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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주재-205화 (204/1,000)

205화. 아주 위험한 등급

한편, 왕통의 결단력에 이를 지켜보던 사람들은 이내 혀를 끌끌 찼다.

“대가를 치르지도 않았는데 그냥 가버리는 건 너무 무례한 행동 아닌가?”

목진은 도망치려는 왕통 삼형제를 바라보며 뇌명이 깃든 목소리로 무덤덤하게 말하고는 용 울음소리를 내며 어느샌가 눈앞에서 사라졌다.

“조심!”

속도가 더 빨라진 목진에 왕통은 안색이 순간 어두워졌다.

“조심해봐야 소용없습니다.”

왕통은 뒤쪽에서 들려오는 차가운 목소리에 바로 언월도를 휘둘렀다. 이에 목진은 손으로 칼을 잡고 상대방의 가슴을 있는 힘껏 찼다.

풉!

왕통은 피를 토하며 바닥에 꽂혔다.

“형!”

왕뢰 등이 황급히 외쳤다.

“그와 함께하고 싶으면 바로 보내주죠.”

목진은 이리 말하며 어느새 왕뢰의 뒤에 나타나 은월도를 휘둘렀다.

퍽!

왕뢰와 왕중은 맥없이 바닥에 떨어졌다.

한편, 진붕 등이 움푹 파인 바닥을 바라보니 목진 앞에서 우쭐거렸던 왕통 삼형제는 시들시들하여 피를 토하고 있었다.

고개를 들자 온몸에 뇌광을 감싼 채 허공에 떠 있던 소년이 서서히 내려왔다. 그새 뇌광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몸도 정상으로 돌아왔다.

그들은 왕통 형제처럼 목진을 건드리지 않은 걸 다행이라 여겼다. 멋도 모르고 덤볐다가는 왕통 삼형제처럼 될 것이다.

하늘에서 내려온 목진이 손을 가볍게 튕기자 수중의 언월도는 한 줄기 전광이 되어 왕통 삼형제의 앞쪽 땅에 깊숙이 꽂혔다.

“지금부터 당신들이 치를 대가에 대해 말해볼까요?”

사색이 된 왕통 삼형제는 담담하게 웃으며 말하는 목진이 소름이 끼치도록 무서웠다.

왕통 삼형제은 사색이 되어 무덤덤하게 자신을 바라보는 목진을 노려보았다. 그와의 대결을 되새기자 머리가 지끈거렸다.

세 사람이 힘을 합쳤는데도 실력이 준 화천경 밖에 안 되는 소년한테 패배했다는 것이 도무지 믿기지 않았다.

“어떻게 이럴 수 있지?”

뇌역에서 1년 동안 열심히 수련하여 이번 수렵전에서 크게 빛을 발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이토록 강력한 적수를 만날 줄은 몰랐다.

심지어 그 사람이 북창령원에 들어온 지 반년도 되지 않은 신생에다 이 정도라니 그는 수많은 고참보다 훨씬 나을 것이다.

녀석은 분명 천방 5위권에 들 실력자로 괴물이었다!

이러한 생각에 왕통 삼형제는 시무룩해졌다. 자신을 천재라고 여겨 오기가 넘쳤던 이들은 목진이나 이현통과 비교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원하는 게 뭐야?”

삼형제 중 대장인 왕통이 곧바로 정신을 차리고 이를 악물며 목진을 바라봤다.

“내가 이곳에서 당신들을 죽일 수는 없지만 죽지 않을 만큼 때려 영광계에서 내쫓을 수는 있어요. 그리되면 당신들은 영광 관정의 기회를 놓치겠지요?”

씨익 웃으며 앞쪽 거대한 암석 위에 앉은 목진의 말에 왕통 삼형제는 안색이 어두워졌다. 이들이 수렵전에서 실력을 드러낸 이유는 영광 관정이 목표였기 때문이었다.

그 세례를 받으면 실력이 한 층 더 올라 북창령원에서 명성이 자자한 인물들을 따라잡기 더 수월해질 거라 여겼다. 그런데 목진의 손에 내쳐지면 그 엄청난 기회를 잃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내 마음을 움직일만한 무언가를 제시해보세요. 대신 마음에 들지 않으면…….”

목진은 히쭉 웃으며 왕통 삼형제를 훑어봤다.

“우리가 저 사람들한테서 빼앗은 수천 갈래의 영광을 줄게.”

왕통이 이를 악물고 묻는 말에 이쪽을 향하던 진붕 등은 화가 치밀어 올랐으나 자신들은 상대가 되지 않아 꾹 참았다.

그런데 묵묵히 손을 내미는 목진은 썩 마음에 들어 보이지 않았다.

이때, 왕통의 손에 사람 머리만큼 커다란 수정 구슬이 나타났다. 투명한 구슬은 붉은빛을 발산하여 들끓는 태양처럼 보였고 그 속에 수천 갈래의 영광이 깃들어있어 그윽한 영력 파동이 스며져 나왔다.

