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0화. 최후의 결전
어느덧 해가 저물었고 영광산 아래는 더없이 떠들썩해졌다. 수렵전에 참가한 학생들은 그제야 마지막 전장에 모였다.
삼대 진수자와의 대결에서 승리해야 이들한테 영광 관정의 기회가 주어지기 때문에 지금 가장 중요한 일은 더 이상 영광 수집이 아니었다.
규칙에 따르면 삼대 진수자에게 도전하는 기회는 단 한 번뿐이었다. 만약 패배한다면 다들 빈손으로 돌아가는 것은 물론 한 해 동안 쏟아 부은 노력이 전부 물거품이 되는 것이다.
그렇다고 아무나 덤빌 수 있는 싸움이 아니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전부 기대와 희망을 최강의 실력을 지닌 3인에게 거는 것이다. 그들이 받는 압력이 엄청나다는 걸 알지만 나머지 학생들이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한편, 영광산의 산봉우리에 앉아 있던 목진은 끝없이 몰려드는 사람들의 기대에 찬 눈을 보자 조금 걱정되었다.
이번 진수자는 실력이 엄청나 심창생과 이현통이 힘을 합쳐도 무승부밖에 안 되기 때문에 승산이 그리 크지 않았다.
그때 가벼운 발소리가 나더니 낙리가 목진 옆에 다가와 앉았다.
“긴장돼?”
목진의 어깨가 조금 들썩였다. 자신의 생사만 걸려있는 문제였다면 그는 아무렇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수렵전에 참가한 모든 학생의 영광 관정이 걸린 문제라 긴장될 수밖에 없었다.
잠시 생각에 잠겼던 목진은 고개를 돌려 가여운 듯 낙리를 바라봤다. 자신은 이곳에 모인 학생들의 기대에 부응하기만 하면 되는데 낙리는 앞으로 더 엄청난 걸 감당해야 했다.
곧 낙신족의 여황이 될 그녀는 수억 명이나 되는 백성의 기대에 부응해야 하고 그들을 지켜내야 한다.
또 목진은 이번 대결에서 실패하면 한 해 동안 다시 수련하면 그만이지만 낙리는 단 한 번의 실패로도 낙신족 백성들이 잔혹한 죽음을 맞이할 수도 있고 낙신족이 피바다가 될 수도 있었다.
낙리에 비하면 목진이 견딜 무게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힘들지?”
목진이 소녀의 얼굴을 가볍게 쓰다듬으며 묻자 낙리는 소년의 품에 살포시 안겨 방긋 웃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이에 목진은 품에 안긴 소녀를 꼭 끌어안았다. 아무리 강한 낙리라도 일반인이라면 감당하지도 못할 만큼 엄청난 짐을 묵묵히 짊어진 것이 마음 아팠다.
“걱정하지 마. 난 절대 실패하지 않아.”
목진이 소녀의 향긋한 머리에 얼굴을 파묻으며 중얼거렸다.
그런데 다른 쪽 산봉우리에서 두 사람을 바라보는 심창생과 이현통의 안색은 조금 달랐다.
“학원에서 올해 진수자를 세 명이나 둔 이유를 모르겠네.”
심창생이 입을 삐쭉 내밀며 말했다. 자신 혼자서도 해결할 수 있었던 마지막 단계가 지금은 훨씬 어려워졌다.
그것도 삼대장이 한꺼번에 출전하는 것은 처음이었다.
“압력이 있어야 실력이 느는 법, 해마다 당신 혼자 모든 명예를 독차지하라는 법은 없잖아?”
이현통이 담담하게 말했다.
“이번 영광 관정만 마치면 마룡자를 해결할 수 있을 것 같아.”
심창생이 한기 어린 눈빛으로 마룡자를 떠올리며 말했다.
“엄청난 실력자야?”
이현통이 인상을 찌푸리며 물었다. 마룡자와 힘을 겨룬 적은 없지만 심창생한테 잡히지 않는 것으로 보면 절대 호락호락한 상대가 아니었다.
“그래.”
이에 심창생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용마궁에서 심혈을 기울여 배양한 천재이긴 한데 최강자는 아니야. 마형천이 더 무서운 존재야. 홀로 싸우면 나라도 그자의 상대가 안 될 거야.”
“마형천이라…….”
이현통은 순간 안색이 어두워졌다. 현상방 1위를 차지한 미치광이는 북창령원 학생들에게 매우 무서운 존재였다.
“이번 수렵전이 끝나면 나와 함께 출원하여 마룡자와 마형천을 잡자.”
심창생이 웃으며 이현통에게 말했다.
심창생이 이런 요청을 보낼 사람은 손에 꼽힐 만큼 적을 거란 생각에 이현통은 잠시 흔들렸다. 그는 고개를 들어 삼대 진수자가 있는 산봉우리를 보고 말했다.
