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7화. 영진을 뚫다
“영진이 비록 복잡하다고 하나 중요한 건 바로 진심(陣心)이야. 진심만 찾아내면 아무리 영진 대가가 친 영진이라도 손쉽게 뚫을 수 있어.”
영계가 목진을 바라보며 허공에 손가락을 튕기자 그곳 공간에 파문이 일더니 주위의 천지 영기가 무질서해지기 시작했다. 영력이 휘몰아치며 붉은색 광진을 형성하였고 엄청난 열기와 함께 강력한 영력 파동이 느껴졌다.
목진은 주위에 생긴 붉은색 영진을 보더니 안색이 어두워졌다. 이는 4급 영진으로 그가 치려면 한참을 준비해야 했다. 그러나 영계는 손가락을 가볍게 튕겼을 뿐이었다. 영인이 아닌 천지의 영력으로 영진을 친 것이다.
보통 영진사가 영진을 치려면 영인부터 만들어야 하는데 이것은 자기가 곧 영진을 칠 거란 걸 상대방한테 알리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영계의 방식대로라면 말은 달라진다.
목진이 영계의 실력에 감탄하고 있을 때 그녀는 다시 손가락을 튕겨 붉은색 영진 밖에 또 다른 두 갈래의 거대하고 복잡한 영진을 쳤다. 순식간에 세 갈래의 4급 영진이 동시에 완성되었다.
이에 목진은 입가가 파르르 떨렸다.
세 갈래의 4급 영진에 둘러싸인 목진은 차마 움직이지 못했다. 움직이는 순간, 영진들이 그를 상대로 엄청난 공격을 개시할 것이 분명했다.
“영계 장로…….”
목진이 머쓱하게 웃으며 물었다.
“뭘 하려는 건가요?”
“영진 세 개의 진심을 찾아 뚫고 나와. 대신 영력을 사용해 영진을 뚫는 것은 절대 안 돼.”
영계가 무덤덤하게 말했다.
4급 영진 세 개를 뚫어야 한단 말에 목진은 입이 쩍 벌어졌다. 잘못하다가는 죽을 수도 있었다.
“한 시진 줄 테니 이를 뚫지 못하면 바로 떠나. 난 멍청한 놈은 싫어.”
말을 마친 영계는 옷깃을 휘날리며 떠났는데 멀리서 들려오는 그녀의 말에 순아는 안색이 어두워졌다.
“순아야, 녀석이 영력으로 영진을 뚫고 나오지 못하도록 잘 지켜봐. 그러다 반칙이라도 하면 그다음은 네가 들어가야 할 거야.”
“목진 오라버니, 절대 반칙하지 마세요. 난 그곳에 들어가고 싶지 않아요.”
영계가 떠나자마자 방대한 세 개의 영진이 가동되어 천지 영기가 들끓었고 웅장한 빛이 주위를 감쌌다.
목진은 흑염이 들끓는 영력으로 몸을 휘감고 영진을 관찰했는데 영력 광선으로 연결된 아주 복잡한 진도가 보였다.
4급 영진이 각각 있는 것으로도 상대하기 버거운데 영계가 친 영진은 서로를 감싸고 있어 뚫기가 훨씬 어려웠다. 영력을 사용하면 무사히 나올 수는 있었지만, 이는 반칙이라 방법은 진심을 찾는 것뿐이었다. 목진은 반칙을 해서 쫓겨나기 싫었다.
슉!
그런데 그때, 영진이 엄청난 빛을 발하더니 웅장한 영력을 실은 빛줄기 세 갈래가 목진을 향해 돌진했다.
퍽!
빛줄기가 폭발해 목진은 뒤로 한 보 물러났는데 흑염이 깃든 영력이 잠시 어두워지더니 다시 훨훨 타올랐다.
“꽤 아프네!”
목진의 육신이 단단해 화천경 후기 실력자의 공격을 연속으로 3번 받아도 끄떡없었지만 아픈 건 매한가지였다.
슈슉!
