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주재-233화 (232/1,000)

233화. 드디어 나타난 목진

웅장한 영기의 낙신검과 피비린내를 풍기는 혈해검이 부딪치자 두 사람이 있던 곳에 커다란 균열이 생겼다.

이때, 혈시가 팔을 부들부들 떨며 씨익 웃더니 뒤쪽으로 혈막을 만들었는데 그 속에 선혈로 만들어진 부대가 보였다. 이들은 방대한 도시를 토벌하러 가는 중이었고 그 도시는 다름 아닌 낙리의 고향이었다.

혈막 속에서 도시는 맥없이 무너졌고 사람들은 놈들의 손에 처참하게 죽어갔다. 끊임없이 들려오는 비명에 낙리는 너무 괴로웠다.

“잘 봐, 너희 낙신족 땅은 우리한테 먹히고 있고 너를 숭배하던 낙신족 백성도 도살당하고 있어!”

혈시가 사악하게 웃으며 낙리에게 말을 건넸다.

한편, 혈막 속 광경에 놀란 낙리의 검기는 서서히 붕괴하고 있었다. 이는 혈신족의 제일가는 수법으로 상대방의 정신력을 흐리게 하여 그 틈새를 노려 공격하는 것이었다.

“우쭐하기는, 넌 아직 멀었어.”

낙리 주위에서 맴돌던 검기가 쇠약해지자 혈시는 피식 웃더니 피비린내를 풍기며 수중의 혈검을 날렸다.

퍽!

이에 방어벽이 망가진 낙리는 뒤로 튕겨났는데 순간 소환한 한 줄기의 검광이 혈시를 적중하여 녀석도 멀리 튕겨 나갔다.

장외에 떨어진 낙리의 안색은 조금 창백했고 낙신검을 쥔 손에서는 피가 주르륵 흘러내렸다. 반면, 장내에서 바로 몸을 추스른 혈시는 어깨 쪽에 상처가 나 피가 흐르는데도 전혀 개의치 않고 영력을 끌어올려 신속하게 상처를 치유했다.

“낙황의 심기가 이렇게까지 굳건하지 못해서 어디에 쓸까? 이까짓 일로 마음이 흔들리면 낙신족 백성은 뭘 믿고 너를 따라야 하지?”

혈시가 낙리를 조롱하듯 말했다.

“한 종족의 황이 이렇게 나약해서야 원.”

혈시가 입만 함부로 놀리지 않았어도 절대 패배할 리 없을 거라 여긴 낙리는 살기 가득한 얼굴로 상대방을 노려봤다.

“비열한 녀석!”

북창령원 학생들은 혈시의 비겁함에 이내 혀를 내둘렀지만 혈시는 아무렇지 않았다.

“승패는 이미 갈렸으니 북창령원 학생 중 나에게 도전하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얼마든지 나와도 좋아. 그런데 내가 아직 진정한 실력을 보여주지 않았다는 것만은 잘 알아둬.”

이에 북창령원 학생들은 잔뜩 화가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해졌다. 혈시는 유쟁보다 더 야비하고 못 됐지만 유쟁과의 싸움에서 천방 4위부터 10위까지 전부 출전했는지라 이제 더는 나설 사람이 없었다.

천방 3위권 중 한 명이라도 있었으면 태창령원에서 이렇게까지 우쭐대지는 못했을 것이다!

“너희 북창령원 천방 3위권이 지금 이곳에 없다는 걸 알아. 내가 이곳에 사흘 더 머무를 테니 부를 수 있는 사람은 누구든지 불러, 내가 얼마든지 상대해줄게.”

혈시가 씨익 웃으며 말을 이어갔다.

“다만, 나를 상대하려면 담력이 충분해야 할 거야.”

말을 마친 혈시가 떠나려고 뒤돌아섰는데 태창 원장이 갑자기 미소를 지으며 어딘가를 바라봤고, 옆에 있던 비청송도 뭔가를 감지한 듯 인상을 찌푸렸다.

