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9화. 압력
사람들의 놀라고 있을 때 낙리는 가볍게 웃기만 했다. 그녀는 그 원인을 잘 알고 있었다. 목진과 그의 체내에 있는 구유작은 합이 잘 맞을뿐더러 혈맥을 연결해 목숨까지 나눈 관계로 일반인은 결코 누릴 수 없는 힘이었다.
다른 사람들한테는 잠시 몸속에 머무르는 정백의 힘이지만 목진과는 일생을 함께할 존재였다.
그때 온몸에 흑염이 타오르는 방대한 흑조가 울부짖으며 날개를 퍼덕여 선홍빛 둥근 달과 부딪쳤다.
두 갈래의 무서운 힘이 부딪치자 천둥소리처럼 엄청난 소리가 주위에 퍼졌고 공간이 일그러졌으며 두 갈래의 힘이 미친 듯이 서로를 헐뜯었다.
이렇게 두 갈래의 힘이 모여 백 장 정도의 커다란 광구가 되었는데 그 속에 깃든 힘이 폭탄처럼 폭동을 일으키고 있었다.
그러나 폭탄은 터지기 마련이라 이곳 천지를 뒤흔들 만큼 커다란 소리와 함께 검붉은 빛이 순간 주위를 휩쌌다.
두 사람의 영력으로 만들어진 영력 광구가 드디어 폭발해 커다란 흑조와 둥근 달마저 삼켜버렸다.
눈부신 빛에 사람들은 두 눈을 찌푸린 채 그들을 지켜보았다. 천 장 정도로 방대한 영력 충격파가 사람들을 넘어 뒤쪽 멀리까지 퍼져나갔고 하늘 높이 우뚝 솟아오른 영광산까지 파르르 떨렸다.
퍽! 퍽!
그때 검은색 빛줄기와 선홍빛 빛줄기가 각각 석대에 내리꽂혀 커다란 구멍이 났고 굵은 균열은 거미줄처럼 주위에 퍼졌다.
이에 사람들은 황급히 하늘로 날아올라 잔뜩 긴장한 채 두 사람이 있는 곳을 바라봤다.
이 정도라면 승부는 분명 갈렸을 것이다.
어느덧 연기가 가신 석대에 커다란 구멍 두 개가 나타났는데 칠흑같이 어두운 것이 그 깊이를 가늠할 수가 없었다.
그런데 갑자기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들리더니 왼쪽 구멍에서 온몸에 피를 뒤집어쓴 것 같은 누군가가 휘청이며 나타났다.
푸른색 머리를 한 그는 온몸이 상처투성이라 피가 계속 흘러내렸는데 다름 아닌 학요였다!
역시 학요가 이긴 건가?
누군가 아쉬운 듯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고 소령아 등도 순간 안색이 어두워졌다.
“하하하.”
피를 잔뜩 뒤집어쓴 학요는 꿈쩍없는 오른쪽 구멍을 바라보며 호탕하게 웃더니 일그러진 얼굴로 말했다.
“목진, 우쭐대더니 결국 내가 이겼구나.”
학요를 이렇게까지 만든 건 대단하지만 목진이 결국 패배했단 생각에 누군가 아쉬운 듯 한숨을 내쉬었다. 조금만 더 시간을 주면 목진은 분명 학요를 이길 수 있었을 텐데…….
사람들이 이런 생각을 할 때, 심창생과 이현통은 아무렇지 않은 듯 목진이 빠진 구멍을 물끄러미 바라보더니 담담하게 웃었다.
그때 맑은 울음소리가 다시금 울려 퍼졌고 실망 가득했던 사람들은 이내 화색이 되어 눈길을 돌렸다.
순간 학요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커다란 구멍에서 뜨거운 기가 솟아오르더니 흑염이 들끓으며 커다란 흑조가 하늘 높이 날아올랐다.
흑염이 깃든 흑조는 방대한 날개를 퍼덕이며 날카로운 눈빛으로 넋 나간 학요를 바라봤다.
현재 두 사람의 실력 차이는 더없이 명확했다.
