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5화. 천방 3위의 새로운 주인
한편, 목진은 끝이 보이지 않는 북명광장을 보더니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영광계 내부는 영력이 그윽하긴 하나 뭔가 부족했다. 역시 외부의 공기가 더 맑고 좋은 것 같았다.
“너희 네 명은 일단 돌아가 몸을 추스르고 사흘 뒤에 영광 관정을 받으러 형전에 가거라.”
두 명의 백발 장로가 목진 일행 앞에 나타나 말했다.
“네.”
“목진, 이번엔 네가 고생이 많았다. 돌아가 푹 쉬고 사흘 뒤에 형전에서 보자꾸나.”
심창생이 목진을 보며 방긋 웃었다. 그도 이번 대결이 이렇게 잘 풀릴 줄 몰랐던 모양이었다. 그와 이현통이 피 튀기는 혈투를 벌여야 할 줄 알았는데 오히려 목진이 가장 힘들었고 두 사람은 겨우 얼굴만 비추게 되었다.
이에 목진은 묵묵히 웃기만 했다. 그는 체내에서 전해져오는 고통 때문에 말조차 하기 힘들어 최대한 빨리 돌아가 쉬고 싶었다.
“먼저 데리고 돌아갈게요.”
목진이 아파하는 모습에 마음이 아픈 낙리는 심창생, 이현통에게 인사를 하고 바로 그곳을 떠났다.
“저 아이, 좋아해?”
두 사람이 떠나는 뒷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이현통에게 심창생이 히쭉 웃으며 묻자 녀석은 쓸쓸하게 웃기만 했다.
“서로를 보는 눈빛이 예사롭지 않은데, 넌 기회가 없을 것 같네.”
심창생은 이현통이 조금은 가여웠다. 낙리는 확실히 훌륭한 여인이었다. 그러나 수렵전 내내 자신과 이현통을 제대로 쳐다보지도 않고 목진에게만 눈길을 주는 것이 목진을 마음속 깊이 품고 있음이 확실했다.
이현통은 심창생을 흘겨보며 입을 삐쭉 내밀었다.
“그만 마음 접어. 세상에 여자가 얼마나 많은데 그중에 분명 네 짝이 있을 거야. 그리고 우리는 일단 마룡자를 죽이는 현상 임무부터 다시 받자. 이번에 우리 두 사람이 힘을 합치면 분명 녀석을 잡을 수 있을 거야.”
심창생이 이현통의 어깨를 다독이더니 냉기 어린 눈빛으로 말을 이어갔다.
“2년간 밖에 나가 수련한 학생 중에 마룡자의 손에 죽은 이들만 해도 벌써 세 자릿수나 돼.”
이현통은 인상을 찌푸리더니 이내 정색하며 말했다.
“용마궁 세력이 북창대륙에서 창궐하고 있다고 들었어…….”
“용마궁은 원장 쪽에서 걱정할 일이고 우리는 일단 마룡자만 해결하면 돼. 안 그럼 북창령원의 학생들이 무능하다고 소문날 거야.”
심창생이 담담하게 말했다.
“나와 함께 할래?”
심창생의 제안에 이현통은 잠시 고민하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마룡자도 이제 죽을 때가 됐어.”
“그래, 좋아.”
심창생은 호탕하게 웃으며 대화를 마치고 바로 북창령원의 깊숙한 곳으로 향했고 이현통도 거처로 돌아갔다.
영광계에서 나온 사람들이 전부 흩어지자 북명광장에 모였던 학생들도 다들 천방 순위권에 곧 큰 변화가 있을 거라고 예상하면서 아쉬움 가득한 얼굴로 자리를 떠났다.
* * *
목진과 낙리는 바로 집으로 돌아왔다. 목진의 안색은 더없이 창백했고 피를 토하기까지 했다. 이는 고천염 때문이 아니라 현재 목진 체내에 깃든 흑신뢰의 힘을 감당하기 어려워 생긴 일이었다.
