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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주재-224화 (223/1,000)

224화. 서막을 내리다

이때, 한 산봉우리에서 갑자기 바위가 굴러떨어지더니 한 갈래의 붉은색 영광이 하늘 높이 솟아올랐다.

“고천염이다!”

누군가 소리를 지르며 말했다.

붉은빛이 서서히 사라지며 고천염의 정체가 드러났는데 온몸에 피를 뒤집어쓴 녀석은 안색이 창백했고 주위를 맴도는 영력 또한 처음처럼 강력하지 않았다.

목진과의 대결은 아무리 고천염이라도 쉽지 않았던 모양이었다.

사람들은 다시 눈앞에 나타난 고천염을 보고는 마음이 무거워졌다. 고천염은 비록 중상을 입긴 했으나 전혀 힘을 쓰지 못할 정도로 보이지는 않았다. 그러나 목진은 아직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사람들은 아무런 움직임도 없는 다른 쪽 산봉우리를 바라보며 손에 땀을 쥐었다.

그때 잠시 정적이 흐르더니 드디어 바위가 굴러떨어지고 한 갈래의 미세한 영력이 날아올랐다. 그리고 그 속에서 누군가 비틀거리며 허공에 멈췄다.

목진이었다.

온몸이 상처투성이인 소년은 고천염보다 더 심한 부상을 입은 것 같았지만 갈기갈기 찢어진 옷을 휘날리며 고천염을 바라보는 시선은 더없이 날카로웠다.

허공에 나타난 소년을 넋 놓고 바라보던 사람들은 드디어 정신을 차리고 하늘을 떠나갈 듯한 엄청난 환호와 박수갈채를 보냈다.

목진이 무너지지 않아 정말 기뻤다.

이들은 숭배에 가득 찬 마음으로 목진을 바라보며 그를 심창생, 이현통과 동급으로 취급하였다.

“엄청난 소년일세!”

왕통 삼형제도 격동되어 얼굴이 한껏 상기되었다. 목진은 이번 대결로 사람들의 마음을 완전히 사로잡았다.

오늘이 지나면 북창령원에서 목진은 심창생과 이현통 못지않게 유명해질 것이고, 북창령원에서 명성이 자자한 소훤과 학요 등도 그에게 밀려날 것이다.

한편, 목진이 잘못될까 봐 잔뜩 긴장한 채 숨조차 쉬지 못했던 소령아는 너무 기뻐 소훤의 팔을 흔들며 환호하였다. 소훤도 고개를 끄덕이며 흐뭇하게 목진을 바라봤다.

몇 개월 전까지만 해도 북창령원의 무명인사였던 목진이 지금은 이토록 놀라운 실력을 선보일 줄 몰랐다.

그는 아마 북창령원 역사상 진보가 가장 빠른 신생일 것이다.

그러나 낙리는 다른 사람들과 달리 그저 담담하게 미소를 지었다. 소녀는 소년이 언젠가 빛을 발할 날이 올 거란 걸 이미 알고 있었다.

이는 목진을 마음에 품기로 한 날부터 단 한 번도 변하지 않는 사실이었다.

후우.

심창생과 이현통도 이내 안도의 한숨을 쉬며 인정하듯 목진을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목진은 놀라운 녀석이었다.

허공에 선 고천염 또한 사람들이 보내는 박수갈채와 맑은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목진을 보고는 씁쓸하게 웃었다. 자신이 학생이었을 때도 이런 대접을 못 받았는데 지금은…….

“고 선배, 대결은 어땠나요? 계속하고 싶으면 얼마든지 상대해 드리겠습니다.”

목진이 입가의 피를 닦아내더니 씨익 웃으며 말했다.

이에 고천염은 웃으며 손을 절레절레 흔들었다.

“계속하면 사람들이 나를 엄청나게 원망할 거야. 그리고 네가 내 공격을 받아만 내면 이번 대결은 네가 승리한 것으로 하겠다고 약속하지 않았나?”

말을 마친 고천염은 옷매무새를 정리하더니 목진에게 정중하게 말했다.

“이번 시합은 내가 졌어.”

