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3화. 대가
출구 앞에선 수십 명의 사람들이 신음하고 있었고 다들 맞아서 얼굴이 퍼렇게 되어있었다. 심지어 진붕 등 대장들도 초라하게 바닥에 엎드린 채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하여 앞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거대한 바위 위에 한 사람이 앉아있었고, 양쪽에는 두 사람이 서 있었다. 그들은 언월도(偃月刀)를 어깨에 얹은 채 진붕 등을 웃으면서 바라보고 있었다.
목진 일행이 나타나자 세 사람은 일제히 시선을 돌렸고 장난기 가득한 눈으로 그들을 바라보았다.
목진은 아무런 표정 변화 없이 그들을 바라보았다.
“삼도왕(三刀王)이다!”
안연은 언월도를 들고 있는 사람을 보더니 낯빛이 어두워져 외쳤다.
“삼도왕?”
안연의 말에 목진은 어리둥절했다. 북창령원에서 이와 같은 이름을 들어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왕씨 삼형제야. 첫째 왕통(王統), 둘째 왕뢰(王雷), 셋째 왕중(王重). 도법에 능통해서 삼도왕이라는 별명이 있어.”
안연은 진지한 얼굴로 말을 이어갔다.
“저들은 예전에 이현통한테 도전한 적이 있지만 실패했어. 한동안 조용하더니 듣기론 뇌역에서 수련했다고 하더라고. 1년 동안 누구도 저들의 실력을 본 적이 없어. 절대 무시할 수 없는 실력이야.”
이현통에게 도전했다는 말에 목진은 조금 의아했다. 자신들의 실력을 어느 정도 자신했기 때문에 이현통에게 도전했을 것이다.
“저 셋은 형제라 합이 매우 잘 맞아. 그 누구를 상대하든 셋이 함께 공격하기 때문에 상대하기 까다롭지. 아무래도 저들과 부딪히지 않는 게 좋을 거야.”
안연은 걱정이 됐다. 1년 동안이나 수련했으니 분명 실력이 많이 늘었을 것이다. 그들과 부딪히게 된다면 골치 아파질 것이다.
“일부러 우리를 겨냥할 수도 있죠.”
안연의 걱정에도 목진은 웃으면서 답했다. 목진이 먼저 시비를 걸지 않아도 상대가 시비를 걸지 않을 거라는 보장은 없었다. 누가 봐도 그들에겐 좋은 의도는 없어 보였고, 쉽게 피해갈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드디어 나왔네.”
그때 바위에 서 있던 검은 피부의 청년이 목진을 향해 웃으면서 말했다. 그는 언월도를 들썩이면서 목진에게 말했다.
“한참을 기다렸다.”
안연의 얼굴은 더욱더 어두워졌다. 역시 저들은 자신들을 기다리고 있던 게 분명했다.
“무슨 일이죠?”
“무슨 일은 없고, 여기가 우리 삼형제가 봐둔 곳인데 너희들이 이렇게 들쑤셔야 하겠나? 예의 없이.”
목진의 물음에 청년은 언월도로 옆에 있는 사람들을 가리키면서 다시 말을 이어갔다.
“얻은 영광을 전부 내놓는 건 어떨까? 그게 싫다면 이 녀석들처럼 될지도 몰라.”
목진은 그 청년을 빤히 바라보았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내 한 걸음 앞으로 다가섰고 이에 낙리도 웃으면서 그 뒤를 따랐다. 안연 등도 경계하면서 체내의 영력을 끌어올렸다.
“재밌네, 재밌군.”
목진의 움직임에 청년은 잠깐 놀란 듯했으나 이내 크게 웃으며 목진에게 말했다.
“우리 삼형제가 정말 오랫동안 수련만 했나 보네. 이렇게 말하는데도 두려워하지 않는 걸 보니.”
슝!
말이 끝나기 무섭게 청년은 언월도를 세워 차가운 눈으로 언월도를 휘둘렀다.
쿵!
이에 앞쪽 땅이 순식간에 갈라졌고 검기는 그대로 번개처럼 목진을 향해 돌진했다.
점점 가까워지는 검기를 보면서 목진은 있는 힘껏 발을 굴렀다.
흑염이 불타오르는 영력이 순간 목진의 체내에서 흘러나왔고 그대로 언월도의 검기와 부딪혔다.
쿵! 하는 소리와 함께 땅이 흔들렸고, 흑염은 매서운 언월도의 공격을 막았다.
“왕통, 지금 뭐 하는 짓이야!”
안연은 상대의 움직임이 화가 나 호통쳤다.
이때, 바위에 앉아있던 청년이 천천히 고개를 들어 목진을 바라보더니 웃으면서 말했다.
“역시 이현통의 공격을 막아낸 사람답네.”
그 역시 목진에 대해 들은 바가 있는 것 같았다.
“너를 다치게 할 생각은 없다. 또한 영광을 내놓지 않아도 괜찮다.”
왕통은 목진을 바라보더니 천천히 고개를 낙리 쪽으로 돌리고선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대신, 저 친구를 우리에게 넘겨. 걱정은 하지 마. 어떻게 해볼 생각이 아니라 이현통이 저 친구를 좋아한다고 들어서 우리가 좀 데려가야겠다.”
