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1화. 교류회
어느덧 수렵전이 가져다준 여파가 가시고 천방의 움직임도 멈춰 북창령원은 다시금 잠잠해졌다. 그러나 심창생과 이현통이 함께 마룡자 격살 임무를 받았다는 소식이 퍼져 북창령원은 또다시 떠들썩해졌다.
북창령원 학생들은 북창대륙에서 수련하다가 마룡자를 만나기만 하면 한껏 괴롭힘을 당하다가 목숨을 잃었다. 그 모습이 더없이 처량하다고 전해져 학생들은 모두 놈을 혐오하였으나 어찌할 방법이 없어 만나지 않기만을 기도했다.
마룡자는 흉악할 뿐만 아니라 실력도 뛰어나 북창령원에서 그를 상대할 수 있는 사람은 아마 심창생과 이현통 밖에 없을 것이다.
그런데 심창생이 여태껏 혼자 다니며 마룡자를 잡으려고 애썼지만 결국 실패해 이현통과 손을 잡기로 한 것이다. 이번에는 어떻게든 북창령원을 호시탐탐 노리는 녀석을 잡겠다는 굳은 결심이 보였다.
사람들은 천방 1, 2위가 힘을 합쳐 싸우는 모습이 무척 궁금했지만 두 사람이 절대 빈손으로 돌아오지 않을 거란 굳은 믿음이 있었기에 령원에서 그들을 응원하며 기다리기로 했다.
다만, 이 소식도 두 사람이 북창령원을 떠난 지 열흘 정도 지나서야 알려져 열기는 금세 식었고, 또 다른 일이 그들의 이목을 끌었다.
대천세계에 있는 수많은 령원 중 오대원이 가장 유명하긴 하지만 그 실력을 뛰어넘는 곳이 없다는 말은 아니었다.
사실 오대원과 실력이 비슷한 곳은 많지만 널리 알려지지 않아 사람들은 늘 오대원만 기억하고 있는 것이었다.
이로 인해 실력이 비슷한 령원들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인재를 포섭해 어떻게든 자기 령원을 알리기에 바빴다.
그러다 생긴 것이 바로 교류회인데 일정한 시간을 두고 실력이 좋은 령원에서 학생을 파견해 오대원과 대결을 하는 것이다. 이것은 아주 우호적으로 보였으나 결국엔 다른 령원의 도발이나 마찬가지였다.
오대원에서도 그들의 진짜 목적을 알고 있었으나 이미 북창대륙에서 널리 이름을 알렸는지라 상대방의 요구를 거절할 수가 없었다.
수렵전이 끝나고 한 달 후, 북창령원에서 교류회가 열렸다.
학생들은 교류회를 통해 북창령원의 실력이 얼마나 좋은지 알리려고 이를 갈았다.
천방에 오른 실력자들을 제외한 학생들은 북창령원 내부에서는 평범할지 모르지만, 그들도 이곳 학생이 되기까지 엄청난 고난을 겪은 이들이었다.
올해 북창령원과 교류할 령원은 태정(太鼎)령원으로 태정대륙에 있는 령원이었다. 비록 북창대륙에서는 널리 알려지진 않았지만 대륙의 이름을 딴 령원의 실력은 절대 무시할 수가 없었다.
이에 북창령원 학생들은 수렵전 때보다 더 많은 관심을 보였다.
수렵전의 결과가 어떻든 결국 내부의 일이지만 교류회에서 누군가 실수라도 하면 북창령원의 이름에 누가 되기 때문이다. 이는 절대 일어나서도 있을 수도 없는 일이었다.
이에 학생들은 하나같이 교류회에 집중했다.
* * *
어느덧 교류회의 날이 다가왔다.
이번 교류회는 북명광장에서 열렸는데 장소만 봐도 북창령원이 교류회에 얼마나 많은 관심이 있는지 알 수 있었다.
교류회에서 상대방이 이기기라도 하면 북창령원의 명성에 적잖게 영향을 미칠 것이다.
교류회는 사흘간 열리는데 첫날엔 다행히 엇비슷한 실력으로 어느 정도 좋게 마무리되었다. 생각보다 실력이 좋은 태정령원 때문에 북창령원에서는 조금 긴장했다.
한편, 천방 1, 2위인 심창생과 이현통이 마룡자를 잡으러 자리를 비운 데다 3위인 목진까지 갑자기 사라진 탓에 승리를 거머쥐기가 쉽지 않았다.
교류회 둘째 날이 되어 천방 10위권에 있는 학요, 소훤, 서황, 조청삼 등이 나서자 북창령원이 압도적으로 승리하여 태정령원의 기세를 다시금 꺾어버렸다.
