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0화. 영왕을 물리치다
반나절이 지나자 사람들은 점차 속도를 줄였고 두 눈이 휘둥그레져 앞쪽을 바라봤다.
그곳에서 눈부신 영광이 계속해서 흘러나왔고, 빛이 가장 눈부신 곳에서 백 장 정도의 커다란 누군가가 반짝이는 갑옷을 휘감고 조용히 서 있었다.
“저게 바로…… 영왕인가?”
목진 등은 커다란 뒷모습에서 무서운 영력 파동을 느꼈다.
이는 절대 화천경이 덤빌 수 있는 상대가 아니었으니, 이 정도 실력이라면 이 구역에서 영왕 외에는 없을 것이다.
“드디어 영왕을 직접 보는구나. 영왕은 저렇게 생겼구나…….”
왕통 등은 중얼거리더니 쓸쓸하게 웃으며 말을 이어갔다.
“그런데 너무 막강한 상대야.”
영왕한테서 느껴지는 영력 파동에 이들은 몸이 무거워졌고 자신과 영왕 사이의 실력 차이가 얼마나 큰지 실감하였다.
영왕은 무려 통천경의 실력을 지니고 있었다.
이곳에 몰려든 사람들이 한 명씩 영왕과 싸우면 그 누구도 상대가 되지 않을 거란 생각에 다들 물끄러미 영왕을 쳐다보기만 하고 아무도 섣불리 움직이지 못했다.
“여러분…….”
조청삼이 먼저 이곳의 고요함을 깨고 입을 열었다.
“다들 영왕의 실력을 느꼈으리라 믿습니다. 그러니 우리가 힘을 합쳐 영왕을 죽이는 건 어떻습니까? 그렇지 않으면 우리 전부 빈손으로 돌아가야 할 수도 있습니다.”
이에 누군가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들이 힘을 합치지 않으면 영왕을 상대하기란 불가능했는데 정반대라면 영왕을 없애는 것도 불가능한 일은 아닐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 영광은 어떻게 나눈단 말입니까?”
영왕의 영광은 한 갈래뿐인데 이곳에 모인 사람은 너무 많았다.
“아직은 이른 소리인 것 같은데 일단 영왕을 죽여 영광을 얻은 뒤에 의논하는 건 어떻습니까?”
조청삼이 담담하게 웃더니 서황을 향해 고개를 돌려 물었다.
“서형의 생각은 어떠합니까?”
이에 서황은 영광을 힐끗 보더니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하지요.”
북창령원에서 명성이 자자한 서황이 고개를 끄덕이자 다들 잇따라 조청삼의 말을 따르기로 하였다. 이렇게 많은 사람이 힘을 합쳤는데도 영왕 하나를 잡지 못할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더구나 제아무리 영왕이라도 이들처럼 지능이 있는 것이 아니니 더 수월할 거라 여겼다.
사람들의 드높은 사기에도 목진은 미간을 찌푸리며 주위를 살폈다. 왜 이곳에는 영장이 전혀 보이지 않는 걸까? 그 많은 영장은 어디로 사라진 걸까?
조청삼과 서황의 말에 사람들은 바로 의견을 모았다.
이에 조청삼은 담담하게 웃더니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은 목진 일행에 고개를 돌렸다.
“목진, 너는 어떻게 생각해?”
“선배님들 의견에 따를게요. 난 한낱 신생일 뿐이고 실력도 좋은 편이 아니라 조금이나마 힘을 보탤 수 있는 것으로 만족해요.”
목진이 웃으며 하는 말에 사람들은 어리둥절하여 그를 바라봤다. 목진이 신생인 건 사실이지만 북창령원에서의 명성은 실력 좋은 노참보다 더하였고 심지어 이현통, 학요와 이름을 나란히 하였다.
“지나치게 겸손하구나.”
조청삼이 씨익 웃으며 말했다.
“영왕은 비록 탄생한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통천경의 실력자라 적어도 화천경 후기에 이르렀거나 실력이 그만큼 되는 사람만이 막을 수 있어. 그러니 우리와 함께 앞장서 영왕을 잡자꾸나.”
목진은 조청삼이 이렇게 말한 데는 다 이유가 있다고 생각했다. 아마 이번 기회에 자신의 진정한 실력을 시험하고자 한 말인 것 같았다.
“저 녀석이 아무리 실력이 좋아도 화천경 후기와는 상대조차 안 되죠.”
서황 뒤에 서 있던 서청청이 투덜거렸다. 그녀는 목진의 실력을 인정했지만 서황 등과 어깨를 나란히 할 만큼은 아니라고 믿고 싶었다.
그날, 요문에서도 사전에 충분히 준비했기 때문에 학요를 위협할 수 있었다고 여겼는데 서황은 그리 생각하지 않았다.
“절대 무시할 만한 상대는 아니야. 나는 점점 목진의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 그 깊이를 알 수가 없어. 내가 녀석과 싸워도 무조건 이긴다는 보장은 없어.”