“일단 코앞에 닥친 일부터 해결할까? 이번 대결에서 승리하지 못하면 그 계획을 미뤄야 할 수도 있어.”
이에 심창생도 고개를 끄덕이더니 먼 곳에 있는 소년한테 고개를 돌렸다. 이번 대결의 승패는 결국 목진에게 달렸다.
어느덧 어둠이 가시고 아침 햇살이 드리우자 영광산은 다시금 떠들썩해졌고 사람들은 이글거리는 눈으로 산봉우리를 바라봤다.
슉.
바람을 가르는 소리와 함께 심창생 등이 허공에 떠 올랐다.
심창생이 아래쪽에 있는 사람들에게 말했다.
“다들 알다시피 수렵전의 마지막 관문은 우리 모두에게 중요해. 그렇지만 이 자리가 가져다주는 무거운 압박감을 짊어져야 할 의무는 누구한테도 없어. 그러니까 결과가 안 좋더라도 우리한테 책임이 없다는 것만 명심했으면 좋겠어. 그러니까 이후에 우리 탓이라며 질타할 사람이 있으면 지금 당장 나와. 내 자리를 물려주면 그만이야.”
그 말에 순간 정적이 흘렀다. 목진은 고마운 듯 심창생을 바라보며 방긋 웃었다. 심창생은 목진이 대결에서 패배했을 때를 대비해 누군가가 그를 질타할까 봐 이리 말한 것이 분명했다. 비록 결과가 아직은 불분명하지만 마음만으로도 고마웠다.
“걱정 마세요, 심창생 선배. 우린 절대 그런 망나니가 아니에요. 세 분은 우리 중 최강자로 당신들이 실패하면 우리도 절대 성공할 수 없어요. 그러니 질타는 더더욱 있을 수 없는 일이에요. 만약 실패해도 세 분에 대한 마음은 절대 변치 않을 거예요!”
심창생의 말이 끝나자마자 진호라는 사람이 큰소리로 외쳤다.
“그래요!”
“대결에서 진다고 해도 괜찮으니까 최선을 다해주세요!”
“심창생 선배, 이현통 선배, 목진, 힘내요. 실패해도 당신들은 최고예요!”
한 소녀의 청량한 목소리에 다들 동의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이에 목진이 미소를 지으며 심창생과 이현통을 바라보며 말했다.
“사람들이 이렇게까지 나오니 절대 실패하지 말아야겠네요.”
“최선을 다하면 돼.”
심창생과 이현통도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들어 우뚝 솟아오른 영광산을 바라봤다.
“이만 떠나자, 형전 삼대장이 도대체 얼마나 대단한 인물인지 직접 확인하러 가야지.”
심창생은 말이 끝나기 무섭게 한 줄기의 빛이 되어 산봉우리로 향했고 목진과 이현통, 낙리도 그 뒤를 따랐다. 사람들 또한 이들 뒤를 따라 산봉우리에 올랐는데 그 모습이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 * *
그 시각, 북창령원의 북명광장도 떠들썩해졌다. 다들 광막을 통해 상황을 지켜보았는데 구름 사이로 서서히 보이는 산봉우리의 수렵전도 점점 끝나가고 있었다.
사람들이 빈손으로 돌아올지 아니면 영광 관정을 받고 웃는 얼굴로 돌아올지는 오늘 있을 대결에 달렸다.
그러나 북명광장에 있는 사람들은 아직 최후의 3인이 누구인지 몰랐다. 심창생과 이현통이 두 자리를 차지할 거라는 건 이미 알고 있었지만 마지막 자리를 누가 차지할지 몰랐기에 기대에 찬 눈빛으로 광막을 바라봤다.
구름이 완전히 가신 곳에 커다란 산봉우리 세 개가 우뚝 솟아올랐는데 그 위에 각각 한 명씩 조용히 앉아 있었다. 바람에 옷깃이 휘날리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위압감을 형성해 광막을 통해서도 생생하게 느껴졌다.
“저들이 형전 삼대장이란 말인가? 기세가 엄청나군.”
“역시 천방 3위권에 들었던 사람들이라 남달라. 셋 다 통천경의 실력자라 그런지 광막을 통해 보는 것만으로도 소름이 돋는군.”
“올해의 마지막 관문이 너무 어려운 것 아닌가? 삼대장이 나섰으니 심창생 선배라도 뚫기가 쉽지 않을 텐데…….”
사람들은 경외에 찬 눈빛으로 광막 속 산봉우리에 앉아 있는 삼대장을 바라봤다. 곧 일어날 대결은 북창령원에서 다시는 볼 수 없는 최고의 대결이라 자못 흥미로웠다.
그때 바람을 가르는 소리와 함께 구름 아래에서부터 사람들이 벌떼처럼 끝없이 몰려들었다.
“드디어 도착했네!”
다들 상기된 얼굴로 그들을 바라봤다.
