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7화. 뇌신단(雷神丹)
“제가 뭘 도와드릴 수 있을까요? 제 실력으로…….”
목진이 미간을 조금 찌푸리며 물었다. 북명룡곤마저 해결할 수 없는 일을 자신이 할 수 있을 리 없었다.
“일단 나를 따르거라. 내가 다 설명해 주겠다. 절대 죽지는 않을 것이니 걱정하지는 말고. 만약 그런 일이 생기면 내가 먼저 나서서 막을 것이다.”
대머리 노인은 목진과 따로 말하려는 속셈이 분명했다.
“그런데 지금 영광 관정을 받으러 가려던 참인데…….”
목진이 하는 말에 대머리 노인은 녀석을 노려보며 투덜거렸다.
“네 영광 관정은 내가 직접 해주면 될 것 아니냐?”
목진은 그제야 웃었다. 영광 관정은 집행하는 사람의 실력이 좋을수록 효과가 좋았으니 북명룡곤이야말로 최고의 선택이었다.
목진은 일이 이렇게 될 줄 전혀 몰랐으나 좋은 기회가 왔으니 잡지 않는다면 그건 멍청한 짓이다.
옆에 서 있던 심창생과 이현통, 심지어 임쟁 등도 부러운 눈빛으로 목진을 바라봤다. 북명룡곤이 직접 영광 관정을 집행하다니, 이는 북창령원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었다.
“그럼 목진은 북명 대인과 함께 가거라.”
맥유는 목진이 참으로 운이 좋은 녀석이라 생각했다. 옆에 있던 낙리도 점차 마음을 가라앉히고 싱긋 웃으며 목진을 바라봤다.
“그럼 난 갈게…….”
대머리 노인은 소년의 팔을 잡더니 순식간에 사람들 눈앞에서 사라졌다.
심창생 등은 두 사람이 사라진 곳을 바라보며 부러운 듯 계속해서 한숨을 내뱉었다.
“한숨은 그만 쉬어라. 너희도 체내에 흑신뢰를 끌어들여 폭발시키면 북명 대인한테서 영광 관정을 받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맥유의 말에 심창생과 이현통의 안색이 금세 어두워졌다. 흑신뢰겁 때문에 죽은 최상급 영수만 해도 수두룩한데 이를 체내에 유인해 폭발시키는 일은 아마 목진만이 할 수 있는 미친 짓이다.
두 사람의 겁에 질린 듯한 표정에 맥유는 담담하게 웃으며 대전에 들어갔고 낙리도 바로 그 뒤를 따랐다.
“휴, 우린 포기하자. 그럴 담력도 없으니 영광 관정은 장로한테서 받는 것으로 만족하자.”
심창생은 어깨를 들썩이더니 대전에 들어갔고 이현통도 우울한 얼굴로 한숨을 내쉬며 그 뒤를 따랐다.
* * *
대머리 노인이 손을 잡는 순간, 목진은 어지럽고 눈앞이 흐릿해졌는데 이 또한 금세 사라졌다.
“도착하였구나.”
귓가에 들리는 대머리 노인의 목소리에 목진은 서서히 눈을 떴다. 그는 눈 앞에 펼쳐진 광경에 깜짝 놀랐다.
이곳은 공간이 어두워 그윽한 검은색으로 물들어 있었고, 허공에는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많은 뇌해가 떠다녔다. 게다가 그 사이로 검은색 뇌하가 천만 갈래의 검은색 물기둥처럼 쏟아져 내렸다.
한편, 검은색 뇌해 속에 거대한 뇌호가 빗발치고 있었는데 나지막한 울림이 천지로 퍼져나가 이루 말할 수 없을 만큼 강한 위력을 뿜어냈다.
“여긴 어디예요?”
목진은 이곳에서 생명의 위협을 느꼈다.
“뇌역의 마지막 단계란다.”
대머리 노인은 아무렇지 않은 듯 답했다.
목진은 눈이 휘둥그레져 주위를 살폈다. 이토록 무서운 벼락의 힘이 깃든 뇌역의 마지막 단계에 비하면 7단계는 새 발의 피란 생각이 들었다.