다행히 목진이 뇌신체를 수련했기에 피해가 상대적으로 적었다.
한편, 낙리는 목진이 갑자기 피를 토하자 깜짝 놀라 황급히 그를 부축해 자리에 앉혔다.
“괜찮아, 목숨은 붙어있으니까. 이제 보양(保養)만 잘하면 돼.”
“목숨까지 걸 필요가 있었어?”
낙리는 자기 몸을 아끼지 않는 목진이 안쓰럽고 화가 났다. 흑신뢰는 구유작처럼 강대한 영수마저도 무서워하는 존재인데 목진은 감히 그것을 체내에서 폭발시켰으니, 이는 자살이나 마찬가지였다.
보는 눈이 많아서 참았던 때와 달리 집에 돌아와서야 낙리는 진심을 털어놨다.
“내가 영광 관정을 받지 못해도 괜찮아. 그리고 난 너한테 뭘 원해서 북창령원에 온 게 아니야.”
낙리가 입술을 가볍게 깨물며 하는 말에 목진이 머리를 긁적이며 손을 뻗었다. 그러나 눈가가 촉촉해진 낙리는 이를 단번에 뿌리쳤다.
목진은 화가 난 소녀를 확 끌어안고 방긋 웃더니 천천히 입을 맞췄다.
그렇게 한참 지나서야 입을 뗀 목진은 부끄러워 얼굴이 빨갛게 달아오른 소녀를 바라보며 말했다.
“걱정시켜서 미안해…… 그런데 난 너한테 무언가를 보상하려고 한 게 아니었어. 만약 오늘 같은 일도 막아내지 못하면 앞으로 너를 어떻게 지키겠어?”
그윽한 눈빛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소년의 모습에 낙리는 그제야 안색이 풀어졌다.
“내가 죽기 살기로 따낸 영광 관정의 기회인데 넌 화만 내고, 나한테 상이라도 줘야 하는 거 아니야?”
목진이 배시시 웃으며 물었다.
“무슨 상?”
괜히 불안해진 낙리는 몸을 비틀었지만 목진은 히쭉 웃으며 자연스럽게 손이 아래쪽으로 내려갔다. 이에 낙리가 당황해 잠시 머뭇거리다 목진의 손을 뿌리치려고 했는데 소년의 머리가 낙리에게 기울어졌다.
너무 피곤해 잠이 든 것이었다.
낙리는 피식 웃으며 목진을 끌어안고 가볍게 입을 맞추었다. 그리고 소년의 이마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목진, 걱정하지 마. 내가 반드시 너를 지킬 거야. 아무도 널 해칠 수 없게 말이야.”
* * *
이튿날, 잠에서 깨어난 목진은 피곤함이 많이 가셨고, 몸속에서 전해지는 아픔도 많이 사라진 상태였다.
그는 다시 체내를 살폈는데 일부 경맥이 까맣게 그을려 있었다. 뇌신체를 수련하여 육신이 강해져서 다행이지 경맥이 끊어지기라도 했으면 큰일 날뻔했다.
“앞으로 사흘 정도만 더 쉬면 상처가 다 낫겠네.”
목진이 중얼거리며 몸을 움직이려는데 품에서 온기가 느껴졌다. 고개를 숙여보니 낙리가 자신의 품에 안겨 단잠을 자고 있었다. 그는 방긋 웃으며 소녀의 볼에 입을 맞추고 조용히 방에서 나왔다.
밖으로 나온 목진은 눈부신 빛에 눈을 찌푸리다가 따스한 햇볕에 몸이 저절로 느슨해졌다.
멀리서 들려오는 사람들의 기합 소리와 푸른 하늘을 날아다니며 맑은 울음소리를 내는 새들로 인해 북창령원에는 생기가 넘쳤다.
