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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주재-240화 (239/1,000)

240화. 관계

“어머니…….”

목진의 말에 영계는 두 눈이 휘둥그레져 뒤돌아봤다. 그림 속 여인이 목진의 어머니라니, 그녀는 자신이 잘 못 들었나 싶었고 왠지 모르게 기분이 좋지 않았다.

“어머니라니?”

영계가 인상을 찌푸리며 묻는 말에 목진은 조금 흥분되어 되물었다.

“그림 속 여인을 아세요? 이 그림은 어떻게 얻은 거예요?”

목진이 어머니에 관한 소식을 접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비록 그림 속 여인은 아주 흐릿하게 보였지만 분명 어머니란 확신이 섰다.

이에 영계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답했다.

“나한테 아주 중요한 사람이라는 것 외에 다른 건 나도 잘 몰라. 기억을 잃어 수많은 일도 잊고 그녀도 잊었어…… 그런데 저 여인이 왜 네 어머니야?”

비록 기억을 잃었지만 영계는 왠지 목진의 말이 믿기지 않았다.

“어머니를 직접 뵌 적은 없지만 분명 내 어머니예요.”

목진은 피가 이끌리는 이 느낌이 절대 틀리지 않았을 거란 확신이 있었다. 마음속 깊숙한 곳에 남아있는 잔영만으로도 그녀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뵌 적이 없다고?”

영계는 왠지 모르게 마음이 놓였지만 기분이 묘했다. 꼭 두 아이가 좋아하는 음식을 놓고 차지하려고 싸우는 것 같았다.

“제가 아주 어릴 때 떠나셨어요.”

목진은 구체적인 것은 말해줄 필요 없다고 느끼고 말을 아꼈다.

“영계 장로, 정말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아요?”

목진은 처음 듣게 된 어머니의 소식에 하나라도 더 알고 싶었다.

“내 기억은 5년 전부터 시작되는데, 누가 내 기억에 손을 댄 것 같아.”

방석에 앉아 흑탑 위의 여인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영계는 한기 어린 목소리로 말했다. 언젠가 기억을 지운 사람을 찾아내면 반드시 죽일 거라고 다짐했다!

“그런데 조금씩 기억나기는 해. 난 저분과 함께 있었던 것이 분명하고 나한테 아주 중요한 사람인 것 같아. 그래서 난 무슨 수를 써서라도 기억을 되찾아야 해.”

영계는 그림 속 여인을 우두커니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목진은 흠칫 놀라 영계를 바라봤다. 그녀는 도대체 어머니와 무슨 사이기에 함께 있었는지 궁금했다.

그와 동시에 영계도 이상하다는 듯 목진을 바라보았다. 목진은 머쓱하게 웃으며 물었다.

“나와 오랫동안 떨어져 지낸 내 누이란 말은 하지 마세요. 나와 아버지가 받아들일 수 있는 일이 아니에요.”

“우리의 혈이라도 섞어볼까?”

영계가 진지하게 물었다.

“장난치지 마세요, 소용없는 걸 잘 알잖아요.”

목진의 말에 영계가 피식 웃었는데 한기가 가신 여인의 얼굴은 더없이 예뻤다.

“그래, 농담은 그만할게. 지금은 무슨 상황인지 모르지만 언젠가 알게 될 거야.”

목진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지만, 왠지 불안했다. 만약 영계가 정말 어머니와 함께 있었다면 왜 갑자기 기억이 지워진 채 혼자가 된 걸까? 혹시 위험천만한 상황에 처했던 건 아니었을까? 그럼 어머니께서는 지금 어디 계실까?

“그럼 이젠 체내의 흑탑에 대해 알려줄 수 있어? 내가 제대로 기억하는 거라면 그분한테도 똑같은 흑탑이 있었어…….”

영계가 그림을 가리키며 하는 말에 목진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끝내 고개를 끄덕였다. 영계는 믿어도 될 사람이란 느낌이 들었다. 이 믿음은 비록 어머니와 어느 정도 관련이 있겠지만 일단 믿기로 했다.

“전 대부도결이란 공법 영결을 수련했어요. 이는 어머니께서 떠나시기 전에 남겨준 영결인데 그 흑탑은 이를 수련한 뒤에 나타난 거예요.”

목진이 머리를 긁적이며 말을 이어갔다.

“생각보다 위력이 세지는 않지만 방어력이 엄청나 호신용으로 사용하기 좋아요.”

“대부도결이라…….”

이를 들은 영계는 조금 흥분되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어디선가 들어본 익숙한 이름이란 생각에 그녀는 목진에게 다가가 목진의 손과 합장하였다.

목진은 영계의 하얗고 자그마한 손을 바로 뿌리칠 수 있었지만 일단 지켜보기로 했다.

“뿌리치지 마.”