위잉.

북명광장 위쪽 하늘이 일그러지더니 뇌명이 들렸다. 이에 사람들은 화들짝 놀라 고개를 들었고 혈시도 발걸음을 멈췄다.

그런데 그곳에서 늘씬한 소년이 서서히 걸어 나왔다.

뇌명과 함께 나타난 소년한테서 익숙한 영력 파동이 느껴졌는데 이를 알아챈 북창령원 학생들은 벌떡 일어나 환호하였다.

드디어 목진이 나타났다!

북명광장 위쪽 하늘이 일그러지더니 그 속에서 늘씬한 소년이 걸어 나왔다. 녀석이 풍기는 익숙한 영력 파동에 북창령원 학생들은 바로 화색이 되었다.

“목진이다!”

“목진이 드디어 나타났다!”

“마침내 돌아왔구나!”

“이제 태정령원에서 더는 우쭐댈 수 없을 거야!”

어느덧 심창생, 이현통 못지않게 유명해진 목진의 도래에 북명광장은 순간 떠들썩해졌다.

수렵전 마지막 관문을 계기로 목진은 북창령원에서 범접할 수 없을 만큼 위대한 신인이 되었다.

이제 일개 학요가 넘볼 수 있는 위치가 아니었다.

“녀석…… 드디어 나타났구나.”

소훤 등도 안심한 듯 숨을 내뱉었지만 학요만은 안색이 썩 좋지 못했다. 현재의 목진은 명성으로나 실력으로나 자신을 훨씬 뛰어넘었기에 감히 뭐라 할 수가 없었다.

한편, 허공에 나타난 소년을 바라보던 혈시는 주위에서 들려오는 환호성에 녀석의 누구인지 바로 알아챘다.

그는 천방 3위에 빛나는 목진이었다.

혈시는 북창령원 천방 3위의 실력이 얼마나 대단하기에 사람들이 이렇게까지 열광하는지 직접 확인하고 싶어 씨익 웃으며 상대방을 바라봤다. 그러나 정작 목진은 아직 상황 파악이 제대로 되지 않은 눈치였다.

방금 수련을 끝낸 자신이 왜 갑자기 이곳에 나타났는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어떻게 된 일이지?”

목진은 아직 대머리 노인에게 고맙다고 인사도 하지 못했는데 바로 이곳에 전송되어 인상을 조금 찌푸리고 주위를 훑었다.

수련에 들어가 있는 동안 북창령원이 잠잠해질 줄 알았는데 아직도 열기가 이렇게 뜨거운 줄은 몰랐다.

주위를 둘러보다 손에 피가 흐르는 낙리를 본 그는 순간 안색이 어두워졌다.

낙리가 다쳤다니!

목진은 바로 낙리한테 다가가 물었다.

“어떻게 된 일이야?”

목진을 본 낙리는 이내 화색이 되어 피를 닦으며 말했다.

“괜찮아, 크게 다치지는 않았어.”

“누가 한 짓이야?”

이제 그들을 괴롭힐 사람은 없을 거라 여겼는데 어떻게 된 일인지 궁금했다.

“내가 그랬어.”

누군가의 목소리에 목진이 서서히 고개를 돌리자 혈의를 입고 뒷짐을 진 청년이 보였다.

“넌 누구야?”

목진은 아무리 봐도 낯선 혈동의 사내를 북창령원에서 마주친 적이 단 한 번도 없는 것 같았다.

슉.

그때 소훤이 다가와 이곳에서 일어난 일을 알렸고, 목진의 안색은 점차 어두워졌다.

특히, 혈시가 비열한 수법으로 낙리의 정신력을 흐리고 그 틈을 타 공격했단 말에 목진은 이를 갈며 녀석을 노려봤다.