하지만 형세는 사흘째 되는 날에 곧바로 바뀌었다. 태정령원에서 선보인 학생 한 명이 잇따라 모풍양, 서황, 조청삼, 소훤 등 천방 5위부터 9위를 하루 만에 꺾어버렸고, 그 매서운 공격에 모두 중상을 입었다.
이로 인해 북창령원 학생들은 잔뜩 화가 났지만 실력이 뒤처져 감히 입을 열지 못했다. 모든 희망을 학요한테 걸 수밖에 없었다.
허나 이들의 소원은 이뤄지지 않았다. 학요는 최선을 다해 싸웠지만 결국 처참하게 패배했다.
북창령원 천방 10위권은 3명을 빼고 전멸하고 말았다.
아무도 태정령원에 이토록 엄청난 학생이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그 후로 태정령원은 기고만장해 북창령원 학생들을 무시하기 시작했다.
태정령원 학생들은 이미 실력으로 북창령원을 이겼다고 생각했고, 오대원 중 하나인 북창령원을 기꺼이 자신들의 령원으로 대체할 수 있다고 여겼다.
태정령원에서 내세운 학생은 유쟁(柳猙)으로 천부적 재능이 뛰어난 데다 북창령원의 마지막 시험을 통과하지 못해 태정령원에 들어간 학생이었다.
그런 그가 다시 북창령원에 나타나 이토록 놀라운 실력을 보여줬으니 이보다 더 우스운 일은 없었다.
유쟁은 북창령원에 들어오지 못한 것을 원망했기에 이곳 학생들에 대한 태도가 남달랐다. 유쟁이 북창령원에 들어가지 못한 건 결국 본인 탓이었지만, 이를 받아들이지 못했다.
이 일로 한을 품고 북창령원 학생들에게 중상을 입히는 것은 절대 정인군자가 할 짓이 아니었다.
유쟁의 태도에 북창령원 학생들은 씩씩거리며 아직 대결에 참여하지 않은 천방 고수를 찾아 나섰지만 심창생, 이현통, 목진보다 실력이 좋은 사람은 찾지 못했다.
이렇게 이번 교류회를 마칠 생각에 북창령원 학생들은 더없이 괴로웠다. 이번 교류회를 끝으로 북창령원의 명성은 큰 타격을 입을 것이고, 오대원에서의 명망과 순위에도 변경이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때, 소훤이 누군가를 추천했고 다들 동의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목진 등을 제외하고 유일하게 대결에 나서지 않은 단 한 사람, 바로 낙리였다.
북명광장에서 열린 교류회는 수렵전 때보다 그 열기가 더 뜨거웠다. 이는 북창령원의 명성에 관계된 중요한 행사였다.
태정령원이 머리 위에 기어오른 이상, 본때를 보여주지 않으면 북창령원은 한동안 북창대륙의 웃음거리가 될 것이다.
자부심으로 똘똘 뭉친 북창령원 학생들은 절대 이런 상황이 벌어지는 것을 용납할 수가 없었다.
북명광장에 모인 사람 중 10명에서 9명은 북창령원 학생이었다. 서북쪽에 모인 자그마한 무리만 태정령원 학생들이었는데 푸른색 도포를 입은 이들은 팔짱을 끼고 씨익 웃으며 북창령원을 바라보았다. 마치 사람이 아무리 많아도 유쟁을 이길 사람은 없다고 비웃는 것만 같았다.
“유쟁 선배, 오늘까지만 버티면 우리 태정령원의 승리예요. 제아무리 북창령원이라도 할 말이 없을 거예요.”
“최강 실력자가 없다고 하질 않나, 북창령원은 역시 핑곗거리가 많아. 유쟁 선배가 어제 천방 10위안에 드는 사람을 상대해 봤지만 결국 처참하게 패배했잖아.”
“천방 3위권에 드는 사람과 싸워도 유쟁 선배가 반드시 이길 거야!”
“하하하.”
* * *
태정령원 학생들의 비웃는 소리에 북창령원 학생들은 잔뜩 화가나 씩씩거렸지만 유쟁이 나타난 뒤로 한 번도 이긴 적이 없어 참을 수밖에 없었다.
푸른색 도포를 입은 채 팔짱을 끼고 서 있던 유쟁은 화가 나 부들부들 떨고 있는 북창령원 학생들을 보고 있노라니 헛웃음밖에 나오지 않았다.
꿈에 그리던 북창령원은 생각보다 별 볼 일 없었다. 이번에 확실히 자신을 뽑아주지 않은 북창령원에 본때를 보여주고 싶었다.
한편, 북창령원 무리 중 맨 앞에 선 사람들은 북창령원의 최강 실력자들이었다. 그중 학요, 소훤, 서황 등 노참과 조청삼 등 신예들도 있었지만 다들 표정이 썩 좋아 보이지는 않았다.
“소훤, 낙리를 부르러 갔어? 온대?”
