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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주재-235화 (234/1,000)

235화. 태창 원장의 소원

잠시 후, 흑뢰와 혈광이 사라지자 이를 지켜보던 사람들은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아직 주먹을 거두지 않은 목진 앞으로 수백 장 길이의 균열이 생겼고 그 끝은 폐허가 되었다.

목진은 단숨에 혈시를 쓸어 눕혔다.

태정령원 뿐만 아니라 목진을 굳게 믿고 있었던 북창령원 학생들도 화들짝 놀랐다. 목진의 일격은 그야말로 충격적이었다!

“목진의 공격이 이런 엄청난 파괴력을 가졌다니!”

소훤 등도 화들짝 놀랐다. 목진의 공격은 통천경 초기의 실력자도 중상을 입힐 수 있을 정도로 그 힘이 상당했다.

“녀석, 실력이 또 늘었군…….”

조청삼, 학요 등 목진과 시비가 있었던 사람들의 눈빛이 달라졌다. 목진의 실력이 한 달 전에 비해 또다시 월등히 향상되었다.

신인 목진은 실력으로 어느새 이들을 뛰어넘었을 뿐만 아니라 그 차이를 현저하게 벌려놓았다.

목진을 바라보던 사람들은 자연스레 눈길을 폐허 쪽으로 돌렸는데 움푹 파인 곳에서 혈시가 휘청이며 일어났다.

이미 피투성이가 된 그는 목진의 공격으로 오른쪽 팔뼈가 부서진 듯 힘을 전혀 쓰지 못했고, 녀석의 혈신갑은 대부분 부서져 곧 사라질 것만 같았다.

“이럴 수가…….”

혈시는 믿기지 않는다는 듯 맥없이 축 처진 자신의 오른쪽 팔을 바라봤다. 통천경 중기 실력자의 공격을 당해낼 만큼 견고한 혈신갑이 이렇게 쉽게 부서질 줄이야……. 그는 화천경 후기밖에 안 되는 목진에게 이런 파괴력이 있다는 것을 믿고 싶지 않았다.

“네가 졌어.”

목진은 장외에 내쳐진 혈시를 바라보며 무덤덤하게 말했다.

이에 혈시는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해졌다. 혈신족 왕족인 자신이 무명 소년한테 졌다는 걸 절대 용납할 수가 없었다.

“오늘 넌 내 손에 죽었어!”

혈시는 한기 어린 눈빛으로 목진을 바라보며 선혈로 물들인 장창을 소환해 목진에게 향했다.

대전에 진 혈시가 규칙을 위반하자 사람들은 이내 혀를 끌끌 찼다.

그런데 목진은 전혀 대수롭지 않은 듯 상대방을 바라봤다. 혈신갑도 깨지고 중상을 입어 속도가 현저히 느려진 혈시는 아무런 위협도 되지 않았다.

슉!

“그녀를 다치게 한 대가를 치러야 한다고 말했잖아…….”

눈 깜빡할 사이에 혈시 앞에 나타난 목진은 씨익 웃더니 금세 정색하였다. 비열한 수법으로 낙리한테 상처를 주었으니 그에게 살기를 품은 건 당연했다.

북창령원 학생도 아닌 녀석을 봐줄 필요는 없었다.

그때 혈시는 드디어 알아챘다. 목진이 여태껏 자신이 규칙을 위반하기만 기다렸다는 것을.

그래야 목진은 스스럼없이 살수를 둘 수 있었다.

“미친놈!”

혈시는 순간 소름이 끼쳤다.

“멈춰!”

흑뢰를 휘감은 목진의 장인이 혈시의 가슴팍에 닿으려는 찰나, 누군가의 말소리와 함께 엄청난 위압감이 휘몰아쳐 녀석의 움직임이 느려졌다.

“비 원장, 학생들 대결에 끼어드는 것이야말로 반칙이네.”

그런데 이 위압감은 또 다른 웃음소리와 함께 사라졌다.

이에 목진은 몰래 까맣게 그을린 중지로 상대방을 가격했는데 갑자기 생명의 위협을 느껴 바로 뒤로 물러났다.

그러자 누군가가 혈시의 옆에 나타나 녀석을 부축했다.

“독한 녀석!”

그는 다름 아닌 태정령원의 비청송이었다. 그는 위독한 혈시를 보더니 어두워진 안색으로 목진을 노려봤다.

순간 천지의 영력이 실체가 되어 목진을 억눌렀다.

몸을 조금도 움직일 수 없게 되자 목진은 화들짝 놀랐다. 이토록 엄청난 힘은 그가 상대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그런데 그때, 태창 원장이 목진 앞에 나타나 옷깃을 휘날리자 위압감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그는 무덤덤하게 앞에 서 있는 비청송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는데 그 목소리가 천뢰가 요동치듯 쩌렁쩌렁하게 울렸다.