“미안해. 낙리까지는 끌어들이지 않으려고 했는데 출전할 사람이 없었어. 심창생과 이현통마저도 령원에 없고 너까지 사라져…….”

소훤의 사과에 옆에 있던 낙리가 아니라며 손을 절레절레 흔들었다.

“선배, 나도 이곳 학생으로서 북창령원을 지킬 의무가 있어요.”

이에 목진이 고개를 끄덕이더니 점차 마음을 가라앉히고 다시 입을 열었다.

“일단 물러나요, 이제부턴 내 몫이에요.”

아무렇지 않은 것처럼 보였지만 목진은 잔뜩 화가 났다.

“조심해. 녀석은 서천계 4대 신족 중 하나인 혈신족 사람이야.”

낙리는 혈시의 비열함만 보고 그 실력을 무시하면 큰코다칠 거라고 당부하였다.

목진은 아무리 신족이라도 북창령원에까지 손을 뻗을 권리는 없다고 생각했고, 이번 기회에 반드시 그 손을 잘라버리겠다고 결심했다.

낙리와 소훤은 목진만 남기고 장내에서 물러났다.

“목형, 녀석을 제대로 응징해줘요!”

“저들을 북창령원에서 내쳐줘요!”

* * *

북창령원 학생들은 구세주라도 온 듯 의기양양해졌다. 그러나 태정령원 학생들은 앳된 소년의 실력이 뛰어나 봤자 경험이 풍부한 노참보다 못할 거라 여겼다.

수석대에 있는 비청송도 소년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웃었다.

“저 아이가 북창령원 천방 3위의 목진인가? 실력으로만 보면 훨씬 뒤처지는 것 같은데…….”

비청송은 아직 통천경에도 이르지 않은 목진보다 다른 이들이 훨씬 강해 보였다.

“보이는 것에만 집착하다 보면 큰코다칠 때가 많다네.”

태창 원장이 담담하게 하는 말에 비청송은 미간을 조금 찌푸렸다.

“그럼 이번 기회에 목진의 실력을 제대로 봐야겠군. 천방 3위까지 우리 손에 지면 더는 할 말이 없겠지? 심창생과 이현통도 언젠가 혈시와 힘을 겨루게 될 걸세.”

이에 태창 원장은 조용히 웃더니 소년에게 고개를 돌렸다. 한 달 전에 비해 실력이 더 좋아진 소년이 이번에는 어떤 기적을 만들어낼지 궁금했다.

이때, 목진이 혈시의 맞은편에 다가가 한기 어린 눈빛으로 상대방을 바라봤다.

“북창령원 천방 3위가 생각보다 별 볼 일 없는 것 같네.”

혈시는 목진한테서 자신과 비슷한 영력 파동을 읽지 못했기에 비웃으며 말했다.

“낙리의 몸에는 손대지 말아야 했어.”

목진이 고개를 숙이며 천천히 말했다.

“그래?”

혈시가 피식 웃으며 말을 이어갔다.

“낙리가 확실히 실력이 좋아. 제대로 붙으면 나라도 아마 상대가 안 됐을 거야. 그런데 저렇게 마음이 약해서야 괜찮을까? 나마저도 손쉽게 마음을 흔들 수 있으니 이는 그녀의 치명적인 약점이 될 거야.”

“넌 곧 그 대가를 치를 거야.”

목진은 혈시의 말 따위는 무시하고 혼잣말을 했다.

“너 따위가 뭔데 감히 그런 말을 해?”

말을 마친 혈시는 웃음을 거두고 이내 정색하였다. 낙리는 확실히 그보다 실력이 뛰어나 계략을 썼던 것인데, 눈앞에 나타난 이 녀석은 전혀 위협이 되지 않았다.

“죽고 싶어 환장했구나!”

혈시는 혈광이 깃든 영력을 소환했는데 더 짙어진 피비린내가 진동하며 강력한 영력 위압감을 형성하였다.

