아갔다.
그러나 그들은 한 시진 동안 보통 영병을 10명 조금 넘게 만났을 뿐, 별다른 성과가 없었다. 이대로라면 영광 관정을 해도 큰 효과를 보지 못할 것이다.
* * *
목진은 손가락을 튕겨 다가오는 영병을 죽이고는 입을 삐쭉 내밀며 날아오는 담홍색 광점을 잡았다.
“또 보통 영병이네.”
한참이 지났는데도 수확이 생각보다 별로라 목진은 기분이 썩 좋지 않았다. 그런데 낙리는 여유작작하게 목진을 바라보기만 했다.
“앞쪽에 영력 파동이 느껴져. 영병은 아닌 것 같고 우리와 함께 수렵전에 참가한 학생들 같아.”
낙리는 먼 곳을 바라보며 조금은 의아한 듯 말했다.
반면, 영광을 얻는 데 혈안이 된 목진은 다른 학생들에게 신경 쓰고 싶지 않았다. 절대 수렵전에서 빈손으로 돌아갈 수는 없었다.
“영광계에도 일정한 규율이 있을 거야. 우린 처음이고 정보도 거의 없으니 일단 다른 사람을 만나 정보를 수집하는 게 좋지 않을까?”
낙리가 미소 지으며 하는 말에 목진은 멈칫하였다.
“우리가 영광을 어느 정도 모았으니 이걸 이용해 정보를 알아내면 될 거야. 그래도 알려주지 않는다면…… 그땐 무력으로 해결해야지.”
목진의 마지막 한 마디에 낙리는 괜히 그를 흘겨봤다.
낙리와 목진은 1각 정도 날아가다 앞쪽 산봉우리에서 누군가 격렬하게 싸우는 것을 발견했다. 그런데 학생과 영병의 대결이 아니라 학생들끼리 싸우고 있었다.
10명도 넘는 남학생들이 세 여인을 쫓고 있었는데 이들은 곧 잡힐 것 같았다.
“안연, 우리도 너한테 이렇게까지 하고 싶지 않아. 그러니까 영병이 집결하는 곳만 알려줘, 그럼 바로 풀어줄게.”
세 명 중 한 명은 목진이 북창령원에 들어왔을 때 마주쳤던 안연이었다.
“유진(劉晨), 꿈 깨!”
안연은 잔뜩 화가나 눈을 부릅뜨고 말했다.
“이 역겨운 놈, 내가 지금 당장 수렵전에서 물러나는 한이 있어도 너한테는 정보를 알려주지 않을 거야. 네가 나를 죽이기야 하겠어?”
유진이라 불리는 청년은 피식 웃더니 안연의 영롱한 몸매를 쓰윽 훑었다.
“내가 널 죽일 수는 없어도 이렇게나 많은 남자들과 힘을 겨루다 보면 무슨 일이든 생기지 않겠어. 그때 가서 우리 탓은 하지 마. 그런 건 너라도 감히 윗선에 이를 수 없겠지?”
그의 협박에 안연은 온몸을 파르르 떨었다.
“그러니까 그런 불미스러운 일을 만들지 않기 위해서라도 정보를 알려줘. 우리가 영광을 얻으면 너한테도 일부를 줄게. 이래도 싫어?”
유진이 씨익 웃으며 물었다.
이에 안연은 이를 갈며 상대방을 바라봤고 그 옆에 서 있는 두 명의 학생도 화가나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지만 별다른 수가 없었다.
“난 별로라고 생각해요.”
그때 먼 곳에서 누군가의 웃음소리가 들려오더니 두 갈래의 빛이 안연 일행 앞에 나타났다.
“목진?”
훤칠한 소년의 정체를 알아챈 안연은 이내 화색이 되었다.
“목진?”
북창령원에서 낯설지 않은 이름에 안연 등을 둘러싼 남자들의 눈가가 파르르 떨렸다.
목진은 북창령원에 들어온 지 얼마 되지는 않았지만 그 명성은 노생들보다 더 자자했다. 이에 유진은 어두워진 안색으로 목진과 낙리를 노려보며 말했다.
“이 일은 너희와 아무런 관계가 없어. 만약 그래도 기어코 참견하겠다면 나와 함께 정보를 공유하는 건 어떨까? 우리가 협력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은데…….
유진은 안연을 풀어주고 싶지 않았다.
제한된 시간에 최대한 많은 영광을 획득하려면 정보가 가장 중요했다. 단시간 내에 영병의 집결 장소를 찾지 못하면 영광 수집에 차질이 있을 것이고 그리되면 영광 관정에도 영향이 미칠 것이 분명했다.
또한, 유진은 목진과 같은 준 화천경 실력에 인원수도 많으니 자신을 쉽게 꺾지 못할 거라 여겼다.
안연은 유진의 말에 결심한 듯 이를 악물었다.
