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5화. 돌파
북창령원에서 그들의 행보에 놀라워하고 있을 때 수렵장 내에서도 목진과 낙리의 소식으로 영광계가 들썩였다.
“서북 지구 중 가장 위험한 집거 장소에서 영왕이 격살되었다. 격살자는 목진과 낙리이다.”
웅장한 영력과 함께 이 소식이 수렵장에 퍼지자 모든 이들의 안색이 변했다.
영왕이 격살 당했다고?
수렵장은 들끓었고 다들 믿을 수 없다는 얼굴을 했다. 드디어 학생들 사이에서 영왕을 격살한 자가 나타난 것이다.
목진과 낙리는 분명 신생일 텐데 어찌 이리도 강력하단 말인가?
그들은 이 엄청난 소식에 환청은 아닐까 의심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내 받아들인 듯 한숨을 쉬더니 이번 수렵전의 가장 큰 복병이 바로 그들이라고 생각했다.
* * *
수렵장 깊은 곳에 있는 황원에서 한 사람이 긴 창을 어깨에 멘 채 거닐고 있었다. 그 앞에는 수많은 영병이 맹렬한 기세로 공격해오고 있었지만 그는 여유로운 미소를 지은 채 영병들이 공격해오기만을 기다렸다.
쿵!
반짝이는 금광이 하늘 위로 치솟더니 이내 거센 파도가 되어 퍼져나갔다. 수많은 영병과 영장이 금광에 의해 순식간에 가루가 되었고 영광이 되어 공중에 떠다녔다.
그는 소매를 휘둘러 공중에 뜬 영광을 거두고선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았다.
심창생이었다.
그는 서북쪽을 바라보더니 옅은 미소를 지었다.
“목진, 재밌는 후배로구나. 마지막에 과연 영광대에 오를 수 있을지 궁금하네.”
* * *
다른 산봉우리에는 이현통이 뒷짐을 지고 똑같이 서북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는 별다른 표정 변화가 없는 얼굴로 그쪽을 한참을 뚫어지게 보더니 이내 몸을 돌려 자리를 떠났다.
* * *
쾅!
학요의 힘찬 발길질에 옆에 있던 큰 바위가 갈라지면서 가루가 우수수 떨어졌다. 그의 어두운 얼굴에 주위 사람들은 감히 아무 소리도 내지 못했다.
“어떻게 영왕을 격살한 거지…….”
학요는 냉소를 지으면서 더 깊은 곳으로 향했다.
“그래, 덕분에 일이 번거롭지 않게 되었네. 네가 얻은 영왕의 영광은 내가 고맙게 받도록 하지.”
영왕이 격살되고 난 후에도 그 열기는 오랫동안 가시지 않았다. 누군가는 여전히 감탄했고, 누군가는 부러워했으며 누군가는 그게 사실인지 의심했다. 그러나 다들 이번 수렵전에서 목진과 낙리가 가장 빛나고 있다는 건 인정했다.
수렵전에 참가한 수많은 인재 중에서 유난히 뛰어난 두 사람이었다. 대단하다고 알려졌던 조청삼도 이 순간만큼은 그들에게 밀려났고 그 누구도 언급하지 않았다.
목진과 낙리가 영왕을 격살했다는 소식에 다들 열광하고 있을 때 오히려 주인공인 두 사람은 종적을 감추었다. 하루가 지나도록 누구도 그들을 본 사람이 없었다.
사람들은 영왕을 상대하는 과정에 크게 다친 것은 아닐까 조심스럽게 예측했다. 영왕을 상대로 싸웠으니 대가를 치르는 것이 어쩌면 당연한 건지도 모른다.
* * *
그 시각, 영광계의 구석진 곳에서 낙리가 산꼭대기에 선 채 주변을 경계하고 있었다. 별다른 이상한 점이 없는 걸 확인한 후에야 고개를 돌려 시선을 뒤에 있는 목진에게 돌렸다. 목진은 바위에 앉아 두 눈을 꼭 감고 있었고, 그의 주위에선 영력의 파동이 너울거렸다.
사람들의 예측과 달리 목진과 낙리가 나타나지 않은 건 크게 다쳐서가 아니었다. 영왕을 상대하면서 많은 영력을 소모한 건 맞지만 반나절 만에 다 치유가 되었다.
영왕과 싸우고 나서 목진은 은연중에 화천경으로 돌파할 수 있다는 걸 느꼈다. 뇌역에서의 혹독한 수행을 통해 실력이 꽤 늘어났지만 화천경까지는 돌파하지 못하고 준 화천경에 머물렀다. 화천경과 준 화천경은 별 차이가 없어 보이지만 사실 엄청난 차이가 났다.
화천경이 되어야만 화천경의 오묘함을 느낄 수 있으며 진정한 화천경의 힘을 가질 수 있었다.