이를 만끽하던 목진은 기해 속 신백을 움직여 주위의 천지 영기를 몸속으로 흡수시켰다. 그러자 고갈되었던 영력이 다시 돌며 계속해서 상처를 치료했다.
목진은 오랜만에 여유를 마음껏 즐기며 좁은 길을 따라 신생 구역의 호수 옆 광장으로 나왔다. 그곳에는 낙신회 회원들이 수련하고 있었다.
“목 형!”
목진이 나타나자 사람들은 화색이 되어 몰려들었다.
자신을 숭배하듯 바라보는 사람들의 눈빛에 목진은 이내 손을 흔들며 인사를 하고는 광장 변두리에 있는 석대에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 서서히 눈을 감고 천지의 영력을 흡수했다.
“하루 만에 다시 걸어 돌아다니다니, 회복 속도가 정말 대단하네.”
누군가 가볍게 웃으며 하는 말에 목진이 눈을 떠보니 엽경령이 어느새 옆으로 다가와 있었다.
“내가 누워있는 꼴을 보고 싶었나 보네요?”
목진이 웃으며 묻자 엽경령이 그 옆에 앉으며 대답했다.
“축하해! 넌 북창령원에서 진정한 유명인사가 됐어. 이젠 학요마저 너를 따라가지 못해. 수렵전이 끝난 뒤로는 요문 회원들이 우리만 보면 피하기 급급하고 더는 전처럼 우쭐대지도 않아. 지금 너의 명성은 심창생, 이현통에 비해도 전혀 뒤처지지 않는다니까.”
“난 조용한 게 좋아요.”
“그건 이제 힘들 것 같네.”
엽경령이 씨익 웃더니 양피지 한 장을 꺼내 목진에게 건네주었다.
“수렵전이 지나고 천방 순위가 많이 바뀌었어. 넌 천방 3위로 심창생과 이현통만 빼면 북창령원 학생 중 최강이야.”
목진이 천방 순위가 적힌 양피지를 펼치자 자신의 이름이 떡하니 천방 3위에 적혀 있는 것이 보였다.
그리고 학요가 4위, 소훤이 5위, 조청삼은 6위이며 서황은 5위에서 7위로 떨어졌다.
천방 10위권은 1, 2위를 제외하고 전부 변했고 10위권 밖에는 낯선 이름도 잔뜩 보였다. 이번 수렵전에서 새로 나타난 실력자들이었다.
더욱 놀라운 건 낙리가 천방 10위가 되었다는 사실이었다. 수렵전에서 거의 나서지 않았지만 그녀가 자신과 함께 영왕을 잡은 일로 순위가 바뀐 듯했다.
“천방 3위라.”
목진은 담담하게 웃기만 하고, 별로 썩 좋아하는 눈치가 아니었다.
“함께 북창령원에 들어왔지만 넌 이미 천방 3위가 되었고, 우리는 아직도 천방 뒤편에서 기어오르고 있구나.”
엽령경이 감탄하며 말했다.
그해, 북창계에서 목진을 처음 봤을 때까지만 해도 신백경조차 되지 않았던 녀석은 1년 사이에 어느새 천방 3위의 고수가 되었다. 그러나 목진은 이에 대해 더는 말하고 싶지 않은 듯 서둘러 화제를 돌렸다.
“순아는 어디에 있나요? 요즘 통 보이지 않네요.”
“애가 운이 참 좋아. 며칠 전, 원내에서 빈둥대다가 우연히 북창령원의 장로 한 분을 만났는데 주로 영진을 수련하는 분으로 영진의 대가래. 그런데 마침 순아의 천부적 재능이 마음이 든다며 제자로 들여 지금은 영진을 배우러 갔어.”
“영진 대가요?”
영진사는 1에서 9까지 총 9개의 등급으로 나뉘는데 5급 영진사가 돼야 겨우 영진 수련을 시작했다고 말할 수 있고, 6급 영진사가 되어야 비로소 영진 대가라 불릴 수 있었다.