이에 서청청이 언짢은 듯 입을 삐쭉 내밀었다.
목진은 조청삼을 바라보며 웃더니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다들 목진을 경계하여 혼자 뒤에 물러난다면 영왕을 죽여도 그한테는 아무것도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안연 선배는 나서지 말고 왕통 선배 삼형제만 나를 따라와요.”
목진이 작은 목소리로 말하자 안연 등은 고분고분 고개를 끄덕였다. 융천경의 실력으로 나서기에 역부족이었다.
“나는 어떻게 할까?”
낙리의 질문에 목진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답했다.
“왠지 이곳 느낌이 이상해. 너더러 나서라는 사람이 없으니까 일단 안연 선배와 뒤에서 기다려. 그러다 무슨 변고라도 생기면 그때 도와줘.”
이에 낙리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여러분, 시작해볼까요? 영왕이 도대체 얼마나 강력한 존재인지 확인해봅시다. 만약 영왕을 죽일 수 있다면 우리는 처음으로 영왕을 죽인 학생으로 길이 이름을 남길 수 있을 겁니다.”
의지가 활활 타오르는 사람들의 반응에 조청삼은 바로 불을 지폈다.
“당장 시작합시다!”
사람들은 말이 끝나기 무섭게 하늘 높이 뛰어올라 웅장한 영력이 이곳을 뒤덮었다. 앞장선 사람들은 전부 화천경에 이르러서 이들이 힘을 합치자 그 위력이 엄청 났다.
그때 텅 빈 평원 깊숙한 곳에서 반짝이는 갑옷을 입은 거대한 영왕이 갑자기 눈을 뜨더니 고개를 돌려 벌레 보듯 이들을 바라봤다.
크으으으!
영왕이 울부짖자 그 소리가 우렛소리처럼 하늘을 뒤흔들었고 놀라운 영력 파동이 주위에 퍼졌다.
이에 서황, 조청삼 등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아무리 화천경의 실력자가 많이 모이고 영왕이 탄생한 지 얼마 되지 않았다고 해도 통천경의 실력자를 상대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돌격하라!”
그러나 앞장선 사람들은 영왕의 기세에 위압감을 느끼면서도 뒤로 물러나지는 않았다.
서황, 조청삼, 모풍양 등 화천경 후기에 이른 학생들이 먼저 나섰다. 그들은 영력을 최대로 끌어올려서 한 갈래의 빛줄기가 되어 거구의 영왕을 향해 돌진했다. 그 뒤로 목진이 따라붙었고 왕통 삼형제가 잔뜩 정색하며 언월도를 쥔 채 뒤따랐다.
서황, 조청삼, 모풍양이 가장 빨리 영왕 앞에 나타나 차례로 공격을 개시했다.
“황신도(荒神刀)!”
백 장 정도의 큰 칼이 영왕을 내리찍었다.
“구풍검결(颶風劍訣)!”
연이어 돌풍처럼 휘몰아치는 날렵한 검광이 영왕의 목을 향해 돌진했다.
“대분뢰장(大奔雷掌)!”
커다란 영력 장인이 파죽지세로 영왕의 가슴팍을 때렸다.
통천경의 영왕을 상대하는지라 서황 등은 실력을 숨기지 않고 최대치로 끌어올렸는데 사람들은 이들의 매서운 공격에 흠칫 놀랐다.
그런데 이러한 공격에 영왕은 무덤덤하게 앞으로 한 발 나서더니 갑자기 입을 벌려 아우성쳤다.
크으으으!
육안으로 확인 가능한 무서운 음파가 영력을 싣고 휘몰아치자 공간이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퍽! 퍽! 퍽!
도광, 검영, 장인 모두 영왕의 영력 충격에 무산되었고 서황, 조청삼, 모풍양은 온몸을 파르르 떨며 뒤로 물러났다. 화천경 후기의 실력자 세 명의 공격을 고함 한 번으로 물리친 것이다.
통천경이란 역시 무서웠다.
그때 서황 뒤에 서 있던 사람들이 힘을 합쳐 미친 듯이 영왕의 몸을 때렸다.
쿵!
그러나 그들의 공격에도 영왕에게는 아무런 피해도 가지 않았다. 오히려 눈부신 갑옷이 이들의 영력을 전부 흡수하였다.
이와 동시에 영왕이 손을 내밀어 한 반격에 사람들은 피를 토하며 안색이 창백해져 멀리 튕겨 나갔고 잇따라 빛줄기가 이들을 비추더니 바로 눈앞에서 사라졌다.
중상을 입어 영광계 밖으로 이송된 것이다.
단 한 번의 공격으로 수많은 이들의 자격을 박탈했다니, 영왕의 공격력은 정말 대단했다.
아직 아무런 공격도 개시하지 않은 목진은 눈앞에 벌어진 상황을 유심히 관찰하였다. 탄생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영왕은 통천경의 경지가 안정되지 않았을 텐데도 그 위력이 상당했다.
