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2화. 낙신검의 위력
북창령원 학생들은 대부분 안색이 어두워졌으나 소훤 등은 긴장한 채 두 사람을 바라보기만 했다. 목진과 함께 영왕을 죽인 소녀는 분명 진정한 실력을 숨기고 있을 것이다. 소훤은 오늘에서야 그 진위를 확인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훤은 낙리가 유쟁의 손에 중상이라도 입어 목진이 화낼까 봐 걱정되면서도 낙리가 엄청난 실력의 소유자이길 진심으로 빌었다.
유쟁은 한기 어린 눈빛으로 낙리를 바라보며 영력을 한껏 끌어올렸다. 마지막 상대까지 때려잡으면 북창령원에서 더는 내세울 것이 없을 것이다.
“북창령원도 별반 다를 것 없네.”
유쟁이 피식 웃으며 말을 이어갔다.
“천방 3위권에 든 사람들은 한 명도 나타나지 않았으니 그들은 반년 뒤에 있을 령원 대결에서 제대로 밟아주지.”
이에 낙리는 차가운 눈빛으로 유쟁을 바라보며 수중의 낙신검을 꽉 잡았다. 그러자 체내에서 상대방과 엇비슷한 정도의 웅장한 영력이 폭풍처럼 휘몰아쳤다.
낙리의 실력이 통천경에 이른 것이다!
심창생과 이현통 외에 통천경에 이른 세 번째 학생이 낙리란 사실에 화들짝 놀란 북창령원 학생들은 입이 쩍 벌어졌다.
다만, 낙리는 사람들의 시선 따위를 무시한 채 흠칫 놀란 유쟁을 노려보며 말했다.
“너 따위는…….”
“단칼에 해결할 수 있어!”
그녀의 말이 끝나자마자 예사롭지 않은 검기가 하늘 높이 솟아올랐다.
위잉!
청량한 검음과 함께 웅장하고 날렵한 검기가 하늘 높이 솟아올라 주위에 퍼지더니 하늘은 금세 어두워졌다. 사람들은 숨죽여 이를 지켜보았다.
북창령원과 태정령원은 모두 긴장하여 두 사람의 대결을 지켜봤다. 아무도 저 아름답고 여려 보이는 소녀가 이토록 놀라운 기운을 방출할 줄은 몰랐다.
그런데 이런 실력이 어찌 천방 10위 밖에 안 된단 말인가?
이는 천방 3위권에 들고도 남을 실력이었다.
낙리의 실력에 소훤, 학요 등도 눈가가 파르르 떨렸다. 북창령원에서 통천경에 접어든 사람은 심창생과 이현통 둘 뿐이었고 천방 3위인 목진도 전투력은 뛰어나긴 하나 진정한 실력이 통천경에 닿기에는 아직 멀었다.
하여 자신이 세 번째로 통천경에 이를 거라 여겨왔던 학요는 낙리가 그 세 번째 자리를 꿰찼다는 생각에 기분이 썩 좋지 않았다.
목진과 낙리는 역시 괴물이었다!
이에 질투하는 사람도 적잖게 있었지만 대부분의 북창령원 학생들은 진심으로 낙리가 유쟁을 이겼으면 하고 바랐다.
“단칼에 나를 이긴다니, 너무 오만하구나!”
유쟁은 낙리의 영력 파동에 조금 놀랐지만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피식 웃으며 말했다. 소녀의 실력이 예상 밖이긴 했지만 단칼에 자신을 이기는 것은 불가능했다.
반면, 낙리는 무덤덤하게 칼집을 벗겨 날카로운 낙신검을 선보였다. 그러자 주변의 온도가 순식간에 내려가며 백 장 정도의 검광이 엄청난 검기를 싣고 하늘 높이 솟아올랐다.
눈 깜빡할 사이에 한곳에 모인 검기는 무서운 파동을 내뿜어 검기 하천을 이뤘다.