수정구는 원래 진붕 등의 물건이었다. 그러나 왕통 삼형제와 함께 자신한테 꼼수를 부렸던 녀석들한테 호감이 없었던 목진은 진붕한테 이를 돌려줄 생각이 전혀 없었다.

이에 진붕 등은 언짢았으나 감히 입을 열지 못했다. 이는 엄연히 목진의 전리품이었다.

“이것으로 부족합니다.”

목진은 수천 갈래의 영광을 받고 무덤덤하게 왕통에게 눈길을 돌렸다.

“영광까지 줬는데 욕심이 너무 과한 것 아닌가?”

왕통 삼형제가 이글거리는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며 묻자 윙 하는 소리와 함께 목진은 언월도를 거머쥐고 휘둘렀다. 그러자 그들 앞쪽 바닥은 바로 움푹 파였다.

목진의 한기 어린 눈빛에 왕통 삼형제는 흠칫하여 서로 눈을 마주치더니 이내 한숨을 쉬었다. 그럴싸한 물건을 내놓지 못하면 무사히 빠져나가기가 어렵다는 느낌이 확 들었다.

“우리한테 집결 장소에 관한 정보가 있다.”

“일반 집결 장소라면 말도 꺼내지 마세요.”

목진은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말했다.

“내가 말한 곳은 아주 위험한 등급으로 선정된 곳이다.”

왕통이 발끈하며 말했다.

“아주 위험한 등급의 집결 장소?”

옆에 서 있던 안연 등은 화들짝 놀라 물었다.

“정녕 그런 곳을 안단 말입니까?”

목진도 놀라긴 마찬가지였다. 이곳 영광계의 집결 장소에도 등급이 나눠져 있었고 지금 있는 곳은 보통 등급이었고, 그 위로 위험한 등급과 아주 위험한 등급이 있었다.

그중 위험한 등급에는 화천경 후기의 실력에 상당한 영장이 있고 규모가 작지 않으며 가장 위험한 등급에는 영왕(靈王)이 나타날 확률이 높았다.

영왕은 통천경의 실력에 육박하는 괴물로 수렵전에서 영왕을 사냥한 학생은 여태껏 없었다.

“꽤 유익한 정보인데 이를 내가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네요.”

목진은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영왕의 영광을 하나라도 얻으면 그야말로 완벽한데 이 또한 그만큼 능력이 따라야 했다. 목진은 비록 실력이 폭등했으나 통천경의 실력자와 상대하기에는 버거웠다.

“겁쟁이네. 그래서야 수렵전에서 실력을 뽐낼 수 있을 것 같나?”

왕뢰가 피식 웃으며 물었다.

이에 목진은 그를 째려보더니 아무렇지 않은 듯 언월도 칼날로 왕뢰의 목을 겨눴다.

“아주 위험한 등급의 집결 장소에 대해 자세히 말해보시죠. 당신들 실력으로는 절대 불가능한 곳일 것 같은데 이 말을 꺼냈다는 건 뭔가 믿는 구석이 있다는 것 아닙니까?”

목진은 왕통한테 눈길을 돌렸다.

“영광계에 아주 위험한 등급의 집결 장소는 열 군데를 넘지 않고 그토록 위험한 곳에 갈 학생은 얼마 되지 않는다.”

왕통은 목진의 예리함에 놀라 입가를 파르르 떨며 잠시 고민하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한편, 목진은 고개를 끄덕이며 왕통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심창생이나 이현통이라도 통천경 실력의 영왕을 상대하기에는 버거울 것인데 일반 학생은 더 말할 나위 없었다.

그런데 이로 인해 영왕들의 실력은 점차 강해져 학생들의 실력이 아무리 일취월장해도 감히 그곳에 엄두도 내지 못했다.

“다만 우리가 언급한 집결 장소는 이런 곳이 아니다. 아주 위험한 집결 장소로 선정된 지 한 해도 안 되었거든.”

왕통은 입맛을 다시며 말을 이어갔다.

“그곳의 영왕은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았어.”

“새로 탄생한 영왕이란 말입니까?”

안연 등은 순간 눈이 휘둥그레졌다. 이것이야말로 엄청난 정보였다. 오래된 영왕을 상대하기는 버거워도 갓 태어난 영왕이라면 가능성이 컸다.

이 사실이 알려지면 얼마나 많은 사람이 그곳에 몰려들지는 모르는 일이었다. 영왕급 영광을 위해서라면 그깟 위험 부담은 충분히 짊어질 수 있었다.

목진은 그제야 왕통 삼 형제의 의도를 파악했다. 비록 이들 실력으로 갓 탄생한 영왕을 잡기엔 역부족이었지만 희망이 전혀 없지는 않았다.

“이 사실을 아는 사람이 얼마나 되죠?”

목진의 질문에 왕통은 인상을 찌푸리며 답했다.

“그거야 나도 모르지. 우리도 북창령원 영치전에서 거금을 들여 정보를 샀는데 이를 구매할 사람이 없진 않을 거다.”

“그럼 당신만 알고 있다는 건 아니네요?”

이에 왕통이 고개를 끄덕였다.

