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주재-202화 (201/1,000)

202화. 독점

“목진, 정말 우리끼리만 저 영장들을 상대하려고 하는 거야?”

안연은 조용히 목진에게 물었다. 여기까지 오면서 목진과 낙리가 놀라울 정도의 실력을 보여준 건 맞지만 영장들을 보니 걱정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걱정하지 마세요.”

목진은 미소를 지으면서 답하더니 낙리에게 물었다.

“잠깐 좀 막아줄 수 있겠어?”

“영진을 만들게?”

“역시 통했네.”

낙리의 물음에 목진이 엄지를 내밀면서 웃자 낙리는 부끄러운지 얼굴이 빨개졌다. 이런 상황에서도 저렇게 여유만만한 모습이라니.

“할 수 있지?”

목진의 말에 낙리가 싱긋 웃으면서 검을 뽑아 들고 목진의 앞에 나섰다. 그를 위해 모든 공격을 막아주겠다는 굳은 의지가 보였다.

그 모습에 목진도 함께 웃었다. 낙리만 옆에 있다면 목진은 항상 마음이 놓였다. 목진은 모든 방어를 내려놓을 만큼 그녀를 절대적으로 믿기 때문이다.

목진은 다른 세 무리에게 경고하듯 차가운 눈으로 그들을 훑으며 천천히 두 눈을 감았다. 그는 곧장 두 손으로 결인을 만들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영인이 영력의 파동과 함께 손바닥에서 흘러나왔다.

“영인? 지금 영진을 만들려고 하는 거야?”

세 소대는 목진 주위에서 생기는 영인을 보면서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그제야 그들은 목진이 영진사이기도 했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수많은 영인이 목진의 주위에 응결됐고 굉장한 영력의 파동이 퍼져나갔다.

깊은 곳에 있던 영장도 그 영력의 파동을 느끼고 폭풍 같은 영력을 뿜으면서 그림자가 되어 땅을 가르며 목진을 공격했다.

낙리는 그들을 향해 다가오는 영장을 빤히 보면서 검을 들고 있는 손에 더 힘을 주었다. 뒤로 물러서기는커녕 안연 등의 걱정스러운 시선 속에서 낙리는 한 걸음 더 나아갔다.

“혼자서 저렇게 많은 영장을 막아 나선다고?”

진붕 등은 낙리의 모습에 집중했다. 혼자서 하나의 화천경 중기와 7개의 화천경 초기인 영장을 상대하려면 적어도 화천경 후기의 실력은 되어야 했다. 정말 저 어여쁜 소녀가 그렇게 놀라운 실력을 갖췄단 말인가?

슝!

그들의 놀라움과 의아함을 뒤로한 채 낙리는 검을 들더니 힘있게 내리찍었다.

우웅!

검에서 흘러나오는 빛은 어둠을 가르는 아침 햇살처럼 반짝이면서 매섭게 영장을 향해 날아갔다.

쾅!

이에 땅은 크게 갈라졌고 영장들은 낙리의 검기에 밀려 뒤로 수백 척 물러났다. 화천경 중기의 영장을 제외한 기타 영장은 뿜어져 나오는 빛마저 어두워진 것 같았다.

낙리의 공격이 먹힌 것이다.

“말도 안 돼!”

그녀를 지켜보던 사람들은 낙리의 실력에 놀랐는지 눈이 휘둥그레졌다. 어떻게 저리 강할 수 있단 말인가?

우웅!

그러나 영장들은 고통을 전혀 느끼지 않았고 낙리의 공격에 바로 다시 반격했다. 낙리는 다시 검을 들어 휘둘렀고 검에서 흘러나오는 검기는 거대한 장벽이 되어 영장들이 아무리 공격해도 끄떡없었다.

낙리가 영장들을 막아주는 동안 목진은 수백 개의 영인을 응결했다. 이내 손가락을 튕기더니 영인들이 하늘로 솟아올라 녹아들었다.

영력이 파문을 이루어 출렁거렸고 서로 엇갈리고 교차하면서 매우 복잡한 광진을 만들었다.

광진은 마치 거대한 흑련과도 같았고 난폭한 영력의 파동이 하늘에서 퍼져 나왔다.

“저게 바로 이현통의 공격을 막았던 영진인가?”

안연 등은 거대한 흑련 영진을 보면서 눈을 반짝였다. 목진과 이현통이 대결할 때 그녀들도 그 자리에 있었기 때문에 목진이 흑련 영진으로 이현통을 상대하는 걸 두 눈으로 똑똑히 봤었다.

영장들은 하늘 위에서 강력한 영력을 뿜어내는 영진을 느끼자 더 거세게 공격했고 낙리는 점점 뒤로 물러났다.

그런데도 낙리는 전혀 동요하지 않았고 점점 가까이 다가오는 영장을 보면서 검을 들고 공격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이제 됐어.”

