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8화. 도착
목진의 태도에 모풍양은 피식 웃더니 한기 어린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며 방대한 영력을 끌어올렸다.
쿵!
모풍양은 쏜살같이 허공에 날아올라 손을 휘둘렀는데 이는 거대한 영력 장인이 되어 목진 등을 향했다.
목진도 바로 멈춰서서 흑염이 타오르는 영력을 주먹에 실어 휘둘렀다.
크으으!
목진의 뒤쪽 하늘에 별이 반짝이더니 백호가 걸어 나와 울부짖었고 솟구치는 살육의 힘은 한 갈래의 백광 기(氣)의 회오리가 되어 거대한 영력 장인과 부딪쳤다.
쿵!
난폭한 영력 파동이 하늘에 펴져 돌풍을 일으키더니 구름마저 뿔뿔이 흩어졌다.
영력 충격은 한참이 지나서야 서서히 사라졌고 하늘도 원래대로 돌아왔다.
한편, 사람들은 화천경 후기 모풍양의 공격을 받아낸 목진을 신기하게 바라봤다. 화천경 중기의 실력자도 순식간에 튕겨 나갈 모풍양의 공격에 맞선 목진은 전혀 뒤처지지 않았으니, 이현통과 대결할 때보다 실력이 현저하게 높아졌다.
놀란 건 모풍양도 마찬가지였다. 준 화천경 밖에 안 되는 목진이 자신의 공격을 받아낼 줄은 몰랐다.
“역시 신생 1위야.”
그는 담담하게 웃으며 말했다.
“이름을 알리고 싶으면 천방 순위권에 든 사람을 찾아가요. 나 같은 신생과 싸웠다가 본전도 못 찾고 겨우 얻은 명예를 넘겨야 하는 수가 있어요.”
목진이 인상을 찌푸리며 모풍양을 바라봤다.
“우쭐대기는!”
서빈 등이 버럭 화를 내며 말했다. 그들은 신생 따위가 주제 파악도 못 한다고 여겼다.
그런데 모풍양은 가볍게 웃으며 목진을 바라봤다.
“자신감이 넘치는구나.”
“이 단기신석은 꿈도 꾸지 마세요. 대신 포기할 수 없으면 언제든지 찾아와요. 내 끝까지 상대해줄 테니.”
목진은 피식 웃더니 의미심장하게 모풍양을 바라보고 바로 낙리 등과 함께 떠났다.
“형님, 저 녀석을 이렇게 보낼 겁니까?”
서빈 등은 안색이 조금 어두워져 허공에서 내려온 모풍양에게 다가가 물었다. 그들은 모풍양이 직접 나서면 일이 성사될 줄 알았다.
“목진은 결코 호락호락한 상대가 아니야. 비록 준 화천경 밖에 안 되지만 상대하기 골치 아픈 존재라 건드리지 않는 것이 상책이야. 내일이면 그곳에 도착할 텐데 힘을 아껴둬야지.”
모풍양이 서빈 등을 힐끗 보며 답했다.
“그래도 어찌 형님의 말마저 무시하나요?”
서빈이 씩씩거리며 말했다. 신생한테 이런 취급을 당한 게 분한 모양이었다. 자신은 신생 시설에 잔뜩 주눅이 들어 선배와 눈조차 마주치지 못했는데 목진은 이와 정반대였다.
“걱정하지 마, 나 모풍양의 눈에 든 물건은 절대 순순히 내어주지 않아.”
모풍양은 씨익 웃더니 한기 어린 눈빛으로 목진이 떠난 방향을 바라봤다.
“저들이 이쪽으로 간다는 것은 우리와 목표가 같다는 뜻이니 분명 다시 만날 거다. 이제 청산과 합류하면 녀석의 숨통을 끊을 거야.”
“청산 형님도 오십니까?”
서빈은 순간 화색이 되어 물었다.
“아무리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은 영왕이라지만 우리가 상대하기엔 버거워. 대신 청산과 힘을 합치면 말이 달라지겠지.”
