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9화. 집결
목진 일행은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큰 영병의 바다를 물끄러미 바라만 볼 뿐, 섣불리 발을 들이지는 않았다.
이곳 영병의 수는 엄청나 멋도 모르고 들어갔다가 영병의 바다에 순식간에 먹힐 수도 있었다. 이곳은 화천경 후기의 실력자들에게도 버거운 장소였다.
더구나 영병만 있는 것이 아니라 영장 여럿에 영왕까지 있을 수 있어 여태껏 봐왔던 집결 장소와 급이 달랐다.
아주 위험한 등급의 집결 장소는 역시 명불허전이었다.
왕통 등도 멍하니 눈 앞에 펼쳐진 광경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이런 등급의 집결 장소를 노리는 사람이 적은 데는 다 이유가 있었다. 가령 영왕이 없어도 영병과 영장만으로도 감히 덤빌 생각을 할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언제 들어갈까?”
왕통이 목진을 바라보며 물었다. 이 중에서 조금만 건져도 수확이 엄청날 것이다. 그리되면 영광 관정에도 큰 도움이 될 거란 생각에 왕통은 한시라도 빨리 들어가고 싶었다.
“일단 기다립시다.”
목진이 가볍게 웃으며 말을 이어갔다.
“실력이 부족한 우리가 함부로 들어갔다가 영왕을 만나기도 전에 영력을 전부 소진할 수도 있습니다.”
이에 왕통 등도 동의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리 탄생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영왕이라지만 섣불리 행동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었다.
한편, 목진이 고개를 들어보니 사람들이 무리를 지어 부단히 이곳에 다가와 이글거리는 눈으로 영병의 바다를 바라봤다.
이렇게 반 시진도 지나지 않아 이곳 하늘에는 사람들로 가득 찼고, 천 명도 넘는 이들이 영병과 영왕을 노렸다.
슉!
그때, 멀리서 갑자기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나더니 대량의 빛줄기가 날아왔다.
“모풍양 일행이야.”
어제 만났던 모풍양을 본 왕통 등은 바로 안색이 어두워졌다.
반면, 모풍양은 목진 일행을 발견하더니 그들이 이곳에 나타날 것을 짐작한 것처럼 담담하게 웃었다.
그런데 모풍양의 뒤에 서 있는 서빈 등은 잔뜩 인상을 찌푸린 채 눈을 부릅뜨고 목진 등을 노려봤다.
“우쭐대기는…….”
심기가 불편한 왕통이 말을 이어가려는데 먼 곳에서 또 한 갈래의 푸른빛이 서빈 무리의 앞쪽에 내려앉았다.
푸른빛이 가시고 나타난 사람은 푸른색 도포를 입은 평범한 청년이었다. 청년은 두 눈이 유난히 밝아 다들 감히 그와 눈을 마주치지 못했다. 그리고 그의 영력 파동과 함께 위압감이 주위에 퍼져 다들 저도 모르게 고개를 돌렸다.
목진 또한 인상을 조금 찌푸리며 청년을 바라봤다. 녀석한테서 위험한 냄새가 났다.
“조청삼이다…….”
왕통이 잔뜩 경계하며 말했다.
“공격 10번 만에 천방 7위였던 고연을 꺾은 조청삼이요?”
목진은 눈가가 파르르 떨렸다. 이 정도 기세라면 그럴 만하단 생각이 들었다.
“드디어 왔군.”
모풍양이 화색이 되어 건네는 말에 조청삼이 담담하게 웃으며 답했다.
“오는 길에 조금 일이 있어서 늦었네.”
말을 마친 조청삼은 멀리 떨어져 있는 영병의 바다를 바라보더니 물었다.
“저곳이 바로 아주 위험한 등급의 집결 장소라는 거지? 역시 놀랍군.”
조청삼은 주위를 쓰윽 훑다가 목진 일행에게 시선을 멈췄다.
“저 녀석이 바로 목진이라네. 어제 흑회에 가입하라고 말을 건넸는데 사정없이 거절하더군.”
모풍양이 무덤덤하게 말했다.
“청삼 형님, 저 녀석이 감히 풍양 형님의 말을 거역했다는 건 우리 흑회가 안중에도 없다는 것이지요.”
서빈이 씩씩거리며 말했다.
“실력이 좋으니 콧대가 높은 거지.”
조청삼은 무덤덤한 표정으로 말을 내뱉더니 모풍양한테 고개를 돌렸다.
“싸워는 봤나?”
이에 모풍양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준 화천경의 실력으로 내 공격을 받아냈다네. 신결을 수련한 것이 한몫했지만 실력도 만만치 않네.”
“기회가 되면 전력을 다해서 싸워보는 것도 나쁘진 않겠군.”
조청삼이 웃으며 하는 말에 모풍양은 다시금 고개를 끄덕였다.