“영광계에 독점이란 없다. 이는 학생들의 경쟁을 부추기는 북창령원의 의도와 어긋나니까 그런 생각은 하지 않은 게 좋을 것이다.”

“그럼 그곳이 어딘지 알려주세요.”

목진이 피식 웃으며 하는 말에 왕통은 손을 파르르 떨며 빨간색 족자 하나를 건넸다. 그 속에는 복잡한 노선도가 그려져 있었는데 서북 위치에 선홍색으로 표기되어있는 곳에 ‘아주 위험’이라고 적혀있었다.

왕통 삼형제는 이런 물건을 가짜로 만들 위인이 아니었고 북창령원의 정보에 착오가 없을 거라 여긴 목진은 바로 족자를 계자탁에 넣었다.

“고맙네요.”

목진은 방긋 웃으며 언월도를 왕통 삼형제한테 내던지고 떠나려고 하였다.

“잠시만!”

왕통은 떠나려는 목진을 잡고 말했다.

“왜 부르셨죠? 불만이라도 있습니까?”

목진이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묻는 말에 왕통은 황급히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답했다.

“어차피 목적지가 같은데 협력하는 게 어떤가? 정보는 우리만 아는 것도 아니니 다른 실력파 학생들이 우리와 같은 곳을 노리면 힘을 합치는 편이 나을 것 같은데. 그리고 우리한테 너무 적의를 품지 마라. 같은 북창령원 학생들과 경쟁하려면 계략 정도는 꾸밀 수 있을 거 아닌가? 그렇다고 해서는 안 될 일을 하진 않는다. 그리고 그곳을 정복하면 영광 분배는 다시 의논해보면 되고.”

왕통의 말에 그 뒤에 서 있던 나머지 형제들이 언짢은 듯 입을 삐쭉 내밀었지만 고개를 푹 숙이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목진은 진지하게 자신을 바라보는 왕통을 보며 한참 고민하다가 끝내 고개를 끄덕였다. 이들이 방해만 하지 않으면 실력이 괜찮은 조력자 세 명을 얻은 거나 마찬가지란 생각이 들었다.

“협력은 하겠지만 지금부터 전부 내 말을 따라야 합니다. 이 조건을 받아들이기 어려우면 떠나도 좋습니다. 그리고 바닥을 보이지는 마세요. 순수하게 풀어주는 선의는 오늘이 마지막입니다.”

목진은 말을 마친 뒤 낙리, 안연 등에게 손을 휘두르고 떠났다. 이에 왕통 삼형제는 서로 마주 보며 쓸쓸하게 웃고선 그 뒤를 따랐다.

왕통 삼형제의 합세로 목진 등에게 힘을 실어준 것은 사실이었지만 그들은 목진을 대장이 아닌 그저 순수한 협력 관계라고 생각했다.

목진도 이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그 또한 이들이 고분고분 말을 들을 거란 생각을 하지 않았고 필요할 때 힘만 보태어줄 수 있는 것으로 만족했다.

서로 입장이 명확한 이들은 사이좋게 정보를 공유하여 집결 장소를 찾아가 영광을 모았다.

그러다 왕통 삼형제가 가끔씩 사라질 때가 있었는데 이는 목진에게 알리지 않은 집결 장소에 몰래 다녀온 것이었다. 돌아온 이들의 모양새는 늘 볼품 없어도 영광을 얻어 잔뜩 신나 보였다.

이에 목진은 조금 언짢았지만 그들과 위험한 등급으로 책정된 집결 장소 때문에 잠깐 힘을 합친 것이라 모든 정보를 공유하라고 강요할 수도 없었다. 서로 방해만 하지 않으면 그만이었다.

동행하는 동안 그들은 그럭저럭 잘 지냈다. 왕통 삼형제도 목진의 손에 패배했던 안 좋은 기억을 내려놓고 대화를 나누어 어색하지 않은 사이가 되었다.

목진 등은 지도에 표기된 위험한 구역을 향해 부단히 나아갔다. 지난 이틀간 영광계도 점차 북적북적해졌고 가는 길목에서 사람들이 짝을 지어 집결 장소를 찾아다니는 것을 종종 볼 수 있었다.

이제야 수렵전은 비로소 흥미진진한 단계에 진입했다.

영광계에 깊숙이 들어갈수록 불가피한 마찰이 점점 많아졌고, 실력을 감췄던 학생들도 속속 진정한 실력을 뽐내며 그 빛을 발했다.

그래서 화천경 초기의 실력으로 천방 20위에 들기란 식은 죽 먹기였던 전과 달리 지금은 제아무리 화천경 중기의 실력자라도 어려운 일이 되었다.

목진도 이러한 사실에 조금 놀랐다. 수렵전은 북창령원에서 열리는 활동 중 가장 인기가 많았는데 새로 이름을 알린 실력자들이 북창령원을 발칵 뒤집어놓곤 했다.

그런데 이 또한 시작에 불과했다.

날이 거듭될수록 숨겨왔던 실력을 드러내는 사람은 점차 많아졌고 그들의 폭동에 천방 순위권에 들었던 사람들이 제자리를 지킬 수 있을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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