모풍양이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흑회에서 영왕을 죽일 수만 있다면 우리는 북창령원 수렵전에서 영왕을 죽인 유일무이한 세력이 될 겁니다. 그때가 되면 심판단과 현방 따위는 우리 발아래에 놓이겠지요.”
서빈 등은 잔뜩 흥분해 목진이 떠난 방향을 바라보며 말을 이어갔다.
“그때가 되면 녀석은 흑회에 들어오지 않은 것을 후회할 겁니다.”
이에 모풍양도 웃으며 생각했다.
‘목진, 나한테 우쭐댈만한 실력을 갖추고 있어야 할 거야. 안 그러면 내일 네 코를 납작하게 만들어줄 테니까!’
* * *
목진 등은 바로 주둔지를 떠났다.
“빌린 영광은 최대한 빨리 사냥해서 갚을게요.”
목진은 영장급 영광을 열 갈래밖에 사용하지 않은 수정 구슬을 왕통한테 돌려주며 말했다.
“천천히 갚아. 우린 너를 믿는다.”
웃으며 말하는 왕통의 눈빛에 변화가 생겼다. 자신마저도 모풍양 같은 인물 앞에서는 주눅 들기 마련인데 아무렇지 않게 상대하는 목진을 보니 조금 놀란 것이다.
“그럼 다음번엔 괜찮은 곳으로 안내 부탁합니다.”
목진이 피식 웃으며 말을 이어갔다.
그 말에 왕통 삼형제는 어색하게 웃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앞으로 몰래 나가는 일은 최대한 줄이기로 마음먹었다.
왕통과의 대화를 마친 목진이 뒤돌아보자 소녀는 흥미진진하게 검은색 돌덩이를 관찰하고 있었다.
“단기신석이 그렇게 대단해?”
목진은 아직도 믿지 않는 눈치였다. 아무리 괜찮은 물건이라도 영장급 영광 35갈래씩이나 줄 물건으로는 보이지 않았다.
“일반 단기신석이야 아무런 소용도 없지.”
낙리는 방긋 웃으며 검은색 돌덩이를 들어 올렸다.
“그런데 얘는 보통 물건이 아니야.”
“그래?”
목진은 내심 궁금했다.
그때 낙리가 수중의 검은색 낙신검으로 돌덩이를 사정없이 잘랐다.
퍽!
단단한 검은색 돌덩이에 조금씩 균열이 일더니 그 속에서 영롱한 빛이 흘러나왔다.
낙리의 말처럼 이것은 평범한 물건이 아니었다.
검은색 돌덩이에 검광이 스치자 점차 균열이 일며 눈부시고 영롱한 빛이 흘러나왔다.
이에 안연, 왕통 등도 하찮아 보이던 검은색 돌덩이 속이 이럴 줄은 몰랐는지 무척 흥미로워했다.
그러다 낙리가 돌덩이를 가볍게 털자 엄지손가락만큼 큰 결정체가 나타났다.
영롱한 결정체는 금강석처럼 반짝였고 내부에 액체 같은 것이 맴돌았다. 그 속에 엄청난 힘이 들어있었다.
“이건 무엇인가?”
왕통 등이 눈이 휘둥그레져 물었다.
“이건 단기신정이예요.”
낙리는 웃으며 말을 이어갔다.
“신기 제련에 필요한 재료로 매우 진귀해 북창령원의 영치전에도 없을 거예요.”
목진 등은 신기를 제련하는 데 사용하는 재료란 말에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이는 지존마저도 욕심낼만한 물건으로 이들은 한 번도 본 적 없었고 북창령원에도 있을지 모르는 일이었다.
“그런데 우리가 확보한 물건은 너무 작아 신기를 제련하기엔 턱없이 부족해. 물건이 조금만 컸어도 그 가치는 엄청났을 거야.”
낙리가 작은 목소리로 하는 말에 목진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신기를 제련하는 재료라면 누구라도 탐낼 것이다.