왕통의 말에 안연은 낯빛이 어두워졌다. 그러나 그녀는 자신보다 점점 더 어두워지는 목진의 얼굴을 보았다. 그가 내뿜는 냉기가 어찌나 차가운지 보는 사람이 다 두려움을 느낄 정도였다.
안연 일행은 아무 말도 없는 목진을 바라보면서 어딘가 모르게 소름이 돋았다. 진붕 등이 수를 쓸 때도 신경 쓰지 않던 목진이 정말 화가 난 것 같았기 때문이다.
왕씨 삼형제는 건드리지 말아야 할 것을 건드렸다.
거대한 바위에 있던 세 사람은 얼굴이 점점 어두워지는 목진을 보면서 덩달아 진지해졌다.
왕통은 바위에 앉아 미간을 찌푸린 채 목진을 바라보았다. 그의 말 한마디에 저토록 변할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그러니 이현통을 이기지 못하지.”
목진은 고개를 들어 왕씨 삼형제를 바라보며 조롱이 가득 담긴 말투로 말을 이어갔다.
“실력도 없는데 야망만 있으니 이현통도 당신네들을 상대로 생각하지 않는 것 같네요.”
목진의 말에 왕통 삼형제는 낯빛이 급격히 어두워져서는 차가운 눈빛으로 목진을 쏘아보았다. 목진의 말이 정곡을 찔렀기 때문이다.
삼형제가 막 북창령원에 들어섰을 때 자신들이 잘난 줄 알고 북창령원에서 내로라하는 인물인 이현통에게 도전장을 내밀었지만 결국 참패를 당했다.
그때의 이현통은 승자의 기쁨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이 그저 담담한 눈으로 그들을 바라보고선 떠났었다.
담담했던 이현통의 눈빛이 더욱더 그들을 자극했다. 그때부터 그들은 수련에만 매달렸고 이제는 실력이 훨씬 강해져 천방 10위도 돌파할 수 있을 정도였다. 다시 이현통을 만나면 이길 수 있을 거라 여겼다.
“죽고 싶어?”
가장 난폭한 성격을 지닌 왕뢰가 매서운 눈으로 목진을 바라보며 호통쳤다.
“준 화천경 신생 주제에 감히 우리 삼형제 앞에서 까불어? 이현통의 공격을 받아냈다고 네가 아주 대단한 사람인 줄 아는구나.”
왕뢰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왕중도 비아냥거렸다.
“내 말에 화가 난 모양이구나.”
왕통은 여전히 변함없는 표정으로 말을 이어갔다.
“뱉은 말에 상응한 대가를 치러야지. 과연 네가 그 대가를 치를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그때, 왕뢰가 날카로운 언월도를 들고선 놀라운 영력 파동을 내뿜으며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갔다.
“화천경 중기야!”
안연 등은 그제야 왜 저 삼형제가 저토록 기고만장한지 알 것 같았다. 그들의 실력이 이렇게 강해졌을 줄이야!
세 명 다 화천경 중기에 서로 합까지 잘 맞으니 화천경 후기의 실력자와 겨룰 수 있는 실력이었다.
“영광과 저 친구만 내놓으면 그만두려고 했는데 아주 주제를 모르네!”
왕뢰는 언월도를 든 채 몸을 비틀더니 이내 번개처럼 공중에서 목진을 향해 돌진했다. 그는 언월도를 꽉 잡고 기합 소리와 함께 굉장한 검기를 내뿜었다.
“뇌명참(雷鳴斬)!”
그의 외침과 함께 번개와 같은 빛이 쏟아 내렸고 이는 목진을 에둘렀다.
이내 땅이 뒤흔들리면서 목진을 향해 내리찍었고 바닥은 거미줄처럼 갈라졌다.
“목진!”
안연 등은 정확하게 목진을 내리찍는 모습에 놀라서 소리를 질렀다.
그러나 옆에서 지켜보는 낙리는 아무런 반응도 없었다. 그녀는 조용히 손을 검에 올려놓고선 차가운 눈빛으로 왕통 등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나약하긴. 어떻게 이현통의 공격을 막았나 몰라.”
왕뢰는 공중에서 언월도를 든 채 기세등등하게 말했다. 연기가 자욱한 아래쪽을 바라보면서 조롱 가득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한 번의 공격도 막아내지 못하면서 어찌 그들을 도발했는지 알 수가 이해가 안 갔다.
“그래요?”
차가운 웃음소리가 갑자기 왕뢰의 뒤에서 들려오자 급격히 얼굴이 엄숙해지더니 언월도를 뒤로 향해 휘둘렀다.
검은색 영력에선 흑염이 들끓고 있었고 뜨거운 파동과 함께 언월도를 막아 나섰다.
챙!
금속이 부딪치는 소리와 함께 불꽃이 사방으로 튀었고 언월도를 잡은 손이 저릿했다. 뇌광으로 반짝였던 언월도가 검은색 영력의 공격에 어두워진 것 같았다.
