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5화. 해독
서황경 깊숙한 곳에 있던 대지가 움푹 파여 주위에 커다란 균열이 일자 그곳에 있던 산봉우리가 와르르 무너졌다.
퍽!
그 위에 누군가 내려앉아 거대한 암석이 가득한 흙 속에 묻힌 사람을 들어 올렸다.
마룡자는 중상을 입고 피범벅이 되어 혼미한 임쟁을 들고 다른 쪽으로 향했다.
“두 번째 녀석을 처리할 차례인가…….”
목진은 고요한 동굴에서 눈을 꼭 감고 마음을 움직여 구유를 소환했다. 수면 상태로 진화 중인 구유작과 교류할 방법은 이것밖에 없었다.
비록 우둔한 방법이긴 하나 구유작을 깨워 불사화를 얻을 수만 있다면 상관없었다. 구유화로 심창생과 이현통의 용마독을 없애는 시간에 임쟁 등은 다 죽을 수도 있었다.
심창생과 이현통은 감히 목진에게 말을 걸지 못했다. 용마독으로 잔뜩 언짢아진 두 사람은 목진이 정말 이 골칫덩어리를 해결해 줬으면 하는 바램이었다.
비록 큰 기대는 걸지 않았지만 희망이 없는 것보다는 나았다.
목진은 식은땀을 흘리며 조금 다급해진 마음으로 계속해서 구유작을 소환했다.
“구유, 제발! 한 번만 도와줘!”
이때, 검은색 알이 파르르 떨리더니 표면에 자금색 무늬가 나타나 점차 짙어지더니 불씨를 내뱉었다.
미약해 보이는 보라색 불씨에서 영생불사의 파동이 일었다.
목진은 흥분을 간신히 가라앉히며 두 눈을 번쩍 떴는데 수중에 보라색 화염도 함께 나타났다.
치직!
이와 동시에 공간이 일그러졌고 이루 말할 수 없는 파동이 퍼지며 동굴이 화로처럼 뜨거워졌다.
심창생과 이현통도 미약한 보라색 화염 속에 깃든 무서운 힘에 온몸을 파르르 떨었다.
“이건 뭐지?”
심창생과 이현통이 서로 눈을 마주치며 놀란 듯 묻자 목진은 무거운 짐을 내려놓은 듯 숨을 내뱉었다.
비록 불사화를 한 갈래밖에 얻지 못했지만, 이는 구유화에 비하면 훨씬 강력했다. 이정도 양이면 심창생과 이현통 체내의 용마독을 없애기에 충분했다.
“이번엔 될 거예요.”
목진이 웃으며 하는 말에 심창생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목진은 깊게 숨을 들이켜며 손가락을 튕겼는데 보라색 화염이 퍼져나가 불막을 형성해 심창생을 감쌌다.
심창생은 피부가 뜨거워져 계속해서 땀을 흘렸고 엄청난 고통에 온몸을 파르르 떨었다.
“아파도 참아요.”
불사화는 목진이 제어하기에 위력이 너무 세서 심창생의 체내에 들이지는 못했다. 잘못하면 심창생은 바로 잿더미가 될 수도 있었다.
이에 심창생은 이를 악물며 고개를 끄덕였다. 너무 아파 온몸이 부들부들 떨리고 핏대가 잔뜩 선 것이 무서워 보였다.
그렇게 보라색 화막은 은은한 빛을 발하며 계속해서 심창생 피부 표면에 난 흑반을 태웠는데 그 속에서 검은색 독기가 조금씩 스며져 나오기 시작했다.
악!
심창생은 눈이 빨갛게 달아올라 고함을 지르며 참느라 애썼고 점차 많은 검은색 독기가 빠져나오며 흑반이 계속해서 작아졌다.
어느새 심창생 피부에 생겼던 독반이 완전히 사라지자 목진은 조금 어두워진 보라색 화염을 거뒀다.
이와 동시에 심창생의 암담했던 눈은 다시 밝아졌고 천지의 영기를 흡수하며 영력을 회복하기 시작했다.
