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3화. 마음의 눈
어느새 외부의 간섭을 물리친 목진은 마음을 가다듬고 부단히 주위에 영인을 그려냈고 150갈래쯤 그렸을 때 비로소 속도를 늦췄다.
영인의 수로만 따지면 200을 넘기지 못하면 4급 영진사였고 그 위가 비로소 5급이었다.
다만 영인을 일정량 만들어낸다고 그것을 전부 활용해 영진을 칠 수는 없었다. 영인은 영진을 다지는 기초일 뿐, 복잡한 영진을 완벽하게 치려면 영인들 사이의 복잡한 연결을 꿰뚫고 그 역량을 최대치로 끌어올려야 했다. 이것이 곧 영진사가 갖춰야 할 능력이었다.
대가급 영진사는 영진 하나를 만들어내는 데 수천수만 개의 영인을 사용하여 그 복잡한 정도가 놀라울 정도였고, 아무리 지존경의 실력자라도 천부적인 재능과 노력, 끈기가 없으면 절대 영진을 칠 수 없었다.
그렇다고 목진이 대가급이란 것은 아니었다. 영진사로서 아직 시작 단계에 불과한 목진은 지금 눈앞에 처한 곤경에서 빠져나갈 생각뿐이었다.
그리고 곧 목진이 칠 영진에 영인 150갈래는 턱없이 부족했다.
그는 숨을 길게 들이마시며 마음을 가다듬었다. 심진 상태를 완벽하게 장악한 목진은 어느새 고급 심진 상태에 이르렀고, 이 정도면 눈을 감아도 눈앞의 모든 것이 훤히 보였다. 이는 절대적 안정을 전제로 하며 자신의 몸을 완벽히 장악하는 것과 같았다.
다만, 실력이 늘고 영진 등급이 향상됨에 따라 그 우세는 점차 줄어든다. 심진 상태를 완벽하게 깨닫는 데는 3급 영진사면 충분했고, 이는 대가급 영진사의 눈에 들지는 않지만 심진 상태를 얼마만큼 장악하느냐에 따라 비로소 더욱 심오한 상태의 영진을 깨우칠 수 있다.
목진은 심신을 육체에서 뽑아낸 듯 형태를 갖추는 영인을 바라보며 그 속의 미세한 영력 파동과 그 사이의 미약한 연결을 느꼈다.
마음을 움직이자 생성되었던 영인은 사라졌고 다시 새로운 영인을 만들어냈는데 이는 전에 만들었던 영인보다 더 튼튼하였다.
이렇게 영인은 목진에 의해 사라지고 다시 만들어지는 것을 반복했는데 영력 소모는 전혀 없었지만 영인의 수는 점차 늘어났다.
일정한 영력으로 만들어낸 영인의 수에도 큰 변화가 생겼다!
이 과정에 흠뻑 빠진 목진은 한참 지나서야 마음에 다시금 파동이 일었는데 다름 아닌 목진의 마음속 깊숙한 곳에 있던 눈이 끔뻑대다가 서서히 눈을 떴다. 이와 동시에 천지 만물이 목진의 마음속에 훤히 그려졌다.
앞쪽에서 낙리가 영왕과 싸우고 있었고 서황, 조청삼 등은 멀리서 몰래 이들을 엿보고 있었다. 그리고 더 멀리에는 푸른 산과 맑은 물, 그리고 천지에 가득 찬 영력…….
목진은 눈 앞에 펼쳐진 세계를 꿰뚫어 보는 눈이 오묘하고 신기하게 느껴졌다.
“이것이 곧 마음의 눈인가?”
이리 생각하던 목진은 눈을 번쩍 뜨고 움직였다. 이런 상태를 유지하기란 매우 어려워 기회가 왔을 때 바로 공격을 개시해야 했다.
