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1화. 영정 쟁탈전
목진은 다시금 용등술을 소환해 상대방의 공격을 피하였다.
영왕의 공격이 너무 무서워 닿기라도 하면 적어도 중상이라 목진은 최선을 다하여 도망쳤다.
그러다 다시 사람들 앞에 나타난 목진은 벌렁거리는 마음을 간신히 부여잡고 정색하며 말했다.
“함께 영왕의 미간에 있는 정석을 공격해요!”
다행히 사람들은 바로 정신을 차리고 목진의 말을 따랐는데 영왕은 이들의 공격을 피하려고 마구 손을 휘둘렀다.
다만, 상대방의 수가 너무 많아 일일이 피할 수가 없었다. 누군가의 공격에 정석을 맞은 영왕은 다시 한번 휘청거리며 뒤로 물러났고 바로 몸을 추스르고 잽싸게 손을 휘둘러 반격하였다.
이에 운이 나쁜 사람들은 바로 영광계에서 추방당했는데 남아 있는 이들은 이에 개의치 않고 다시 공격을 개시했다.
탄생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영왕이라 엄청난 힘을 지니고 있어도 이를 자유자재로 이용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조청삼 등은 이 이유 하나만으로도 이곳의 영왕을 때려잡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이 기간이 지나면 영왕의 실력은 폭등할 것이고 그리되면 이들 전부가 한순간에 영광계에서 쫓겨날 수도 있었다.
계속해서 영왕을 공격하던 수백 명의 사람들은 어느새 반만 남았다.
영왕도 영력을 어느 정도 소모했는지 더는 처음처럼 강력한 기세를 보이지 않았고 미간에 있는 정석을 보호하기 바빴다.
“다들 조금만 힘냅시다. 탄생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영왕이라 그런지 생각했던 것보다 강력하지는 않아요. 놈의 공격만 잘 피합시다!”
모풍양의 말에 사람들은 다시 정신을 차리고 공격에 박차를 가하였다.
그런데 한 갈래의 영력 기(氣)의 회오리를 내뿜은 목진은 모풍양의 말에 동의할 수 없었다. 영왕이 생각보다 강력하지 않은 건 사실이었지만 과연 탄생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그럴까?
“도대체 왜…….”
목진은 인상을 잔뜩 찌푸리며 영왕을 바라봤다.
그때 영왕은 엄청난 빛을 발라며 커다란 손으로, 사기를 북돋는 모풍양을 공격했는데 그는 멀지 않은 곳에 목진이 있는 것을 보더니 피하려다 말고 목진에게 다가갔다.
이에 방향을 튼 영왕의 손이 목진 쪽을 향했다.
그제야 정신을 차린 목진은 바로 안색이 어두워졌다. 모풍양은 히쭉 웃고 영기를 내뿜으며 짙은 노란색을 띤 두꺼운 영갑을 소환해 주위를 감쌌다.
“그럼 안녕.”
모풍양이 피식 웃으며 목진에게 말을 건넸다.
그는 영왕의 힘을 빌려 목진을 영광계에서 내쫓으려는 속셈이었다. 그렇다고 당하고만 있을 목진이 아니었다.
그는 바로 흑탑을 소환해 몸을 뒤덮었다.
구급부도탑은 목진에게 제일가는 방어 수단으로 모풍양의 영갑 따위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강력하였다.
쿵!
영왕의 공격과 함께 금속이 부딪치는 소리가 나더니 두 사람은 바로 추락하였고 바닥에는 커다랗게 구멍이 났다.
풉.
그 속에서 피를 토하며 기어 나온 모풍양의 영갑에는 어느새 균열이 일었다. 그는 자욱한 연기가 나는 곳을 뒤돌아보더니 목진이 분명 중상을 입었으리라 확신하였다.
“무슨 수로 우리와 영광을 나누나 보지.”
모풍양은 피식 웃더니 상처를 간단하게 처치하고 다시 하늘로 날아올랐다.
이 장면을 목격한 서황도 목진이 크게 다쳤다고 생각했고 그제야 다들 모풍양의 의도를 알아챘다.
“목진!”
왕통 삼형제가 눈이 휘둥그레져 모르는 척 시치미를 떼는 모풍양을 힐끗 쳐다봤다. 사람들은 아쉬운 듯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는데 이런 감정도 잠시, 영왕을 상대하느라 목진에게 정신을 팔 만큼 여유롭지 못했다.
“목진이 영왕의 공격에 맞았어!”
먼 곳에서 이를 지켜보던 안연 등도 순간 사색이 되었다.
그런데 낙리는 당황한 기색이 거의 보이지 않았고, 한기 어린 눈빛으로 허공에 떠오른 모풍양을 보며 말했다.
“걱정하지 마세요. 모풍양의 상처도 저 정도일 뿐인데 목진은 분명 괜찮을 거예요.”
침착한 낙리의 태도에 안연 등은 비로소 진정하고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한편, 아무도 안개가 자욱한 곳에 묻힌 목진이 흑탑 옆에 나타난 것을 발견하지 못했다. 그는 허공에서 혈투를 벌이고 있는 사람들을 보더니 주먹을 휘둘러 대지에 커다란 구멍을 내고 그 속으로 들어갔고 흑탑은 조용히 그 구멍을 메꿔 목진의 종적을 감춰주었다.
