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8화. 학신강(鶴神降)
쿵!
웅장한 천지의 영기가 돌풍처럼 휘몰아치자 학요는 갑자기 소리 높이 외치며 체내에서 눈부신 빛을 발했는데 그 빛은 뒤편에서 수천 장 크기의 학으로 변했다.
이때 학요가 눈을 뜨고 결인하자 학의 잔영이 계속 형성되며 날카로운 학의 울음소리가 주위에 퍼졌다.
뒤편에 있던 방대한 몸짓은 빠르게 작아져 십수 장 정도의 푸른색 깃털이 되었는데 아름다운 깃털에는 지극히 무서운 영력이 깃들어있었다.
준비를 마친 학요는 서서히 고개를 들어 목진을 바라보며 씨익 웃더니 기다란 손가락으로 하늘하늘 떨어지는 푸른색 깃털을 가볍게 튕겼다.
“학신결, 우락참창궁(羽落斬蒼穹).”
위잉!
이와 동시에 육안으로도 확인 가능한 파문이 일며 점점 강해진 진동 소리는 어느새 주위에 쩌렁쩌렁 울렸다.
그러자 푸른색 깃털이 푸른 빛줄기를 형성하며 하늘 높이 날아올랐다. 멀리서 보면 꼭 커다란 우도(羽刀:깃털 칼날)처럼 보였는데 그 속에 이루 말할 수 없을 만큼 날카로운 힘이 깃든 것 같았다.
사람들의 눈이 휘둥그레져 푸른색 우도를 바라봤다. 손이 닿기만 하면 부러질 것 같았던 깃털이 지금은 이곳 하늘을 두 쪽으로 가를 만큼 강력한 힘을 지니고 있었다.
반면, 목진은 오히려 숨을 고르며 마음의 안정을 되찾고는 두 손을 모아 결인하였다. 그러자 뒤편에 웅장한 영력이 모여 별이 빛나는 드넓은 공간이 만들어졌고 그 속에서 살육의 힘을 머금은 백호가 기세등등하게 걸어 나왔다.
그 모습에 이현통이 미간을 찌푸렸다. 학요의 전력을 다한 공격과 엄청 차이 나는 실력으로 볼 때, 목진이 자신과의 대결에서 사용했던 수법으로는 절대 상대할 수 없을 것 같았다.
크으으으!
살육의 힘이 깃든 백호의 포효가 강력하긴 했지만 목진의 실력으로는 푸른색 우도의 기세에 억눌리는 것 같았다.
한편 아래쪽에 있는 소령아는 걱정 어린 눈빛으로 목진을 바라봤고 그 옆에 있는 소훤도 인상을 잔뜩 찌푸렸다.
“그런 신결이 네 손에 들어갔다니, 주인을 잘못 만난 거지.”
학요는 차가운 눈빛으로 목진을 바라보며 피식 웃었다.
“저따위 백호로 내 학신우도를 막겠다는 생각은 빨리 집어치우는 것이 좋을 거야.”
학요는 말이 끝나기 무섭게 공격을 개시했다. 목진에게 조금이라도 여지를 주고 싶지 않았다.
이에 허공에 뜬 푸른색 우도가 파르르 떨더니 푸른색 빛줄기를 내뿜으며 목진에게 돌진했다!
우도가 하늘에 푸른색 흔적을 남기며 내리꽂히자 백호는 살육의 힘을 싣고 이에 맞섰다.
슉.
우도가 백호에게 닿자 순간 백호가 두 쪽으로 갈라졌다. 사람들은 학요의 매서운 공격에 화들짝 놀랐다.
이에 학요는 곧 수렵장을 떠날 소년을 바라보며 만족한 듯 미소를 지었다.
그런데 목진은 아무렇지 않은 듯 고개를 들어 푸른색 우도를 바라보며 다시 합장하여 인법을 그렸다!
그러자 뒤편에서 다시금 별이 빛나는 공간이 생기더니 백호보다 더 방대한 무언가가 울부짖으며 서서히 모습을 드러냈다.