영진 대가가 되면 영진의 진정한 신비로움을 깨달을 수 있었다. 5급과 6급의 영진사는 통천경과 지존경의 차이만큼 그 실력 차이가 엄청났다.
영진에 재능이 있는 목진도 4급 영진사까지는 순조로웠지만 아직 영진 대가는 아니었다. 북창령원에서도 자신을 영진 대가라 부를 수 있는 사람은 몇 되지 않았기에 순아는 엄청난 기회를 잡은 거나 마찬가지였다. 목진은 순아가 부러웠다.
“순아의 말로는 그 장로의 성격이 괴팍해 재능이 있다고 다 제자로 들이는 건 아니래. 자신과 합이 맞지 않으면 제아무리 실력이 좋다고 해도 절대 들이지 않는대.”
목진의 속내를 읽은 엽경령이 웃으며 말했다.
똑같이 잠재력이 있어도 귀엽게 생긴 아이를 더 좋아할 수도 있다는 생각에 목진은 쓸쓸하게 웃었다.
4급 영진사가 된 뒤로 목진은 여러 가지 영진의 상태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해 이를 장악하는 방법이 무척 궁금했다.
4급 영진사는 절대 5급 영진을 치지는 못하지만, 심안 상태에 접어들면 가능했다. 다만, 목진이 심안 상태를 접한 지가 얼마 되지 않아 생사가 걸린 싸움에서 심안 상태에 도달하지 못하면 죽는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만약 영진 대사의 가르침을 받을 수만 있다면 심안 상태를 충분히 익힐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기회는 쉽게 찾아오는 것이 아니었다.
영진 대사는 북창령원에서 지위가 높아 상대방이 가르칠 마음이 생기지 않으면 아무리 사정해봐도 소용없었다.
“순아한테 한번 말해보라고 할게. 순아보다 네가 더 영진에 재능이 있으니 거절하지 않을 거야.”
“고마워요.”
목진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지금 목진은 영진 수련에 대해 가르침을 줄 사람이 절실하게 필요했다. 이는 영력 수련과 달리 너무 복잡해 누가 손 봐주지 않으면 진행하기가 어려웠다.
엽경령은 아직 안색이 창백한 목진을 보고는 더는 귀찮게 하지 않고 바로 그 자리를 떠났다.
목진은 다시 천지의 영기를 흡수하며 체내의 상처를 치유했다. 아직은 사흘 뒤의 영광 관정이 더 중요했다.
그 후로도 목진이 천방 3위가 되었다는 소식이 북창령원 곳곳으로 퍼져나가 떠들썩했지만 정작 본인은 외부의 간섭을 일체 차단하고 몸을 치료하는 데만 집중했다.
며칠 후, 목진의 안색이 완벽하게 돌아왔다. 체내에 맴도는 웅장한 영력도 전보다 더 강해진 것 같았다. 다만 경맥에 난 상처는 시간에 맡겨야 하는지라 아무리 급하다고 해도 소용없었다.
목진은 옥탑에 올라가 기지개를 켰다. 잠자던 몸이 깨어나듯 곳곳에서 우두둑 소리가 나 너무 시원했다.
“몸 상태가 제법 돌아왔네.”
뒤에서 낙리가 흐뭇하게 웃으며 말했다. 사흘 전, 손만 닿으면 쓰러질 것 같았던 목진을 보며 마음이 아팠는데 지금은 활기가 넘쳐 다행이었다.
“거의 다 나은 것 같아.”
목진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북창령원을 바라보며 말했다.
“이만 형전으로 가자. 목숨과 맞바꾼 영광 관정을 받아야지.”
낙리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도 영광 관정이 궁금했다.
목진은 조금 상기된 소녀의 얼굴을 바라보더니 히쭉 웃었다. 그들은 곧바로 북창령원의 형전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