“젠장, 놈의 방어력이 엄청나. 우리의 공격에도 끄떡없어.”
왕통 삼형제가 안색이 조금 창백해져 말했다. 이들은 있는 힘껏 언월도를 휘둘렀는데 영왕의 몸에 닿더니 미세한 한 갈래의 하얀 흔적만 남겼을 뿐이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계속하여 영왕을 공격하였고 영왕은 끄떡없이 손을 휘둘러 몇 분 되지 않아 벌써 십수 명이 영광계에서 쫓겨났다.
이에 나머지 사람들은 자신도 아무런 수확 없이 영광계에서 쫓겨날까 봐 점차 몸을 사렸다.
목진은 계속해서 영왕을 주의 깊게 관찰했는데 몸통에 하는 공격에는 아무렇지도 않게 반응하는 반면, 머리는 유난히 감싸고 보호하는 것을 발견했다.
영왕의 머리는 몸통과 마찬가지로 눈부신 빛을 발했고 눈은 아무런 감정도 없이 사람들을 바라봤는데 소름이 끼칠 정도로 무서웠다.
그러다 목진의 시선이 영왕의 이마 쪽에 멈췄다. 유난히 밝은 이마에서 특수한 파동이 느껴졌다.
그는 바로 옷깃을 털며 흑염이 깃든 영력 기(氣)의 회오리를 만들어 영왕의 이마를 노렸다. 그러나 놈은 재빨리 손을 휘둘러 그 공격을 무산시키고 고개를 숙여 허공에 뜬 목진을 바라보며 놀라운 힘을 손에 실어 공격을 개시했다.
이에 공기마저 찢어지듯 날카로운 소리를 냈고 아래쪽 대지는 움푹 파였다.
“조심해!”
멀지 않은 곳에 서 있던 안연 등은 순간 안색이 어두워져 외쳤고 그 옆에 있던 낙리도 흠칫하였다.
크으으으!
자신을 향하는 영왕의 주먹을 바라보던 목진은 몸에서 빛을 발하더니 용의 울음소리와 함께 용 한 마리가 나타나면서 사람들 눈앞에서 종적을 감췄다. 이에 상대방의 공격은 허무하게 무산되었다.
이를 목격한 서황, 조청삼 등은 멈칫하여 눈 앞에 펼쳐진 광경을 바라봤다. 영왕의 방대한 팔뚝에 빛줄기 한 갈래가 나타나더니 목진이 이를 타고 매우 놀라운 속도로 전진하는 것이었다.
“이렇게 빠를 수가!”
목진의 속도는 겨우 그림자만 보일 정도로 빨랐다.
슉!
어느새 영왕의 커다란 이마에 도착한 목진이 주먹을 휘두르자 뒤쪽에 백호가 나타나 살육의 힘을 싣고 영왕의 이마를 공격하였다.
쿵!
영왕의 이마에서 난폭한 영력 파동이 일더니 움직이지 않던 몸뚱이가 휘청이다가 뒤로 물러났고 이에 대지가 흔들렸다.
다들 힘을 합쳐도 끄떡없던 영왕을 주먹 한 방에 휘청이게 했다니, 사람들은 화들짝 놀라 눈이 휘둥그레졌다.
목진의 실력이 이 정도 일줄 몰랐던 사람들은 허공에 뜬 늘씬한 소년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감탄을 자아냈다.
사람들의 시선을 느낀 목진은 입을 삐쭉 내밀며 말했다.
“영왕의 약점은 이마에 있는데 다들 다른 곳을 공격하니 아무런 소용이 없죠.”
이에 사람들은 영왕에 눈길을 돌렸는데 놈의 이마의 빛이 조금 어두워졌고 미간에 사람 머리만큼 큰 정석이 보였다.
사람들은 무서운 영력 파동을 내뿜는 정석을 보더니 그제야 목진의 일격에 영왕이 물러난 것이 이해되었다.
조청삼과 모풍양도 이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목진에게 정말 영왕을 물리칠만한 힘이 있다면 진정한 실력은 얼마나 막강할 것이며, 그런 목진과 감히 누가 영왕의 영광을 다툴 수 있을까?
크으으으!
그때 영왕의 방대한 몸뚱이에서 눈부신 빛이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미간의 정석이 공격을 받아 화가 난 영왕은 포효하더니 커다란 영력 기(氣)의 회오리가 한 줄기의 빛이 되어 목진에게 내리꽂았다.
슉!
목진은 미리 준비라도 한 듯 용등술을 소환하여 어느새 뒤쪽 천 장정도 떨어진 곳에서 나타났다.
쿵!
빛줄기에 맞은 대지에는 커다란 구멍이 생겼고 그 속에는 빛이 반짝였다. 이에 목진이 흠칫하여 지면을 바라보는데 영왕의 커다란 손이 어느새 그를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