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화. 영광 관정을 받다
한편, 뇌해를 벗어나던 목진은 사신이 곁에 다가온 것 같은 무서운 느낌이 들어 순간 소름이 돋았다.
그가 고개를 돌리자 뇌해가 반으로 찢어지더니 천 장 정도의 흑신뢰가 목진 주위를 둘러싸기 시작했다.
이는 목진이 감당할 수 있는 정도를 훨씬 넘어섰다. 사색이 된 그는 눈을 감고 죽기만을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쿵!
그때 다른 쪽 뇌해도 갈기갈기 찢겼는데 검은색 한파가 흑신뢰보다 한 발 앞서 목진을 감쌌다. 검은색 한파는 검은색 빙산이 되어 층층이 보호막을 형성했다.
쿵!
흑신뢰가 빙산을 가격하자 뇌해에 폭동을 일으켜 뇌장이 솟아올랐고 빙산에도 커다란 균열이 일기 시작했다. 하지만 결국 뇌령의 공격을 막아내는 데 성공했다.
슉!
빙산이 순식간에 뇌해를 뚫고 나왔다.
끝이 보이지 않을 만큼 방대한 북명룡곤의 몸통이 빠르게 작아지더니 다시 대머리 노인으로 변해 목진에게 다가갔다.
그러나 뇌령은 멈출 생각이 없어 보였다. 미친 듯이 포효하며 뇌장을 끌어올려 다시금 대머리 노인을 공격했다.
이에 대머리 노인은 기합을 넣으며 두 손을 움직였는데 뇌해 주변 공간이 갑자기 일그러지며 검은색 한파가 나와 한빙수뢰(寒冰囚牢:얼음감옥)로 뇌해를 가두었다.
퍽퍽!
흑뢰가 아무리 요동을 쳐도 한빙수뢰는 끄떡없었다.
대머리 노인은 여태껏 뇌신단 때문에 뇌령과 전력을 다해 싸우지 못했었지만 이제 목진이 뇌신단을 취한 이상 더는 봐줄 필요가 없었다.
뇌령을 가둔 대머리 노인은 배시시 웃으며 목진을 바라보더니 손을 내밀었다. 지금 그의 모습을 보면 그가 절대 하늘과 땅을 부술 만큼 엄청난 힘의 소유자인 북명룡곤이란 것을 믿을 수 없었다.
목진은 입을 삐쭉 내밀며 상대방을 노려보고는 바로 손을 내밀었다. 그러자 검은색 뇌광이 손바닥에 나타났다가 금세 사라지고 손바닥에는 갓난아이 머리 크기의 뇌신단이 나타났다.
그 표면에는 미세한 벼락 돌풍이 수없이 보였는데 계속해서 회전하며 나지막한 뇌명이 들렸고, 주위에는 벼락이 몰려들었다.
뇌신단을 본 대머리 노인은 잔뜩 흥분해 이를 건네받더니 검은색 벼락을 관찰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이것이 바로 뇌신단이구나…….”
대머리 노인은 수백 년 동안 그리던 물건을 수중에 넣어 너무 기뻤다. 뇌신단만 있으면 지존 9급의 구속에서 벗어나 진정한 지지존이 될 수 있었다!
한참을 들떠있던 그는 겨우 마음을 가라앉히고 뇌신단을 거두었다. 뇌신단을 얻었다고 바로 지지존이 되는 것이 아니고 이를 위해서는 준비할 것이 엄청 많았다.
“목진, 이번엔 내가 너한테 큰 빚을 졌구나.”
대머리 노인이 목진을 바라보며 진지하게 하는 말에 목진은 씨익 웃었다.
“별말씀을요. 이번 일로 저도 얻은 보상이 엄청난걸요.”
완전한 뇌신체에다 흑신뢰독지를 얻은 목진은 영광 관정까지 받을 예정이었다.
“그래, 네가 얻어가는 것도 절대 적지는 않지.”
대머리 노인은 의미심장하게 웃으며 말했다. 이에 목진은 머쓱하게 웃더니 옷깃을 휘둘러 뇌해에서 얻은 뇌장 흑련을 보여주었다.
“선배, 이 물건은 뇌신단과 함께 있던 물건인데 그 용도를 몰라 일단 가져왔어요.”
목진이 뇌장 흑련을 가리키며 하는 말에 대머리 노인은 화들짝 놀라 말했다.
“이 물건은 뇌신련(雷神蓮) 같구나. 이는 아주 진귀한 보물로 뇌신단처럼 하늘과 땅이 만들어낸 물건이란다. 내가 만든 뇌해에 뇌신단과 뇌신련이 동시에 나타났다니, 너무 놀랍구나!”
“뇌신련이라…….”
“뇌신련은 네가 찾았으니 가지거라.”
대범한 대머리 노인의 말에 목진은 괜히 머리를 긁적였다.
“뇌신련이 흔치는 않으나 나한테는 도움이 되는 물건은 아니란다.”