그런데 이대로 끝이 나지 않을 작정인지, 세 영진은 다시 움직이더니 빛줄기를 폭우처럼 쏟아냈다.
그 모습에 아찔해진 목진은 더는 육신으로 공격을 막지 않고 용등술을 소환했다. 영력 빛줄기에 목진의 잔영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퍽퍽!
그러나 목진이 갇힌 곳이 그리 크지 않아 아무리 최선을 다해서 피해도 전부 피할 수는 없었다. 그는 열 갈래의 영력 빛줄기에 맞아 몸을 파르르 떨었다.
목진은 그제야 안색이 어두워졌다. 자신이 친 4급 영진은 공격을 한 번만 날리고 사라지는데 영계가 친 3개의 4급 영진은 그렇지 않았다.
“최대한 빨리 영진을 뚫고 나가야 해.”
이러다 정말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목진은 영력 광선으로 수놓은 복잡한 진도를 부단히 마음속에 그렸다.
퍽!
그러나 또 한 번의 공격에 목진은 뒤로 수십 보 물러났고, 마음속에 그렸던 진도는 어느새 사라졌다.
진심을 찾는 것은 꼭 미궁을 걷는 거나 마찬가지라 규칙을 파악하는 것이 가장 중요했다. 그 과정에서 조금이라도 방해를 받으면 생각이 흐려져 탐색을 다시 시작해야만 한다.
이에 목진은 저도 모르게 욕설을 퍼부었다. 영진을 뚫는 것이 이렇게까지 어려울 줄 정말 몰랐다. 그러나 만약 영진을 아무나 뚫을 수 있었다면 목진이 영진사가 될 이유도 없었을 것이다.
흥분할수록 진심을 찾아낼 가능성이 줄어든다는 생각에 목진은 가까스로 마음을 다잡고 영력을 끌어올렸다. 그러자 육신에 흑뢰가 움찔거리며 가슴에 있는 문이 서서히 밝아졌다. 뇌신체를 소환함으로써 영진의 공격에 따른 피해를 최소화했다.
이렇게 목진은 용등술로 부단히 공격을 피했지만 종종 일부에 맞아 몸을 파르르 떨었다. 밖에 있는 순아는 너무 무서워서 차마 목진을 바라볼 수가 없었다. 자신이 그 속에 있었으면 이미 죽었을 것이다.
시간이 흐르면서 죽림 속의 웅장한 영력은 점차 난폭해졌고 영력 빛줄기가 솟구쳐 하늘에서 번쩍였다.
목진은 흑뢰가 번쩍이는 몸으로 십수 갈래의 영력 빛줄기를 받고 영진을 뚫어져라 쳐다보면서 대체적인 진도를 파악했다. 다만, 영계가 친 세 개의 영진은 서로를 감싸 운전 궤적이 얽히고설켜 규칙을 찾기가 하늘의 별 따기였다.
일반적인 방법으로 진심을 찾는 것은 불가능했다.
“목진 오라버니, 힘내요. 시간이 절반이나 지났어요.”
순아가 걱정 어린 눈빛으로 목진을 바라보며 말했다. 영계의 성격으로 목진이 세 개의 영진을 뚫고 나오지 못하면 정말 이대로 끝이었다. 그녀가 아무리 사정해도 아무 소용이 없을 것이다.
목진이 깊게 숨을 들이켜더니 주먹을 꽉 쥐고 눈을 감아 심진 상태에 들어섰다. 그는 비록 심오한 심안 상태를 장악하지는 못했지만 초급 상태인 심진 상태는 자유자재로 제어할 수 있었다.
그때 어둠 속에서 빛이 반짝이더니 빛줄기들이 날아왔는데 영진의 공격이었다.
목진은 심신을 가다듬고 진도를 조금씩 그리기 시작했다.
어느덧 외부의 간섭을 철저히 차단한 목진은 마음속에 진도의 궤적을 완벽하게 그려냈다.
퍽!
눈을 꼭 감은 목진의 움직임은 점차 느려졌고 검은색 뇌광이 번쩍이는 몸으로 미친 듯 날아오는 십수 갈래의 영력 빛줄기를 받아냈다.