영계는 목진에게 웅장한 영력을 불어넣어 경맥을 타고 들어가 녀석의 영력에 닿았다.

이것은 아주 위험한 일로 각자 수련한 영력이 달라 일단 닿으면 강한 배척 반응이 일어나 목진의 몸에 큰 피해를 줄 수도 있었다.

그런데 두 갈래의 영력은 배척은커녕 서로 어울려 놀라운 속도로 목진의 상처를 치유하였다.

1각도 안 되는 사이에 목진 체내의 상처가 전부 치유되었다. 목진이 아무리 뇌신체를 수련했다고 해도 보양하며 스스로 상처를 치유하려면 온종일 걸렸을 것이다.

목진은 두 눈이 휘둥그레져 영계를 바라봤다. 그는 이 현상이 도무지 믿기지 않았다.

영계가 영력을 거두자 온몸을 파르르 떨더니 피부가 빨갛게 달아올랐다.

“어떻게 이럴 수 있죠?”

목진은 자신과 영계의 영력이 아우러져 큰 회복력을 선보인 것이 너무 궁금했다.

“나도 대부도결을 수련한 적이 있는 것 같아.”

영계가 조심스럽게 한 말에 목진은 흠칫 놀랐다. 그럼 그녀의 말이 다 사실이었단 말인가?

대부도결을 수련했다고 영력이 배척 반응을 일으키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똑같은 영결을 수련해도 수련하는 사람이 다르면 분명 차이가 날 텐데 두 사람의 영력은 왜 배척 반응을 일으키지 않은 걸까?

목진은 한참 고뇌하다가 결국 포기했다. 두 사람의 몸에 비밀이 숨겨져 있는 것이 분명했고 이는 목진의 어머니와 연관되어 있었다.

그는 지금이라도 당장 어머니를 찾아가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인지 묻고 싶었다.

“그만 고민해. 비밀은 언젠가 풀릴 거야. 누군가 내 기억을 지웠지만 실력이 향상되면서 조금씩 되돌아오고 있어. 그러니까 언젠가 기억이 전부 돌아오면 나와 네 어머니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도 알 수 있어.”

영계가 고뇌에 빠진 목진을 위로하며 말했다.

“대부도결은 네가 말한 것처럼 평범한 물건이 아니야. 네가 아직은 제대로 다룰 줄 몰라서 그래. 그리고 최대한 사람들 앞에서 선보이지 마. 비록 기억이 잘 나지는 않지만 이 물건을 사람들 앞에 선보이는 건 위험한 일이야. 목숨이 걸린 문제니까 앞으로 조심해.”

목진은 영계의 갑작스러운 관심에 황송할 따름이었다. 그녀는 얼마 전까지 자신을 본체만체했었기 때문이다.

“네.”

지금은 그저 수긍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럼 일단 나갈까?”

영계가 다시 벽에 붙어있는 그림에 눈길을 돌리며 물었다.

이에 목진은 다시금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그림을 갖고 싶었지만 영계한테도 소중한 물건인 것 같아 차마 입을 뗄 수가 없었다.

‘제가 꼭 어머니를 찾아낼게요. 아버지와 약속했어요.’

목진은 그림 속 여인을 바라보며 속으로 다짐하고는 방에서 나왔다. 아무 관계도 없던 이들은 반나절 사이에 어느덧 같은 비밀을 간직한 사이가 되었다.

서로 말은 꺼내지 않았지만 두 사람의 영력이 완벽하게 아울러진 것만으로도 절대 보통 인연은 아니었다.

“영계…… 장로.”

목진이 어색하게 입을 열었다.

“날 영계라고 불러.”

영계가 잠시 머뭇거리다가 말했다. 이에 목진도 잠시 고민하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난 이만 돌아갈게요.”

두 사람이 헤어지려고 할 때, 북창령원 북쪽 대전에 갑자기 붉은색 빛기둥이 솟아오르더니 종소리가 정신없이 울려 퍼졌다.

흠칫 놀란 목진이 고개를 돌렸는데 그곳은 바로 임무전이었다.

하늘 높이 솟아오른 붉은색 빛기둥은 북창령원 어디서든 잘 보였고 종소리도 오랫동안 멈추지 않고 주위에 울려 퍼졌다.

이에 북창령원에 있는 학생들은 화들짝 놀라 고개를 들었다.

“저건 뭐지?”

산봉우리에 있던 목진도 흠칫 놀라 이를 바라봤다.

“혈명종이야.”

옆에 있던 영계가 인상을 찌푸리며 답했다.

“혈명종은 북창령원의 특수한 영기로 영치전에서 구매할 수 있는데 가격이 비쌀뿐더러 일반 학생은 구매 권한이 없어. 이는 경종을 울리는 효과가 있어 소유자가 위기에 빠졌을 때 부수면 북창령원에 남겨 놓은 종이 폭발하면서 이런 소리를 내. 이는 구조 신호야.”