“비 원장, 북창령원에서 예를 다하는 것은 우리가 할 도리지만 그렇다고 무시하면 안 되지.”

태창 원장의 목소리는 천지의 위엄을 지닌 채 북명광장에 퍼져나갔다. 이에 잡음이 전부 사라졌고 주위에 맴돌던 천지 영기마저 들끓기 시작했다.

학생들은 자신의 몸을 제어할 능력을 상실하기라도 한 듯 체내의 영력이 폭동을 일으키는 것을 느꼈다.

만약 태창 원장이 살기라도 품으면 이들 체내의 영력은 순식간에 폭발해 고통스럽게 죽을 것이다.

이에 다들 눈이 휘둥그레졌고 태창 원장의 실력에 깜짝 놀랐다.

맞은편에 있던 비청송도 안색이 어두워졌다. 다른 사람한테는 미풍처럼 느껴졌다면 그한테는 돌풍이 휘몰아칠 만큼 무서운 파동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타인은 절대 감지할 수 없는 음파 공격에 비청송은 눈가가 파르르 떨렸고 옷깃을 휘날리며 이를 최대한 막으려 애썼다.

한편, 이미 사색이 되어 혼절한 혈시를 본 그는 목진이 녀석의 목숨을 노렸음을 알고 심기가 불편해졌다.

“태창 원장, 북창령원 학생들은 손님 대접을 이렇게 하는가 보군. 참 실망이네.”

비청송은 북창령원 내부에서 태창 원장을 상대로 화를 낼 수가 없었다. 오 대원 원장 중 한 명인 태창 원장의 실력은 감히 무시할 수가 없었다.

태정령원도 실력이 뒤처지지는 않았지만 아직 북창령원을 상대할 정도는 아니었다.

“이번 일은 혈시가 규칙을 위반하여 벌어진 일이니 목진 탓은 아닌 것 같네만…….”

이에 비청송은 표정이 썩 좋지 않았다. 보기에 인자하고 화를 안 낼 것 같은 태창 원장은 사실 패기 넘치는 사람이었다. 그 태도를 보아하니 목진을 감싸려는 듯했다.

“비 원장, 이번 교류회에서 북창령원과 태정령원은 막상막하인 것 같은데 인재가 넘치는 귀원이 차기 학원 대회에서의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 기대되네.”

태창 원장은 비청송의 붉으락푸르락해진 얼굴을 못 본 척 담담하게 웃으며 말했다. 이에 비청송은 이곳에 더 남아봐야 괜히 체면만 더 깎일 것 같아 바로 떠나려 했다.

“우린 이만 돌아갈 테니 학원 대회에서 다시 봅시다.”

담담하게 웃으며 바라보는 태창 원장 때문에 비청송은 더 화가 났다. 그는 속으로 욕설을 퍼부으며 혈시와 함께 태정령원 학생들에게 다가갔다.

비청송의 옷깃에서 잇따라 웅장한 영광이 솟아오르더니 이들을 전부 감싸 안았고 어느덧 한 줄기 빛이 되어 북창령원에서 사라졌다.

그들이 사라지자마자 북명광장에는 환호성이 흘러넘쳤다. 장내에 서 있는 늘씬한 소년을 바라보는 사람들 눈빛은 전보다 더 진지해졌다.

소년이 혈시와 벌인 싸움은 아직도 이들 뇌리에서 사라지지 않았다.

귀청이 찢어질 듯한 환호성에 목진도 방긋 웃더니 비청송 등이 떠나는 방향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혈시를 죽이지 못한 것이 퍽 아쉬웠던 모양이었다.

그러나 녀석을 죽이지는 못했어도 흑신뢰독지에 맞아 뇌독 한 줄기가 체내에 들어갔으니 녀석의 수련에 큰 지장이 있을 것이다.

“어린 것이 손이 맵구나.”

태창 원장이 갑자기 고개를 돌려 목진을 바라보며 말했다.

이에 목진은 혹시 처벌이라도 받을까 봐 괜히 긴장하여 심장이 벌렁거렸다. 흑신뢰독지를 몰래 쏘긴 했지만 태창 원장의 실력으로 이를 발견하기란 전혀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목진은 희비를 가릴 수 없는 원장의 표정을 보더니 결국 침묵을 지키기로 했다.

“그런데 어떤 때는 그리하지 않으면 상대방이 네 머리 위에 기어오를 수가 있단다.”

태창 원장은 통쾌하다는 듯 호탕하게 웃었다.

“잘했구나. 우리 북창령원의 위엄에 도전장을 내민 녀석들에게 아무리 못해도 중상은 입혀야하지 않겠느냐? 무슨 일이 있으면 내가 나설 것이니 걱정하지 말거라.”

목진은 원장이 자신을 나무라지 않자 이내 시름을 놓았다.