용마독의 억제에서 벗어난 심창생은 다시 생기를 되찾았다.
이에 목진은 조금 흥분돼 보이는 이현통에게 고개를 돌려 웃으며 말했다.
“당신 차례에요.”
이현통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눈을 꼭 감고 곧 시작될 고통을 받아들일 준비를 했다.
이현통은 심창생 보다 중독 현상이 더 심해 해독 시간이 더 오래 걸렸고, 한참 후에야 마지막 한 줄기의 독기를 끄집어냈다.
후.
혈색을 되찾은 이현통은 아파할 시간도 없이 바로 수련 상태에 돌입했다.
두 사람이 무사한 것을 확인한 목진은 그제야 이마에 난 식은땀을 닦고 많이 어두워진 불사화를 물끄러미 바라봤다.
작은 화염이지만 목진한테는 신기나 다름없었다.
“체내에 흡수할 수 있을까?”
다른 사람은 몰라도 구유화를 자신의 영력과 융합한 목진은 못 할 것도 없단 생각이 들었다. 또한, 구유화와 불사화는 비슷한 점이 많아 자신의 영력을 배척하지 않을 것 같았다.
이에 목진은 바로 불사화를 삼켰다.
아니나 다를까, 체내에 들어간 불사화는 아무런 폭동도 일으키지 않았고, 조심스럽게 기해에 불어넣었는데도 신백과도 배척 반응을 일으키지 않았다.
목진은 기분 좋은 듯 피식 웃으며 심창생과 이현통을 바라봤다. 그들은 아직 몸을 회복하느라 바빴는데 그 뒤에 검은색 액체가 떠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심창생과 이현통에게서 빠져나온 용마독이었다.
이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목진은 서서히 어두워지는 중지에 눈길을 돌렸다. 중지에는 흑신뢰독을 봉인했는데 이는 용마독보다 훨씬 강한 독이었다.
“용마독까지 봉인하면 더 강해지겠지?”
목진은 망설이지 않고 곧바로 용마독을 중지에 흡수시켰다. 그는 심창생과 이현통을 괴롭힌 용마독이 전혀 무섭지 않았다. 체내에 불사화가 있을 뿐만 아니라 흑신뢰독까지 잡을 수 있는 자신한테 용마독은 아무런 해도 끼치지 못할 것이다.
그는 용마독을 흡수해 더 짙어진 중지를 바라보다 그곳에서 풍기는 음산한 기운에 소름이 끼쳐 고개를 흔들었다. 그러나 바로 진정하고 손가락을 앞쪽 산을 향해 가볍게 휘두르자 은은한 흑망이 날아갔다. 이에 넓지는 않지만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깊숙한 구멍이 생겨났다.
엄청난 부식력이었다.
북명룡곤의 봉인이 아니었으면 목진은 두 가지 독을 중지에 흡수해 필살기로 둘 생각을 하지 못했을 것이다.
쿵!
목진의 손이 다시 원래 색깔로 돌아오자마자 동굴 속에 웅장한 영력이 폭발해 산 전체가 격렬하게 떨리며 커다란 균열이 생겼다.
심창생과 이현통이 영력을 전부 회복해 다시 눈을 뜬 것이다.
이번 일을 통해 두 사람은 영력을 회복했을 뿐만 아니라 실력이 한층 더 높아졌다.
“축하해요.”
목진이 웃으며 하는 말에 심창생과 이현통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북창령원 천방 1, 2위가 드디어 제 실력을 되찾았다.
두 사람은 더 웅장해진 체내의 영력을 실감하며 목진에게 눈길을 돌렸다.
“고마워.”
두 사람의 말에 왠지 진심이 느껴지지 않았지만 언젠가 자신에게 변고가 있으면 무조건 맨발로 달려올 거란 것을 잘 알았다. 이에 목진은 그저 웃어넘겼다.
“영력을 회복했으니 이만 떠날까요?”
임쟁 등이 걱정되어 건넨 목진의 말에 심창생과 이현통도 고개를 끄덕이더니 한기 어린 눈빛으로 동굴 밖을 바라봤다.