그가 놀라움을 느끼기도 전에 목진은 그림자처럼 재빨리 움직였고 순식간에 그를 검은색 영력에 가두었다. 목진은 신체의 모든 부분을 이용해서 왕뢰를 공격했다.
갑작스러운 공격에 왕뢰는 어찌할 바를 몰랐다. 맞은 곳마다 뜨겁고 난폭한 영력이 스며들었고 체내의 경맥과 근육이 이로 인해 고통을 느꼈다.
밑에선 사람들이 이를 놀라운 눈으로 지켜보고 있었다. 기세등등하던 왕뢰의 기세가 순식간에 꺾였다.
준 화천경 밖에 안 되는 목진이 화천경 중기의 왕뢰를 이토록 완벽하게 견제할 줄은 몰랐다.
쿵!
공중에선 검은색 그림자와 번개처럼 반짝이는 그림자가 부딪혔다. 영력의 파동은 물결처럼 퍼져나갔고, 곧바로 반짝이는 그림자가 뒤로 튕겨 나갔다. 왕뢰는 믿을 수 없다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화천경 중기의 영력으로 고작 준 화천경의 목진을 이길 수 없다는 걸 어찌 믿을 수 있단 말인가?
잠깐 한눈을 판 사이 목진은 다시금 하늘 위로 날아올라 힘차게 주먹을 내리찍었다. 검은색 영력은 화산이 폭발하는 것만 같았고 산을 부술 만큼 강력했다.
왕뢰는 급히 언월도를 들어서 막았는데 이내 난폭하고 뜨거운 영력을 느낄 수 있었다. 그 영력은 사정없이 그의 몸속으로 들어갔고 언월도는 점점 빛을 잃어갔다.
왕뢰는 버티다 끝내 공중에서 땅으로 추락했다. 이에 땅이 뒤흔들리며 먼지가 피어올랐다. 푹 패인 구멍에 왕뢰가 힘없이 누운 채로 입가에 피를 머금고 있었다.
왕뢰는 “욱”하는 소리와 함께 피를 토해냈다. 그는 여전히 믿을 수 없다는 눈을 하고 있었다.
“이제 제가 어떻게 이현통의 공격을 막았는지 알 것 같습니까?”
목진의 목소리가 들려오자 왕뢰는 고개를 들어 앞에 있는 소년을 바라보았다. 그의 몸 주위에 은은한 은빛이 감도는 것 같았다.
뭔가를 눈치챈 왕뢰가 급히 피하려 했지만 왕뢰를 가만둘 생각이 없었던 목진은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갔다. 용의 울음이 들리는 것만 같더니 목진은 어느새 왕뢰 앞에 나타났다.
“네가 감히!”
왕통과 왕중이 목진의 모습에 호통치더니 함께 공격할 준비를 하였다. 이때, 맑은 검 소리와 함께 하늘과 땅이 뒤흔드는 검기가 그들에게 향했다.
날카로운 검기에 그들의 얼굴은 어두워졌고 곧바로 멀지 않은 곳에서 낙리가 그들을 빤히 바라보고 있는 것을 알아챘다. 장검이 이미 반쯤 나와 있었는데 그 검기는 바로 반쯤 나온 검에서 뿜어져 나오는 것이었다.
왕통과 왕중은 진중한 얼굴로 소녀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그들이 생각한 만큼 호락호락한 상대가 아니었다.
쿵!
묵직한 소리가 앞에서 들려왔고 왕뢰는 또다시 처참하게 튕겨 나갔다. 그 여파로 왕통과 왕중이 부딪힌 거대한 바위가 순식간에 부서졌다.
왕뢰는 피를 토하면서 천천히 자신을 향해 걸어오는 소년을 바라보았다. 아무래도 이번엔 사람을 잘못 건드린 것 같았다.
목진을 얕잡아본 적은 없지만 이토록 강하고 까다로운 상대일 줄은 몰랐다.
“고작 이 정도의 실력이라면 이현통은 찾아가지 않는 게 좋겠네요, 쪽팔리니까.”
목진은 담담하게 삼형제를 바라보면서 말을 이어갔다.
“진짜 실력을 보여주시죠. 뱉었던 말에 대한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건 당신들이 한 말이니 당신들이 제일 잘 알겠죠.”
목진의 말에 왕통이 주먹을 쥐자 손에 언월도가 나타났다. 언월도를 땅에 내리꽂자 강력한 빛이 하늘 위로 솟아올랐다.
“건방진 것. 내가 얕잡아 본 건 인정하지. 그렇지만 우리 삼형제가 졌다고 인정하기엔 네가 그럴만한 자격이 없다!”
왕통은 날카로운 눈빛을 하고선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갔다. 언월도의 빛이 점점 더 난폭해지면서 땅이 흔들렸다.
“우리 삼형제에게 어떤 대가를 치르게 할지 궁금하구나! 원래는 이현통을 위해서 준비한 건데 운 좋게 먼저 맛보게 되겠구나.”
왕통은 언월도를 꽉 잡았고 그 뒤로는 매서운 눈을 한 왕뢰와 왕중이 서 있었다. 그들이 들고 있는 언월도에서 뇌광이 반짝이고 있었고 은은한 하늘 사이에선 천둥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