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화. 섬멸
목진은 이내 고개를 돌려 뜨거운 눈빛으로 산속에서 반짝이는 영광을 바라보았다. 이 영병들을 다 처리하면 크나큰 수확을 얻는 것이다.
“그럼 이제 움직이죠. 오래 끌면 더 많은 사람이 이리로 모여들 겁니다.”
목진은 말이 끝나기 무섭게 영력을 끌어올려 쏜살같이 하늘을 향해 뛰어올랐다.
“좋아!”
그 뒤로 임풍, 유첨, 진붕 등 사람들도 따라나섰고 그 영력의 파동에 하늘이 뒤흔들리는 것만 같았다.
그들이 영병을 싹쓸이를 할 준비하고 있을 때 산 저편에 숨어 이들을 지켜보는 무리가 있었다.
“형님, 저들이 움직이려나 봅니다. 우린 언제까지 기다려야 합니까?”
누군가의 웃음소리와 함께 물었다.
“임풍이랑 다른 사람은 문제가 안 되는데 목진과 낙리라는 신생은 조금 골치가 아프구나. 근데 상관없다. 우리 삼형제가 지금까지 잘 참아왔으니 이젠 실력을 드러낼 때도 되었다. 이번 수렵전을 기회로 우리 삼형제가 천방 10위 안을 노릴 수 있게 되었다.”
그의 물음에 한 청년이 따라 웃으면서 답했다.
그들 앞에는 키가 크고 여윈 한 청년이 서 있었는데 담담한 눈으로 산을 바라보았다.
“저들이 영병을 처리하게 놔두자. 처리가 끝날 때 우리가 마무리하면 된다. 백 줄기 정도의 영광을 감사의 의미로 남겨두면 될 것이야…….”
“하하, 역시 형님은 인심이 후하십니다.”
우웅!
목진 등이 영병을 향해 달려들자 영병들도 영기의 파동을 느꼈는지 바로 반응을 보였고 이내 하나둘 그들을 향해 돌진했다.
영병은 살아있는 생물은 아니지만 천지 영기에 대해서는 매우 민감했다. 자그마한 영력의 파동이 느껴져도 바로 폭발적인 공격을 개시했다.
목진은 자신들을 향해 달려드는 영병을 바라보았다. 그 수는 대충 세어도 수백은 되는 것 같았다. 그들이 일으킨 영력의 파동은 결코 무시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가자!”
목진은 기합 소리와 함께 검은 영력을 가득 담은 주먹을 휘둘렀다. 흑염이 타오르고 있는 영력이 영병을 스치자 그들은 순식간에 부서졌다.
영병들이 부서지면서 여러 줄기의 옅은 붉은 색의 영광이 흘러나왔고 목진은 그것들은 거둬갔다. 이러한 수확에 목진은 기쁜 마음을 감출 수가 없었다. 전에 그렇게 고생해서 얻은 영광이 고작 십수 줄기밖에 안 됐는데 여기에선 이렇게 한 번에 많이 얻을 수 있으니 말이다.
집결 장소를 찾는 것이야말로 수렵전에서 영광을 얻을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었다.
또한 목진의 영력에는 구유화가 깃들어있기 때문에 이는 영력마저 불태울 수 있다. 그러니 영기가 모여서 만들어진 영병에게는 치명적이었다.
목진이 활개를 치며 영병을 쓸어버리는 모습을 지켜보던 안연 등은 놀란 눈을 했다. 영병들의 실력이 그저 융천경일 뿐이라 단독으로 상대하면 이길 수 있지만 목진처럼 산산조각을 내서 부숴버리기란 절대 불가능했다.
그들은 곧바로 시선을 목진의 옆에 있는 낙리에게로 돌렸다. 한 손에 검자루를 들고 있는 낙리는 검을 뽑아 들지 않았다. 검에서 뿜어져 나오는 검기만으로도 달려드는 영병을 처리하기엔 넉넉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 속도 또한 목진보다 느리지 않았다.
“대단하네.”
안연 등은 서로 얼굴만 쳐다보았다. 그녀들은 목진과 낙리에 비하면 속도가 뒤처졌다. 그녀들은 씁쓸한 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저 둘은 무서울 정도로 강했다.
영광이 파도를 이루던 산도 그들로 인해 소란스러워졌다. 목진 등을 제외한 다른 세 소대도 매서운 호랑이처럼 세 방향으로 방대한 양의 영병을 나눠 공격했다.
그들도 꽤 빠른 속도로 영병을 처리하고 있었다. 그러나 목진 일행과 비하면 여전히 부족했다.
그들은 모두 영광을 이룬 바다 속으로 들어가려 애썼다. 거기에 영장이 있다는 걸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 영장을 죽여서 얻는 영광은 수천 명의 영병을 죽여서 얻는 영광과 똑같았다.
