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주재-226화 (225/1,000)

226화. 형전

북창령원 내부에 있는 형전은 북창령원의 안전 문제를 도맡고 있어서 높은 지위와 막강한 힘을 가지고 있었다.

형전 사람들은 대부분 북창령원 학생이었던 이들로 구성돼 있었고, 이곳에 들어오면 학생 신분을 포기해야 했기에 학생들 간의 대결에는 일절 참여할 수 없었다. 그렇기에 일반 학생들은 형전 사람들을 볼 기회가 거의 없었다.

형전에서 집행하는 임무는 위험하고 따라야 할 규칙도 많아 훨씬 엄격했다. 북창령원을 수호하기 위해 설립된 형전이 맞서야 할 적은 후배들이 아니라 북창대륙 곳곳에 퍼져 서로 헐뜯기 바쁜 각종 세력이었다.

살기를 찾아볼 수 없는 학원에 비하면 형전은 보다 차갑고 음산했다.

***

북창령원 내부는 바깥처럼 활기 넘치지 않았고, 하늘마저 어두웠으며 산봉우리 사이사이로 갑옷을 입은 부대가 지나가는 것이 보였다.

북창령원 학생들이 따라 하기 어려울 정도의 웅장한 기세에 저절로 숙연해졌다.

목진과 낙리는 이 광경에 조금은 놀란 눈치였다. 이곳이야말로 북창령원을 지키는 진정한 힘이었다. 북창령원도 북창대륙에서 거물급 존재이긴 했지만, 기타 세력들이 덤비지 못할 만큼은 아니었다. 대륙에서는 실력 좋은 세력이 계속해서 생겨났다.

하여 형전이 나서서 호시탐탐 북창령원을 노리는 사람들을 제압해야만 했다.

목진과 낙리가 형전에 도착하자, 아무도 그들을 막지 않았다. 미리 보고를 받은 듯했다. 두 사람은 주위를 살피다가 커다란 산봉우리로 향했다.

산봉우리 위에는 커다란 검은색 궁전이 우뚝 솟아 올라와 있었는데 살기를 품은 흉수처럼 음산한 기운이 풍겼다.

그리고 그 앞에는 흑석광장이 있었는데 어두운 바닥에서 차가운 빛을 발산했다.

목진과 낙리가 흑석광장에 도착해 보니 그 중심 구역에 심창생과 이현통이 이미 와 있었고, 앞쪽에는 임쟁 등도 보였다.

목진은 임쟁 등을 쓱 훑더니 가장 앞쪽에 서 있는 중년 남자에게 눈길을 멈췄다. 검은색 도포를 입은 사내는 뒷짐을 쥐고 주위를 살폈는데 두 눈에서 발산하는 한파에 공기마저 얼어버릴 것 같았다.

사내가 내뿜는 위압감에 심창생마저도 온순한 고양이가 되었다.

목진도 조금 움츠러들어 사내를 바라봤는데 그 실력이 실로 놀라울 정도였다.

“늦었죠? 죄송해요.”

목진과 낙리가 다가가며 말했다.

“아직 시작하지 않았으니 괜찮아.”

임쟁이 웃으며 손을 절레절레 흔들더니 옆에 있는 중년 남자를 가리키며 말했다.

“이분은 형전 전주인 맥유(陌幽) 전주야. 북창령원의 천석 장로이기도 해.”

목진은 흠칫 놀라 맥유를 바라봤다. 북창령원의 천석 장로는 모두 5명으로 신생 대회에 참석했던 촉천 장로도 천석 장로였다. 그런데 눈앞에 서 있는 사람도 천석 장로라니, 이들이 바로 북창령원의 최강 전력이었다.

“맥유 장로를 뵙습니다.”

목진이 허리를 굽혀 인사했다.

“네가 고천염을 이긴 신생 목진이냐?”

맥유 전주는 그윽한 눈으로 목진을 바라봤는데 그 눈빛이 예사롭지 않았다.

“고 선배가 많이 봐줬어요. 그날 그 상황에서 계속해서 싸웠으면 분명 내가 패배했을 거예요.”

목진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말했다. 목진이 계속해서 고천염과 싸웠다면 기껏해야 무승부로 끝났을 것이다. 승리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제아무리 수단과 방법이 많아도 화천경과 통천경의 실력 차이는 확실했다.

“고천염도 양보할 줄 안단 말이냐?”

맥유가 히쭉 웃더니 어색하게 서 있는 고천염한테 고개를 돌렸다.

“평소에는 기고만장한 녀석의 기를 꺾은 것도 네 실력이야.”

목진은 그저 머리를 긁적이며 웃기만 했다.

“그런데 대단한 건 인정해야겠구나. 신생의 신분으로 여기까지 온 건 심창생도 못 해낸 일이란다.”

맥유는 목진이 마음에 든 모양이었다.

옆에 있던 심창생도 머쓱하여 웃었다. 신생 시절 그는 수련하느라 바빠 첫해의 수렵전에는 참석조차 못 했으니 목진 같은 성과를 따내기란 불가능했을 것이다.