그제야 유쟁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한편, 낙리는 손을 가볍게 떨며 수중의 장검을 휘둘렀다.
위잉!
허공의 검기 하천은 한 줄기의 빛이 되어 날렵한 검기를 싣고 유쟁에게 향했다.
일검화낙수(一劍化洛水).
쿵!
검기가 아직 바닥에 닿지도 않았는데 지면은 잔뜩 구멍이 났다. 실력을 있는 그대로 보여준 낙리는 수렵전에서 보다 훨씬 무서운 존재로 등극했다.
고개를 들어 상대방의 공격을 목격한 유쟁의 안색은 잔뜩 어두워졌지만 이대로 패배를 인정할 그가 아니었다.
그는 한기 어린 눈빛으로 낙리를 바라보며 적색 장창을 소환하였는데 이와 동시에 난폭한 영력이 화염처럼 활활 타올랐다.
“염신전창(炎神戰槍)!”
잇따라 유쟁이 체내의 영력을 한껏 끌어올리자 적색 영력이 장창을 타고 공기를 가르며 하늘 높이 치솟았다.
쿵!
두 갈래의 힘이 부딪치자 검기가 폭동을 일으켜 대지가 찢어지며 커다란 균열이 일었고 적광도 함께 폭발했다.
검기가 불처럼 타오르는 적색 영력을 산산조각 내버렸다.
유쟁은 자신의 공격이 이렇게 무산될 줄 몰랐는지 팔을 부들부들 떨며 뒤로 물러났다.
슉!
그런데 이때, 소녀가 검기를 이끌고 쏜살같이 녀석의 앞에 다가가 그를 공격했다. 그 엄청난 속도에 녀석은 차마 피할 수도 없었다.
퍽!
유쟁은 소녀의 공격에 광장 밖까지 튕겨 나가 사색이 된 채 피를 토했다.
소녀의 공격에 죽을 수도 있었다는 생각이 들자 그는 겁에 질려 온몸을 파르르 떨었다.
승패가 너무 빨리 갈려 낙리의 공격이 얼마나 놀라웠는지 그 과정을 본 사람은 몇 되지 않았지만, 장외로 튕겨 나간 유쟁으로 인해 승패는 이미 갈렸다.
이에 하늘이 떠나갈 듯한 환호성이 북창령원 측에서 들려왔다.
소훤, 학요 등은 눈이 휘둥그레져 낙리를 바라봤다. 목진 뒤에 숨어 조용히 서 있던 소녀가 이토록 놀라운 실력의 소유자였는지 아무도 몰랐다.
“대단한걸.”
서황이 감탄하며 말했다. 이번 신생은 역시 대단하단 생각이 들었다. 목진 뿐만 아니라 여려 보이는 소녀까지도 엄청난 실력자였다.
낙리는 일부러 목진 뒤에 숨어 실력을 감추고 있었을 뿐, 낙신검처럼 낙리도 언젠가 빛을 발할 날이 반드시 올 것이다.
오늘처럼 말이다.
태정령원의 학생들은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하여 북창령원 쪽을 바라봤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승리의 희열을 만끽할 준비를 하고 있었던 그들은 상황이 이렇게 바뀔 줄은 몰랐다.
통천경의 유쟁이 이렇게 빨리 패배하다니…… 이는 정말 예상 밖이었다.
한편, 수석대에 앉아있던 태정령원 원장 비청송도 안색이 어두워졌다.
“아직 나타나지 않은 천방 3위권 외에 이토록 놀라운 인물이 존재하다니, 역시 북창령원은 남다르군.”
태창 원장은 담담하게 웃으며 소녀를 바라봤다.
“과찬이네, 비 원장. 낙리가 싸우는 것을 싫어해서 천방 순위가 10위밖에 안 되었던 것뿐이네. 이번 일도 어쩔 수 없이 나선 거라네.”
“저 아이가 낙리라고 했나? 방금 선보인 공격은 낙신족의 낙신검결 같던데 설마 낙신족 사람인가?”