녀석의 울음소리에 천지가 흔들렸고 검은색 파도와 함께 이곳 영기를 순간 얼려버릴 만큼 음산한 기운이 주위에 가득 퍼졌다.
“사신성숙경…….”
목진의 목소리가 서서히 울려 퍼졌다.
“현무신인(玄武神印)!”
음산한 기운에 주위의 온도가 내려가 공기가 얼어붙기 시작했으며 천지의 영기마저 흐르는 속도가 느려졌다.
다들 화들짝 놀라 목진의 뒤편에 있는 공간에 생긴 방대한 녀석을 바라봤다. 온몸이 칠흑같이 까만 녀석은 거북의 탈을 쓰고 있었고 검은색의 거대한 이무기의 꼬리처럼 생긴 것을 흔들며 뱀 모양의 머리로 어두운색의 혀를 날름거렸다.
이와 동시에 별이 빛나는 공간에서 검은색 파도가 쏟아져 나와 이 구역을 휘감았다.
현무신인은 사신성숙경 중 두 번째 신인으로 해당 신인을 얻은 지 오래되었지만 목진은 드디어 이를 소환하는 데 성공하였다. 신결이 드디어 진정한 위력을 보여주기 시작한 것이다.
목진은 고개를 들고 현무를 바라보며 옷깃을 휘날렸다.
“공격하라!”
이에 현무는 고함을 지르며 검은색 파도를 타고 천 장 정도의 검은색 물기둥을 형성하며 지극히 무섭고 음산한 기운을 안고 푸른색 우도에 맞섰다.
쿵!
현무와 우도가 부딪친 순간, 공간이 일그러지며 엄청난 소리가 울려 퍼졌고 검은색 파도와 푸른 도광이 주위를 휘감았다.
지극히 난폭한 영력 파동에 맞은 목진과 학요는 안색이 창백해져 멀리 튕겨 나갔는데 산에 몸이 박힌 목진의 주위에 균열이 일더니 바위가 부단히 떨어져 내렸다.
그는 입가의 피를 닦고 고개를 들어 수천 장 정도 떨어져 있는 학요를 바라봤다. 그는 옷의 절반이 찢긴 채 피를 머금고 사색이 돼 있었다.
이를 지켜보던 사람들은 멀리 튕겨 나간 두 사람을 보더니 입을 떡 벌렸다. 두 사람이 이토록 놀라운 신결을 보인 데다 막상막하일 줄은 생각지 못했다.
“학요가 학신결을 소환했는데도 승패가 갈리지 않았다니, 목진은 역시 대단해.”
“영왕을 죽일 수 있었던 데는 다 이유가 있었어. 목진이야말로 이번 수렵전에서 명성을 떨칠 사람이네.”
“대단하군.”
* * *
사람들은 목진의 실력에 자못 놀랐다. 학요는 천방 5위권에 드는 노생으로 목진을 손쉽게 이겨야 정상인데 지금은 자신보다 실력이 훨씬 뒤처진 목진과 막상막하였다.
한편, 석대 변두리에서 이를 지켜보던 소령아 등은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현무신결이 없었더라면 목진은 학신결에 맞아 바로 수렵장을 떠났을 것이다.
“학요가 학신결까지 선보였는데도 목진을 이길 수 없으니 이제 더는 방법이 없겠죠?”
그러나 소훤은 소령아의 말에 동의하는 눈치가 아니었다.
비록 목진이 이번 대결에서 지지만 않아도 이긴 거나 마찬가지지만 학요의 날카로워지는 눈빛에 소훤은 불안해졌다.
“학요를 너무 쉽게 보지 마. 절대 호락호락한 상대가 아니야.”
심창생과 이현통도 조금은 놀란 눈치였다. 목진이 학요의 공격을 받아낸 것에 놀랐고 두 사람 중 누구 하나 우세를 차지하지 않은 것에 더 놀랐다.
“녀석의 신결은 참 놀랍군.”
심창생은 목진의 신결의 신비로움을 바로 눈치챘다.
“영치전에서 얻은 것이라고 들었는데 중품 신결인 것 같아.”