“네가 낙리냐?”

맥유는 갑자기 목진의 뒤에 조용히 서 있는 낙리에게 눈길을 돌리더니 소녀의 손에 쥔 낙신검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네.”

자신의 검을 바라보는 눈빛에서 이상함을 느낀 낙리는 인상을 찌푸리며 상대방을 쳐다봤다.

“그 검은 네 아버지한테서 본 적이 있지.”

복잡미묘한 표정의 맥유의 말에 다들 흠칫 놀랐다. 이리 말하는 것으로 보아 낙리의 신분을 알아챈 것이 틀림없었다.

목진도 놀라긴 마찬가지였다. 북창령원의 천급 장로라면 낙리의 신분을 아는 것이 이상하지 않았지만, 그녀의 아버지를 직접 만났었다는 것은 실로 놀라웠다.

“그해, 수련하러 북창령원 밖으로 나갔을 때 우연히 네 아버지와 만난 적 있단다. 어떻게 보면 네 아버지한테 엄청난 빚을 졌는데 이제 갚을 수 없게 되었구나.”

맥유가 우울한 얼굴로 말했지만 낙리는 전혀 모르는 일이라 딱히 할 말이 없었다. 분위기가 점점 무거워지자 다들 감히 먼저 입을 떼지 못했다. 임쟁 등도 맥유가 이런 표정을 짓는 것을 처음 본 모양이었다.

금세 마음을 가라앉힌 맥유가 손을 절레절레 흔들며 말했다.

“사람들이 다 모였으니 영광 관정을 시작하자.”

그가 손을 휘두르자 노인 셋이 대전에서 걸어 나왔다. 이들도 북창령원의 장로였으나 맥유보다는 지위가 낮았다.

“너희 세 명의 영광 관정은 여기 세 명의 장로가 맡을 것이다.”

맥유는 이내 낙리한테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넌 내가 직접 해주지.”

임쟁 등이 화들짝 놀라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맥유가 학생을 위해 영광 관정을 하는 것은 여태껏 낙리가 처음이었다.

영광 관정을 집행하는 사람의 실력이 좋을수록 받는 사람이 얻는 바가 많은 법이었다. 더구나 북창령원의 5대 장로 중 한 명인 맥유보다 실력이 좋은 사람은 얼마 없을 것이다.

이에 낙리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목진이 고개를 끄덕이는 것을 보고는 그제야 동의하였다.

“그럼 잘 부탁드려요, 맥유 전주님.”

“네 아버지한테 진 빚을 갚는 셈 치는 거야. 내가 해줄 수 있는 것이 이것밖에 없으니 말이야.”

맥유가 손을 절레절레 흔들며 말하더니 목진 등에게 고개를 돌렸다.

“너희들은 장로들을 따라 들어가거라.”

이에 목진 등이 떠나려는데 갑자기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잠깐.”

갑자기 들려온 소리에 다들 흠칫 놀라 고개를 돌리자 거대한 검은색 궁전 앞에 놓인 돌기둥 위로 연로한 노인이 나타났다.

남루한 옷차림의 대머리 노인은 눈이 축 처져있는 것이 꼭 식사도 제대로 못 한 것처럼 무기력해 보였다.

그는 뇌역에서 목진과 마주쳤던 바로 그 노인으로 목진이 수련한 뇌신체도 그에게서 받은 것이었다.

하여 뇌신체를 수련했던 심창생과 이현통도 화들짝 놀라 대머리 노인을 바라봤고 맥유마저도 놀란 기색이 역력했다.

“북명 대인.”

맥유의 태도에 다들 깜짝 놀랐다. 북창령원에서 무려 5대 장로 중 하나인 맥유가 이토록 깍듯이 모시는 사람이라니. 대머리 노인은 도대체 누구란 말인가?

“북명 대인이라니…….”

심창생, 임쟁 등은 인상을 찌푸리며 잠시 생각하더니 뭔가 알아차린 듯 눈을 번쩍 떴다.

“설마 북창령원의 진원 신수 북명룡곤이란 말인가요?”

북창령원에서 맥유가 굽신거릴 만한 사람은 태창 원장을 제외하면 아마 여태껏 사람들 앞에 모습을 드러낸 적이 없는 북명룡곤이 유일할 것이다.

한편, 옆에서 심창생 등의 말을 듣던 목진도 깜짝 놀라 눈이 휘둥그레졌다. 아무도 용맹한 북명룡곤과 무기력한 대머리 노인이 한 사람일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그때 돌기둥 위에 앉아있던 대머리 노인이 손을 휘익 젓더니 금세 목진의 앞에 나타나자 다들 그의 속도에 다시 한번 놀랐다.

대머리 노인은 맥유를 보며 손을 흔들더니 심창생 등을 쓰윽 훑다가 결국 목진에게 눈길을 멈췄다.

노인이 자신을 뚫어져라 쳐다보자 목진은 괜히 무한해졌다. 그러나 신기한 듯 목진을 바라보는 대머리 노인은 눈빛을 거둘 생각이 없어 보였다.