살기를 품은 혈시에 소훤 등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고천염보다 실력이 더 뛰어난 이를 상대로 목진이 이길 수 있을지 궁금했다.

싸움에서 이기기 위해서라면 목진과 혈시 모두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을 것이 분명했다.

목진은 천천히 백기를 내뿜고는 고개를 들었다. 눈 속에서 검은색 벼락이 들끓는 것 같았다.

그는 체내의 영력을 최대한 끌어올려 혈광이 깃든 영력에 맞섰는데 상대방의 영력 위압감이 아무리 강력해도 목진의 영력 기둥의 기세를 막지는 못했다.

목진은 어느덧 화천경 후기에 이르렀다!

이에 태정령원 학생들은 흠칫 놀랐다가 비웃듯 입꼬리를 씰룩거렸다. 그깟 실력으로 천방 3위를 했다는 것이 우습기만 했다.

“화천경 후기밖에 안 되는 녀석을 내세우다니, 멍청한 녀석들.”

그 말에 북창령원 학생들은 화천경 초기였을 때부터 통천경 초기인 고천염과 싸워 이긴 목진을 하찮게 보는 태정령원이 더욱 멍청해 보인다고 생각했다.

이렇게 북명광장 분위기는 미묘하게 흘러갔다.

두 갈래의 웅장한 영력이 북명광장 위쪽 하늘에서 힘을 겨루다 영력 돌풍을 만들었다.

“화천경 후기라…….”

혈동으로 영력을 한껏 끌어올린 혈시가 목진을 바라보며 피식 웃었다. 목진은 아직 통천경에 이르지도 않았다.

화천경 후기인 녀석이 도대체 무슨 용기로 자신 앞에 나섰단 말인가?

혈시나 태정령원 학생들은 아직 목진의 진정한 실력을 잘 몰랐지만 이를 잘 아는 북창령원 학생들은 숨죽여 두 사람의 대결을 지켜봤다.

쿵!

목진의 실력이 어떻든 상대해보면 알 거라 여긴 혈시는 바로 인법을 바꿔 하늘에 혈광 영력을 만들었다. 이는 바로 커다란 혈수인이 되어 목진에게 향했다.

쿵.

혈시의 공격에 공기마저 자리를 내주었고 아래쪽 대지에는 커다랗게 흔적이 남았다.

낙리와의 대결이 너무 빨리 끝나 제대로 보지 못했던 사람들은 혈시의 통천경 중기의 실력이 무시무시하다고 생각했다.

쿵!

목진은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혈수인을 보고는 흑염이 깃든 영력을 끌어올려 주위에 별빛 공간을 형성하여 백호를 소환하였다.

사신성숙경, 백호신인!

목진이 주먹을 휘두르자 백호신인은 한 줄기의 흑염의 빛이 되어 하늘을 가르며 상대방에게 날아갔다.

쿵!

난폭한 영력 충격에 바닥은 쩍 갈라졌지만 혈시와 목진은 끄떡없었다.

이까짓 충격은 두 사람한테 아무런 피해도 주지 않았다.

어느덧 영력 파동이 사라지자 사람들은 잔뜩 균열이 생긴 대지와 멀쩡한 두 사람 때문에 안색이 어두워졌다.

그러다 바람이 불어 먼지가 일자 목진과 혈시는 이내 정색하더니 거의 동시에 몸을 움직였다.

흑염과 혈광이 치솟아 각자 반쪽 하늘을 차지했고 두 사람은 그 연결점에서 혈투를 벌였다.

이때, 산 두 채가 부딪치는 듯한 묵직한 소리에 사람들이 고개를 들어보니 두 사람은 육박전을 펼치고 있었다.

초기에 혈광이 깃든 영력이 압도적인 우세를 차지해 북창령원 학생들은 잔뜩 긴장했지만, 그 속에서 흑염은 점차 불타올랐고 공격도 훨씬 강력해졌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