이현통이 입을 열었다. 목진과 상대했던 적이 있는 그는 사신성숙경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
“중품 신결이라…….”
심창생이 화들짝 놀라 말했다. 영치전에 중품 신결 자체가 얼마 없는데 목진이 운이 좋아 이를 수중에 넣었다는 것이 믿기 힘들었다.
그리고 신결은 강력한 힘을 지녔으나 수련하기 무척 어려운데 목진이 이를 해냈다니 그 능력이 엄청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학요가 이렇게까지 나왔는데도 목진과의 싸움을 끝내지 못했으니 타격이 크겠군…….”
심창생이 멀리 떨어져 있는 학요를 바라보며 씨익 웃었다.
“나를 상대하려고 여태껏 실력을 감췄다고 들었는데 이 정도밖에 안 되는 사람이었으면 그런 소문도 돌지 않았겠지?”
이현통도 담담하게 웃으며 말했다.
“목진 때문에 이렇게까지 될 줄은 몰랐나 보지.”
그는 상대편에 있는 목진에게 눈길을 돌리며 말을 이어갔다.
“그런데 목진한테 결코 좋은 일만은 아닌 것 같네.”
심창생과 이현통이 대화를 나누는 사이, 먼 곳에 있는 학요는 무덤덤하게 고개를 들더니 한기 어린 눈빛으로 목진을 바라보며 반쯤 남아있는 남루한 옷을 찢어버렸다.
“이 엄청난 신결을 수련하는 데 성공할 줄은 몰랐구나…….”
목진은 아무렇지 않은 듯 웃으며 상대방을 바라봤지만 왠지 모르게 불안했다.
“이현통을 상대하려고 남겨둔 건데…… 할 수 없군. 일단 지금 사용해야겠어.”
그때 학요의 무덤덤했던 얼굴에 웃음기가 드리웠는데 소름 끼칠 정도로 무서웠다. 이에 목진은 인상을 찌푸리며 학요를 바라봤다.
한편, 윗옷을 벗어 던진 학요의 가슴팍에 선홍빛 무늬가 생겨났다. 그 무늬는 진득한 피처럼 섬뜩하고 기괴했으며 드러낸 지 오래되었지만 엄청난 생기를 발산했다.
“저건…….”
학요의 가슴팍에 생긴 선홍빛 무늬에 심창생과 이현통은 눈이 휘둥그레졌다.
“영수의 정혈 같은데……. 영력 파동으로 보아하니 만수록 지방 순위권 중 앞쪽에 있는 영수 같군.”
이현통의 말에 심창생도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천요학(天妖鶴)의 정혈 같아.”
“만수록 지방 26위인 천요학 말이야?”
이현통이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영치전에서 본 기억이 있는데 수백만 영치였을 거야. 학요가 나를 상대하려고 참 애를 썼구나. 그런데 지금은 애꿎은 목진한테 그 차례가 갔네.”
목진도 인상을 잔뜩 찌푸리고 학요를 바라봤다. 그가 무슨 일을 꾸미고 있는지는 전혀 몰랐지만 충분히 위험한 냄새가 났다.
학요는 사람들의 시선은 신경 쓰지 않고 가슴팍에 난 혈인을 보더니 손을 깨물어 자신의 피로 결인해 현란한 인법을 그렸다.
그러자 가슴팍의 혈인이 점차 붉어지더니 어느새 학요의 몸 전체로 퍼졌고 귀를 찌르듯 날카로운 소리가 주위에 퍼졌다.
이와 동시에 학요의 눈은 점차 상기되었고 무서운 기운을 풍기는 것이 꼭 사람 탈을 쓴 괴물 같았다.
“학신결, 학신강!”
학요의 말과 함께 그의 피부가 갈기갈기 찢어지더니 체내에서 선홍빛 빛을 발산해 그를 감쌌고 온몸은 붉은색 깃털로 뒤덮였다.
깃털 하나하나가 날카로운 장검처럼 온몸에 퍼져 숨 막히는 기운을 내뿜었다.
학요는 순식간에 위험한 존재가 되었다.