고천염은 더 이상 목진을 화천경 초기밖에 안 되는 신생으로 보지 않았다.

“고마워요, 고 선배.”

목숨을 걸고 맞바꾼 결과에 목진은 만족하는 눈치였다.

“목진이 이겼어!”

“목진이 이겼네!”

북명광장과 영광산에 있는 사람들은 목진과 고천염의 대결 결과를 듣더니 환호를 금치 못했고 수석대에 있던 장로들도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도 이러한 대결에 만족하는 모양이었다.

“우리 북창령원에 요물이 늘어났네요. 축하드립니다, 원장님.”

태창 원장 옆에 있던 백발노인이 웃으며 하는 말에 원장도 담담하게 웃으며 소년을 바라봤다.

“성령원에서는 기연을 얻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고 하던데, 목진도 그에 못지않군. 절대 뒤처지지 않아.”

한편, 심창생과 이현통도 호탕하게 웃고는 돌아서서 안색이 어두워진 임쟁과 주청산을 마주하고 말했다.

“선배, 이젠 우리가 싸울 차례인 것 같네요.”

심창생과 이현통한테서 자신감이 물씬 느껴졌다.

비록 임쟁과 주청산이 쉬운 상대가 아니고 승전도 보장할 수는 없지만 무승부는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또한, 목진이 승리한 이상 나머지 두 사람이 무승부로만 마무리해도 학생들의 승리가 될 것이다. 어렵게 이긴 목진을 봐서라도 그들은 절대 지지 않으리라 마음먹었다.

그 모습에 임쟁과 주청산은 서로를 바라보더니 어색하게 웃었다. 상황이 이렇게 흘러갈 줄 전혀 몰랐다.

어느덧 사람들은 환호를 멈추고 잔뜩 흥분해 다른 두 산봉우리를 바라봤고 목진도 이내 시름을 놓았다. 그는 최선을 다했고 이제부터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목진이 힘에 겨워 휘청이기 시작했는데 마침 뒤쪽에서 은은한 향기가 전해지더니 낙리가 목진 옆에 나타났다. 그녀는 피범벅이 된 소년을 부축하며 흑신뢰 때문에 만신창이가 된 목진의 고통을 생각하자 마음이 아팠다.

“괜찮아?”

낙리가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그녀는 목진이 목숨을 바쳐가며 싸운 것이 안쓰러워 돕고 싶었지만 이런 일에 나서면 안 되는 걸 잘 알았다. 남자의 자존심 문제가 아니라 책임감 때문이었다.

이는 목진이 짊어져야 할 그만의 책임이었고 그 또한 누군가가 자신을 돕는 걸 원치 않을 것이다.

낙리의 물음에 목진은 생긋 웃더니 소녀의 허리를 감싸 안고 몸을 기댔다. 그는 체내에서 전해지는 고통 때문에 몸을 파르르 떨었지만 너무 미세해 낙리만 느낄 정도였다.

“이제부턴 나와 상관없는 일이야.”

목진은 멀리 떨어져 있는 두 산봉우리를 바라보며 말했다. 결과가 어떻게 되든 최선을 다한 것으로 만족했다.

“네가 가장 중요한 일을 해냈으니 이번 대결은 우리가 이길 거야.”

낙리가 담담하게 웃으며 말을 이어갔다.

“축하해, 넌 곧 북창령원의 유명인사가 될 거야.”

“난 그런 거 별로 좋아하지 않아.”

목진은 낙리의 얼굴을 뚫어져라 바라보며 말했다.

“네가 나 때문에 북창령원에 오느라 수련할 시간을 많이 허비했잖아.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없지만 적어도 피해는 최소화해야지. 그래서 난 어떻게든 네가 영광 관정을 받게 할 거야.”

그 말에 낙리는 흠칫 놀라 피투성이가 된 소년을 바라봤다. 그녀는 이제야 목진이 영광 관정에 목숨을 건 이유를 알았다.

“난 전혀 손해 보지 않았어. 반대로 북창령원에 있는 시간이 너무 행복했어.”

