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4화. 혈신갑(血神甲)
퍽!
권풍이 부딪치자 두 사람은 지면에 긴 흔적을 남기며 뒤로 백 장 정도 물러났고 서 있던 곳도 움푹 파였다.
태정령원 학생들은 눈이 휘둥그레져 이를 지켜보았다. 바로 제압해야 마땅한 화천경 후기와 싸우면서 아무런 우세를 차지하지 못하는 것도, 혈시가 이 정도로 치열하게 싸우는 것도 그들은 처음 보았다.
유쟁 역시 놀란 눈으로 먼 곳에 떨어진 소년을 바라봤다.
혈시가 주도권을 차지했던 싸움은 어느덧 막상막하가 되었는데 이는 목진이 자기 힘에 대한 장악력을 찾아가는 과정 때문이었다.
그를 지켜보는 소훤 등도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목진은 지금 폭등한 힘을 파악하는 중이에요.”
낙리가 작은 목소리로 하는 말에 소훤 등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폭등한 힘을 다루는 것에 미숙해 열세에 처했던 목진은 이를 완벽하게 장악한 순간, 사람들이 익히 알고 있던 모습을 서서히 드러내기 시작할 것이다.
화천경 초기의 실력으로 통천경 초기에 도전장을 내민 미친 녀석이 이렇게 쉽게 제압될 리 없었다.
“꽤 하는군.”
혈시도 이내 정색하며 목진을 노려봤다. 그는 목진이 북창령원 천방 3위에 오른 이유를 이제야 알 것 같았다. 화천경 후기밖에 안 되는 녀석의 영력은 무척 괴상하였고 육신은 유달리 단단했다.
“그런데 그것만으로 나를 이길 수는 없을 거야.”
혈시는 목진의 전투력이 보이는 실력보다 훨씬 뛰어났지만 그 정도로 자신을 이기기란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다.
“혈신결(血神訣), 혈하통천(血河通天)!”
혈시가 하늘 높이 날아올라 합장하자 혈광이 한데 모여 혈하를 이루더니 한 마리 혈룡처럼 꿈틀거리며 엄청난 피비린내를 풍겼다.
“짓밟아버려!”
혈시가 고함을 지으며 손을 휘두르자 혈하는 무서운 위압감을 싣고 목진에게 내리꽂혔다.
혈시가 살수를 둔 것이다.
그렇다고 그저 당하고만 있을 목진이 아니었다. 혈시가 비록 고천염보다 실력이 좋긴 하나 그 역시 수렵전 때보다 실력이 훨씬 좋아졌다.
“네가 감히?”
목진이 뒤로 물러나며 현란한 인법을 그리자 흑염이 깃든 영력이 밀물처럼 흘러나와 그 뒤편에 다시금 별빛 공간을 형성했다.
그리고 이와 동시에 지극히 놀라운 영력 파동이 하늘 높이 치솟아 올랐다.
끼익!
맑은 울음소리와 함께 온몸에 화염을 뒤집어쓴 커다란 새가 별빛 공간에서 걸어 나왔는데 주위 온도가 순간 폭등하였고 공기마저 일그러졌다.
“저건…….”
소훤 등은 별빛 공간에서 걸어 나온 새를 보더니 흠칫 놀랐다.
“사신성숙경, 주작신인!”
한편, 목진이 무덤덤하게 손을 휘두르자 뒤쪽 공간은 바로 사라졌고 주작은 현란한 화염의 날개를 퍼덕이며 엄청난 온도로 혈하에 맞섰다.
목진의 실력이 폭등하여 이제는 사신성숙경에 주작신인까지 소환할 수 있게 되었다.
그때, 웅장한 영력으로 만들어진 혈하가 놀라운 속도로 와해되었다.
혈시의 영력으로 만든 혈하는 화해에 내던져도 끄떡없었는데 지금은 주작에 의해 사라지고 있었다. 혈시의 안색이 드디어 어두워졌다.
이건 도대체 무슨 신결이란 말인가?
“짓밟아버려!”