그들은 이번 기회에 마룡자와의 싸움을 끝내기로 마음먹었다!
커다란 분지에 영무가 너무 짙어 주위가 제대로 보이지 않았는데 그 중심에서 지극히 난폭한 영력 파동이 부단히 퍼져 영무를 내쫓았다.
쿵! 쿵!
영력이 솟구치며 검기가 솟아오르더니 대지가 움푹 파였고 이를 중심으로 커다란 균열이 계속해서 생겨났다.
이는 두 사람의 싸움으로 생긴 것으로 그중 한 명은 검은색 치마를 입은 늘씬한 여인으로 검은색 장검을 쥐고 날카로운 검기를 내뿜고 있었다.
그녀는 다름 아닌 낙리였지만 상대는 오갑이 아닌 현상방 3위인 목골이었다.
목골의 피부에 은은하게 백망이 드러났는데 뼈에서부터 스며져 나오는 것이 나약해 보이는 것과는 달리 강력한 힘이 깃든 것 같았다.
골도를 지닌 목골과 낙신검을 소유한 낙리의 대결에 이곳 공간마저 찢어지는 것 같았다.
목골 뒤쪽 산봉우리에 서서 지켜보던 사람들도 놀란 눈치였다. 아무도 목골이 이토록 예쁜 소녀에게 발목을 잡힐 줄 몰랐다.
“북창령원에 대단한 학생이 들어왔군. 젊은 나이에 엄청난 실력을 갖췄네.”
장창을 거머쥔 한 사내가 조금은 놀란 듯 두 사람을 바라보며 웃었다.
“등륭, 저 여자아이는 네가 상대하기엔 버거울 것 같아.”
오갑이 담담하게 웃으며 말했다. 낙리는 오갑과 싸우며 녀석이 친 수많은 영진을 단칼에 베어 버렸다.
오갑의 말이 귀에 거슬리긴 했지만 등륭은 대수롭지 않은 듯 어깨를 들썩였다. 오갑은 현상방 5위밖에 안 되지만 5급 영진사라 통천경 중기인 목골이나 귀웅보다 더 상대하기가 어려웠다.
“모장과 적어는 실패했다며?”
이에 오갑은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목진이라 불리는 녀석한테 졌다고 들었는데 지금 녀석은 심창생과 이현통을 구하러 갔을 거야.”
“구하면 뭐 해, 용마독에 중독된 이상 어딜 데리고 가든 짐밖에 안 돼.”
윗옷을 벗은 남자가 호랑이 머리 문신을 자랑하며 혀를 내둘렀다. 그는 다름 아닌 현상방 9위인 왕호(王虎)였다.
“마룡자는 아직이야? 형전 삼대장을 쓰러뜨리는데 생각보다 오래 걸리네.”
등륭이 주위를 살피며 하는 말에 오갑이 담담하게 웃었다.
“형전 삼대장은 보통 인물이 아니잖아. 제아무리 마룡자라도 전부 쓰러뜨리려면 시간이 걸릴 거야. 그들이 아무리 반항해봐야 결과는 똑같으니 우리는 이 녀석들만 잘 살피면 돼. 마룡자가 오면 바로 해결할 수 있어.”
그는 독사같이 차가운 눈빛으로 먼 곳을 바라보며 말했는데 그곳에는 학요, 소훤 등이 있었다.
그들은 굳은 얼굴로 오갑이 있는 쪽을 바라봤다. 이미 오갑 등과 힘을 겨뤄본 이들은 형전 삼대장이 없으면 승산이 없을 거라고 여겼다. 그런데 형전 삼대장이 아직 나타나지 않아 괜히 불안했다.
상대편에서 이들을 잡으려 할 때, 낙리가 마침 나타나 그중 실력이 제일 뛰어난 목골의 발목을 잡고 그나마 시간을 끌고 있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 또한 오래 버티지 못할 것 같았다.
“목진은 도대체 어딜 간 거야?”
