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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주재-242화 (241/1,000)

242화. 서황경(西荒境)

푸른 하늘에는 구름이 한가롭게 떠다녔고 그 사이로 햇볕이 대지를 비췄다.

슉!

그때 갑자기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들리더니 저 멀리 하늘에서 열 갈래도 넘는 빛줄기가 구름을 가르며 빠르게 지나갔다.

바로 북창령원에서 나온 임쟁, 목진 일행이었다.

그들은 한시도 쉬지 않고 속도를 한껏 올려 달렸다.

“임쟁 선배, 도착하려면 얼마나 남았나요?”

임쟁 바로 뒤에 있던 목진이 물었다.

“혈명종의 파동은 북창대륙 서북쪽에 있는 서황경에서 전해졌어. 지금 속도대로라면 하루는 더 걸려야 할 거야.”

“그렇게나 오래 걸려요?”

목진이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하루 사이에 심창생과 이현통에게 무슨 일이라도 생길까 봐 걱정되었다.

“걱정하지 마. 심창생과 이현통은 절대 당하고만 있을 바보가 아니야. 아무리 마룡자 쪽에 실력자가 많다고 해도 두 사람을 상대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야.”

목진의 속을 꿰뚫어 본 임쟁이 위로하며 말했다.

“그러길 바래요.”

목진이 고개를 끄덕이며 심창생과 이현통이 있는 쪽을 바라봤다. 먹구름이 가득한 것이 이번 임무를 쉽게 끝내지 못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 * *

어느덧 하루가 지나 목진 등은 드디어 서황경 외곽에 도착했다.

그들은 아수라장이 된 곳에 내려앉아 소리 없이 주위를 훑었다. 커다란 구멍을 중심으로 수천 장 정도의 균열이 일었고 주위에 있던 산들도 모두 무너졌다.

이곳에서 치열한 싸움이 벌어졌던 것이 분명했다.

임쟁은 폐허가 된 이곳을 쓰윽 훑더니 서서히 입을 열었다.

“심창생과 이현통은 바로 이곳에서 습격을 당했어.”

목진 등은 안색이 어두워져 주위를 훑었다.

“이 대결로 두 사람은 부상을 입고 서황경 안으로 들어갔을 거야. 마룡자 등이 계속해서 그 뒤를 쫓은 것이 분명해.”

임쟁은 서황경을 바라보며 말했다.

“우리도 서둘러야겠어. 대신 다들 조심해. 그들은 절대 쉬운 상대가 아니야.”

말을 마친 임쟁이 먼저 떠났고 그 뒤로 목진 등이 따랐다. 곧 상대편을 만날 거란 생각에 잔뜩 경계하였다.

* * *

짙은 영무(靈霧) 속에 있는 서황경으로 깊숙이 들어가면 사람은 오감이 무뎌지게 된다. 그래서 이곳에는 특이한 영수가 많이 존재했다. 그들은 영무를 빌어 몸을 은닉해 적을 공격하기 때문에 상대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래서 이곳에 와서 보물을 찾는 사람이 지극히 적은 것이다.

그때 서황경의 한 산봉우리에서 열 명 가까이 되는 사람들이 천천히 주위를 훑고 있었다.

살기 가득한 무리에서 가장 앞장선 이는 검은색 도포에 장검을 지녔고 미간에는 흑룡의 무늬가 새겨져 있었다. 그는 바로 임쟁 등의 목표인 마룡자였다.

“심창생과 이현통은 안개의 골짜기에 숨어들었어. 이번엔 더는 도망칠 수 없을 거야.”

마룡자 뒤에 서 있던 회색 도포의 사내가 씨익 웃으며 말했다. 사내의 움푹 파인 눈에서 교활함과 잔혹함이 묻어났다. 음산하지만 강력한 영력 파동이 체내에서 흘러나와 영무마저도 그 주위에는 모이지 않았다.

그는 바로 현상방 7위의 왕음귀(王陰鬼)로 통천경 초기의 실력자였다.

이에 마룡자가 담담하게 웃으며 말했다.

“북창령원의 구원조도 곧 도착하겠지?”

“황급히 오느라 사람을 많이 모으지는 못했을 거야. 대신 최정예들로만 구성되어 있을 테니 형전 삼대장도 분명 있겠지.”

옆에 있던 회백색 도포를 입은 메마른 사내가 짙은 안개 쪽을 바라보며 말했다.

“천하의 목골이 설마 두려워 그런 말을 하는 거야?”

선홍빛의 커다란 도끼를 등에 짊어진 튼실한 사내가 피식 웃으며 물었다.

“귀웅, 조심해서 나쁠 건 없어. 너도 하마터면 임쟁 손에 죽을 뻔했잖아.”

목골이 담담하게 말했다.

“그때는 내가 방심했어. 다시 만나면 반드시 내 도끼로 녀석의 몸뚱이를 반으로 가를 거야.”