이에 순아는 너무 무서워 심장이 콩닥거렸다.
한편, 사정없이 공격당한 목진은 윗옷이 갈기갈기 찢어진 채 뒤로 십수 보 물러났는데 어느새 몸에는 혈흔이 가득했다. 다른 화천경 후기의 실력자였다면 이미 죽고도 남았을 것이다.
몸을 추스르고 목진이 눈을 감은 채 주먹을 휘두르자 흑염이 깃든 영력이 눈부신 빛을 발하는 영진을 가격했다.
퍽!
영진이 격렬하게 흔들리더니 가장 안쪽에 있는 영진 하나에 균열이 일며 폭발했다.
첫 영진의 진심을 찾은 목진은 이를 뚫는 데 성공했다.
“성공이에요!”
순아가 화색이 되어 외치며 우러러보는 눈빛으로 목진을 바라봤다. 이런 상황에서도 진심을 찾아낸 목진이 너무 대단했다.
영진 하나를 부순 목진은 계속 눈을 감고 있었다. 하나를 뚫었으니, 나머지 두 개를 뚫기는 훨씬 쉬웠다.
목진은 1각도 안 된 사이에 주먹을 두 번 휘둘렀는데 두 갈래의 영력 빛줄기가 영진을 가격하더니 “위잉”하는 소리와 함께 회전을 멈추다 이내 사라졌다.
드디어 모든 영진을 뚫는데 성공한 것이다. 그는 아직 심진 상태에 빠져 있었는데 그의 마음속 깊숙한 곳에서 미묘한 느낌이 전해졌다.
그 느낌이 신기해 잡으려 했으나 계속 도망쳤다. 그러나 원하는 바에 점차 가까워지는 느낌만은 확실히 들었다.
목진은 영진이 사라지고 한참이 지나서야 서서히 눈을 떴다. 순간 다리에 힘이 풀려 후들거렸고 갑자기 몰려오는 고통에 고개를 숙여보니 온몸이 피투성이가 되어 있었다. 치명적인 상처는 아니었으나 너무 아팠다.
뇌신체가 아니었으면 목진은 이미 뼈가 부러졌을 것이다.
“목진 오라버니, 너무 멋져요!”
순아가 화색이 되어 달려오다가 발가벗은 목진을 보고 부끄러워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이에 목진은 어색하게 웃으며 옷을 입었는데 갑자기 몰려드는 피로감에 휘청거렸다. 혈시를 상대할 때보다 훨씬 힘들었다.
“영계 장로.”
목진은 고개를 들어 주위를 바라보며 말했다. 영계가 분명 자신을 보고 있을 거라 여긴 것이다.
“하마터면 한 시진을 넘길 뻔했네요. 시험에 통과한 거죠?”
이때, 어디선가 영계의 차가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오늘은 일단 돌아가. 내일 오면 계속할 테니. 영진을 배로 늘릴 거야.”
이에 목진은 흠칫 놀라 온몸을 파르르 떨었지만 두렵지는 않았다. 영계의 방법이 야만적이긴 해도 효과는 확실했다. 만약 이 느낌을 유지할 수만 있다면 목진은 언젠가 진정한 심안을 소환할 수 있을 것이다.
“고마워요, 영계 장로!”
목진은 순아의 머리를 쓰다듬고는 인사를 올리고 바로 떠났다. 이곳은 영계의 거처로 순아 외에 아무도 보이지 않아 오래 머무르면 안 될 것 같았다.
목진이 떠나자 영계는 다시 순아의 옆에 나타나 녀석이 영진을 뚫고 나왔던 곳을 물끄러미 쳐다봤다.
“영계 언니, 목진 오라버니가 참 대단하죠?”