목진은 상대방에게 고민할 시간 따위 주지 않고 바로 주작을 움직였다.
끼익!
주작은 한 줄기의 붉은빛이 되어 현란한 불빛을 자랑하며 하늘을 가로질러 혈시에게 날아갔다.
퍽!
목진의 공격에 북창령원 학생들은 이내 박수갈채를 보냈지만 반대편에 있는 태정령원 학생들은 안색이 창백해져 고개를 푹 숙였다.
“대단해…….”
소훤 등도 놀라긴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낙리는 고개를 들어 허공을 보더니 안색이 조금은 어두워졌다.
목진도 고개를 들어 흑뢰가 깃든 눈으로 화염이 들끓는 곳을 바라봤는데 그곳에서 녀석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걸 막아내지 못하면 스스로 북창령원에서 꺼져.”
북창령원 학생들은 흠칫 놀랐다. 혈시가 아직 패배하지 않은 모양이었다.
사람들의 시선이 모인 곳에서 화염이 서서히 사라지더니 선홍빛 갑옷으로 몸을 휘감은 녀석이 저승사자처럼 허공에 모습을 드러냈다. 주위에는 피비린내가 더욱 짙어졌다.
피를 응결시켜 만든 것 같은 선홍빛 갑옷에는 날카로운 가시가 잔뜩 박혀있었고, 표면에 적힌 오묘한 문구는 꿈틀거리며 빛을 발했다. 놀라운 파괴력을 가진 듯했다.
혈신갑은 살인 무기나 다름없었다.
낙리는 혈갑을 보더니 흠칫 놀랐다.
“혈신갑을 수련해냈다니…….”
“혈신갑이 뭐야?”
옆에 있던 소훤 등이 어리둥절하여 물었다. 혈신갑에 대해 모르지만 내뿜는 파동만으로도 그 위력이 짐작이 갔다.
“이는 혈신족의 독특한 수련 방식으로 자신의 피를 갑옷으로 만드는 수법인데 그들의 전투력을 한 층 높일 뿐만 아니라 방어력도 강해지죠.”
낙리가 작은 목소리로 말을 이어갔다.
“혈시의 실력으로 혈신갑까지 소환하면 통천경 중기의 실력자와 상대해도 전혀 뒤처지지 않을 거예요.”
이에 소훤 등은 안색이 조금 어두워졌다. 4대 신족 중 한 갈래인 혈신족 혈시가 수단과 방법이 이렇게나 많을 줄은 몰랐다.
“그럼 목진은…….”
소훤이 조금 걱정되어 묻자 낙리는 멀리 떨어져 있는 소년을 바라보더니 담담하게 웃었다. 낙리는 목진을 굳게 믿고 있었다.
“그는 분명 이길 거예요.”
소훤은 더 이상 묻지 않았다. 비록 혈시가 호락호락한 상대는 아니지만 목진도 절대 만만한 사람이 아니었다. 그가 북창령원에 들어서부터 그 기를 꺾은 사람은 여태껏 아무도 없었다.
한편, 허공에 혈신갑을 입은 채 나타난 혈시를 바라보던 목진도 조금은 놀란 눈치였다.
“혈신족은 역시 자기만의 무언가가 있네.”
“나한테 혈신갑을 소환하게 하다니, 너도 꽤 대단해.”
혈시가 차가운 눈빛으로 목진을 바라보며 말했다.
“혈신갑은 일단 소환하면 상대방의 피를 봐야 해.”
혈시가 서서히 주먹을 쥐자 체내에서 혈랑이 일며 그곳 하늘을 빨갛게 물들였다.
“그러니 내 혈신갑을 위해 헌신해!”
쿵!
말을 마친 혈시는 바로 공기를 가르며 목진의 위쪽에 나타나 주먹을 휘둘렀는데 피가 섞인 듯한 권풍에서 무서운 파동이 느껴졌다.
크으으으!
이와 동시에, 목진도 체내에서 빛을 발하더니 용 울음소리와 함께 잔영만 남기고 사라졌다.