“유쟁이 패배했으니 이번 교류회는 이대로 마치는 것이 어떤가? 이번 기회에 태정령원의 놀라운 실력을 보게 되어 영광이었네.”
“잠시만.”
비청송은 히쭉 웃으며 말을 이어갔다.
“태창 원장, 우리 태정령원에는 아직 선수가 남아 있다네. 유쟁이 태정령원의 최강자란 말은 아무도 한 적이 없네. 그리고 그쪽에 낙신족 사람이 있듯 우리 쪽에도 특수한 혈통을 가진 사람이 있다네.”
비청송의 말에 태창 원장은 저도 모르게 인상을 찌푸렸다.
태정령원은 만반의 준비를 하고 온 듯했다.
주위를 맴돌던 검기를 거두고 낙리가 사색이 된 유쟁을 바라보며 말했다.
“영력의 기반이 단단하지 않은 것으로 보아 누군가 네 실력을 강제로 끌어올린 것 같은데, 그깟 실력으로는 북창령원 천방 3위권에 도전장을 내밀 자격이 없어.”
그 말에 유쟁은 반박하고 싶었지만 일전에 당한 것이 생각나 감히 뭐라 하지 못하고 손만 파르르 떨었다.
유쟁의 이런 반응에 태정령원의 학생들도 이를 악물고 부들부들 떨었다. 유쟁 스스로 패배를 인정했으니 더는 가망이 없었다.
낙리는 고개를 숙인 태정령원 학생들을 보고는 뒤돌아 떠나려 했다. 싸우는 것을 싫어하지만 북창령원의 학생으로서 태정령원이 이곳에서 날뛰는 꼴은 볼 수 없었다. 원하는 바를 이뤘으니 더는 이곳에 남아 있고 싶지 않았다.
“하하하.”
그런데 그때, 누군가의 경멸 섞인 웃음소리가 태정령원에서 들려왔다. 다들 소름이 끼쳐 온몸을 파르르 떨며 고개를 돌렸고 낙리도 발걸음을 멈췄다.
그는 태정령원 가장 뒤편에 앉아있다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학생들을 지나 유쟁 앞에서 멈췄다.
“쓸모없는 녀석.”
유쟁은 힘없이 고개를 떨구었다.
그는 유쟁을 지나 낙리에게 다가갔는데 예쁘장한 얼굴에 빨갛게 충혈된 눈이 유달리 이목을 끌었다.
“낙리, 낙신족의 차기 여황, 네가 정말 이곳에 있을 줄은 몰랐군.”
낙리는 빨갛게 그을린 녀석의 눈을 마주치자마자 수중의 장검을 꽉 쥐고 살기 어린 목소리로 말했다.
“혈신족(血神族)…….”
낙리는 안색이 한껏 어두워진 채 살기 어린 눈으로 상대방을 바라봤다. 이는 그녀한테서 보기 힘든 표정이었다.
반면, 선홍색 옷에 피비린내가 진동하는 그는 빨간 두 눈으로 낙리를 바라보며 담담하게 웃었다.
“우리가 수집한 정보가 정확했군. 낙신족 차기 여황으로서 낙신족에서 백성을 돌보며 황위를 이어받을 준비는 하지 않고 왜 이곳 북창령원에 왔지?”
청년은 씨익 웃으며 말을 이어갔다.
“설마 도망치려던 속셈인가?”
낙리는 낙신검을 꽉 잡은 채 묵묵히 청년을 바라보기만 했다.
“참, 내 이름은 혈시(血弒)로 혈신족 왕족 출신이야.”
청년은 깍듯하게 인사했다. 그러나 그 주위에서 피비린내가 진동해 가까이 가고 싶지 않았다.
혈신족은 낙신족처럼 서천계의 사대 신족 중 하나였고 혈시는 낙리와 같은 곳에서 왔다.