“이럴 수가…….”
학요는 전혀 다치지 않은 구유작을 보며 중얼거렸다. 자신이 둔 최강수에도 목진은 아무렇지도 않아 보였다.
구유작의 방대한 몸이 빠르게 작아지더니 늘씬한 사람의 형태로 돌아와 사람들 앞에 나타났다.
목진이 본체로 돌아온 것이었다. 목진도 안색이 창백해져 썩 좋아 보이진 않았지만 힘 있는 두 눈과 전체적인 몸 상태로 보면 학요보다 훨씬 나았다. 녀석의 공격이 강력하긴 했어도 완전한 형태를 갖춘 구유작의 힘이 더 막강했다.
역시 구유작은 강력한 존재였다.
“학요 선배, 섣부른 판단은 일을 그르치는 법입니다.”
목진은 곧 쓰러질 것만 같은 학요를 바라보며 담담하게 웃었다.
“너도 분명 나와 상태가 비슷할 거야. 거짓말은 그만해.”
학요는 한껏 충혈된 눈으로 목진을 바라보며 최후의 일격을 날렸다.
이에 목진은 공격의 강도나 속도가 현저히 떨어진 학요를 바라보더니 무덤덤하게 손가락을 튕겼다. 강력한 영력 빛줄기가 상대방의 몸을 가격했다.
퍽!
학요는 바로 피를 토하며 바닥에 내리꽂혔고 기다란 흔적을 남기며 멀리 튕겨 나갔다. 그러나 목진은 멈추지 않고 다시금 손을 튕겨 또 하나의 영력 빛줄기를 날렸다.
쿵!
이에 대지가 흔들렸다.
슉.
그때 한 줄기의 빛이 하늘에서 학요의 몸을 내리쬐더니 그를 수렵전밖으로 내보냈다.
목진은 사라진 학요를 확인하고 나서야 시름을 놓은 듯 고개를 들어 숨을 내뱉었다. 쉽지 않은 싸움이었지만 다행히도 목진의 승리로 끝이 났다.
한편, 사람들은 어느새 경외에 찬 눈빛으로 사색이 된 소년을 바라봤고 심창생과 이현통도 미소를 지었다.
세 번째 자리는 역시나 목진의 몫이었다.
격렬한 싸움이 드디어 끝났지만 드넓은 영광대에는 두 사람이 싸운 흔적이 고스란히 남았다. 그중 깊게 파인 두 개의 커다란 구멍은 석대의 반 정도를 차지했고 이를 중심으로 퍼진 균열 때문에 구멍이 더 무서워 보였다.
석대 주위에 있던 사람들은 조용히 서서 방금 전에 일어났던 일을 되뇌며 소년에게 경외의 눈빛을 보냈다. 전에는 그저 그를 뛰어난 신생으로만 여겼는데 지금은 비로소 심창생, 이현통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목진은 비로소 천방 3위권에 들 자격이 충분해졌다.
북창령원에 온 지 반년밖에 안 된 목진은 그 성장 속도가 거의 괴물급이었고, 사람들은 이내 혀를 내둘렀다.
“목진이 이겼어요!”
소령아가 화색이 되어 소훤의 팔을 흔들며 외쳤고 그 옆에 있던 여정과 곽흉도 웃음을 보이며 소년을 바라봤다. 임무에서 돌아온 지 두 달도 안 되는 소년이 이렇게나 빨리 성장할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소훤도 흐뭇하게 웃더니 신기한 듯 목진을 바라봤다. 그녀마저도 소년이 학요를 이길 줄은 몰랐다. 녀석의 천부적인 재능이라면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했지만 북창령원에서 이름을 날린 학요를 이기기란 절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내가 천방 3위 자리를 내놓아야겠구나.”
소훤이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 천방에 그다지 관심 없는 소훤은 학요가 귀찮게만 하지 않았어도 순위권에 오르지 않았을 것이었다.