더 깊숙이 들어가자 그들은 알 수 없는 압력을 느끼기 시작했다. 영병은 끝없이 그들을 공격해왔고 그들을 상대하려니 영력의 소모도 만만찮았다.
다른 세 소대는 이러한 전투 경험이 많아서 그런지 제법 잘 상대하고 있었다. 그들은 삼각 진형을 이루어 가장 앞자리에 선 사람을 순서대로 바꿔가면서 가장 강력한 충격을 받아냈다. 뒤로 물러난 사람은 잠깐의 조정과 함께 다시 전투에 투입되는 식이었다.
그렇지만 아무리 경험이 많은 그들이라 하여도 목진과 낙리보다 속도가 느렸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목진과 낙리의 속도도 점차 느려졌다. 영병들도 목진과 낙리가 가장 위협적이라고 느꼈는지 일제히 그 둘을 공격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저들이 일부러 속도를 늦추고 있어. 우리가 영병을 다 끌어들이길 바라는 거지.”
낙리가 눈을 반짝이며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낙리는 다른 세 무리가 몰래 속도를 늦춘 것을 눈치챘다. 당연히 그들이 느리니 영병이 목진과 낙리에게로 몰릴 수밖에 없었다.
“괘씸한 놈들.”
안연은 화가 났다. 그들이 이토록 몰래 뒤에서 수를 쓸 줄 몰랐다.
화가 난 안연과 달리 목진은 그저 웃기만 하였다. 함께 적을 상대하는 것처럼 보여도 애초에 경쟁하는 사이니 자신보다 더 강한 사람이 있으면 당연히 쉽게 가려고 할 것이다.
“그렇게 당장이라도 깊숙이 들어가고 싶으면 가라고 해. 우린 영병에만 집중하자.”
목진은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는 당장 깊은 곳에 숨어 있는 영장을 찾아낼 생각이 없었다. 깊숙한 곳에서 흘러나오는 강력한 영력의 파동으로 보아 영장들이 결코 호락호락한 상대가 아닐 거란 직감이 들었기 때문이다.
세 소대가 그들을 버리고 영장을 상대하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크게 흔들리지 않는 목진을 보고 안연은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끄덕이면서 목진을 뒤따랐다. 그녀는 목진과 낙리가 영병을 죽이면 영광을 거둬갔다.
목진 등이 영병들과 싸우고 있을 때, 역시 예상대로 세 소대는 기회를 틈타 영병 무리를 뚫고 가장 깊은 곳으로 향했다.
목진은 그들이 멀어져가는 뒷모습을 힐끗 보고선 이내 시선을 거두었다. 그들이 영장을 독차지하건 말건 전혀 신경을 쓰지 않는 듯 목진은 오로지 낙리와 함께 영병을 처리하는 데에만 집중했다.
수많은 영병이 목진과 낙리의 손에 죽어 나갔고 그들은 강력한 영력을 담고 있는 영광이 되어 둘 주위를 맴돌았다. 안연 일행은 목진과 낙리의 뒤에서 영광을 쓸어 담았다.
“목진, 벌써 팔 백여 줄기의 영광을 모았어!”
점점 많아지는 영광을 보면서 그녀들은 기쁨을 감출 수가 없었다. 이 정도면 정말 엄청난 수확이었다.
안연의 말에 목진은 그저 웃기만 하였다. 어느샌가 영병의 수도 많이 줄어있었다.
쿵!
이때, 깊은 곳에서 폭발적인 영력의 파동이 흘러나왔다. 영력은 파문을 이루며 출렁거렸고 땅은 갈라지면서 균열이 생겼다.
“으악!”
영력의 파동과 함께 깊은 곳에서 비명이 들려왔고 또다시 난폭한 영력이 뿜어져 나왔다.
“우리도 가자.”
그제야 목진은 방향을 틀어 깊은 곳으로 향했다. 아마 지금쯤 세 무리는 영장과 격렬히 싸우고 있을 것이다.
그들이 이 구역의 영병을 많이 섬멸해서 안으로 들어가기란 훨씬 쉬웠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들은 깊숙한 곳에서 일어난 일들을 볼 수 있었다.
평지인 그곳엔 세 무리가 굉장한 영광에 둘러싸여 있었다. 그 영광들 사이에 일고여덟 줄기의 영광은 유난히 다른 영광들보다 컸고 흐릿했다.
수척은 돼 보이는 그 영광들은 보통 영병들보다 훨씬 튼실해 보였다. 그들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영력의 파동은 적어도 화천경 수준이었다. 그중에서도 한 영광이 유독 단단했고 그 영력의 파동은 화천경 중기 정도였다.