“좋은 거래였어.”
목진이 히쭉 웃으며 말했다.
낙리가 아니었으면 이 엄청난 물건을 놓칠뻔했다. 목진의 실력으로 돌덩이 속에 숨은 신정을 발견할 리가 없었고 북창령원에서도 이를 발견할 수 있는 사람은 낙리를 포함해 몇 명 없을 것이다.
낙리는 단기신정을 거두며 상긋 웃었다. 이 물건으로 낙신검의 봉인을 한 단계라도 풀면 그녀에게 막강한 힘을 실어주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그럼 갈까? 집결 장소에 가서 영광을 수집해야지. 지금의 우리는 거지나 다름없어.”
이틀 동안 수집한 영광중 거의 전부를 단기신정을 구하는 데 써버려 낙리는 목진에게 미안했다.
“그렇게 미안한 얼굴은 안 해도 돼.”
목진이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그는 낙리가 자신한테만큼은 선을 긋지 말았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낙리는 그제야 활짝 웃었는데 그 매혹적인 웃음에 옆에 있던 안연 등도 사르르 녹아내렸다.
“왕통 선배, 집결 장소를 찾는 일은 선배한테 맡길게요. 그리고 영광을 얻으면 반으로 나눕시다. 잘 부탁해요.”
정보를 잔뜩 지닌 왕통 삼형제가 순순히 집결 장소를 알려만 준다면 목진 등이 영광을 얻는 데는 아무런 문제도 없었다.
“이 구역에 위험한 등급의 집결 장소 한 군데가 있어. 다만 그곳에 화천경 후기 영장은 모르지만 화천경 중기의 영장은 충분할 거야. 상대하기 조금은 버거울지도 몰라.”
왕통이 정색하며 말했다.
“위험한 등급이라…….”
목진이 잠시 고민하는 찰나, 낙리가 먼저 웃으며 입을 열었다.
“그럼 그곳에 가야지.”
이에 목진은 흠칫하며 낙리를 바라보더니 이내 웃었다.
“우리 낙 여신께서 나서려고 그러나?”
낙리는 수렵장에 들어서부터 조용히 목진의 뒤만 따라다녔다. 그녀는 모든 일을 목진에게 맡기고 나서서 움직이지는 않았는데 지금은 그녀가 나서야 할 때라고 생각했다.
“나 때문에 빚까지 졌는데 빈둥빈둥 놀고만 있을 수는 없지.”
낙리가 생긋 웃으며 목진을 바라봤다.
“그럼 가자!”
목진이 호탕하게 웃으며 답했다. 낙리는 북창령원에 들어서부터 진정한 실력을 선보인 적이 거의 없지만 자신마저도 그녀의 상대가 안 될 거라 생각하고 있었다.
놀란 건 왕통 등도 마찬가지였다. 그들도 낙리의 실력을 잘 몰랐지만 목진의 말대로라면 절대 평범하지 않을 거라 여겼다.
다만 확인된 건 아무것도 없었다. 그들은 조금 의심스러웠지만 목진의 결정을 따르기로 하였다. 이런 일로 장난칠 목진이 아니었다.
그러나 이런 의심도 얼마 지나지 않아 바로 사라졌다.
커다란 산골짜기에서 낙리는 검은색 장검과 함께 하늘을 뒤흔들었던 놀라운 검기를 거두었다. 그녀 앞에는 천 장 정도로 움푹 파인 땅이 있었는데 매끈해 보이는 흔적은 산봉우리까지 닿아 산마저 반으로 갈라졌다.
그건 낙리가 검을 휘둘러 만들어낸 결과물로 화천경 중기의 영장 다섯이 반항할 시간도 없이 검은색 혜성 같은 검기에 숨졌다.
낙리의 검기는 너무 날카로웠다.
그때 다른 쪽에서 백호가 울부짖고 흑탑이 움직여 천지를 뒤흔들자 화천경 중기의 영장 넷이 갈기갈기 찢겼다. 곧 훤칠하게 생긴 소년 한 명이 그곳에 내려왔다.