이리되면 아무도 목진이 땅을 파고든 것을 모를 것이고 그저 흑탑 속에서 재정비하는 줄로만 생각할 것이다.
쾅! 쾅!
목진은 몸에 흑염을 휘감고 계속해서 지하 깊숙이 내려갔다.
처음부터 이곳이 이상하다고 여겼던 그는 영장이 없는 것과 영왕의 실력이 생각보다 미약한 데는 다 이유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영왕은 아무리 타격을 입어도 백 장의 범위를 벗어나지 않았는데 꼭 무언가를 지키고 있는 것 같았다.
하여 지상에서 찾을 수 없는 물건은 땅을 파고들어서라도 찾아야겠다고 생각한 목진은 부단히 영력을 끌어올려 지하로 돌진했다. 잠시 후 지하의 땅이 갑자기 사라졌다.
황급히 몸을 추스른 목진은 영력으로 몸을 휘감고 잔뜩 경계하며 주위를 살피다가 눈앞에 펼쳐진 광경에 안색이 점차 어두워졌다.
“이건…….”
깊게 숨을 들이켜 흙냄새 가득한 지하의 공기를 맡던 목진은 놀라운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목진의 눈앞에 드넓은 지하 세계가 펼쳐진 것이다. 그 속에는 빛덩이가 수없이 많았고 눈부신 빛덩이에서는 하나같이 놀라운 영력 파동이 느껴졌다.
“이게 다 영광이란 말인가?”
속에 깃든 영력을 보니 적어도 영장급의 영광이었는데 이렇게 많은 영광이 전부 이곳에 모여 있었다.
그러다 목진의 시선이 지하 세계의 가장 중심에 놓여있는 빛덩이에 멈췄는데 그 속에 자그마한 정석이 떠 있었고 진득한 액체가 흐르며 심장이 움직이듯 계속 반짝였다.
이와 동시에 수많은 영광에서 영력의 빛을 발하며 정석에 흘러들었고 이에 정석은 점차 밝은 빛을 냈다.
이루 말할 수 없을 만큼 신기한 영력 파동에 목진의 심장마저 두근거렸다.
“가장 위험한 구역의 영장은 전부 영광이 되었구나…….”
목진은 그제야 깨달았다. 이곳 영장들은 전부 영광이 되어 계속 정석에 영력을 제공하고 있었다.
“설마 영왕이 이리 만들었단 말인가?”
이곳 상황을 보아하니 사람이 꾸민 일은 아니었고 이런 일을 할 수 있는 것은 영왕 뿐이었다. 지능이 없는 존재도 지하 세계를 만들어 살아남기 위해 발악하는 모습에 목진은 조금 놀랐다.
“그래서 영왕의 실력이 수준 이하였구나…….”
목진은 유난히 빛난 영정을 뚫어지라 쳐다봤는데 그 속에 든 영기는 다른 무엇보다 엄청 그윽했다.
목진의 추측이 맞는다면 이것은 탄생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영왕을 돕기 위해 만들어진 세계로 그가 영장들의 영력을 전부 흡수하면 비로소 진정한 영왕이 되는 것이다.
목진은 이리 생각하며 어느덧 가장 빛나는 영정 앞에 도착했다. 그 속에서 흐르는 진득한 영액은 허상을 이루다 사라지기를 반복해 신기하기 그지없었다.
그때 그가 영정 아래쪽을 쓰윽 훑었는데 영정에 가장 근접한 곳에서 묵묵히 빛을 내뿜는 보라색 빛덩이를 발견했다. 그 속에는 영정이 있었는데 보라색을 띤 영정은 눈앞의 것보다는 못하지만 내뿜는 영력 파동은 여태껏 얻은 영광보다 훨씬 강력했다.
“화천경 후기의 영장이라…….”
화색이 된 목진은 바로 주먹을 휘둘렀다. 난폭한 영력이 보랏빛 빛덩이를 가격하자 그 속에 숨은 보라색 영정이 튕겨 나왔다.
목진은 영력을 끌어올려 그 속에 깃든 순수한 영력을 흡수했는데 여태껏 소모했던 영력이 회복되는 것이 느껴졌다.
“역시 화천경인 영장의 영광은 남달라!”
목진은 호탕하게 웃더니 얼마 되지 않는 사이에 주위에 있는 보라색 빛덩이 전부를 격파해 영정을 수중에 넣었다.
이는 수만 명의 보통 영병의 영광을 얻은 거나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그때, 커다랗고 눈부신 영정이 눈치라도 챈 듯 위잉 울며 목진을 내치려 하였다.
“공격력이 전혀 없는 영력으로 날 내치려고?”
목진은 피식 웃더니 흑염이 불타오르는 영력을 끌어올려 상대방의 공격을 손쉽게 막아내고 이글거리는 눈으로 영정을 노려봤다.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보물이었다.