멀지 않은 곳에 있던 왕통 등도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목진을 바라봤다. 목진과 낙리가 영왕을 죽였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만 해도 이렇게까지 충격받지 않았는데 무려 학요와 싸워 이기다니, 그들의 생각에 학요를 이길 수 있는 사람은 심창생과 이현통 뿐이었다.
그러나 오늘부로 그 세 번째가 나타났다. 바로 신생 목진이다.
비록 학요의 실력이 영왕보다는 못하겠지만 이는 영왕을 죽인 것보다 더 큰 충격을 안겨주었다.
“목진이 학요를 이기다니…… 그럼 세 번째 자리는 녀석의 것이겠네.”
옆에 있던 안연이 조용히 하는 말에 왕통 등의 안색이 한껏 어두워졌다. 그는 구름에 가려진 산봉우리를 조용히 바라봤고, 그곳에는 이번 수렵전의 진수자, 형전 삼대장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들은 천방의 패주인 심창생마저 상당히 꺼리는 존재들이었다.
삼대장을 이기지 못하면 사람들이 여태껏 수렵전에서 한 노력이 순식간에 전부 물거품이 될 것이다.
이에 낙리는 미간을 조금 찌푸리며 목진을 바라봤다. 목진을 포함해 심창생과 이현통이 차지한 자리는 최강을 뜻하는 영예의 상징이기도 했지만 그만큼 압력도 엄청났다.
수렵전에 참가한 학생들은 대부분 한 해 동안 열심히 수련해 이곳 수렵전에서 이름을 날리고 영광 관정을 받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었다.
그런데 삼대 진수자가 이들 앞을 가로막고 있었다. 이에 다들 심창생, 이현통, 조금 전 학요를 이긴 목진에게 희망을 걸었다.
이들이 만약 삼대 진수자를 이긴다면 북창령원 학생들에게 마음속의 영웅뿐만 아니라 진심으로 숭배하고 고마워하는 존재가 될 것이다.
그러나 만약 패배한다면…….
모두가 기대에 찬 눈빛으로 자신을 바라보다 한순간에 원망 가득한 눈으로 바라본다면 그 타격은 엄청날 것이다. 이런 생각에 낙리는 주먹을 꽉 쥐고 조금은 엄숙한 얼굴로 목진을 바라봤다.
그때 심창생과 이현통이 목진에게 다가가 신기한 듯 소년을 보며 웃었다.
“학요와의 대결에서 이긴 거 축하해. 그러나 지금부터 삼대 진수자와 싸울 세 번째 사람이 되었다는 걸 알아야 해. 이는 절대 좋은 일만은 아니라는 것도 명심하고.”
두 사람의 말에 목진이 잠시 머뭇거리더니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목진도 세 번째 자리가 주는 엄청난 압박감을 잘 알고 있었다. 마지막 관문에서 승리하면 다행이지만 그게 아니라면 사람들의 한 해 동안의 노력이 수포가 될 것이고 그렇다면 정신적인 시달림도 엄청날 것이다.
아래쪽에 있던 낙리가 다가와 심창생과 이현통을 조용히 바라봤다. 이에 이현통은 파르르 떨리는 눈으로 낙리를 바라보더니 바로 고개를 돌려 목진에게 말했다.
“정확한 상황을 모를 테니 말해줄게. 나와 심창생이 상대편 두 사람과 힘을 겨뤄봤는데 승패를 가리기가 어려웠어.”
목진은 흠칫하며 이현통을 바라봤다.
“규칙대로라면 승패를 가리기 힘든 경우, 학생 측의 승리로 판정되어 우리가 이길 수도 있어.”
심창생이 조금은 무안한 듯 웃으며 말을 이어갔다.
“나와 이현통이 두 차례의 대결에서 무승부를 보장할 수 있지만 관건은 세 번째 대결이야.”
심창생의 말에 목진의 창백한 얼굴에 점차 그늘이 드리워졌다. 옆에 있던 낙리도 이내 인상을 찌푸렸다.
“네가 세 번째 대결에서 무승부를 낸다면 우리는 이기는 거고, 패배하면 우리도 지는 거야. 그럼 우린 그대로 수렵전을 마치고 빈손으로 돌아가야 해.”