낙리가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하는 말에 목진도 씨익 웃으며 소녀를 꼭 끌어안았다.

이와 동시에 심창생과 이현통도 싸울 준비를 마쳤다.

쿵!

웅장한 영력이 하늘 높이 솟아오르며 강력한 위압감을 형성하더니 이 구역을 감쌌다.

그러나 임쟁 등은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임쟁 선배.”

“주청산 선배.”

심창생과 이현통이 동시에 합장하며 외쳤다.

“이만 시작할까요?”

쾅!

말이 끝나기 무섭게 두 사람은 한껏 날카로워진 눈으로 발을 굴러 상대방을 향해 돌진했다.

그러나 임쟁과 주청산은 서로 눈을 마주치더니 어깨를 들썩이고 뒤로 물러났다. 이것은 아무도 예상치 못한 전개였다.

임쟁과 주청산의 실력으로 이럴 필요까지는 없었다.

심창생과 이현통도 어리둥절하여 공격을 멈추고 싸울 마음이 없는 두 사람을 바라보며 인상을 찌푸렸다.

“더는 싸울 필요가 없을 것 같구나.”

임쟁이 씁쓸하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

“마지막 관문은 학생들의 승리다.”

주청산이 어깨를 들썩이며 말을 이어갔다.

이에 심창생과 이현통을 포함한 영광산 주위에 모인 학생들은 모두 흠칫 놀라다가 금세 환호했다. 그 소리가 그곳을 완전히 뒤덮었다.

임쟁과 주청산이 먼저 패배를 인정하다니, 이는 수렵전에 참석한 사람 모두가 영광 관정을 받을 수 있다는 뜻이었고 한 해 동안 열심히 수련한 보상이 드디어 돌아온다는 뜻이기도 했다.

“포기라니…….”

목진도 조금은 놀란 눈치였지만 어느 정도 예상은 했다. 임쟁과 주청산은 실력이 뛰어나지만 이와 엇비슷한 실력의 심창생, 이현통과 싸워봐야 무승부로 끝날 것이 뻔했다. 하여 결과가 뻔히 보이는 데 시간과 정력을 낭비할 필요까지는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다만, 적어도 싸울 줄은 알았는데 심창생과 이현통에게 아예 힘을 겨룰 기회조차 주지 않을 줄은 몰랐다.

“그럼 이대로 끝난 건가요?”

심창생이 웅장한 영력을 거두며 묻자 임쟁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더니 손가락을 튕겨 한 갈래의 영력을 하늘에 쏘아 보냈다.

그러자 영력이 닿은 곳의 공간이 일그러지더니 노인 두 사람이 나타났다.

“임쟁과 주청산이 포기했으니 마지막 관문은 학생 측의 승리로 끝내겠다. 규칙대로 모든 학생은 얻은 영광만큼 영광 관정을 받을 것이다.”

두 장로의 최종 판정에 학생들은 너무 기뻐 미친 듯이 고함을 질렀다.

잠시 후, 학생들이 조금 진정되자 장로들은 목진, 심창생, 이현통을 번갈아 보며 말했다.

“너희 셋은 마지막 싸움에 직접 참여했고 승리까지 하였으니 그 보상은 따로 줄 것이다.”

그중 한 노인이 이리 말하더니 옷깃을 휘날려 세 갈래의 눈부신 빛을 쐈다. 이는 영롱한 영정으로 그 속에는 액체가 천천히 흘렀으며 지극히 강력하고 순수한 영력 파동이 느껴졌다.

이것은 다름 아닌 영왕급 영정으로 영력의 세기로만 보면 목진과 낙리가 죽인 영왕보다 품고 있는 영력이 훨씬 강력했다.

“너희 셋의 영광 관정은 사흘 뒤에 형전에서 장로가 직접 집행할 것이다.”

장로의 말에 다들 부러운 듯 목진 등을 바라봤지만 이들이 받아 마땅한지라 불만은 전혀 없었다.

그런데 목진은 눈앞에 나타난 맑은 영정을 바라보며 잠시 머뭇거리다가 두 장로에게 물었다.