대머리 노인이 웃으며 말을 이어갔다.
“네가 운이 좋았다. 뇌신련은 뇌신체 수련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앞으로 그 위에 앉아 수련하면 끊임없는 벼락의 힘을 받아 육신을 단련할 수 있을 것이다.”
뇌신련의 효능에 목진은 만족한 듯 웃었다. 뇌신체를 수련하기 어렵다고 생각했는데 이 뇌신련으로 큰 문제를 해결할 수 있게 되었다.
“고마워요, 선배.”
목진은 이번 일이 위험하긴 했지만 얻어가는 것이 더 많아 감당할 만하다고 생각했다. 대머리 노인의 말 한마디에 다들 기꺼이 목숨을 걸고 뛰어들겠지만 흑신뢰를 견디고 살아남을 사람은 절대 많지 않았을 것이다.
하여 이 점이 아니었다면 대머리 노인도 절대 목진을 찾지 않았을 것이다.
대머리 노인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더니 옷깃을 휘날리며 목진과 함께 뇌역의 마지막 단계를 떠나 9단계의 한 산봉우리에 올랐다.
이곳은 더는 숨 막히지 않았다. 뇌하가 흐르고 있긴 했지만 마지막 단계에 비하면 훨씬 나았다.
“그럼…….”
대머리 노인이 담담하게 웃으며 목진을 바라봤다.
“이제 내가 네 영광 관정을 집행할 차례인 것 같구나.”
영광 관정이란 말에 목진은 자못 흥분되었다. 아무리 완전한 뇌신체와 흑신뢰독지를 얻었다고 한들 목진에게 영광 관정이야말로 최고의 관심사였다.
이는 뇌신체처럼 계속되는 수련 없이 짧은 시간 내에 실력 향상을 이룰 수 있기 때문이었다.
아직 화천경 초기밖에 안 되는 목진은 심창생, 이현통의 실력에 비해 크게 차이가 났다.
수렵전에서 고천염을 상대했지만 결국 상대방의 배려로 대결에서 이긴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렇지 않고서야 목진이 마지막 관문에서 승리를 거두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수렵전에서 얻은 영광을 전부 꺼내거라.”
뇌신단을 얻은 대머리 노인은 기분이 아주 좋아 보였다.
이에 목진은 고개를 끄덕이며 손가락을 튕겼는데 한 갈래의 눈부신 빛이 나타나 영롱한 영정으로 변했고, 그 속에서 웅장하고 순수한 영력이 부단히 흘러나왔다.
목진은 수렵장에서 얻은 영장의 영광도 꺼냈다. 비록 영왕 영정보다 강력하진 않지만, 조금이나마 더 받는 것이 좋을 거라 여긴 것이다.
그런데 대머리 노인은 영장의 영광은 보는 척도 안 하고 영왕 영정을 잡더니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영광계는 참 신기한 곳이지 않더냐? 응결한 영기가 어찌나 순수한지, 이보다 관정에 알맞은 건 없다.”
천지의 영기는 웅장하긴 하나 다른 힘이 섞여 있어 이를 흡수하려면 제련을 꼭 해야 했다. 그런데 영광계는 전혀 달랐다. 그곳은 공간은 크지 않으나 응결한 영력은 외부의 천지 영기보다 훨씬 순수했다.
“뇌신련도 꺼내거라. 그 물건이 있으면 영광 관정 효과가 더 좋을 것이다.”
대머리 노인의 말에 목진은 미소를 지으며 물건을 꺼냈는데 허공에 떠오른 검은색 뇌장이 연꽃의 모양을 잃지 않은 채 천천히 움직였다. 목진은 뇌신련이 확실히 엄청난 보물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는 바로 몸을 움직여 뇌신련 위에 내려앉았는데 이에 닿는 순간 벼락의 힘이 조용히 몸에 스며드는 것이 느껴졌다.
흑신뢰의 힘이 깃든 벼락의 힘은 직접 맞을 때와는 달리 부드럽게 스며들어 몸 전체가 짜릿했다.
그때, 목진 체내의 뇌신체가 저절로 소환되었다. 육신은 굶주린 짐승처럼 벼락의 힘을 삼키며 그 힘을 빌려 몸을 단련하였다.
목진은 저도 몰래 하얀 기운을 내뿜었는데 그 속에도 미세하게 뇌망이 번쩍였다. 이는 벼락을 맞으면서 하는 수련보다 훨씬 편하고 좋았다.
대머리 노인이 잇따라 손가락을 튕기자 영왕 영정이 목진의 머리 위로 날아갔고 다른 영광들도 반짝이며 목진의 주변을 맴돌았다.
어느덧 웅장하고 순수한 영기가 안개를 형성하여 목진을 감쌌다.
“슬슬 시작해볼까?”
대머리 노인이 옷깃을 휘날리자 검은색 한파가 몰려와 영광을 때렸는데 영광들이 눈부신 빛을 발산하며 꼬리를 물더니 영왕 영정에 스며들었다.