서황이 더는 참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
지금 그들에게 필요한 건 통천경 중기와 맞설 수 있는 사람인데, 이는 형전 삼대장 외에 낙리와 목진만 가능했다.
낙리는 이미 목골과 싸우고 있고 목진은 행방이 묘연하니 소훤 등은 어떻게 된 일인지 몰라 고개를 흔들기만 했다. 서황경에 들어선 뒤로 갈라져 아무도 목진이 어딜 가서 뭘 하고 있는지 몰랐다.
“임쟁 선배 쪽에 문제가 생긴 것 같아.”
형전 고수 한 명이 안색이 어두워져 말했다.
“마룡자가 아직도 나타나지 않은 걸 보니 임쟁 선배 등을 상대하러 간 것이 분명해.”
이에 소훤 등은 묵묵히 고개를 숙였다. 지금 같은 상황에서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임쟁 등이 마룡자와 싸워 이기기를 기원하는 것밖에 없었다.
퍽!
그때 목골과 치열하게 싸우고 있는 낙리의 웅장한 검기가 검기 하천을 이루어 목골에게 향했다.
검기에 맞은 목골은 살이 찢어져 그 속에 든 뼈가 드러났는데, 은은한 빛을 발하는 녀석의 뼈는 금속처럼 단단해 보였다.
목골은 몸이 유난히 단단해 낙리의 검기에 맞고도 아무렇지 않았다.
“귀찮은 여인이네.”
피투성이가 된 자신을 본 목골이 씨익 웃으며 말했다.
“그런데 왜 이렇게까지 버티고 있을까? 형전 삼대장을 기다리는 것 같은데 마룡자가 분명 그들을 쓰러뜨릴 거라 허황된 꿈은 이만 깨는 게 좋을 텐데? 마룡자만 오면 너흰 정말 끝이야.”
낙리는 상대방의 말을 완벽히 무시한 채 더 웅장해진 검기로 공격을 개시했다.
슉!
그런데 이때, 멀리서부터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들려왔고 다들 화들짝 놀라 고개를 돌렸다. 짙은 영무 속에서 누군가 악마의 신처럼 강림하였다.
검은색 도포를 입고 흑검을 짊어진 녀석은 다름 아닌 미간에 흑룡이 그려진 마룡자였다!
그 뒤로 피투성이가 된 세 사람이 떠 있었는데, 중상을 입고 혼절한 것 같았다.
“형전 삼대장이야!”
소훤 등은 화들짝 놀라 온몸이 파르르 떨렸다.
형전 삼대장도 마룡자에게 상대가 안 된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다.
“드디어 쓰러뜨린 거야?”
산봉우리에 서 있던 귀웅이 마룡자 뒤쪽에 떠 있는 세 사람을 보더니 호탕하게 웃으며 물었다.
이에 마룡자는 무덤덤하게 고개를 끄덕이고 손을 휙 적어 세 사람을 산봉우리에 내던지며 말했다.
“역시 형전 삼대장이야. 한 놈씩 쓰러뜨리느라 생각보다 시간이 오래 걸렸어.”
말을 마친 녀석은 목골과 싸우고 있는 낙리에게 고개를 돌리더니 조금 놀란 듯 말했다.
“심창생과 이현통, 형전 삼대장 외에 북창령원에 저렇게 훌륭한 학생이 있었네?”
“그 외에 내가 영무 속에 친 감응 영진을 차단한 녀석도 있어. 그는 아마 심창생과 이현통을 구하러 갔을 거야.”
오갑이 담담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들을 구하러 갔다고?”
마룡자가 인상을 조금 찌푸리며 생각하더니 다시 미소 지으며 말했다.
“심창생과 이현통은 내 용마독 때문에 폐인이나 마찬가지야. 구해봐야 짐밖에 되지 않으니까 내버려 둬. 그들도 곧 내 손에 잡힐 거야.”
그는 이리 말하며 소훤 등을 쓰윽 훑어 실력을 확인하더니 바로 눈길을 거두었다. 그들은 전혀 위협적인 존재가 아니었고 상황도 예상했던 대로 흘러가 걱정할 일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