“혹시 영광 관정의 기회를 양도할 수도 있나요?”

목진의 말에 낙리의 안색이 어두워졌고 장로들도 화들짝 놀라 목진과 낙리에게 고개를 돌렸다.

“너희들이 받게 될 영광 관정은 특수하니만큼 완전한 영왕급 영정을 지니기만 하면 받을 수 있단다.”

이에 목진은 바로 자신의 반쪽 영정을 낙리에게 줬고, 이는 낙리의 반쪽과 한데 어우러져 완전체가 되었다.

“이러면 되는 건가요?”

목진이 웃으며 물었다.

“목진, 영광 관정은 영정이 많을수록 그 효과가 좋단다.”

장로들은 목진이 스스럼없이 자신의 반쪽 영왕 영정을 낙리한테 주자 조금 놀란 듯했다.

그러나 정작 목진은 아무렇지 않았다. 영광 관정도 중요하지만, 그에게 낙리만큼 소중한 건 없었다.

한편, 영정을 건네받은 낙리는 눈가가 촉촉해져 목진의 손을 꼭 잡았다.

“너희가 마지막 관문까지 뚫었으니 올해 수렵전을 무사히 마쳤음을 선포한다!”

장로들은 목진이 뜻을 굽힐 것 같지 않자 바로 수렵전의 끝을 알렸다.

이때, 하늘에서 눈부신 빛줄기가 내리쬐어 그곳에 있는 사람들을 전부 감쌌다.

목진도 팔을 벌려 빛줄기의 세례를 받으며 드넓은 영광계를 바라보고는 큰 짐을 내려놓은 듯 길게 숨을 내뱉었다.

드디어 이곳 영광계를 벗어날 수 있게 되었다.

북명광장에 있던 거대한 광막이 서서히 사라지는 것을 바라보고 있던 학생들은 더없이 흥분된 상태였다. 목진과 고천염의 대결은 그야말로 놀라웠고 마지막 대결 결과 또한 예상 밖이었다.

아무도 목진이 대결에서 승리할 줄 몰랐고 이로 인해 상대 쪽에서 나머지 두 차례의 대결을 포기할 줄은 더욱더 몰랐다.

북창령원에 천재는 많았지만 목진처럼 신생의 신분으로 이토록 놀라운 성과를 거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오늘부터 목진은 북창령원에서 심창생, 이현통 못지않게 명성을 떨치게 되었다.

슉슉!

하늘이 일그러지더니 수많은 사람이 그 속에서 튀어나왔다. 눈부신 빛을 휘두른 그들의 몸에서 아주 놀라운 영력 파동이 느껴졌다.

그들은 사람들 눈앞에 나타나자마자 바로 사방으로 흩어졌는데 모두 수련하러 급히 떠난 것이었다. 영광 관정으로 몸에 웅장한 영력을 불어넣었으니 최대한 빨리 흡수해야 했다.

이제 북창령원 학생들의 실력은 크게 향상될 것이다.

수많은 인파 속에서 느긋하게 걸어 나오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누군가 이들을 발견하고 소리쳤다.

“목진 일행이다!”

“영광 관정은 받지 않았나?”

또 다른 누군가가 어리둥절하여 물었다. 목진 일행 주위에는 아무런 빛도 보이지 않았고 체내에도 영광 관정을 받은 흔적이 보이지 않았다.

“바보야, 그들은 이번 수렵전에서 최강 3인조로 특별한 영광 관정을 받을 거야.”

“영광 관정에도 등급이 있어요?”

신생 한 명이 두 눈이 휘둥그레져 물었다.

“당연하지. 일반 영광 관정은 영광계를 벗어나는 순간, 저절로 영력으로 전환돼 몸에 들어가게 돼. 그런데 이렇게 얻은 영력은 순수하긴 해도 그중 대부분은 흡수하는 과정에서 유실되는 경우가 많아 실제로는 반 정도밖에 흡수하지 못해. 하지만 목진 일행의 영광 관정은 달라. 장로들이 직접 이들을 위해 영광 관정을 집행한다던데 이런 대우는 아무나 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니지.”

“그렇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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