순아가 으쓱거리며 하는 말에 영계는 순아의 이마를 가볍게 때리며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영진에 관한 재능이 생각보다 더 뛰어나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그 후로 목진은 거의 매일 영계 장로에게 가서 훈련을 받았고, 피투성이가 된 채 집으로 돌아갔다. 낙리는 상처투성이가 된 목진을 보고 처음에는 잔뜩 놀랐지만, 자초지종을 듣고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영계 장로가 참 독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독한 훈련으로 목진이 치른 대가는 혹독했지만 효과만은 확실했다. 첫날에 영진 3개를 겨우 뚫은 목진은 열흘이 지난 지금, 스무 개의 영진은 거뜬히 뚫었다. 처음엔 결코 찾기 어려웠던 미묘한 느낌은 날이 거듭될수록 확실해졌고 찾기도 훨씬 쉬웠다.
비록 진정한 심안 상태를 접한 것은 아니지만 거듭하면 언젠가 진정한 심안 상태를 소환할 수 있을 거라 믿었다!
통천경 강자도 영진 스무 개가 동시에 움직이면 상대하기 버거울 텐데 다행히 살육을 목적으로 친 영진이 아니라 목진은 뇌신체와 용등보로 겨우 뚫고 나올 수 있었다. 그런데 이를 뚫을 때마다 목진은 거동이 어려워 집에서 온종일 쉬곤 하였다.
* * *
쿵!
영광이 득실거리며 빛줄기가 솟구치는 죽림에서 온몸에 검은색 벼락이 번쩍이는 한 소년이 잽싸게 움직이며 영력 빛줄기의 공격을 애써 막고 있었다.
퍽! 퍽!
이와 동시에, 소년은 웅장한 영력을 담은 주먹을 휘둘러 영진을 가격했다.
그때마다 영진 중 한 층이 진동하다가 붕괴하였는데 죽림 밖에서 이를 지켜보던 순아는 이내 혀를 끌끌 찼다.
보름도 안 된 사이에 첫날의 낭패를 더는 찾아볼 수 없었다. 순아마저도 목진이 진심을 찾는 것이 능수능란해졌다고 느꼈다.
비록 영계가 영진의 진심을 숨기지 않아 찾기가 훨씬 쉬웠지만 4급 영진의 진심을 찾는 것 자체가 몹시 어려운 일이었다. 이는 5급 영진사한테도 엄청 힘든 일인데 목진이 벌써 이렇게까지 진보하였다니 정말 대단했다.
퍽! 퍽! 퍽!
이때, 죽림의 깊숙한 곳에서 목진이 마지막으로 주먹을 휘두르자 영진이 전부 부서졌다. 이로 인해 생긴 광점이 하늘을 예쁘게 수놓았다.
쿵!
영진을 뚫고 나온 목진은 윗옷이 사라졌지만 그대로 순아 옆에 앉았다.
“목진 오라버니, 여기요.”
순아가 옷을 건네며 말했다. 목진의 이런 모습을 계속 보다 보니 순아도 더는 부끄럽지 않았다.
“목진 오라버니, 심안 상태는 터득했어요?”
“아직.”
목진이 웃으며 답했다. 그는 방금 미묘한 느낌에 닿았지만 뭔가 부족하다고 느꼈다. 마치 껍데기 속의 새끼 새가 바깥세상에 나오고 싶은데 껍질이 너무 단단해 아무리 애를 써도 나오지 못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목진은 과도한 욕심은 부리지 않았다. 오늘의 성과만 해도 상당한 진보라고 생각했다. 아무리 천부적인 재능이 뛰어나도 심안 상태는 무척 심오한 상태라 쉽게 장악할 수 없었다.
“조금만 더 힘내요, 목진 오라버니. 어제 오라버니가 너무 느리다고 영계 언니가 그랬어요. 그러다 조금이라도 심기가 불편하면 바로 오라버니를 내쫓을 거예요.”
순아의 말에 목진은 말문이 턱 막혔다. 보름 동안 목진은 영계에 대해 어느 정도 알게 됐는데 영계는 정말 한 성격 하는 여인이어서 감히 건드릴 수가 없었다. 그러다 정말 심기가 불편해져 자신을 내쫓기라도 하면 목진은 더는 영진에 대한 가르침을 받을 수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