그는 눈부신 빛을 발하는 장검을 소환해 순식간에 영정의 위쪽에 나타나 체내의 영력을 최대한 끌어올렸다. 그리고 흑염이 깃든 어두운 영력을 휘감은 장검을 있는 힘껏 휘둘렀다.
엄청난 충격이 목진의 손에 전해지더니 소리 없이 찢어졌다. 영정은 목진이 생각했던 것보다 더 단단했다.
다행히 목진의 공격이 전혀 소용없는 것은 아니었으니, 영정에 균열이 일며 주먹만큼 큰 파편이 목진의 손에 떨어졌다.
목진은 순간 천근이나 되는 무거운 돌을 든 것처럼 손이 무거웠다.
이는 영기가 한데 모여 가져다준 힘인 만큼 들어있는 영력이 많을수록 더 무거웠다.
이에 목진은 의지가 더욱 불타올랐다. 그때 지상에서 서황, 조청삼 등과 싸우던 영왕이 갑자기 포효하여 이들을 튕겨냈다.
서황 등은 겨우 몸을 추스르고 눈이 휘둥그레져 미쳐 날뛰는 영왕을 바라봤다. 영왕은 주먹을 쥐더니 엄청난 힘으로 바닥을 내리쳤다.
엄청난 힘에 대지가 세차게 흔들리더니 영왕의 발아래에 커다란 균열이 일었고 이는 놀라운 속도로 지하를 향해 돌진하였다.
심상치 않은 기운을 알아챈 목진은 곧바로 철수하였다.
쿵!
목진이 있던 곳은 엄청난 충격으로 인해 커다랗게 구멍이 생겼고 결국 지하 세계는 사람들 눈앞에 노출되었다.
“저건 뭐지?”
지하 세계를 발견한 서황 등은 눈부신 빛을 발하는 수많은 영광에서 눈을 떼지 못했고, 그 속에서 내뿜는 무서운 영기에 이내 침을 삼키며 멍하니 서 있었다.
“누군가 있어!”
몰래 자리를 피하려던 목진을 발견한 누군가가 외쳤다.
슉!
사람들은 바로 고개를 돌리더니 그 정체를 알고 화들짝 놀랐다.
“목진이 왜…….”
모풍양도 깜짝 놀라 황급히 목진이 추락했던 곳을 바라봤는데 그 위에 있던 흑탑은 어느새 없어졌고 흑탑 아래에는 깊이를 모를 만큼 깊은 구멍이 파여 있었다.
한편, 더는 숨을 수 없게 되자 목진은 히쭉 웃으며 입을 열었다.
“영왕의 공격에 우연히 지하에 들어가 이상한 점을 발견했어요.”
다들 목진의 말이 믿기지 않았고 그 말을 들어줄 시간도 없었다. 이들은 눈앞에 놓인 수많은 영광에 두 눈이 이글거렸다. 이 중 조금이라도 얻을 수 있어도 수확이 상당하였고 영광 관정에서 엄청난 효과를 볼 수 있었다.
크으으으!
그런데 그때, 영왕이 갑자기 울부짖더니 입을 벌려 이들 앞에 놓인 영광을 한데 모아 꿀꺽 삼켜 버렸다.
이와 동시에 목진이 영정에 일격을 가하자 한 갈래의 흑염이 조용히 영정에 스며들었다.
이렇게 지하 세계는 영왕에 의해 탈탈 털렸다.
멍하니 이 광경을 바라보는 사람들과 달리 목진은 무척 걱정되었다. 영왕이 영광을 전부 흡수했다는 것은 바로 탄생기를 뛰어넘었다는 뜻인데 이로 인해 실력이 폭등하면 이들 실력으로 상대하기란 거의 불가능했다.
그때 영왕의 몸이 눈부신 빛을 발하며 방대한 몸이 더 커졌고, 강력한 영력이 퍼져 그 주위에 영력 돌풍을 일으켰다.
“얼른 피해요, 왕통 선배.”
목진이 말을 내뱉자마자 바로 방향을 틀었다.
이에 왕통 등은 잠시 머뭇거리더니 바로 목진의 뒤를 따랐고 멀지 않은 곳에 있던 낙리 등도 잇따라 움직였다.
조청삼, 서황 등은 미련이 남은 듯 차마 그곳을 떠나지 못하였다.
그런데 그때, 영왕이 포효하며 천 장 정도의 영력 기랑을 펼쳐 내리치자 다들 피를 토하였고 안색이 창백해졌다.
“철수하라!”
조청삼 등은 그제야 사태의 심각성을 알고 이백 장도 넘게 커진 영왕을 보고는 이를 악물고 물러났다.
이들은 영왕을 때려잡을 생각을 더는 하지 못했다.
어느덧 성장을 멈춘 영왕은 잔뜩 화가 난 듯 포효하며 먼 곳에서 도망치고 있는 목진을 바라봤다.
영정에서 떨어져 나간 파편이 목진에게 있다는 것을 감지한 영왕은 그 조각까지 얻어야만 비로소 진정한 영왕으로 거듭날 수 있었다.
크으으으!
영왕은 분노의 포효와 함께 목진을 향해 성큼성큼 나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