그는 곧바로 두 손을 결인해 주위를 떠돌던 영인들을 전부 폭발시킨 뒤 새로 뭉쳤는데 그 수가 순간 200개를 넘었고, 그가 옷깃을 휘날리자 수백 갈래의 영인이 하늘 높이 날아올라 천지에 녹아들었다.
이에 영기가 들끓으며 목진의 머리 위에 거대한 광진을 생성했다. 그러자 주위에 영력 돌풍이 휘몰아치며 육안으로도 확인 가능한 영력이 광하를 형성하며 거대한 광진을 향해 부단히 모였다.
“저건…… 영진인가?”
커다란 영진을 본 서황, 조청삼 등은 흠칫 놀라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저것은 바로 5급 영진이었다!
그들은 목진의 실력으로 이런 등급의 영진을 쳤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다.
하늘에 거대한 광진이 서서히 형태를 이뤘고 무한 갈래의 영력 광선이 얽히고설켜 방대하고 복잡한 진도를 그렸다. 천지의 영력이 빛줄기처럼 부단히 영진에 꽂혔다.
맹렬한 공격으로 낙리의 수비범위를 좁히던 영왕도 갑자기 앞쪽 하늘에 생긴 거대한 영진에 고개를 돌렸다. 천지의 영기가 모여 만들어진 영왕은 방대한 영력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영진에 깃든 놀라운 힘을 감지하고 불안해졌다.
크으으으!
영왕은 포효하며 형태를 이뤄가는 영진에 수백 장의 커다란 암석을 번쩍 들어서 있는 힘껏 던졌다.
그런데 그때, 거대한 푸른빛 검광이 나타나 암석을 반으로 갈랐다. 영왕은 분노의 포효를 하며 다시 거수를 휘둘러 소녀에게 일격을 날렸다.
영왕의 거센 공격에 낙리 주위의 검광이 점차 어두워졌고 낙신검을 쥔 손에서는 피가 주르륵 흘러내렸다.
제아무리 신기를 쥐고 있어도 봉인 상태라 영왕의 매서운 공격을 홀로 막아내기란 어려웠다.
다만 뒤에 바로 목진이 앉아있어 낙리는 절대 길을 내줄 수 없었다.
크으으으!
그런데 영왕의 공세는 점차 강해졌고 낙리는 곧 버티지 못할 것만 같았다.
어느덧 뒤쪽 하늘에 뜬 광진은 점차 밝아졌고 진도의 완성과 함께 영진도 형태를 갖췄는데 꼭 한 송이의 거대한 흑련 같았다.
“요련도영진인가?”
서황 등은 결코 낯설지만 않은 영진을 바라보더니 이내 인상을 찌푸렸다. 목진이 이현통과의 대결에서 선보였던 영진은 비록 대단했지만 절대 이런 위력은 아니었다.
“뭐지…….”
서황이 갑자기 정색했다. 흑련 광진 옆에 빛줄기들이 움직이며 또 하나의 커다란 흑련을 그려냈기 때문이다.
목진의 영진에는 흑련이 무려 두 송이나 있었다.
비록 꽃 한 송이가 더 생긴 것뿐이었지만 그 위력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었다. 서황은 영진사가 아니지만 눈앞에 펼쳐진 영진이 요련도영진보다 훨씬 강력하다는 것을 직감했다.
“녀석이 일전에 선보인 영진은 완전한 것이 아니었어.”
서황은 비로소 알아챘다. 목진이 새로 영진을 만들어낸 것이 아니라 일전에 선보였던 영진이 완전하지 않았던 것이다.
흑련 두 송이가 하늘에서 천천히 회전하자 하늘은 점차 어두워지며 돌풍이 휘몰아쳤다.
목진은 형태를 갖춘 요련도영진을 바라보더니 새하얀 기를 길게 내뱉었다. 영진에 대한 조예가 깊어지면서 요련도영진에 대한 탐구도 한층 깊어졌다.