“이런 교류회가 우리한테는 전혀 도움이 되진 않지만 대결에서 패배라도 하면 상대편에게 북창령원의 명성을 흐릴 좋은 핑계를 만들어주는 것이다.”

태창 원장은 흐뭇하게 웃으며 말을 이어갔다.

“저들이 마침 심창생과 이현통이 자리를 비웠을 때 와서 걱정했는데 네가 나서 승전을 거두어 다행이구나. 이번에 북창령원의 명성을 지켜내느라 수고했다.”

“심창생과 이현통 선배는 어디에 갔나요?”

목진이 어리둥절하여 물었다.

“함께 마룡자 현상 임무를 받고 떠났단다.”

태창 원장이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마룡자라…….”

목진은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말했다.

지난번, 마룡자를 만났을 때 심창생이 제때 오지 않았다면 목진 등은 녀석의 손에 죽었을 것이다. 하지만 목진의 실력도 그때보다 폭등했으니 다시 만나면 결코 자신을 쉽게 죽일 수는 없을 것이다.

“넌 아직 경력이 부족하다. 대신, 앞으로 너만 원한다면 해당 등급의 현상 임무를 받도록 해주겠다.”

태창 원장이 담담하게 웃으며 말했다. 목진은 실력이 상당하긴 하지만 아직은 위험한 임무를 수행하게 하고 싶지 않았다. 그러다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북창령원의 큰 피해였다. 심창생과 이현통에 비해 목진은 아직 어린 소년일 뿐이었다.

“그러니까 지금은 수련에 집중하거라. 네가 영로에서 겪었던 일을 잘 알고 있는데 네 상대는 그리 호락호락한 사람이 아니더구나.”

목진은 순간 희현이 떠올랐다.

“희현은 성령원 원장이 직접 뽑은 사람으로 그쪽에서는 분명 그 아이를 키우는데 온갖 심혈을 기울일 거야. 또한, 천부적 재능이 뛰어나고 천급 영맥까지 지녔으니 앞길이 창창할 테지. 아마 차기 학원 대회의 성령원의 최강자는 그 아이일 것이다.”

태창 원장의 말에 목진도 인정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희현의 천부적 재능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러지 않고서야 오만한 양홍이 절대 그 녀석을 따르지 않았을 것이다. 그 녀석은 사람을 다스리는 방법과 능력이 대단했다.

영로에서 지내는 동안 낙리만 빼면 유일하게 희현만이 그에게 큰 위협이 되었는데, 결국 그의 꾀에 넘어가 영로에서 나왔으니 그 계략과 수단이 얼마나 범상치 않은지 알 수 있다.

목진은 성령원에 들어간 희현이 지금쯤 어느 위치까지 올라갔는지 무척 궁금했다.

희현은 기회만 생기면 자신을 죽이려 들었으니 학원 대회에서 만나면 한쪽이 죽지 않는 이상 대결은 절대 끝나지 않을 것이다.

때문에 목진도 절대 그를 봐주지 않으리라 굳게 마음먹었다.

“네.”

희현이 얼마나 강력한 상대인지 잘 아는 목진은 고개를 끄덕이며 앞으로 수련에 더 집중해야겠다고 결심했다.

“성령원에서 희현을 위해 무엇이든 할 테니 우리도 너를 그냥 내버려 두지는 않을 것이다. 네가 북명한테서 보상을 많이 얻어 실력이 부쩍 늘었겠지만, 영진사로서는 아마 지금쯤 방황기에 들어섰을 거야.”

태창 원장은 한눈에 목진이 원하는 바를 알아챘다. 영진 수련에 도움을 청할 사람이 없었던 목진은 원장의 말에 눈을 번쩍 떴다.

“그런데 북명은 그쪽을 잘 몰라 너한테 전혀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

태창 원장은 비취로 만든 옥패를 꺼내더니 태창 두 자가 적힌 물건을 목진에게 건네주었다.

“내일 이 물건을 들고 영계(靈溪) 장로를 찾아가거라. 그녀는 북창령원에서 영진에 관해서라면 조예가 깊은 사람이니 너한테 도움이 될 것이다.”

목진은 화색이 되어 옥패를 건네받았다.

영진 대가의 가르침이 절실했던 그한테 이보다 더 좋은 건 없었다.

“고맙습니다, 원장님.”

이에 태창 원장은 손을 절레절레 흔들며 말했다.

“내가 원하는 것이 있어 그러는 것이니 고마워할 필요는 없다. 차기 학원 대회에서 네가 성령원의 괴물급 천재를 짓밟아줬으면 좋겠구나.”

원장은 담담하게 웃으며 목진을 바라봤다.

“해낼 수 있겠느냐?”

“걱정하지 마세요, 원장님. 희현은 저한테 맡기세요.”

목진은 옥패를 꼭 쥔 채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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