이를 지켜보던 사람들은 학요의 변화에 깜짝 놀라 저도 모르게 뒤로 물러났다. 그러나 한편으로 학요가 수련한 것이 도대체 어떤 신결이기에 이토록 무서운 힘을 지녔을지 궁금해했다.
“목진, 내가 이것까지 선보이게 하다니 모든 건 네가 자처한 일이다. 그러니까 이젠 이곳 수렵전에서 꺼져!”
학요는 빨갛게 달아오른 눈으로 목진을 바라보더니 뒤편에 방대한 학영을 만들어 그 날개를 퍼덕였다.
선홍색 빛을 발하는 학요는 피로 물든 둥근 달처럼 떠올라 고함을 지르며 그 주위도 빨갛게 물들였다.
이에 상대편에 있던 목진은 무서운 힘이 깃든 선홍빛 둥근 달을 보더니 깊게 숨을 들이켜며 흑염이 깃든 영력을 한껏 끌어올려 두 팔을 벌렸다. 체내에서 갑자기 맑은 울음소리가 울리며 들끓는 흑염이 주위에 퍼졌고 그로 인해 주변의 온도가 순간 올라갔다.
찍!
또 한 번의 맑은 울음소리와 함께 들끓는 흑염 속에서 산을 으깨고도 남을 만큼 커다란 한 쌍의 날개가 펼쳐졌다.
이에 사람들이 시선을 돌리자 그 속에서 방대한 흑조가 나타났다.
“저건…….”
심창생과 이현통은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구유작이었다.
사람들은 눈이 휘둥그레져 맑은 울음소리와 함께 나타난 온몸에 흑염을 뒤집어쓴 커다란 흑조를 바라봤다. 흑조는 산을 휩쓸 만큼 방대한 날개를 퍼덕이며 주변의 온도를 높였다.
“구유작…….”
심창생과 이현통이 마주 보며 말했다.
“화천경의 경지에서 영수의 형태를 그려냈네.”
신백경의 경지에 들어서면 누구나 영수의 정백을 제련하는 능력을 얻는데 이는 신백경의 강자에게 영수의 힘을 얻게 한다.
대신 이는 영원히 존재하는 것은 아니었다. 영수의 정백은 언젠가 사라질 것이고 수련자의 실력이 강해짐에 따라 그 영수 정백의 힘이 실력자 자신의 힘으로 대체될 것이다.
다만 이는 모든 사람에 해당하는 것은 아니었다. 수련자가 영수의 정백과 엄청난 합을 이룬다면 해당 정백의 힘이 영원이 남아있겠지만 절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영수의 정백은 인간을 배척하는 힘을 타고나 몸은 죽었지만 남아있는 본능적 반응으로 반항하여 영수가 자의로 몸을 바치지 않는 한 그 힘은 분명 다하는 날이 올 것이다.
그런데 기고만장하기로 유명한 영수가 과연 자신의 의지로 수련자한테 몸을 바칠까? 이에 심창생과 이현통은 목진이 그려낸 구유작의 모습에 깜짝 놀란 것이다.
“목진과 구유작의 정백이 어느 정도로 합이 잘 맞는지 모르겠네.”
심창생이 놀란 듯 웃으며 말했다.
“지금껏 사람의 힘으로 이토록 완벽한 구유작의 형태를 그려낸 것은 목진이 처음일 거야.”
이현통도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커다란 구유작을 바라보는 그의 안색은 썩 좋지만은 않았다. 지금의 목진은 몇 개월 전에 비하면 실력이 그야말로 천지 차이었다.
“대단한걸. 지금의 실력에도 불구하고 이토록 완전한 구유작을 그려내다니…….”
왕통 등도 이내 감탄하였다. 그들도 신백경이었을 때 괜찮은 영수의 정백을 제련한 적이 있었지만 화천경에 들어서면서 그 힘이 거의 없어져 완전한 형태를 갖춘 영수를 그려내기란 불가능했다.
또한 그들은 체내의 정백의 힘이 가장 왕성했을 때도 살아 숨 쉬는 것처럼 생생한 영수의 형태를 그려내지는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