사람들 사이에서 세 명이 천천히 걸어 나왔는데 그중 두 명은 역시나 심창생과 이현통이었다. 그리고 다들 마지막 1인에 눈길을 돌렸는데 그 정체를 확인하고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저건…….”
엽경령 등은 눈이 휘둥그레져 낯익은 누군가를 바라보며 말했다.
“목진이잖아!”
순간 북명광장이 들끓었다.
구름이 자욱한 영광산 정상의 세 산봉우리 주위로 사람들이 끊임없이 모여들었다.
다들 이곳에 모여 최후의 결전을 기다리고 있었다.
사람들은 자연스레 산봉우리에 조용히 앉아 있는 세 명의 진수자에게 눈길을 보냈다. 이들은 사람들이 몰려드는 것도 개의치 않고 더없이 평온하게 앉아 있었다.
사람들이 경외에 찬 눈빛으로 바라보는 있는 세 사람이 바로 이번 수렵전의 최후의 진수자였다. 그들은 천방 3위권에 들었던 형전의 삼대장이었다.
한편, 산봉우리 주위에 사람들이 잔뜩 몰려들었지만 신기할만큼 조용했다. 다들 진수자 3명한테서 느껴지는 위압감에 감히 입을 열지 못했다.
잠시 후, 사람들 속에서 학생 세 명이 걸어 나와 세 척의 거봉에서 천 장 정도 떨어진 허공에 멈춰 섰다.
영광산과 북명광장에 몰려든 사람들은 기대와 불안, 의심 가득한 눈길로 그들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그들의 감정이 어떻든 이들 세 명이 모든 이들의 관심을 독차지한 것은 사실이었다.
그들이 나타나자 산봉우리에 조용히 앉아 있던 세 명의 진수자가 서서히 눈을 떴다. 그러자 천지의 영력이 갑자기 폭동을 일으키더니 엄청난 소리를 냈다.
“심창생, 드디어 왔구나.”
산봉우리 중심에 있던 사내가 담담하게 웃으며 입을 열자 그가 주는 압박감에 다들 심장이 벌렁거렸다.
“오래 기다리게 해서 죄송해요, 임쟁 선배.”
심창생이 사내를 바라보며 웃었다.
“저 사람이 삼대장의 우두머리인 임쟁이에요?”
검은색 도포를 입고 있는 사내는 백발이었는데 나이가 들어 머리가 센 백발이 아니라 은빛을 띤 신기한 색이었다.
일전에 목진이 삼대장에대해 들은 정보로는 임쟁이 삼대장의 우두머리로 실력이 가장 뛰어난 사람이라고 했다.
“역시 천방 1위였던 사람이야.”
목진은 임쟁의 체내에서 강한 압박감을 느꼈는데 이는 머리 위에 산 한 척이 올려져 있어 숨쉬기조차 어려운 느낌이었다.
보아하니 그는 이미 통천경에 이른 것 같았는데 심지어 통천경 초기도 아니었다.
통천경은 지존경에 이르기 바로 전 단계로 지존경의 강자가 한 대륙의 주인이 될 수 있다면 통천경은 해당 대륙의 한쪽을 책임질 만큼 강력한 존재였다.
임쟁이 이렇게 젊은 나이에 통천경에 이르렀다는 것은 그의 천부적인 재능이 얼마나 뛰어난지 말해주는 것과 같다.
“오래 기다린 건 괜찮지만 마지막 관문인 만큼 절대 봐주지 않을 거야.”
임쟁 오른쪽에 있는 산봉우리에서 누군가의 말소리가 들려와 목진이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빨간색 도포를 입은 남자가 있었는데 머리카락조차 빨간 것이 꼭 화염이 불타오르는 것 같았고 그 열기 때문에 주위의 공기가 일그러졌다.
“저자가 바로 고천염(古天炎)으로 네가 상대해야 할 사람이야.”
이현통이 작은 목소리로 하는 말에 목진은 순간 정색하였다. 상대방의 영력이 너무 난폭해 주위를 불바다로 만들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임쟁처럼 실력이 강력하진 않았지만 충분히 위험한 냄새가 진동했다. 이들 세 명 중 그 누구도 호락호락한 상대는 없었다.
“고천염의 실력은 통천경 초기로 천염신결을 수련해 영력이 천화처럼 뜨겁고 난폭해. 그가 손을 가볍게 휘두르면 도성 하나가 거뜬히 사라지니 조심하는 게 좋을 거야.”
이현통은 목진에게 자신이 알고 있는 정보를 최대한 많이 알려주려고 애썼다. 영광 관정이 걸린 일이니 하나라도 더 알려줘야 승산이 있을 것이다.
이에 목진은 고개를 끄덕이며 생각했다. 통천경 초기는 학요처럼 통천경에 채 이르지 못한 것과는 달랐다. 학요가 고천염과 싸우면 다섯 번 안에 처절하게 패배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구유화를 융합한 목진의 영력과 고천염의 영력이 맞서면 과연 누가 더 강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