“자세히 보거라. 저쪽에서 왠지 익숙한 파동이 느껴지지 않느냐?”
대머리 노인은 히쭉 웃으며 끝없이 펼쳐진 검은색 뇌해를 가리켰다.
“설마…… 흑신뢰의 파동인가요?”
대머리 노인이 가리키는 곳을 바라보던 목진은 순간 얼굴이 창백해져 물었다.
검은색 뇌해 속에서 흑신뢰의 파동이 느껴졌다! 이는 구유작이 치렀던 겁난보다 훨씬 강력했다!
누군들 뇌역의 마지막 단계에 이토록 많은 흑신뢰가 있을 줄 알았을까!
“뇌역의 다른 단계의 벼락의 힘은 전부 이곳에서 퍼진 거란다.”
대머리 노인이 무덤덤하게 웃으며 하는 말에 목진은 그저 놀랄 뿐이었다.
“선배, 도대체 나한테 뭘 원하는 건가요?”
목진은 자못 걱정되었다. 이렇게 무서운 곳에서 흑신뢰를 한 번 맞으면 바로 죽을 것 같았다. 그런데 자신이 뭘 도와줄 수 있을지 궁금했다.
이에 대머리 노인이 씨익 웃는데 목진은 순간 소름이 끼쳤다. 왠지 모를 불안감에 당장 이곳을 벗어나고 싶었다.
“뇌해에 들어가 물건 하나만 꺼내다오.”
그때, 검은색 뇌해를 가리키며 하는 노인의 말이 목진의 귀를 때렸다.
“뇌해에 들어가 물건 하나를 꺼내다오.”
목진은 순간 안색이 어두워지며 눈을 휘둥그레 뜬 채 대머리 노인을 바라봤다. 그는 혹시라도 자신이 잘 못 들은 건 아닌지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나더러 들어가라고요?”
목진은 끝이 보이지 않은 검은색 뇌해를 가리키며 물었다. 대머리 노인은 파르르 떨리는 목진의 표정을 보고도 무덤덤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농담이시죠?”
검은색 뇌해 속에 들끓는 흑신뢰는 지존경 강자라도 감히 발을 들이지 않을 어마어마한 곳이었다. 그런데 화천경 초기밖에 안 되는 목진은 가까이 가면 바로 잿더미가 될 게 분명했다.
“이대로 들어가란 말은 아니야.”
대머리 노인이 눈을 흘기며 하는 말에 목진은 그제야 조금 안심이 되었다.
“도대체 무슨 물건을 가져와야 한단 말인가요?”
“이 뇌역은 내가 수백 년 전에 개척한 공간이란다.”
대머리 노인은 주위를 쓰윽 훑어보며 말하더니 다시금 검은색 뇌해 쪽을 가리켰다.
“이 공간은 처음부터 특이하였단다. 난 벼락의 힘이 넘쳐나는 이 공간을 발견하고 모든 벼락의 힘을 이곳에 몰아넣었고 흑신뢰를 찾아 불어넣었지.”
이에 목진은 흠칫 놀랐다. 구유작마저 두려워하는 흑신뢰를 찾아다니다니, 북명룡곤은 정말 엄청난 존재였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일이 내가 생각했던 것처럼 흘러가지 않더구나. 이곳 벼락의 힘이 엄청난 탓인지 한데 모이더니 기이한 생명체를 만들었단다.”
“생명체요?”
목진이 흠칫 놀라 물었다. 생기가 전혀 느껴지지 않는 뇌해에서 생명체를 만들어내다니!
“난 그를 뇌령(雷靈)이라 부르는데 뇌해가 곧 그의 몸통이야.”
목진은 끝없이 뻗어 있는 뇌해를 바라보고는 눈가가 파르르 떨렸다. 북명룡곤마저 뇌령을 상대할 수 없다니. 역시 천지 만물은 신기한 존재였다.
“다행히 뇌령은 지능이 뛰어나진 않지만 가까이 가면 상당한 위력의 공격을 날린단다.”