귀웅이 눈을 부릅뜨고 살기 가득한 얼굴로 말했다.

“그만 싸워.”

마룡자가 인상을 찌푸리며 말하고는 여태껏 한마디도 하지 않은 푸른색 도포를 입은 사내를 바라봤다. 평범하게 생긴 사내의 두 눈은 어두운 곳에 숨은 독사처럼 음산한 기운이 풍겼다.

“오갑, 준비는 다 됐어?”

그는 현상방 5위의 오갑으로 무리 중 유일한 5급 영진사였다.

“벌써 끝냈지. 물고기들이 미끼를 물기만 하면 돼.”

오갑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됐어.”

“먼저 심창생과 이현통을 잡지 않고?”

목골이 인상을 찌푸리며 묻는 말에 마룡자가 안개가 짙은 곳을 바라보며 답했다.

“걱정하지 마, 그들은 절대 도망치지 못해. 우리가 그들을 잡을 능력이 안 돼서 여태껏 내버려 둔 줄 알아?”

“그럼 북창령원의 구원조를 불러오려고 일부러 기다렸단 말이야?”

목골의 질문에 마룡자가 사악하게 웃으며 답했다.

“심창생과 이현통 두 명으로 만족할 내가 아니지. 구원 조도 다 내 거야! 내가 그들을 죽이면 사람들 반응이 어떨지 무척 궁금한걸? 북창령원이 발칵 뒤집히겠지?”

이에 목골 등은 소름이 끼쳤다.

마룡자는 참 독한 인간이었다. 곧 마주칠 최정예 구원 조마저 이들 손에 죽으면 북창령원은 엄청난 혼란에 빠질 게 분명했다.

* * *

슈슉!

십수 명이 영력을 휘감고 신속하게 황원을 넘고 있었는데 그중 일부는 손에 영기를 쥐고 언제든지 싸울 준비가 되어 있었다.

바로 서황경 내부로 향하고 있는 임쟁 일행이었다.

속도를 최대한 끌어올린 이들 무리는 상대편에게 발각될까 봐 영력도 최소한으로 줄이고 영수도 최대한 피해 반 시진 만에 서황경 깊숙한 곳에 들어섰다.

목진은 주위를 훑어보고는 안색이 어두워졌다. 안개가 자욱한 공간에서 영기의 파동이 느껴졌다.

“서황경 내부에는 영무가 그윽해 이곳에 들어오면 오감이 무뎌져. 심창생과 이현통도 이점을 알고 이쪽으로 도망 온 것 같아.”

임쟁이 먼저 입을 열었다.

“매복하기도 쉬운 곳이죠.”

목진이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하는 말에 임쟁 등도 동의하는 눈치였다.

이때, 목진이 낙리에게 다가가 속삭였다.

“내 옆에 꼭 붙어있어. 무슨 일이 벌어져도 절대 떨어지지 마.”

깊숙이 들어갈수록 불안해진 목진은 더욱 경계하며 말했다. 이에 낙리가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어느덧 영무가 점차 짙어져 코앞도 제대로 보이지 않게 되었고, 사람들의 오감은 점점 무뎌져 갔다. 그들은 천천히 날아 짙은 안개 속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그때, 목진이 영무에서 전해진 이상한 파동을 감지하고는 곧바로 소리쳤다. 영진과 비슷한 파동이었다.

“조심!”

목진은 순간 낙리를 확 끌어안았는데 영무가 미친 듯이 요동치더니 공간이 일그러지며 악마의 입처럼 목진 일행을 전부 삼켰다.

그때, 산봉우리에 있는 오갑이 눈을 번쩍 뜨더니 사악하게 웃으며 말했다.

“물고기들이 미끼를 물었군.”

이에 마룡자도 씨익 웃으며 손님을 맞이하러 떠났다.

“움직여.”

마룡자의 살기 가득한 목소리가 안개를 뚫고 전해졌다.

슈슉!

산봉우리에 있던 사람들도 바로 마룡자의 뒤를 따랐다.

그들은 이번 기회에 북창령원의 최정예 부대를 모조리 죽여 더는 자신들을 현상방에 올리지 못하게 할 속셈이었다.

가장 먼저 정신을 차린 목진은 체내의 영력을 폭발해 자신과 낙리의 주위에 보호막을 형성했지만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공간 파동이 사라지자 목진은 낙리를 안고 한 산봉우리에 내려앉았는데 안개 자욱한 공간에는 별다른 움직임이 없었다.

그들은 아직 서황경의 깊숙한 곳에 있었지만 공간 파동으로 인해 무리와 흩어졌다.

“그들이 벌써 우리를 발견한 것 같아.”

낙리가 주위를 훑어보며 하는 말에 목진도 동의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갑자기 일어난 변고에 불안해진 목진은 다른 사람들이 걱정되었다.