퍽!
혈시의 공격에 잔영은 바로 산산조각이 났고, 그곳 바닥도 움푹 꺼져 커다란 균열이 일었다.
이때, 수십 장 밖에 나타난 목진은 바닥에 난 균열을 보더니 혈신갑을 소환한 혈시의 전투력이 더 좋아진 걸 알아차리고 안색이 조금은 어두워졌다.
“네가 도망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
허탕을 친 혈시는 씨익 웃으며 말했다. 혈신갑은 그에게 힘뿐만 아니라 속도까지 높여주었으니, 그를 따돌리는 것은 불가능했다.
위잉.
혈시는 체내에서 혈광을 내뿜더니 어느덧 사라져 귀신같이 목진 앞에 나타나 다시금 혈망이 깃든 주먹을 날렸다.
이에 목진도 다시 용등술을 소환해 그의 막강한 공격을 겨우 피했다.
슉!
혈시가 목진의 뒤를 바짝 붙어 주먹을 휘두르자 공간마저 일그러지는 것 같았다.
슈슉!
속도를 최대한 높인 두 사람은 이를 지켜보는 사람들에게 잔영만 남긴 채 치열한 싸움을 벌였다.
“대단한 속도야.”
소훤 등은 이내 혀를 끌끌 찼다. 그들마저도 희미한 그림자밖에 보이지 않아 두 사람의 속도에 감탄할 뿐이었다.
“그런데 목진은 피하고만 있어.”
혈시가 혈신갑을 소환한 뒤로 실력이 폭등하여 목진은 감히 정면 승부를 볼 생각을 하지 못하고 피하고만 있었다. 하지만 이것은 결코 좋은 방법이 아니었다.
어느덧 상황 파악을 마친 태정령원 사람들은 목진이 실수하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낙리도 대결을 잠자코 지켜봤지만 소훤처럼 조급해 보이지는 않았다. 목진이 지금은 피하고만 있지만, 상대방의 실력이 두려워서 그런 게 아니라 따로 생각해둔 방법이 있어서 그러는 것 같았다.
그 방법이 무엇인지 잘 모르지만 목진은 절대 무의미한 일을 할 사람이 아니었다.
북창령원 학생들도 손에 땀을 쥐고 두 사람의 대결을 숨죽여 지켜봤다.
퍽!
혈시가 목진의 가슴에 주먹을 휘두르자 목진은 그 힘에 밀려 뒤로 물러났다.
목진이 공격 여파에 밀려나자 혈시는 이를 눈치채고 서둘러 웅장한 혈랑을 끌어올려 몸 뒤편에 있는 한 쌍의 혈익 허상을 만들어냈다. 혈익이 퍼덕이며 그 속도가 더 빨라졌다.
슉!
혈시는 한 갈래의 선홍빛 광선이 되어 뒤로 물러나는 목진 앞에 나타났다.
“네 속도가 빠르긴 하나 나보다는 느려.”
혈시가 씨익 웃으며 목진을 바라봤다. 그는 목진이 수련한 신비로운 동작술을 파악하느라 여태껏 공격하지 않았던 것이었다.
역시 혈시가 태정령원의 최강자인 데는 다 이유가 있었다. 그는 전투 경험이 지극히 풍부했다.
그런데 목진은 이미 코앞까지 다가온 혈시를 보고도 전혀 당황하지 않았다.
“아직도 괜찮은 척이야?”
혈시는 피식 웃더니 살기를 품고 오른손에 힘을 실었는데 그 속에서 붉은색 가시가 생겨났다.
녀석이 주먹을 휘두르자 표면에 진득한 혈광이 맴돌며 혈기 가득한 혈인을 만들어냈다.
“혈신갑, 혈신파영인(血神破靈印)!”
쿵!
선홍빛 권풍은 들끓는 혈기를 품고 공기를 가르며 목진의 머리로 향했는데 이에 맞으면 무사하지 못할 것 같았다.
“이제 넌 끝났어!”