대머리 노인이 입을 삐쭉 내밀며 검은색 뇌해를 노려보더니 어느새 눈가에 한기가 서렸다.
“내가 전력을 다해 공격하면 녀석을 죽일 수는 있지만 얻고자 하는 물건도 함께 망치게 되는 꼴이니 여태껏 아무런 조치도 못 하고 있었다.”
“도대체 뭘 원하시나요?”
목진은 자못 궁금했다. 북명룡곤이 수백 년 동안 심혈을 기울여 만든 뇌해가 뇌령까지 만들어냈는데 그 속에는 도대체 어떤 물건이 있단 말인가?
“뇌신단이란다.”
북명룡곤이 혼탁한 눈으로 검은색 뇌해를 바라보며 담담하게 말했다.
“뇌신단이요?”
“단이라 불리긴 하나 이는 사람이 아닌 하늘과 땅이 만들어낸 물건이지.”
대머리 노인은 천천히 말을 이어갔다.
“벼락의 힘이 어느 정도 짙어야 뇌신단을 만들 수 있는데 내가 수백 년 동안 흑신뢰를 찾아다닌 것도 다 뇌신단을 만들어내기 위해서였단다. 다행히 운이 좋아 뇌신단을 만드는 데 성공했지만, 뇌령도 함께 생길 줄이야…… 녀석의 방해로 여태껏 뇌신단을 꺼내지 못한 거란다.”
“뇌신단이 대체 어떤 물건이기에……”
“뇌신단의 힘을 빌리면 난 지지존의 경지에 이를 수 있다.”
“지지존이라…….”
대머리 노인의 말에 목진은 흠칫 놀랐다. 그 말은 대머리 노인이 이미 지존경의 마지막 단계에 이르렀다는 말이다. 그가 지지존에 이르면 대천세계에서 그야말로 최고의 강자가 되는 것이었다.
이는 초인족의 족장을 하고도 남을 실력이었다.
“왜 태창 원장의 도움을 받지 않나요? 나를 찾는 것보다야 원장을 찾는 것이 승산이 더 크지 않을까요?”
목진이 어리둥절하여 물었다. 북창령원에서 북명룡곤의 지위로 도움이 필요하다고 하면 마다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이 일을 태창한테 말한 적이 있는데 그날, 이곳에 들어오자마자 뇌해가 폭동을 일으켰단다. 우리가 나타나자마자 뇌령이 위험을 감지하고 바로 공격을 개시했지. 그러다 뇌신단까지 망치면 내가 수백 년 동안 노력한 것이 물거품이 되지 않겠느냐?”
대머리 노인의 말에 목진은 씁쓸하게 웃었다.
지금 검은색 뇌해에서는 아무런 파동도 느껴지지 않았는데 조용한 것이 오히려 더 무서웠다.
“제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는 선배도 잘 알잖아요…….”
“걱정하지 마. 난 절대 널 사지로 내몰지는 않을 거야.”
대머리 노인은 손을 절레절레 저으며 목진을 노려봤다.
“난 네가 일전에 흑신뢰를 흡수하였고 체내에서 폭발시켰기 때문에 찾아온 거란다. 비록 네 체내의 흑신뢰의 힘은 전부 가셨지만…….”
“혹시 흑신뢰독을 말씀하시는 건가요?”
대머리 노인은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흑신뢰독은 아주 무서운 존재이긴 하지만 어찌 보면 엄청난 무기가 되기도 하지.”
목진은 인상을 잔뜩 찌푸린 채 노인의 말에 귀 기울였다.
“흑신뢰독은 지존경 강자마저 피하기 바쁜 존재이긴 하지만 네가 만약 이를 잘 다스릴 수 있다면 너한테는 엄청난 무기가 될 수 있단다.”
“그게 가능한가요?”
목진은 몸에 흑신뢰독이 있는 것조차 몰랐던 자신에게 이를 다스리라는 대머리 노인의 말이 그저 우습기만 했다.
“내가 너한테 완전한 뇌신체 수련법을 전수한다면 네가 흑신뢰독을 감지하는 것은 식은 죽 먹기일 게다. 분명 뇌신체로 흑신뢰독을 다스릴 수 있을 것이다.”