이때, 다른 쪽에서 한 무리가 다가오더니 허공에 멈춰 섰다. 뒷짐을 진 채 서 있는 남자가 풍기는 영력 파동에 모풍양 등은 흠칫하였다.
“서황이군.”
조청삼은 가볍게 웃으며 서황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천방 7위가 된 그는 서황까지 잡으면 이현통, 학요 등과 이름을 나란히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저 사람도 왔네.”
목진도 의아하게 서황을 바라봤다. 이곳을 노리는 사람이 점차 많아졌다.
한편, 유명인사인 서황이 나타나자 사람들은 그와 모풍양 무리를 번갈아 바라봤다. 천방 순위권 앞쪽에 있는 사람을 꺾고 이름을 날기를 좋아하는 흑회의 특성을 잘 알고 있었다. 다음 목표는 천방 5위인 서황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서황과 조청삼이 싸우면 과연 누가 이길까?
다만, 서황은 사람들의 시선 따위에 신경 쓰지 않고 주위를 쓰윽 훑더니 바로 눈길을 거두었다.
이번에는 서청청도 동행하였는데 멀지 않은 곳에 있는 목진을 발견하고 바로 안색이 어두워졌다. 하지만 자신이 목진의 상대가 안 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어 더는 전처럼 함부로 나서지 않았다.
잇따라 북창령원에 이름을 어느 정도 알린 학생들이 속속 도착하였는데 서황보다는 못해도 실력은 괜찮았다.
사람이 점차 많이 모여 엄청난 영력 파동을 일으켰다.
“다들 조심해요. 안연 선배는 어느 정도 들어가면 먼저 빠져나와요.”
주위를 살피던 목진은 전쟁이 곧 시작될 것 같아 안연 등에게 당부의 말을 전했다.
“알겠어.”
안연 등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깊숙이 들어갈수록 화천경의 영장이 많아질 것이고 이는 안연 등이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이곳의 영광을 획득하면 영광 관정에는 문제 없을 거야!”
“돌격하라!”
안연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누군가의 말소리와 함께 사람들은 하나같이 방대한 영병의 바다로 몰려들었다.
그중 대부분은 영왕을 죽일 생각조차 하지 않았지만 영병의 수가 다른 곳보다 열 배나 많아 이곳에서 영병을 때려잡는 것만으로도 수확은 충분했다.
“우리도 움직이자. 목표는 영왕이라는 것을 명심하고 가장 깊숙한 곳을 향해 직진하자!”
조청삼은 이 구역에서 가장 깊숙한 곳을 바라보며 말했다. 영왕만을 목표로 한 그는 이번 기회에 영왕 포획에 성공하면 영광 관정을 받고 바로 통천경에 이를 수 있었다. 그리되면 심창생도 거뜬히 이길 수 있을 것이다.
슉!
조청삼은 바로 영병의 바다로 날아들었고 그 뒤로 모풍양 등이 따라붙었다.
“가자.”
서황은 앞장선 조청삼 무리를 무덤덤하게 바라보더니 아무렇지 않은 듯 사람들을 거느리고 떠났다.
끊이지 않은 바람을 가르는 소리와 함께 사람들은 벌레떼처럼 방대한 영병의 나라로 몰려들었다.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우리도 갑시다.”
이런 일에 앞장서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라 생각한 목진은 사람들이 전부 떠난 뒤에야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그는 수없이 많은 영병을 향해 먼저 달려나갔고 왕통 등도 바로 단층을 넘어 찬란한 영병의 바다로 날아갔다.
흑염이 타오르는 영력 기(氣)의 회오리가 방대한 영광의 바다를 가로질렀다. 이를 접한 영병은 순식간에 산산조각이 나며 한 갈래의 영광이 되었다.
슉!
이에 안연 등이 눈앞에 나타난 영광을 잽싸게 거뒀는데 영병이 또다시 이들을 삼킬 것처럼 밀려왔다.
하여 왕통 삼형제는 힘을 합쳐 언월도를 휘둘러 영병들 사이로 길을 텄고 목진 등은 그 사이로 잽싸게 빠져나갔다.
그러나 영병은 끝도 없이 나타났고 이들의 안색은 이내 어두워졌다. 이곳의 영병은 적어도 백만은 될 것 같았다.
영병이 지능이 없어서 다행이지 한꺼번에 달려들면 아무리 통천경의 강자라고 해도 바로 목숨을 잃을 것이다.
이들은 번갈아 가며 영병 무리를 물리쳐 영력 소모를 최소화하였다. 누군가 혼자서 이 일을 감당한다면 가장 깊숙한 곳에 도착하기도 전에 영력이 바닥날 것이다.