이번 공격으로 목진이 반드시 죽을 거라 여긴 혈시가 선홍빛 눈을 부릅뜨며 말했다.
그러나 목진은 씨익 웃었다. 순간 검은색 벼락이 눈 속에서 미친 듯이 날뛰었고 몸 표면에도 서서히 검은색 뇌호가 나타났다.
꽈르릉!
뇌명이 주위에 울려 퍼지면서 목진은 몸 주위에 검은색 뇌호를 휘감았는데 칠흑 같은 녀석의 눈이 그윽해 보였다.
목진은 몸이 잔뜩 부풀어 올라 마침내 윗옷이 찢어지기 시작했는데 그 사이로 뇌문 한 갈래가 보였다.
“나도 네 혈신갑을 상대할 방법을 찾았어, 그러니 이젠 대결을 마쳐야지!”
목진이 씨익 웃으며 주먹을 쥐자 검은색 뇌호가 미친 듯이 날뛰며 검은색 뇌일을 형성하였다.
쿵!
검은색 뇌광과 진득한 혈권이 부딪쳐 엄청난 소리를 내었고, 두 사람이 서 있던 곳은 아수라장이 되었다.
흑뢰와 혈광이 난폭한 파동을 싣고 북명광장 중심에서 부딪쳤다.
쿵!
목진과 혈시가 서 있던 바닥은 부서져 움푹 파였고 검은색 뇌광과 선홍빛 혈랑은 상대방을 삼킬 듯 미친 듯이 주위를 휩쓸었다. 무서운 파동이 일며 공간이 일그러지기 시작했지만 정작 두 사람은 끄떡없었다.
그러나 혈시의 안색은 잔뜩 어두워졌다. 목진이 자신이 살수로 둔 공격을 육신으로 받아냈을 뿐만 아니라 그가 날린 검은색 벼락에 혈기마저 사라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검은색 벼락에 엄청난 힘이 깃들어 있었다.
“죽어!”
혈시의 기합과 함께 체내에서 핏기가 들끓더니 팔 한쪽은 피로 물든 것처럼 붉은빛을 띠었고 피비린내가 진동하였다.
그때, 목진의 눈가에 검은색 벼락이 스쳐 지나가더니 파멸의 파동을 풍기며 윗옷이 산산조각이 났는데 가슴팍에 검은색 뇌문 한 갈래가 나타나 반짝였다.
뇌신체, 일문뇌체!
한 달 정도 수련한 결과, 뇌신련의 도움으로 목진의 뇌신체는 드디어 일문지경에 도달했다!
뇌문이 반짝이면서 밝아지자 흑뢰를 휘감은 목진의 몸은 튼실해져 뇌신이 강림한 것 같았다.
쿵!
엄청난 뇌성과 함께 목진은 뇌망이 깃든 주먹을 있는 힘껏 휘둘렀다.
“꺼져!”
목진의 주먹은 들끓는 흑뢰를 싣고 파죽지세로 혈갑으로 둘러싼 혈시의 주먹을 가격하였다. 이에 상대방은 두 눈이 휘둥그레지며 아주 무서운 힘이 자신을 향하고 있다는 것을 직감했다.
절대적인 힘에 혈시의 혈광 영력이 사라졌다.
“제기랄!”
혈시는 차마 공격을 생각할 겨를도 없이 피하기에 바빴다.
그러나 목진은 상대방에게 숨 돌릴 기회를 주지 않았다. 그는 뇌신체를 소환해 자신이 지닌 힘을 최대치로 끌어올려 상대방을 한 방에 보내려 했다.
퍽!
혈시가 뒤로 물러나는 순간, 목진은 그 힘을 있는 그대로 선보였다.
쿵!
목진의 일격에 흑뢰가 들끓으며 놀라운 속도로 팽창하였고 혈광 영력은 억제되었다.
이에 혈시의 팔에 휘두른 혈갑은 찢어지고 가시도 흑뢰의 충격으로 부서졌다. 또한 피를 토하며 수백 장을 튕겨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