이현통의 담담한 말에 목진의 안색이 한껏 어두워졌다.
세 사람이 나눠 짊어져야 할 압력이 지금은 목진 한 사람에게 몰려 있어 그의 승패에 따라 사람들의 태도에 큰 변화가 생길 것이다. 혹 패배하기라도 하면 다들 앞에서는 뭐라 하지는 않겠지만 눈길만으로도 한 사람을 무너뜨리기에 충분했다.
이는 학요와의 대결에서 패배한 것보다 주는 타격이 더 끔찍할 것이다.
학요와의 싸움은 개인의 대결이라 패배하면 신생이라서 그렇다고 넘어가겠지만 수렵전의 마지막 관문을 넘지 못하면 학생들의 기대와 노력을 저버린 거나 마찬가지였다.
한편, 심창생과 이현통은 사색에 잠긴 목진을 조용히 바라보았다. 무언의 긴장감은 금세 주위로 퍼져나갔다.
그들과 가까이에 있던 사람들은 그들이 하는 대화를 어느 정도 예상했기에 기대에 찬 눈빛으로 그들을 바라봤다.
학생들의 노력이 빛을 발할지는 전부 그들 셋에게 달려 있었다.
소령아와 소훤도 잔뜩 정색하여 목진을 바라봤다. 세 번째 자리는 신생인 목진이 차지하기엔 그 짐이 엄청났고 소년한테는 너무 잔혹한 일이었다.
그때 이현통이 정적을 깨고 입을 열었다.
“이 자리를 꿰차는 것이 부담되면 포기해도 좋아. 아무도 너를 원망하지 않을 거야. 넌 아직 신생이라 이토록 어마어마한 압력을 감수하지 않아도 돼.”
심창생도 웃으며 목진의 어깨를 다독였다.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지는 마. 이현통이 말하지 않았으면 난 네가 신생이란 사실을 잊을 뻔했어. 그러니까 아니다 싶으면 포기해. 내가 조금만 더 열심히 해서 임쟁 선배와 싸우다 보면 이길 수도 있지 않을까?”
그때 낙리가 목진의 손을 꼭 잡으며 담담하게 웃었다.
이 세상 모든 사람이 등을 돌려도 자기 마음속에서 목진은 제일 빛나는 별이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목진은 그녀의 마음을 읽기라도 한 듯 낙리와 눈을 마주치더니 서서히 눈을 감았다가 손에 힘을 주며 다시 눈을 번쩍 떴다. 예리하고 맑은 눈동자에는 두려움이나 고민 따위는 없었다.
그는 고개를 들어 삼대장이 있는 산봉우리를 바라보더니 피식 웃으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내가 짊어져야 할 짐이 엄청난 걸 알지만 내 사전에 포기란 없어요. 그리고 이 정도 압력도 견뎌내지 못하면 앞으로 어떻게 절세의 강자가 되나요?”
목진은 이리 말하며 옆에 서 있는 절세의 미인에게 고개를 돌렸다. 그는 언젠가 절세의 강자가 되어 그녀의 앞에 다시 나타나 그녀를 보호하겠단 약속을 한시도 잊은 적이 없었다.
그러니 지금의 압력을 견뎌내지 못하면 앞으로는 꿈도 꾸지 말아야 한다고 여겼다.
심창생과 이현통은 조금은 놀란 기색으로 갑자기 의욕이 넘친 소년을 바라보더니 이내 웃었다. 역시 목진은 학요보다 훨씬 믿음직했다.
이에 목진도 웃으며 먼 곳의 산봉우리를 뚫어져라 바라봤다. 그곳에 서 있는 존재들의 위압감이 엄청나 목진의 웃음이 점차 짙어졌다.
“그러니 세 번째 자리는 저한테 맡기세요. 결과가 어떻든…….”
목진은 점차 맑아지는 눈으로 두 사람을 번갈아 보며 말을 이어갔다.
“전력을 다할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