돌파의 느낌이 전혀 들지 않았던 전과는 달리 영왕과의 전투 후 돌파할 수 있을 것 같다는 기묘한 느낌이 계속 들었다. 이에 목진은 매우 기뻤다.
이러한 느낌과 돌파는 영력이 얼마만큼 강한지와는 상관없었다. 영력만으로 논하자면 목진은 이미 화천경 수준의 강자와 맞먹었다. 그러나 돌파를 하지 못한다면 그저 보통 융천경보다 조금 더 강한 영력을 가진 것과 다름없었다. 융천경의 실력으로 화천경의 오묘함을 느낀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그러나 돌파라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바위에 앉아 있는 목진 주위에선 영력이 너울거렸지만, 그의 호흡만큼은 매우 고르고 평온했다.
체내에서 영력이 들끓었지만 그는 의도적으로 제어를 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영력이 마음껏 이리저리 흐르게 놔두었다.
기해에선 신백이 빛을 발산하며 조용히 앉아 있었다. 신백에게서 모호한 빛깔이 돌며 기이한 파동이 은은하게 흘러나왔다.
이에 신백이 천천히 두 눈을 떴는데 그 눈이 마치 밤하늘처럼 깊었다. 천천히 두 손을 펼친 그는 하늘을 끌어안으려 하는 것만 같았다.
쿠르릉.
밖에서 나지막한 소리와 함께 광풍이 휘몰아쳤다.
신백 겉에서 맴돌던 빛은 점점 더 밝아졌고, 천천히 위로 이동해 끝내 기해의 끝에 닿았다. 그곳에서 기이한 느낌을 받은 신백은 꼼짝할 수가 없었다.
신백은 동요하지 않고 평온하게 천지가 공명하는 기이한 느낌에 빠져들었다. 그러다가 알 수 없는 신비로운 힘이 힘껏 신백을 끌어당기기 시작했다. 마치 기해와 육체의 속박으로 벗어나게 하려는 것 같았다.
이때, 한 줄기의 빛이 목진의 복부에 나타났고 그의 몸을 뚫고 머리끝으로 향했다.
슝!
한 줄기의 밝은 빛이 순식간에 목진의 머리를 뚫고 그대로 하늘을 향해 솟아올랐다. 기이한 빛에서는 그 어떠한 영력의 파동도 느껴지지 않았고 또한 꿰뚫어 볼 수도 없었다.
“신백이 몸을 떠나 천지에 녹아들었네…….”
낙리는 이 광경을 지켜보면서 저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신백이 몸을 떠났다는 건 목진이 진정으로 화천경에 발을 들였다는 걸 의미하기 때문이었다.
화천경이 이르면 신백이 육체의 속박에서 벗어나 천지에 녹아들어 자신을 감춰 그 누구도 쉽게 찾아볼 수 없다. 공격을 받을 때도 육체를 천지로 녹아들게 하여 받는 상처를 최소한으로 줄인다. 화천경의 사람이 융천경의 사람보다 더 타격에 강한 이유도 이와 같기 때문이다.
즉, 육체가 강한 것이 아니라 공격을 당할 때 화천경의 사람은 자신을 천지로 숨겨 당한 공격의 일부를 자연스레 날려버리는 것이다.
목진의 머리에선 맑고 투명한 빛이 반짝거렸고 이내 주먹만 한 크기의 신백이 머리 위에 나타났다. 그러더니 한 줄기의 빛을 따라 하늘을 향해 솟아올랐다.
목진이 융천경일 때 신백은 짧은 시간 동안만 육체를 떠날 수 있었고 또한 멀리 갈 수도 없었다. 그러나 화천경이 되면서 신백은 더욱더 자유로워졌다. 신백에 대한 육체의 속박이 점점 약해지고 있기 때문이었다.
빛기둥 속에 앉아 있는 신백은 두 팔을 벌려 하늘과 땅 사이를 마음껏 선회하는 것처럼 만족스러운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와 동시에 목진의 몸에서도 빛이 계속 흘러나왔다. 낙리가 보기에는 그저 앉아 있는 것처럼 보였지만 영력의 파동으로만 느껴보면 그곳엔 아무도 없었다. 일부러 찾지 않는 한 아무것도 느낄 수 없었다.
드디어 목진은 화천경에 이르렀다.
하늘 위로 치솟아 올랐던 빛줄기가 점차 사라지자 목진의 신백도 내려오더니 다시 그의 몸속으로 들어가 기해에 자리를 잡았다.
목진은 꼭 감고 있던 두 눈을 천천히 떴다. 그의 두 눈은 뜨거운 태양처럼 빛나다가 시간이 지나자 그 빛이 서서히 사라졌다.
“으악!”
목진은 기쁜 마음에 고개를 들어 크게 소리를 질렀다. 그 소리는 마치 천둥처럼 하늘과 땅 사이에 울려 퍼졌다.
자리에서 일어난 목진은 몸이 전보다 더 가벼워진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체내의 영력이 많이 늘어나지는 않았지만 실력이 훨씬 강해진 느낌이 들었다.