지금의 목진은 신비롭기 그지없었던 요령도영진의 구성을 명확히 알았다. 네 부분으로 완전한 형태를 갖추려면 흑련 네 송이가 나타날 것이고, 이런 형태의 요령도영진은 7급 영진사라야 소환할 수 있었다. 위력 또한 엄청나 통천경의 강자라도 완전한 요령도영진에서는 바로 잿더미가 될 것이다.
그러나 아직 실력이 부족한 목진은 두 번째 흑련을 만들어낸 것도 마음의 눈을 우연히 만났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았다. 완벽한 요령도영진을 만들어내려면 아직 시간이 필요했다.
“낙리야.”
목진은 두 송이의 흑련이 드리운 눈으로 난폭한 영왕을 바라보며 외쳤다.
이에 낙리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더니 바로 목진의 옆에 다가와 장검을 들고 잔뜩 경계하며 영왕을 노려봤다.
자신의 앞길을 막는 자가 없어지자 영왕은 바로 대지를 뒤흔들며 성큼성큼 앞으로 나아가더니 갑자기 하늘 높이 날아올라 빛나는 운석처럼 무서운 힘을 싣고 목진에게 향했다.
그 충격에 목진이 있던 산봉우리는 무너지기 시작했고 주위의 대지는 움푹 파였다.
이에 목진은 무뚝뚝한 표정으로 인법을 바꿨는데 하늘에 뜬 두 송이의 거대한 흑련이 갑자기 서로를 마주 보며 영기를 미친 듯이 연심에 끌어모아 영력 기둥을 형성했다.
두 갈래의 영력 기둥은 부딪쳐 폭발한 것이 아니라 빠르게 융합하였고 빛이 사라지며 거대한 영진도 함께 사라졌다.
이와 동시에 자그마한 광련이 나타났는데 그 속에서 지극히 무서운 파동이 흘러나왔다. 마치 심장이 뛰는 것처럼 움찔거리는 것이 무척 괴이하였다.
목진은 자그마한 광련을 보며 손을 튕겼고 광련은 하늘에 흔적을 남기며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방대한 빛의 운석에 맞섰다.
그 둘이 부딪치려는 순간, 목진은 피식 웃더니 갑자기 주먹을 쥐었다.
쿵!
영왕의 몸이 갑자기 격렬하게 진동하더니 체내에 한 갈래의 어두운 화염이 들끓기 시작했다.
흑염은 한 갈래뿐이었지만 어느새 영왕의 몸에 퍼져 큰 영향을 끼쳤는데, 영왕의 영력을 부단히 태워 없앴다.
이는 목진이 몰래 영정에 불어넣었던 흑염으로 영왕이 물건을 삼키며 놈의 체내로 들어간 것이다. 한 갈래의 흑염으로 영왕한테 큰 타격을 줄 수는 없지만 승패란 이토록 미세한 차이로 갈리는 것이 다반사였다.
목진의 예상대로 영왕의 엄청난 영력이 바로 흑염을 삼켜 버렸지만, 그 주위를 맴도는 빛은 잠시 어두워졌다.
목진은 이때를 노려 괴이한 광련으로 영왕의 가슴팍을 공격했다.
쿵!
영력의 충격파가 주위를 휩쓸며 돌풍을 일으켜 수많은 바위가 산산조각이 났고, 영왕은 맥없이 추락해 산맥 전체가 흔들렸다.
이를 지켜보던 이들은 눈이 휘둥그레져 목진의 엄청난 영진에 맞으면 제아무리 영왕이라도 큰 타격을 입었을 거라 여겼다.
그런데 그때, 영왕의 거대한 몸에 평지로 뭉개진 산봉우리 사이로 대지가 흔들렸고 커다란 그림자가 휘청이며 일어났다.
“역시 죽지 않았어!”
관전하던 사람들은 왠지 다행이라 여겼다.
한편, 산봉우리에 서서 몸을 추스르는 방대한 그림자를 보는 목진의 얼굴에서는 아무런 감정도 읽을 수 없었다.