“공간 파동이 너무 약해 우리와 멀리 떨어지지는 않았을 거야. 대신 상대편에서 우리를 하나씩 격파하는 데는 시간이 충분해.”

낙리가 속삭이는 말에 목진은 인상을 찌푸리며 잠시 사색에 빠졌다.

“일단 사람들을 찾자.”

이번 임무는 아주 위험한데 상대가 숨어들어 이들을 갈라놓기까지 했으니 상황이 불리해졌다.

이에 낙리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목진이 빠르게 반응하지 않았다면 두 사람은 함께 있지 못했을 것이다.

목진은 낙리 앞에 서서 흑염이 깃든 영력을 끌어올리고 잔뜩 경계한 채 짙은 영무를 가르며 나아갔다.

슉!

그때, 목진이 갑자기 뒤로 물러서자 난폭한 빛줄기가 영무를 가르며 소년이 서 있던 자리를 공격했고 대지가 흔들리며 커다란 균열이 일었다.

이에 목진이 앞쪽을 바라보자 검은색 장창이 그곳에 꽂혀 격렬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잇따라 다른 쪽에서도 영무를 가르는 소리가 들리며 붉은색 빛줄기들이 날아들었다.

낙리는 수중의 장검을 휘둘러 이들을 전부 막았다.

그러자 어디선가 손뼉 치는 소리가 들려오더니 안개가 가시며 두 사람이 목진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우뚝 솟아오른 거대한 암석에는 두 사람이 앉아있었는데 하나는 붉은색 도포를 입고 얼굴에는 커다란 흉터가 있었다. 게다가 손바닥에 십수 갈래의 적망이 떠 있었는데 이는 붉은색 비수로 녀석의 손바닥을 마음껏 휘젓고 다녔다.

그리고 다른 한 명은 메마른 체형에 무거워 보이는 흑창을 8개나 짊어지고 있었다.

두 사람은 사냥감을 노리듯 목진과 낙리를 바라보며 씨익 웃었다.

“우리가 운이 좋았어. 이렇게 아름다운 여인을 만났잖아.”

두 사람을 훑어보던 붉은색 도포를 입은 사내가 낙리를 보는 눈빛이 예사롭지 않았다.

“처음 보는 학생인데 신생인가? 북창령원에서 얼마나 급했으면 이런 사람들을 보냈을까?”

메마른 체형의 사내가 입맛을 다시며 말했다.

“화천경 밖에 안 되는 학생을 파견하다니, 북창령원도 이젠 한물갔네.”

붉은색 도포를 입은 사내는 목진을 쓰윽 훑더니 피식 웃었다. 화천경 후기밖에 안 되는 녀석이 사람을 구하러 나섰다는 것이 우스웠다.

“기회를 줄 테니 이 여자아이는 두고 얼른 도망쳐. 그럼 목숨만은 살려줄게.”

붉은색 도포의 사내가 손가락을 튕겨 십수 갈래의 적망을 점차 빨리 회전시키며 하는 말에 목진은 무덤덤하게 입을 열었다.

“너희가 현상방 7위인 적어와 8위인 모장이지?”

“우리에 대해 연구 좀 했나 보지?”

붉은색 도포를 입은 적어가 비수 하나를 집더니 혀로 날름거리며 살기 가득한 얼굴로 목진을 바라봤다.

“입은 그만 놀리고 빨리 꺼져. 우린 이렇게 예쁜 여인은 처음이라 너 따위와는 말하고 싶지 않아!”

이때, 맑은 검음이 들리더니 날카로운 검기가 엄청난 속도로 대지를 가르며 적어의 얼굴로 향했다. 흑창이 그 옆에 나타나 검기에 맞섰으나, 검기는 대지를 가르며 흑창을 물리쳤고 적어의 얼굴에 흔적을 남겼다.

이에 적어는 안색이 어두워져 뒤로 물러나 목진 옆에 검은색 장검을 쥐고 자신을 노려보는 소녀를 바라봤다.

“한 성격 하네.”

적어는 이를 악물고 얼굴에 난 피를 닦더니 살기를 품은 채 말했다.

“저 녀석은 나한테 맡겨.”

낙리가 목진의 동의를 구했다. 저 더러운 녀석을 직접 처리하고 싶었다.

“두 팔만 자르고 목숨을 살려둬.”

목진이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하는 말에도 살기가 느껴졌다. 이에 낙리가 생긋 웃으며 말했다.

“좋아.”

“저것들을 당장 죽여!”

적어와 모장은 통천경 초기인 소녀를 상대하기는 조금 어렵다고 생각했지만, 화천경 후기인 목진은 소녀에게 짐만 될 거라고 여겼다.

실력도 안 되는 녀석이 감히 자신들 앞에서 우쭐거리는 것이 우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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