“일곱 줄기의 화천경 초기와 한 줄기의 화천경 중기네.”
아무리 목진이어도 조금은 놀랄 수밖에 없었다. 이토록 깊은 곳에 이렇게 강력한 진용이 있을 줄 몰랐다. 어쩐지 세 무리가 쩔쩔매는 느낌이 들었다.
안연과 다른 이들도 영장의 강력함을 느꼈는지 안색이 어두워졌다.
“이젠 어떡하지?”
“일단 기다립시다.”
목진은 당장 나서서 도와줄 생각이 없어 보였다. 화청경 초기와 화천경 중기로 이뤄진 영장 진용을 그들이 나서서 상대한다고 해도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그런데 세 무리가 나서서 우선 그들을 상대해주니 목진에게는 좋은 일이었다.
함께 손을 잡고 나중에 나눌 생각이었는데 상대방이 그들을 미끼로 썼으니 목진도 굳이 그들을 도울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세 무리는 목진 일행이 왔다는 걸 눈치채고 조금은 안심했다. 그러나 목진 일행이 전혀 나설 기미가 보이지 않자 안색이 점차 어두워졌다. 자신들이 한 짓이 있으니 목진의 반감을 샀으리라 여긴 것이다.
“목진, 분명 손을 잡자고 약속했는데 왜 우리를 도와주지 않는 것이야!”
다들 침묵하고 있는 가운데 진붕이 이를 악물더니 뻔뻔스럽게 물었다.
진붕의 말에 다른 두 무리는 부끄러운지 얼굴을 붉혔다. 진붕처럼 뻔뻔스럽지 못한지라 그저 조용히 영장을 상대하는 데에만 집중했다.
“너희들이 먼저 우리를 배신해놓고 이제 와서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진붕의 말에 화가 난 안연은 날카로운 목소리로 호통쳤다. 모든 사람이 보는 앞에서 까발림을 당하니 아무리 진붕이어도 그 정도로 뻔뻔하지는 못했는지 이를 악물고 더는 도와달라는 말을 하지 못했다.
“우리가 지면 너희들끼리 이 영장을 상대할 수 있을 것 같아?”
진붕의 말에도 목진은 그저 웃기만 하고 신경 쓰지 않았다. 그저 조용히 그들이 영장의 손에 패하기만을 기다렸다.
쿵!
영력의 파동은 점차 난폭해졌고 영장의 공격도 더 매서워졌다. 영력이 휩쓸고 간 곳에는 사람들이 저멀리 떨어져 나가 있었다.
결국 세 무리의 대형은 영장의 공격에 처참히 무너졌다.
쾅!
화천경 중기 실력의 영장이 솟아오르더니 영력의 폭풍을 일으키며 진붕을 향해 돌진했다. 땅이 흔들리며 갈라지더니 진붕은 피를 토하며 멀리 나가 떨어졌다.
“물러나자!”
끝내 버티지 못한 진붕은 대원들을 향해 소리쳤다.
진붕의 말에 대원들은 급히 물러섰다. 그들도 영장을 상대할 수 없다는 걸 느낀 것이다.
진붕의 소대가 물러서자 다른 두 소대도 어쩔 수 없이 물러났다. 그러나 그들은 미련이 남았는지 자리를 뜨지 못했다.
“목진, 아까는 우리가 잘못했다. 그런데 아무리 너희들이라도 이 영장을 상대하기엔 힘들다. 우리랑 함께 손을 잡는 게 더 좋지 않겠느냐.”
진붕은 아쉬운지 포기하지 않고 전처럼 오만한 것이 아닌 훨씬 부드러워진 말투로 다시 목진에게 손을 잡자고 제안했다.
다른 두 소대는 여전히 아무 말도 없었으나 다들 진붕과 같은 생각이었다.
이에 목진은 차가운 눈으로 그들을 바라보더니 이내 냉소를 지으면서 말했다.
“누가 상대하기 힘들다고 했습니까?”
진붕 등은 목진의 말에 잠깐 어리둥절했다. 이내 진붕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다시 입을 열었다.
“영장을 상대할 수 있는 사람은 너희 둘뿐이다. 설마 둘이서 일곱 화천경 초기와 하나의 화천경 중기를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나?”
그의 말에는 비웃음이 한가득 담겨있었다. 낙리가 강하다는 건 이미 당해봐서 알고 있지만 그 정도의 실력일지라도 이 영장들을 상대하기엔 버거울 거라 여긴 것이다.
목진은 진붕의 말에 그를 힐끗 쳐다보고선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이내 영장에게 시선을 돌리더니 생각에 잠긴 듯했다.
이들이 쉬운 상대가 아닌 건 확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