어느덧 안개가 가시고 다시 사람들 눈앞에 나타난 영왕은 더는 전처럼 용맹하지 않았다. 가슴팍에는 커다랗게 구멍이 났으며 구멍을 중심으로 인 균열은 몸의 절반을 차지했는데 그중 가장 긴 갈래는 이마의 눈부신 정석에까지 이르렀다.
이에 서황 등은 입가가 파르르 떨렸고 모풍양은 화들짝 놀라 영왕을 바라봤다. 아무도 준 화천경의 목진이 영왕에게 이토록 큰 상처를 입힐 줄은 생각도 못 했다.
크으으으!
자신의 몸이 큰 타격을 입어 영기가 빠르게 사라지고 있음을 느낀 영왕은 분노에 휩싸여 미친 듯이 목진을 향해 돌진했다.
씩씩거리며 자신을 향하는 영왕을 바라보는 목진의 안색은 그리 좋지 않았다. 놈이 자신의 공격에 중상을 입긴 하였지만 통천경의 실력은 그대로였고 몰래 정석에 흑염을 불어넣지만 않았더라면 이러한 효과도 없었을 것이다.
그때 낙리가 차가운 손으로 흑염이 깃든 어두운 영력을 끌어모으는 목진의 손을 꼭 잡고 웃으며 말했다.
“마무리는 내가 할게.”
낙리는 영진을 치느라 목진이 영력 소모가 크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목진의 공격에 영왕이 중상을 입긴 했지만 최후의 일격은 분명 더 무서울 것이고, 그럼 자신이 더 나을 거라 판단했다.
이에 목진이 흠칫하더니 바로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낙리는 낙신검을 서서히 들어 올리며 한기 어린 눈빛으로 멀리서부터 뛰어오는 영왕을 겨눴다.
이 구역의 천지 영기는 낙리의 검이 내뿜는 검기를 이기지 못하고 주위로 흩어졌고 목진도 이에 심장이 벌렁거렸으며 낙리의 얼굴을 바라보는 그의 안색마저도 어두워졌다.
낙리는 영왕을 죽이려는 것이 분명했다.
검기는 물결처럼 이곳 천지로 퍼져나갔고, 날카롭다기보다는 두려운 느낌이 더 강하여 맞으면 바로 갈기갈기 찢어질 것만 같았다.
목진은 눈이 휘둥그레져 낙리를 바라봤다.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낙리의 실력은 역시 엄청났다. 하긴, 천부적 재능이 자신보다 못한 것도 아니고 수련에 목숨까지 거는 여인이니 그럴 만도 하단 생각이 들었다. 자신이 영진사만 아니었어도 낙리를 상대로 승산이 있다고 절대 말하지 못할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한편, 낙리의 공격에 대지가 쩍 하니 갈라졌고 기세등등한 검기는 장검에 모여 푸른색 광선으로 변해 솟아올랐다.
슉!
광선이 너무 빨라 육안으로 차마 확인할 수 없었고 공기마저 폭발해 반으로 갈라졌고 주위의 온도도 순식간에 낮아졌다.
목진은 온몸을 파르르 떨었다. 이는 죽음의 위협을 느낄 때 하는 본능적인 반응이었다.
그러다 목진이 다시 고개를 들어보니 푸른색 광선은 어느새 영왕의 몸을 스치며 뒤쪽 산봉우리에 닿았다.
이에 천장 안에 있는 산봉우리가 소리 없이 반으로 갈라졌고 그 단면은 더없이 매끈하였다.
그러나 거구의 영왕은 아무런 피해도 받지 않은 것처럼 기세등등하게 목진과 낙리를 향해 달려왔고 낙리는 얼굴이 창백해져 몸을 휘청이다가 목진의 품에 쏙 안기며 생긋 웃었다.
“이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었어. 내가 해결할 수 있었어.”
목진은 낙리의 손에 난 피를 보고는 안타까워하며 소녀의 손을 닦아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