쿵!
강력한 영력이 영정에서 폭발해 빛을 발하며 영정 겉면에 영력 액체를 만들었다.
슉.
대머리 노인이 메마른 손을 가볍게 휘두르자 웅장한 영력 한 줄기가 뇌신련에 앉아있는 목진에게 내리꽂혔다.
영력은 계속해서 목진의 몸속으로 파고들었다.
영광계에서 얻은 영력이 너무 순수하여 따로 손 볼 필요가 없어 기해에 앉아있던 목진의 신백은 곧바로 자그마한 입을 벌려 모두 흡수하였다.
그러자 신백 주위에 영력 광권이 생겼고 웅장한 영력이 목진의 몸 전체로 퍼졌는데 몸에 스며드는 영력이 더 많아지자 빠져나가는 영력 또한 점차 많아졌다.
이는 정상적인 반응이었다. 영광 관정으로 수렵장에서 얻은 모든 영력을 흡수할 수는 없는 법, 그중 절반은 흡수하는 과정에서 소모되기 마련이었다.
목진은 사라지는 영력이 아까웠지만 별다른 수가 없었다. 그러나 대머리 노인에게는 쉬운 일이었다.
그는 목진 체내에서 빠져나오는 영력을 보더니 이내 인상을 찌푸렸다. 자신이 직접 영광 관정을 집행하는데 영력이 감히 빠져나오다니, 절대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다.
“다시 들어가!”
대머리 노인이 손가락을 튕기자 검은색 한파가 목진의 몸을 때려 검은색 빙층이 그 주위를 감쌌고 빠져나왔던 영력도 다시금 목진의 체내로 들어갔다.
영광 관정을 집행하는 사람의 실력이 좋을수록 그 효과가 좋다는 것이 바로 이것 때문이었다. 다른 장로였다면 절대 대머리 노인처럼 하지 못했을 것이다.
또한, 그는 나머지 영력을 한꺼번에 목진에게 불어넣은 것이 아니라 목진이 흡수할 수 있을 만큼 몇 번에 걸쳐 조금씩 관정하였다. 이는 그가 뇌신단을 찾아준 목진에게 주는 또 다른 보상이었다.
영력이 다시 몸속에 들어온 것을 감지한 목진은 감탄을 금치 못했다. 가장 완벽한 방법으로 영력을 다시 불어넣을 수 있는 사람은 북명룡곤 외에 얼마 없을 것이다.
한시름 놓은 목진은 다시 집중해 신백을 움직여 끊임없이 스며드는 영력을 최대한 많이 흡수하였다. 이러한 과정으로 인해 어느덧 깊은 수련 상태에 빠진 목진은 자연스레 최상의 관정 효과를 보기 시작했다.
이에 비해 일반 영광 관정은 사람이 영광계를 떠나는 순간 완성되어 영력 소모가 적어도 6할은 되었다.
대머리 노인은 뇌신련에 앉아 완벽한 수련 상태에 돌입한 목진을 보더니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허공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그럼 영광 관정이 끝나기만 기다리면 되겠구나.”
대머리 노인은 기지개를 켜더니 잠자코 목진의 곁을 지켰다.
* * *
어느덧 한 달이나 지났다.
한 달 사이, 목진의 몸은 깊은 잠에 빠진 것처럼 아무런 움직임도 없었고 호흡마저 느려져 곧 죽는다고 해도 믿을 정도였다.
다만, 체내에서 내뿜는 영력 파동만은 하루가 다르게 강력해졌다. 이번 영광 관정으로 목진의 실력은 엄청난 비약이 있을 것이다.
한편, 대머리 노인이 한 달 넘게 목진을 보살펴주었는데도 목진은 관정을 끝낼 생각이 전혀 없어 보였다.
“녀석…….”
대머리 노인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더니 뇌신단을 꺼내 히쭉 웃으며 이를 연구하기 시작했다.
뇌신단만 있으면 목진의 영광 관정이 아무리 오래 걸려도 상관없었다.
* * *
북창령원에서는 다들 목진의 행방에 대해 궁금해했다. 여태껏 영광 관정을 이렇게까지 오래 한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다행히 북명룡곤이 목진의 영광 관정을 직접 집행한다는 소식이 전해지지 않아 사람들의 관심은 금세 줄어들었고, 수렵전이 가져다준 여파도 점차 사라졌다.
천방에 다시 큰 변동이 있으려면 다음 해 수렵전을 기다려야 했기 때문이다. 그때 또 어떤 실력자가 이목을 드러낼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러나 사람들은 알고 있었다. 새로운 실력자가 나타나긴 하겠지만 목진 같은 괴물급 신인은 더는 없을 거란 것을…….
화천경 초기의 실력으로 통천경 초기를 이긴 사람은 그가 유일할 것이다.
북창령원이 잠잠해질 무렵, 또 다른 일로 령원은 다시 떠들썩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