“무서운 사람들일세…….”
왕통 등은 눈이 휘둥그레져 두 사람을 바라보더니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화천경 중기의 영장 아홉을 이렇게 쉽게 죽이다니, 왕통 삼형제였으면 벌써 허겁지겁 도망가고도 남았을 것이다.
하여 이들은 낙리를 납치할 생각을 했던 자신이 얼마나 멍청했는지 깨달았다. 만약 이들이 조금만 빨리 이 계획을 실행했다면 바닥에 난 엄청난 검의 흔적은 자신의 몸에 닿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화천경 후기의 영장이 없어 아쉽네.”
낙리는 아쉬운 듯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이곳도 나쁘진 않았지만 목진과 함께 나설 정도까지는 아니었다.
“화천경 중기의 영장이 열 명 가까이 있을 정도면 괜찮지. 왕통이 이번에는 제대로 알려줬네.”
이틀 동안 집결 장소를 거닐며 나설 필요성을 단 한 번도 못 느꼈던 목진은 꽤 만족스러운 눈치였다.
목진의 말에 왕통 삼형제가 어색하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
“걱정하지 마. 내일 그곳에 가면 아주 위험한 등급의 집결 장소가 어떤 곳인지 알게 될 거야. 그리고 일이 잘 풀려 우리가 영광을 얻는다면 사람들은 우리를 부러워하게 될 거야.”
그 말에 목진은 기대에 찬 눈빛으로 서북쪽을 바라봤다.
아주 위험한 등급의 집결 장소에는 과연 영왕이 존재할까?
통천경의 영왕은 얼마나 강력한 존재일까?
이러한 생각에 목진은 의지가 불타올랐다.
* * *
이튿날, 목진 등은 날이 밝지도 않았는데 벌써 채비를 하고 전속력으로 목적지로 향했다. 이 정도 속도라면 금방 위험한 등급의 집결 장소에 도착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른 시간에 떠난 것은 이들뿐만이 아니었다. 먼 곳에서 바람을 가르는 소리와 함께 은은하게 영력 파동이 느껴졌지만 거리가 너무 멀어 상대방의 실력이 어느 정도이고 몇 명 있는지는 알 수 없었다.
이 구역은 곧 떠들썩해질 것이다.
목진 등은 속도를 올렸고 한 시진쯤 지나자 단층이 생긴 평원에 도착했다. 깊이를 알 수 없는 단층 구역 뒤에는 빛의 세계가 펼쳐졌다.
영력이 모여 생긴 빛은 너무 눈이 부셔 하늘과 땅의 본연의 색마저 삼켜 버렸고, 멀리서 보면 그저 영광의 바다처럼 끝이 보이지 않았다.
목진 등은 눈이 휘둥그레져 영광의 바다를 바라봤는데 수많은 영병이 그 주위를 맴돌고 있었다.
이곳은 바로 영병의 왕국이었다!
목진은 그곳 깊숙한 곳에서 나는 두려운 파동이 느껴졌다. 역시 아주 위험한 집결 장소로 선정된 데는 다 이유가 있었다.
“참 무서운 곳이야.”
넋 놓고 바라만 보던 왕통 등은 바로 의지가 활활 타올랐다. 이곳의 영광을 최대한 많이 수집한다면 영광 관정의 효과는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좋을 것이었고, 잘만 하면 바로 화천경 후기가 될 수도 있었다!
한편, 다시 정신을 차린 목진은 바람을 가르는 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시간이 지나자 점차 사람들이 많이 몰려들었는데 살펴보니 누구 하나 호락호락한 상대가 아니었다. 하긴, 실력이 어느 정도 뒷받침해주지 않았더라면 애초 이곳에 올 생각도 하지 못했을 것이다.
영왕과의 싸움도 쉽지 않겠지만 경쟁자들을 따돌리는 것 또한 어려운 일로 아주 치열한 전쟁이 예상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