서황이 소훤을 바라보며 물었다. 천방 10위권 중 학원에 없는 심창생과 이현통, 그리고 한 달 넘게 자취를 감춘 목진을 제외하면 낙리만 아직 출전하지 않았다.
“이미 사람을 보냈어. 낙리가 싸우는 것을 좋아하지는 않지만 북창령원의 명성이 걸린 문제라 분명 올 거야.”
소훤이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와도 무슨 소용이 있을까? 유쟁의 실력은 통천경 초기로 이현통과 비슷한 것 같은데 목진이 와도 이길 수 없을 거야. 이제 우린 끝이야.”
목진과 관계가 안 좋은 학요는 낙리와 목진 사이를 알고 있어 괜히 비꼬며 말했다.
“네가 실력이 됐으면 우린 널 출전시켰을 거야.”
소훤이 노려보며 하는 말에 학요는 이를 갈며 고개를 돌렸다. 그는 비록 통천경에 이르기 직전이었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아직 그 경지에는 오르지 못했다. 이것이 바로 그가 유쟁과의 대결에서 패배한 이유였다.
북창령원의 학생들은 억울했다. 태정령원은 심창생과 이현통이 떠나고 목진이 자취를 감췄을 때 교류회를 하러 왔다. 꼭 일부러 때를 노린 것만 같았다.
수석대에 있는 양쪽 관계자도 점잖게 자리에 앉아만 있는 것 같았지만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태창 원장, 보아하니 우리 태정령원에서 때를 잘못 맞춰 왔나 보네. 유쟁 녀석의 재능이 뛰어나긴 하나 너무 오만해 이번 기회에 기를 꺾으려고 하였는데…….”
수석대에 앉아있던 뚱뚱한 사내가 웃으며 말했다.
“비 원장, 교류회는 일반 대결이라 각자 부족한 점을 찾은 것으로 만족하면 그만이네.”
태창 원장이 담담하게 말했다.
상인같이 생긴 뚱뚱한 사내는 태정령원의 원장 비청송(費青松)이었다. 그는 외모가 출중하지는 않으나 태정대륙에서 알아주는 인물인지라 외모만 보고 섣부른 판단을 했다가는 큰코다칠 것이다.
“역시 태창 원장의 도량을 따라갈 사람이 없네.”
비청송은 배시시 웃으며 우둔한 손으로 탁자를 가볍게 때렸다.
“이번 교류회는 태정령원이 이겨도 괜히 찝찝할 것 같네. 대신 돌아가면 녀석들더러 입을 함부로 놀리지 말라고 단단히 이를 테니 걱정하지 말게.”
비 원장의 말에 아무런 미동도 없는 태창 원장과 달리, 옆에 있는 장로들은 인상을 한껏 찌푸렸다. 형전 전주인 맥유도 입가를 파르르 떨며 태창 원장에게 말을 건넸다.
“원장님, 이 일을 이미 북명 대인한테 알렸으나 아직 회신이 없어요. 목진이 나타날지는 아직…….”
이에 태창 원장은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태창 원장, 출전할 학생이 더는 없으면 이만…….”
비청송의 말이 끝나기 바쁘게 한 줄기의 빛이 먼 곳에서 날아와 북명광장에 내려앉았다.
어느덧 빛이 가시자 현의를 입은 아름다운 장발 소녀가 사람들 앞에 나타나 떠들썩했던 북명광장은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다들 소녀의 미모에 놀란 표정이었다.
“드디어 나타났어!”
소훤 등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
“여태껏 기다렸는데 여인이 나서다니, 북창령원에 이렇게까지 사람이 없나?”
소녀의 아름다운 외모에 흠칫 놀랐던 유쟁이 피식 웃으며 하는 말에 낙리는 무덤덤하게 상대방을 바라보기만 했다.
“천방 10위 낙리다, 잘 부탁한다.”
낙리의 맑은 목소리가 광장에 울려 퍼졌다.
“천방 10위라니. 천방 4위인 학요마저도 유쟁 선배한테 처참하게 졌는데 10위가 뭘 할 수 있을까?”
태정령원의 학생들도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이내 혀를 끌끌 찼다. 낙리가 미인계라도 사용할 작정은 아니냐며 험담이 오갔다.
그런데 그때 태정령원의 한구석에서 누군가 소녀를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그 모습이 마치 사냥감을 노리는 맹수 같았다.
‘낙리, 네가 역시나 북창령원에 숨어 있었구나.’
한편, 유쟁은 여리여리한 낙리를 바라보며 말을 이어갔다.
“내 손이 맵다고 뭐라 하지 마. 나와 싸우다 얼굴이 상할까 봐 두려우면 지금이라도 좋으니 당장 물러나.”
녀석의 말에 낙리가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말이 참 많네.”
이에 유쟁은 정색하며 발을 굴렀는데 웅장한 영력이 치솟으며 위압감을 형성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