드디어 목진은 천지와 더욱더 깊은 공명을 할 수 있었고 더 쉽게 천지에서 영력을 흡수할 수 있게 되었다. 그 공명의 정도는 준 화천경 때와 비교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
목진이 드디어 준 화천경을 돌파해 진정한 화천경이 되었다.
“축하해, 이젠 진정한 화천경의 실력자네.”
낙리가 가까이 다가오더니 환하게 웃으면서 목진에게 축하의 말을 건넸다.
“고작 화천경일 뿐이야, 아직 부족해.”
낙리의 말에 목진은 애써 웃으면서 말했다. 그는 눈앞에 있는 이 소녀와 꼭 최강자가 되리라 약속했었다. 그러나 지금의 실력으로는 턱없이 부족했다.
“일단 여기를 떠나자. 수렵전도 이제 끝나가고 있어. 어서 깊은 곳으로 가야지.”
목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더 깊은 곳에선 진정한 진수자(鎮守者)가 그들을 기다리고 있다. 영왕의 영정을 얻었지만 마지막 관문을 넘기지 못한다면 그들이 얻은 영왕의 영정도 아무런 쓸모가 없어질 뿐더러 함께 수렵전에 참여한 다른 학생들도 빈손으로 돌아가게 될 것이다.
목진은 긴장감에 침을 삼켰고 무언의 압력을 느끼기 시작했다. 마지막 관문인 세 진수자를 본 적은 없지만 예상컨대 그들의 실력은 분명 영왕보다 훨씬 강할 것이다. 그들은 영력만 있는 게 아니라 풍부한 전투 경험과 상대를 이길 수 있는 갖가지 강력한 수단을 갖고 있었다.
수렵전에 참가한 누구라도 그들을 상대하게 된다면 목진과 똑같은 압력을 느꼈을 것이다.
목진은 한숨을 내쉬더니 이내 낙리의 손을 잡고 지도에서 확인한 대로 동남쪽으로 움직였다.
약 한 시진 후, 그들은 점점 속도를 늦추더니 한 언덕에서 멈췄다. 거기엔 그들 말고도 안연, 왕통 등이 있었다. 이곳이 바로 그들과 다시 만나기로 약속한 장소였다.
왕통 일행은 목진과 낙리를 보고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들은 여기서 자그마치 하루를 기다렸다.
“드디어 왔구나. 난 또 너희들에게 무슨 일이라도 생긴 줄 알고…….”
왕통이 이마의 땀을 훔치면서 말하자 목진은 웃으면서 답했다.
“조금 쉬다 오느라 조금 늦었습니다.”
“너희 둘 말이야, 수렵전의 명인이 됐어. 다들 너희 둘을 찾는다고 혈안이 돼 있다.”
“그게 무슨?”
왕통의 말에 목진은 어리둥절하였다.
“너희가 영왕을 격살했다는 소식이 수렵장에 퍼지면서 사람들이 너희 손에 영왕의 영정이 있다는 걸 알게 됐어. 그러니 너희 손에서 영왕의 영정을 빼앗으려 하는 거지. 그러면 영광 관정에서 매우 좋은 효과를 얻을 수 있으니까.”
안연은 웃으면서 말을 이어갔다.
“그래서 지금 다들 너희가 가진 영왕 영정을 호시탐탐 노리고 있어. 너희가 계속 나타나지 않아 무슨 일이 생긴 줄 알았지.”
안연의 말에 목진은 미간을 찌푸렸다. 일이 이렇게 번거롭게 될 줄은 몰랐다.
“어디 한번 덤벼보라고 하세요. 저도 가만있지 않겠습니다.”
말이 끝나기 무섭게 목진은 손가락을 튕겨 수 갈래의 자색 영정을 왕통 등에게로 보냈다.
“이건 화천경 후기 영장의 영광입니다. 다들 받으세요.”
목진이 전에 지하에 있을 때 얻은 수십 개의 화천경 후기 영장의 영광을 왕통 등에게 거저 내주었다.
“그럼 고맙게 받겠다.”
왕통 등도 사양하지 않고 목진의 호의를 넙죽 받았다. 이 정도 등급의 영광은 결코 흔한 것이 아니었다.
“우리도 이제 그만 수렵장의 중심으로 갑시다.”
이때 무언가가 생각난 듯 목진이 다시 물었다.
“혹시 다른 중요한 소식이 있을까요?”
목진의 물음에 왕통은 잠깐 생각에 빠진 듯하더니 이내 웃으면서 말했다.
“듣기론 천방 4위의 학요가 3위인 소훤에게 도전했다고 한다. 영광산(靈光山) 아래에서 싸운다고 했으니 아마 다들 그곳에 모여 있을 것이다.”
목진의 눈빛이 순간 엄숙해졌다.
‘학요 이놈이 드디어 나선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