대머리 노인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완전한 뇌신체요?”
목진은 마음이 조금 흔들렸다. 뇌신체가 없었더라면 목진은 그날, 구유작을 대신해 흑신뢰를 맞고 바로 죽었을 것이다. 제대로 수련하지 않았는데도 이 정도라면 완전한 뇌신체는 엄청날 것이 분명했다.
“어떠냐?”
대머리 노인이 생긋 웃으며 물었다. 뇌신체의 위력을 체감하였으니 이 조건이라면 목진이라도 절대 거절할 수 없을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목진은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완전한 뇌신체를 위해서라면 이 정도 위험은 감수해야 한다고 생각하기도 했지만, 북명룡곤이 절대 자신을 죽게 내버려 두지 않을 거란 믿음도 있었다.
대머리 노인은 목진의 어깨를 다독이며 웃었다.
“그럼 일단 준비부터 하자꾸나.”
“무슨 준비요?”
목진이 멍하니 대머리 노인을 바라보며 물었다.
“네 체내에 흑신뢰독이 있긴 하나 너무 미약해 네 기를 숨길 정도는 아니란다. 그러니 지금 당장 뇌해에 들어가면 바로 발견할 게 틀림없다.”
“그래서요?”
목진은 왠지 불안해졌다.
“그래서 일단 흑신뢰에 몇 번 더 맞아 흑신뢰독을 몸에 축적해야 한다.”
대머리 노인이 말에 목진은 입가가 파르르 떨렸다.
스스로 흑신뢰를 맞으라니…… 지난번에 살아남을 수 있었던 건 뇌겁에서 남은 마지막 한 줄기의 흑신뢰였고 운도 좋았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그걸 몇 번이나 더 맞으란 건 죽으란 말과 다를 바 없었다.
사색이 된 목진의 얼굴에 대머리 노인은 머쓱하게 웃더니 매끈한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걱정하지 말거라. 내가 흑신뢰의 세기를 조절할 테니 너한테는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9급 지존급 실력자가 옆에서 자신을 지키겠다고 말했지만 목진은 전혀 시름이 놓이지 않았다. 변고라도 생기면 목숨을 구할 수 있는 건 자신뿐이었다.
한편, 대머리 노인은 목진의 불안을 감지한 듯 끊임없이 옆에서 부추겼다.
“일이 잘 풀리면 내가 직접 영광 관정을 집행할 것이다. 내가 최선을 다해 해주면 그 효과는 절대 아무도 따라갈 수 없을 만큼 좋을 것이다.”
그러나 목진은 섣불리 결정을 내릴 수가 없었다.
“내가 너한테 빚진 거라고 여기고 한 번만 도와주면 안 될까? 난 너와 혈맥을 연결한 구유작도 도와준 적 있단다. 내가 그녀에게 방어 수단을 가르쳐주고 몰래 흑신뢰 한 갈래를 훔치지 않았더라면 너흰 벌써 죽었을 것이다.”
대머리 노인은 최선을 다해 목진을 설득했다.
“그런 일이 있었나요?”
목진은 전혀 모르는 일이었다.
“내가 흑신뢰를 거둔 것은 따로 목적이 있어서이기도 했지만 너희한테 도움이 된 것만은 사실이 아니냐? 그리고 내가 구유작에게 깃털을 주지 않았으면 회복할 시간도 부족했을 것이다.”
대머리 노인이 하는 말에 목진은 상대방을 빤히 쳐다보며 그때의 일을 떠올렸다. 흑신뇌겁 때, 구유작이 깃털 하나를 사용한 것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 속에 깃든 힘은 확실히 구유작의 것이 아니었다.
“어떠냐?”
대머리 노인이 다급한 목소리로 묻자 목진은 결정을 마친 듯 씨익 웃었다. 그는 대머리 노인이 무슨 목적으로 구유작을 도왔는지는 모르나 은혜를 입은 것만은 사실이었기에 그의 부탁을 거절할 수가 없었다.
목진은 깊게 숨을 들이켜고는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할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