“네가 흑신뢰를 흡수했다더구나.”

그 말에 목진은 흠칫 놀라 잠시 머뭇거리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일전에 우연히 흑신뢰를 뇌주로 만들어 체내에 들였는데 수렵전에서 고 선배와 싸울 때 이를 체내에서 폭발시켰어요.”

옆에 서 있던 고천염은 화천경 밖에 안 되는 목진이 갑자기 무서운 힘을 선보인 것이 그제야 이해가 되었다. 그런데 지존경 강자도 피하기 바쁜 존재를 감히 체내에 들이고 폭발까지 시켰다니, 녀석이 참 담대하단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흑신뢰를 폭발시켰는데도 살아남았으니 녀석의 엄청난 생명력에 다시 한번 놀랐다.

대머리 노인이 혼탁한 눈을 반짝이며 메마른 손으로 목진의 손바닥을 쓸자 흑광 한 줄기가 목진의 팔을 타고 지나갔다.

이와 동시에 목진의 팔뚝에 검은색 무늬가 생기기 시작했는데 꿈틀거리는 광문을 보니 괜히 불안해졌다.

“이건 뭐예요?”

목진이 깜짝 놀라 물었다.

“뇌독이란다.”

대머리 노인은 아무렇지 않은 듯 말을 이어갔다.

“흑신뢰는 영수가 신수로 재탄생하면서 겪는 겁난으로 파멸의 힘을 가졌을 뿐만 아니라 그 속에 특이한 뇌독도 품고 있단다. 그런데 흑신뢰를 맞은 사람은 스스로 뇌독을 감지하기 어렵지. 시간이 흐르면 뇌독이 육신을 조금씩 파괴하다가 언젠가는 몸을 폭발시켜 산산조각이 날 것이다.”

노인의 말에 목진은 이마에 식은땀이 나며 안색이 잔뜩 어두워졌고 옆에 있던 낙리도 눈가가 파르르 떨렸다.

맥유, 심창생 등도 어두워진 안색으로 목진을 바라봤다. 목진 체내에 이런 우환이 숨어 있을 줄은 몰랐다. 대머리 노인이 아니었다면 맥유마저도 이를 눈치채지 못했을 것이다.

“부디 목진을 도와주세요.”

평정심을 잃은 낙리가 걱정 어린 눈빛으로 말하자 그 옆에 있던 이현통은 괴로운 듯 옆으로 고개를 돌렸다.

“내가 왜 이 아이를 도와야 한단 말이냐? 감히 흑신뢰를 체내에 들이다니, 이건 목진이 자처한 일이 아니냐? 더구나 뇌주를 체내에서 폭발시키기까지 하였으니 죽지 않은 것을 다행으로 알아야 한다.”

대머리 노인은 메마른 손을 거두며 천천히 말했다.

“뇌독 해독에 성공하면 보상은 섭섭지 않게 해줄게요.”

낙리가 하는 말에 대머리 노인은 소녀를 쓱 훑어봤다.

“네가 지닌 물건 중에 내 관심을 끌 만한 것은 수중의 검뿐이구나.”

“마음에 드신다면 기꺼이 내드리죠.”

낙리가 이를 악물며 말했다.

이에 이현통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해졌는데 심창생이 다가와 그 귀에 속삭였다.

“넌 아예 기회조차 없겠구나.”

대머리 노인도 흠칫 놀랐다. 낙신검은 지존경 강자마저 탐낼 물건이었는데 낙리가 이를 선뜻 내줄 줄은 몰랐다. 자신의 검이 어떤 물건인지 잘 알면서도 말이다.

“북명 대인.”

맥유가 더는 참지 못하고 나섰다. 낙리 아버지에게 은혜를 입은 적이 있던 터라 나 몰라라 할 수가 없었다.

그때 목진이 낙리의 손을 잡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더니 담담하게 웃으며 말했다.

“북창령원에서 덕망이 높은 선배께서 어린 여자아이한테 그런 농담을 하시면 안 되죠.”

“내가 농담을 했단 말이냐?”

대머리 노인이 입을 삐쭉 내밀며 말했다.

“사람들 앞에 나타나지 않던 선배님께서 오늘 자취를 드러내신 건 저 때문이겠죠. 제가 흑신뢰를 흡수한 일로 찾아오신 거라고 말해야 할까요?”

목진이 웃으며 하는 말에 대머리 노인은 소년을 한참 바라봤다.

“아주 영리한 녀석이구나.”

대머리 노인이 웃자 사람들은 비로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북명룡곤은 북창령원에서 지위가 아주 높고 성격이 괴팍해 마음에 없는 일은 절대 하지 않았다.

“너한테 부탁할 일이 있어서 온 건 맞다. 대신 그 대가로 네 체내의 흑신뢰독을 없애주마.”

이에 사람들은 화들짝 놀랐다. 북명룡곤의 실력으로 북창령원에서 해결 못 할 일이 없어야 마땅한데 화천경 초기밖에 안 되는 녀석의 도움을 청하다니…….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