“목진, 우리를 도우면 정보를 줄게.”
목진에게 정보를 주는 한이 있더라도 절대 징그러운 유진에게는 알려주고 싶지 않았다.
“안연 선배는 내 친구예요. 사람들을 데리고 떠나요.”
목진이 담담하게 웃으며 유진에게 말했다.
목진은 안연과 사이가 각별하지는 않았지만 그 역시 유진이 별로라고 생각했다. 게다가 실력도 두려울 만큼 강하지 않았기에 마음이 가는 대로 하기로 했다.
“너!”
유진의 눈에 순간 살기가 깃들었다. 그는 어두워진 안색으로 동행한 사람들에게 눈치를 췄다. 이에 사람들은 세 여인에게서 물러나 목진에게 눈길을 돌렸다.
“녀석은 내가 맡을 테니 나머지는 네가 알아서 해.”
목진이 작은 목소리로 낙리에게 말했다.
“알겠어.”
낙리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상대편은 유진을 제외하면 실력이 가장 센 사람이 기껏해야 융천경 후기라서 전혀 위협이 되지 않았다.
“두 사람이 10명도 넘는 우리를 상대할 수 있을까?”
유진의 말이 끝나기도 바쁘게 목진은 이미 공격을 개시했다.
“녀석을 막아!”
유진이 체내의 영력을 전부 끌어올리며 외쳤다.
그런데 10명도 넘는 사람들이 손을 쓰기도 전에 목진은 이미 용의 울음소리와 함께 한 줄기의 빛이 되어 하늘 높이 날아올랐다.
슉!
목진은 미친 속도로 이들 사이를 뚫고 유진의 가슴을 가격했다.
그제야 정신을 차린 유진은 귀신처럼 자기 앞에 나타난 목진을 보더니 눈이 휘둥그레졌고 그의 놀라운 속도에 경악했다.
퍽!
목진의 난폭한 영력에 유진은 커다란 망치에 맞은 듯 맥없이 튕겨 나가 거대한 암석에 부딪혀 쓰러졌다.
유진은 준 화천경 실력을 지녀 목진과 맞설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같은 준 화천경이라도 두 사람은 천지 차이였다.
이렇게 목진은 손쉽게 유진을 해결했다. 그때 뒤쪽에서 급격한 영력 파동이 일었다. 돌아보니 10명도 넘는 녀석들을 쓰러뜨린 낙리가 그들 중심에 서서 방긋 웃으며 목진에게 눈을 깜빡였다.
“대단해.”
목진은 엄지를 척 내밀며 소녀를 향해 웃고는 옆에 있는 안연 등에게 고개를 돌렸다.
“안연 선배, 괜찮아요?”
안연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눈이 휘둥그레져 목진을 바라봤다. 몇 달 전까지만 해도 신백경 밖에 안 됐던 목진이 벌써 자신을 뛰어넘었단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그 옆에 서 있는 예쁘장한 젊은 여인들도 몰래 목진을 훔쳐봤다. 그들도 북창령원에서 명성이 자자한 신생이 궁금했다.
“집결 장소가 뭐죠?”
목진은 바로 본론에 들어갔다. 지금 그에게는 영광계에 관한 정보가 가장 중요했다.
“영광계는 천지의 영기가 그윽하긴 하나 영병을 생성하기가 쉽지 않아. 평범한 곳에서 대량의 고급영병이나 영장을 찾기란 어렵지.”
목진이 정보 때문에 자신을 도왔다는 걸 아는 안연은 정신을 차리고 말을 이어갔다.
“대신 지형상 일정한 곳에서 대량의 영병을 만들어낼 수 있는데 이런 곳을 집결 장소라고 하지. 그러니까 집결 장소를 찾아야만 대량의 영광을 얻을 수 있어. 그게 아니라면 영광계 전체를 훑어도 얻는 건 별로 없을 거야.”
목진과 낙리가 여태껏 소수의 영병만을 마주친 데에는 역시 이유가 있었다.
“집결 장소에 대한 정보는 어떻게 알았나요?”
목진이 어리둥절하여 물었다.
“사실 영치전에서 정보를 팔고 있어. 대신 가격이 너무 비싸고 집결 장소가 해마다 바뀌어서 아무도 구매한 정보를 확신할 수는 없지. 이 정보도 우리 셋이 영치를 모아 산 거야.”
안연이 쓸쓸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런데 유진이 이를 알고 이런 일을 벌인 거고.”
영치전에서 정보까지 판매한단 말에 목진은 화들짝 놀랐다. 그들은 이토록 중요한 정보도 모른 채 영광계에 뛰어들었다.
“집결 장소를 알려줄게.”
안연은 안색이 어두워지며 말했다. 목진과 약속한 이상 이를 어길 수는 없었다. 옆에 있던 두 여인도 이내 한숨을 쉬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