이때, 뒤에서 목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낙리는 미소를 짓더니 천천히 검을 들고 있는 손에서 힘을 뺐다.

목진은 하늘 위로 올라가 어딘가 초조해 보이는 영장들을 보면서 갑자기 수인을 바꾸더니 큰소리로 외쳤다.

“요련도영진!”

목진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거대한 흑련 영진이 서서히 움직이더니 영력의 광파를 내뿜었다. 이에 공기도 뒤틀리는 것만 같았다.

이때, 여덟 개의 영장이 갑자기 하늘로 솟아올랐고 영진을 향해 돌진했다. 지능이 없는 영장이지만 본능적으로 영진이 위협적인 걸 느낀 듯했다.

목진은 그저 조용히 공격해오는 영장을 바라보았고 이내 손가락을 가볍게 튕기자 흑련이 피어나면서 굉장한 영력이 흑련의 중심에 모여들었다.

최대치로 영력이 모이자 흑련이 갑자기 부르르 떨더니 검은 빛줄기가 중심에서 솟아올랐다. 하늘을 뚫을 듯한 검은 빛줄기는 그대로 공격해오는 영장을 향해 돌진했다.

쿵!

그들을 뚫고 바닥으로 떨어진 빛줄기에 산은 뒤흔들리는 것만 같았고 갈라진 땅은 먼 곳에서부터 이어져 온 골짜기와도 같았다.

이를 지켜보던 세 무리의 사람들은 놀라운 파동에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빛줄기가 떨어진 곳에 백 척은 돼 보이는 큰 구멍이 생겼는데 어찌나 깊은지 바닥이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큰 구멍 위에는 여덟 개의 영장 중에 하나의 영장만 남아있었다. 남은 화천경 초기의 영장은 한 방으로 전부 죽었고 일곱 줄기의 붉은색 영광으로 변해 마치 타오르는 불꽃처럼 공중에 떠 있었다.

그것이 바로 영장의 영광이었다.

불처럼 타오르는 영광을 보면서 세 무리의 사람들은 눈을 반짝였다. 일곱 개의 영광이 담고 있는 영력은 여기에 있는 모든 영장보다도 강했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저도 모르게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 그러나 이내 하늘 위에서 느껴지는 차가운 시선에 정신을 차렸다.

목진은 아무런 표정 변화 없이 그들을 바라봤고 손을 휘두르자 수백 개의 영인이 주위에 나타났다.

지금 목진의 실력으로 4급 영진을 만드는 것은 식은 죽 먹기였다.

혹시라도 저들이 주제도 모르고 덤빈다면 제대로 혼내주리라 생각했다.

그들은 목진이 만들어낸 영인을 보면서 다시 뒤로 물러났다. 목진의 강대한 영진을 받아낼 자신이 없었다. 또한, 여덟 개의 영장을 아무렇지 않게 막을 수 있는 낙리까지 있으니 더욱 나서지 못했다.

그들은 서로 눈을 마주치면서 씁쓸한 웃음을 지었다. 목진이 이렇게 강할 줄 알았으면 수를 쓰지 않고 그와 손을 잡았을 것이다. 그러면 조금이라도 나눌 수 있지 않았을까.

그러나 이미 목진의 반감을 산 그들은 그 무엇도 얻을 수 없었다.

목진은 이내 유일하게 남아있는 영장에게 시선을 돌렸다. 화천경 중기의 실력을 지녔기 때문에 목진의 공격을 받아낼 수 있었지만 심한 타격을 받은 건 분명했다.

우웅!

공중에 떠 있던 영장의 몸에서 갑자기 소리가 흘러나오더니 불처럼 타오르던 일곱 개의 영광이 영장의 몸으로 향했다.

영장이 일곱 개의 영광을 전부 흡수한 것이다.

일곱 개의 영광이 영장의 몸에 흘러 들어가자 매우 난폭한 영력의 파동이 영장의 몸에서 뿜어져 나왔다. 이에 천 척 내에 있던 거대한 바위들이 쿵 소리와 함께 죄다 산산조각이 나면서 가루가 되었다.

“영장의 실력이 갑자기 늘고 있어!”

안연은 놀란 목소리로 말했다. 영광을 다 흡수한 영장은 화천경 후기의 실력으로 변하고 있었다.

목진은 그 모습에 점점 얼굴이 어두워졌다. 그때 앞에 있던 낙리가 검을 뽑아 들고 날아올랐다.

웅!

땅을 뒤흔드는 검의 소리와 함께 놀라운 빛이 하늘을 갈랐다. 먼 곳의 산봉우리가 잘려나갔고 잘려나간 부분은 거울처럼 반들거렸다.