영계의 말에 목진은 눈이 휘둥그레졌다. 설마 북창대륙에서 수련하고 있는 학생이 위기에 처해있단 말인가?

“혈명종은 천방 10위권에만 구매 권한이 있어. 그중 누군가가 위험한 상황에 빠진 것이 분명해.”

“천방 10위권이라…….”

영계의 말에 인상을 찌푸리며 생각하던 목진은 갑자기 안색이 어두워졌다.

“심창생과 이현통이야!”

천방 10위권 중 심창생과 이현통이 마룡자를 쫓기 위해 북창령원에 없는 것을 제외하면 나머지 학생들은 전부 원내에 무사히 살아있었다. 정녕 두 사람한테 무슨 일이 생긴 것인가?

“뭔가 잘못됐어.”

천방 1, 2위의 심창생과 이현통한테 무슨 일이 생겼다면 북창령원의 명성에 큰 타격을 줄 뿐만 아니라 두 사람을 기둥으로 여기는 학생들도 엄청난 혼란에 빠질 것이다.

붉은색 빛기둥을 바라보던 목진은 북창령원 학생들의 당황해하는 모습이 눈에 그려졌다. 바람을 가르는 소리를 내며 다들 허공에 떠올라 붉은색 빛기둥을 바라봤다.

북창령원의 고위층도 놀라기는 마찬가지였지만, 혼란을 잠재우기 위해 장로 하나가 직접 나타나 분위기를 달랬다.

이와 동시에 북창령원의 중심에 있는 대전 내 분위기도 심상치 않았다. 태창 원장을 중심으로 아래에 있는 장로들이 모여 의논하기 시작했다.

“원장, 어떻게 된 일인가요?”

형전 전주 맥유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심창생과 이현통에게 무슨 일이라도 생긴 건가요? 마룡자가 비록 엄청난 실력자이긴 하나 절대 생명의 위협을 느낄 만큼은 아니에요. 설마 용마궁의 장로가 나선 걸까요? 그럼 우리와 선전포고를 한 거나 마찬가지 아닌가요?”

장로 하나가 살기 가득한 얼굴로 묻자 태창 원장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답했다.

“혈명종이 전한 소식에 따르면 용마궁 장로가 나선 것은 아니었네. 그들이 비록 나날이 기세등등해지는 건 사실이지만 북창령원을 정면으로 맞설 수준은 아니라네.”

“그럼 왜…….”

맥유가 인상을 찌푸리며 물었다. 심창생과 이현통이 힘을 합치면 북창대륙에서 일류 강자라고 칭할법한데 장로들이 아니라면 과연 누가 이들을 위협할 수 있단 말인가?

“마룡자라네.”

태창 원장이 담담하게 말을 이어갔다.

“심창생과 이현통이 마룡자를 잡으려고 힘을 합쳤는데 녀석이 일부러 불리한 척 도망치며 몰래 북창령원 현상방 3위부터 10위를 불러 모았다네. 전세가 역전되어 현재는 두 아이가 어떻게 되었는지 모른다네.”

이에 장로들은 안색이 어두워졌다. 마형천을 제외한 현상방 10위권을 한자리에 모이게 하다니, 마룡자는 역시 대단한 놈이었다.

현상방 10위권에 든 사람 중 어느 하나 호락호락한 상대가 없었다. 비록 다양한 원인으로 현상방에 오르긴 했지만 북창대륙에서는 명성이 자자한 인물들이었다.

그런 사람들이 한자리에 모였으니, 심창생과 이현통이 혈명종을 울릴 만했다.

“원장님, 이제 어떡하면 좋을까요? 심창생과 이현통한테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반년 뒤에 있을 학원 대회에서 큰 낭패를 겪을 거예요. 우리 자리를 호시탐탐 노리던 학원에서 이런 기회를 놓칠 리가 없어요.”

한 장로가 수심이 가득하여 말했다.

“장로를 파견하는 건 어떤가?”

누군가의 제안에 다른 장로가 반대의 의견을 제시했다.

“안 되네. 혼잡한 북창대륙에서 우리 북창령원을 뒤흔들 사람이 아직 없긴 하지만 우릴 노리는 세력이 적잖게 존재하네. 그리고 장로는 절대 파견하지 않겠다고 용마궁과 약속하지 않았나? 그런데 우리 쪽에서 먼저 약속을 어기면 용마궁에서도 분명 나설 걸세. 그쪽에서 우리가 그러기를 바랄지도 모른다네.”

“그럼 어떡하면 좋을까? 아이들이 다치는 꼴을 보고만 있자는 건가?”

“그러게 말이야. 이 일은 최대한 빨리 해결해야 한다네. 심창생과 이현통이 혈명종을 부쉈다는 것은 아주 위급한 상황에 부닥쳤다는 것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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