목진은 부단히 몰려드는 영병 무리를 물리치다가 고개를 들어 먼 곳을 바라보았다. 지극히 난폭한 영력 파동이 느껴지는 것으로 보아 곳곳에서 혈투가 벌어지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이들 덕분에 목진 등의 부담이 줄었다. 만약 이곳에 들어온 사람이 목진 일행뿐이었다면 가장 깊숙한 곳에 이르기 전에 지쳤을 것이다.
“흑회 사람들은 왜 저렇게 빨라?”
왕통의 말에 고개를 돌리니 먼 곳에서 한 무리가 파죽지세로 몰려드는 영병을 모조리 죽이고 있었다. 그 선두에는 조청삼과 모풍양이 있었고 사람수로나 실력으로나 무리 중에서 가장 실력이 좋았다.
그리고 바로 뒤에는 서황이 이끈 무리가 있었고 그 뒤로 실력이 괜찮은 무리가 영병을 물리치며 깊숙한 곳으로 향했다.
“조급해 마세요. 제아무리 깊숙한 곳에 먼저 도착해도 영왕을 상대하기란 절대 쉽지 않을 겁니다.”
목진은 태연하게 왕통 등에게 말했다. 지금 속도를 올려봐야 먼저 영왕이 있는 곳에 도착하는 것 외에 별다른 점은 없었다. 또한, 목진은 조청삼, 모풍양 등이 영왕을 물리칠 수 있을 거라 믿지 않았다.
“속도를 늦추지 말고 영력 소모를 최소한으로 줄여요. 지금부터 시작이에요.”
이에 왕통 등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자신을 향해 돌진하는 영병에 집중하였다.
이렇게 십 분 정도 지나자 이들은 드디어 이곳 집결 장소의 바깥쪽을 벗어났는데 잇따라 느껴지는 압력에 인상을 찌푸렸다.
이곳 영병 역시 지능은 없었지만 그 수가 너무 많아 형성된 위압감은 화천경 강자의 회심의 일격과 비슷해 상대하기가 쉽지 않았다. 하지만 번갈아 가며 영병을 물리치는 전술이 잘 통해 목진 등은 순조롭게 더 깊숙한 곳으로 들어갔다.
쿵!
목진이 주먹을 휘두르자 난폭한 영력이 기(氣)의 회오리를 이루어 수십 명의 영병을 물리쳤고 그곳에서 화염처럼 타오르는 영광이 솟아올랐다.
그런데 영병들을 물리친 목진은 오히려 인상을 찌푸렸다. 집결 장소의 중간 부분에 이르렀지만 아직도 영장을 하나도 마주치지 못했다.
일반 등급의 집결 장소에서도 이런 일은 없었다.
이에 목진은 고개를 들어 영광이 빗발치는 곳을 바라봤다. 너무 눈부셔 천지마저 구별하기 어려운 곳이 왠지 이상하게 느껴졌다.
그런데 목진은 이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이곳까지 왔는데 아무리 느낌이 안 좋아도 영왕을 직접 봐야 후회 없이 떠날 수 있을 것 같았다.
“속도를 끌어올립시다!”
목진은 다시 낙리, 왕통 등과 함께 전속력으로 가장 깊숙한 곳으로 향했다. 그런데 영장은 처음부터 없었던 것처럼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목진, 뭔가 이상해.”
왕통마저도 안색이 어두워져 말했다.
“영장이 왜 하나도 보이지 않을까?”
이에 목진은 자신과 멀리 떨어진 무리를 바라봤는데 그들도 이를 발견하고 전력을 다해 더 깊숙한 곳으로 향했다.
“이곳에서 가장 깊숙한 곳으로 가보면 알 수 있을 겁니다.”
목진은 잠시 망설이다가 다시 왕통 등과 함께 앞을 막는 영병들을 물리치며 전진하였다.
이렇게 십 분 정도 지나 목진 등은 드디어 무궁무진한 영병 무리를 뚫고 텅 빈 어딘가에 도착했다.
그들 뒤로 다른 무리도 도착했는데 영병들은 두려운 듯 공격을 멈추고 이곳에 발을 들이려 하지 않았다.
보아하니 깊숙한 곳에서 눈부신 영광이 빗발치며 매우 강력한 영력의 위압감이 퍼져 나와 영병들이 감히 가까이하지 못한 것이다.
그리고 그 위압감은 다름 아닌 영왕에게서 흘러나오는 것이었다.
뒤늦게 이곳에 도착한 사람들은 목진과 마찬가지로 어리둥절하여 주위를 살피다가 결국 가장 깊숙한 곳을 보고 시선을 멈췄다.
바로 영왕이 있는 곳이었다!
다들 그곳을 향해 돌진하였고 목진도 잔뜩 경계하며 그 뒤를 따랐다. 아주 위험한 등급으로 선정된 구역을 거닐다가 자칫 중상을 입어 영광계를 나갈 수도 있는 상황이라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