낙리는 어느새 영장 뒤에 와있었다. 이내 검을 칼집에 넣는 소리와 함께 갑자기 실력이 폭등하던 영장의 몸이 폭발하더니 여덟 줄기의 영광이 솟아올랐다.

이에 낙리가 손을 휘젓자 여덟 줄기의 영광이 그녀의 손에 들어왔다.

낙리는 단 한 번의 공격으로 화천경 후기에 근접한 영장을 순식간에 없애버렸다.

어느새 매서운 검기는 사라지고 없었다. 먼 곳에 잘려나간 산봉우리는 낙리의 공격이 얼마나 강력했는지 여실히 보여주었다.

이를 지켜보던 세 무리, 안연뿐만 아니라 목진도 놀라운 눈으로 공중에 뜬 낙리를 바라보았다.

검의 위력이 매우 강하고 빨라 다들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제대로 보지 못했다. 영광을 흡수하며 화천경 후기를 뚫고 있던 영장이 순식간에 죽었다.

무서운 공격이었다.

목진은 그런 낙리를 보면서 내심 감탄했다. 역시 낙신족이 점찍어둔 천재라고 생각했다. 낙신족이 그녀에게 모든 희망을 건 데는 다 이유가 있었다.

세 무리는 얼굴이 하얗게 질린 채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놀랍고 두려운 눈으로 낙리를 바라보았다. 목진 옆에 조용히 서 있던 소녀가 사실 가장 두려운 존재였다는 걸 지금 깨달았다.

영장의 영광이 탐났던 아까와는 달리 지금은 그 어떠한 욕심도 낼 수 없었다. 목진과 낙리가 힘을 합치면 충분히 그들을 이길 수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서로 눈을 마주치더니 씁쓸한 웃음을 짓고선 조용히 물러났다. 여기에 남이 있어봤자 좋을 게 없다는 걸 깨닫고는 어서 떠나는 게 좋겠다고 판단한 것이다.

목진은 그들이 떠나가는 걸 힐끗 보고선 이내 시선을 거두었다.

공중에서 내려온 낙리는 여덟 줄기의 영광을 목진에게 넘기고는 웃으면서 말했다.

“이거면 여기에 있는 모든 영병보다도 많을 거야.”

목진은 낙리의 손에서 한 줄기의 영광을 받았다. 붉은색 영광은 진짜 화염처럼 불타는 것 같았고 순수하고 강력한 영력의 파동이 안에서 흘러나왔다.

확실히 영병의 영광보다 훨씬 강력했다.

특히 화천경 중기 영장의 영광은 붉은색 사이에 미세하게 보랏빛이 돌았으며 다른 영광보다 촉촉한 느낌이 들었다. 이건 영력이 그만큼 다른 것보다 농후해서 그런 것이었다.

이 집결 장소에서 가장 큰 수확이라고 하면 아마 이 여덟 줄기의 영광일 것이다. 목진은 매우 만족한 눈으로 이를 보면서 오길 잘했다는 생각을 했다.

“이제 나눕시다.”

목진은 안연 등을 바라보더니 세 줄기의 영광을 꺼내서 그녀들에게 나눠주었다.

그들은 목진이 건넨 영광을 보면서 눈을 반짝였다. 그러나 안연은 이내 고개를 저으면서 말했다.

“우린 길을 안내했을 뿐 아무것도 한 게 없어. 영장의 영광은 됐고 괜찮다면 영병의 영광만 반 정도 가져도 될까?”

그녀들 역시 영장의 영광이 탐났지만 목진과 낙리가 다 처리했기 때문에 영장의 영광을 받으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안연의 단호한 태도에 목진도 더는 권하지 않았다.

“영병들의 영광은 다 줄 테니 거절하지 마시고 선배들끼리 나누세요. 우리도 영광계는 처음인지라 잘 몰라서 선배들의 도움이 필요해요.”

목진의 말에 안연은 잠깐 머뭇거리다 팔백 줄기 영병의 영광을 받았다. 목진이 주려 했던 세 줄기의 영광보다는 못하지만 그래도 없는 것보다는 나았다.

안연 옆에 있던 일행들은 목진이 이토록 호쾌한 인물인지 몰랐는지 기쁜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이제 그만 가죠. 여기에 더 남아있어 봤자 좋을 게 없네요.”

아직 소수의 영병이 돌아다니고 있긴 하지만 더는 죽일 생각이 없었다. 여덟 줄기의 영장 영광이 수천 명의 영병을 죽인 것과 마찬가지기 때문이다.

안연 등은 목진의 말에 동의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목진은 손을 휘두르면서 낙리와 함께 먼저 그곳을 떠났다.

그러나 얼마 가지 못하고 목진은 또 한 번 속도를 늦췄다. 이내 산비탈에 조용히 자리를 잡은 목진은 미간을 찌푸린 채 앞쪽에 있는 출구를 바라보았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