“혈시라…… 혈신족 왕족에 그런 사람이 있다고 들은 적이 없는 것으로 보아 네 지위가 그다지 높지 않은가 보구나.”
낙리가 차가운 목소리로 상대방을 바라보며 말했다.
“너를 잡아가면 내 지위가 달라지겠지?”
혈시가 씨익 웃으며 말했다.
“너 따위가?”
“낙천신이 정한 차기 낙황을 감히 무시할 수는 없겠지만 아직은 나이가 너무 어려 한 번도 계승을 받은 적이 없지?”
입맛을 다시며 낙리를 바라보는 혈시의 시뻘건 눈에서 피가 요동치며 혈망을 내뿜었다.
“그런데 난 이미 한 번 받았거든. 그러니까 조심해. 혹시라도 내 손에 죽으면 낙신족은 끝이야.”
“네가 걱정할 일이 아니야.”
낙리가 담담하게 하는 말에 혈시는 씨익 웃으며 혈광이 깃든 영력을 끌어올렸다. 그러자 주위가 순간 붉은빛으로 물들었고 피비린내가 진동했다.
혈시는 유쟁보다 훨씬 실력이 뛰어났으며, 무려 통천경 중기에 근접하는 실력을 지닌 능력자였다.
이에 북창령원 학생들도 안색이 어두워졌다. 태정령원에 유쟁보다 실력이 뛰어난 사람이 있을 줄은 몰랐다.
태정령원은 이번 교류회를 통해 북창령원을 제대로 짓밟으려는 것이 분명했다.
“혈신족이 어쩌다 태정령원에 든 건가?”
태창 원장이 혈시를 노려보며 무덤덤하게 말했다.
“북창령원에도 낙신족이 있지 않나? 우리 태정령원이 어느 정도 명성을 떨쳤더니 큰 종족에서 알아서 사람을 보내더이다.”
비청송의 말에 태창 원장의 표정이 썩 좋지 않았다. 태정령원에서 이름을 알리기 위해 별짓을 다 한다고 생각했다.
형전 전주 맥유도 인상을 찌푸리며 비청송을 바라봤다. 그는 태정령원이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북창령원에서 교류회를 주최한 이상 낙리가 혈시를 이겼으면 하였다.
낙리 역시 정색하며 상대방을 바라봤다. 혈시는 비록 유쟁과 같은 통천경 초기이긴 하지만 기반이 제대로 다져지지 않은 전자에 비해, 그는 조금만 수련하면 통천경 중기에 이를 수 있어 두 사람의 실력은 천지 차이였다.
“이번 기회에 낙신족 차기 여황이 얼마나 대단한지 직접 보자꾸나.”
혈시는 혈안으로 낙리를 노려보며 사악하게 웃었다.
슈슉!
낙리가 차가운 눈빛으로 상대방을 바라보며 낙신검을 휘두르자 웅장하고 날카로운 검기가 다시금 하늘 높이 솟아올랐고 어느덧 검기가 한데 모여 검하를 이루었는데 이는 영락없는 살수였다.
“유쟁한테 썼던 수법이 나한테도 통할 거라 여기는 거야? 과연 누가 먼저 패배할지 지켜보지!”
혈시는 말이 끝나기 무섭게 허공에 떠올라 주위에 혈해를 이루며 낙리에게 향했고, 낙리도 하늘 높이 날아올라 검하와 하나가 되어 하늘을 가르며 상대방에 맞섰다.
이번 공격은 유쟁을 상대했을 때보다 훨씬 강력했다.
사람들은 곧바로 상대방에게 살수를 두는 두 사람의 대결을 멍하니 바라보기만 했다.
“혈해검(血海劍)!”
혈해와 검하가 부딪치는 순간, 혈시는 갑자기 주먹을 쥐어 피로 만든 것 같은 장검을 소환하였다.
탕!
장검 두 자루가 혈해와 검하 사이에서 부딪치자 대지가 쩍 갈라지며 공기가 일그러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