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3화. 삼대 지존
마주가 사라지자 주위를 감쌌던 엄청난 살기도 사라져 따스한 햇볕이 다시 내리쬐었지만, 사람들의 두려움은 전혀 가시지 않았다.
그들은 검은색 마주가 도성에 내려앉았더라면 수많은 이들이 죽었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저절로 소름이 끼쳤다.
한편, 어느새 눈동자가 원래대로 돌아온 목진은 순간 안색이 창백해져 피를 토했다.
살기의 힘이 막강해 전세를 역전하기엔 충분했지만 목진한테도 엄청난 영향을 미쳤다. 그가 뇌신체를 수련하지 않았더라면 분명 혼절했을 것이다.
목진은 입가의 피를 닦고 옷깃을 휘날려 아래쪽의 자욱한 안개를 거뒀는데 커다랗게 파인 대지에 피투성이가 된 마룡자가 누워있는 것이 보였다. 온몸의 뼈가 부서진 듯 전혀 움직이지 못했다.
마룡자는 더는 전처럼 우쭐대지 못했고 모양새가 꼭 주인을 잃고 어쩔 줄 모르는 짐승 같았다.
이러한 광경에 사람들은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기세등등했던 마룡자가 북창령원의 신생 따위에 질 줄은 아무도 몰랐다.
그때 목진이 고개를 돌리자 등륭 등은 저도 모르게 고개를 숙였다. 목진이 중상을 입어 지금 싸우면 이길 수도 있다는 걸 알았지만, 일전의 싸움으로 싸울 의지를 완전히 잃어버렸다.
이에 목진은 소훤 등에게 손짓해 서황대에 있는 형전 삼대장을 구했고 다시금 살기 가득한 눈으로 마룡자를 노려봤다. 비록 녀석이 중상을 입었지만 지금 죽이지 않으면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일이었다!
하여 목진이 손가락을 가볍게 튕기자 흑염이 깃든 영력이 쏜살같이 마룡자의 머리로 향했다.
이곳에서 마룡자의 목숨을 거두려는 작정이었다.
전성기였으면 쉽게 피했을 목진의 공격을 영락없이 맞고 죽어야 한단 생각에 마룡자는 순간 사색이 되었는데, 순간 주위 공간이 일그러지더니 보이지 않은 막이 형성되어 그를 감쌌다.
자신의 공격이 어이없게 무산되자 목진은 바로 정색하며 외쳤다.
“누구야?!”
낙리 등도 흠칫하더니 잔뜩 경계하며 주위를 살폈다. 마음껏 공간을 조종할 수 있는 사람은 절대 이들이 상대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었다.
“북창령원에서 좋은 학생을 거뒀군.”
담담한 웃음소리가 울려 퍼지자 사람들은 숨죽이며 고개를 들었다.
푸른색 도포를 입은 사내도 이내 정색하며 일그러진 공간을 바라봤는데 액체 한 덩이가 흘러나오더니 서서히 형태를 갖춰 검은색 도포를 이은 중년인으로 변했다.
백발에 그윽한 두 눈을 지닌 그는 뒷짐을 진 채 담담하게 웃으며 목진을 바라봤다.
“흑룡지존?”
이현통 등도 화들짝 놀랐다.
용마궁에서는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흑룡지존까지 불렀단 말인가!
서황성에 모인 사람들은 잔뜩 놀란 눈으로 흑룡지존을 바라봤다. 주위에는 영력 파동이 느껴지지 않았지만 은은하게 발산하는 위압감에 아무도 함부로 입을 놀리지 못했다.
지존은 손가락 한 번으로 서황성 전체를 없앨 수 있는 막강한 존재였고 북창대륙에서도 최고라 말할 수 있었다!
“너한테서 익숙한 냄새가 나더구나.”
흑룡지존이 웃으며 목진에게 말했다. 그는 마룡자는 한 번도 쳐다보지 않고 한기 어린 눈빛으로 목진만 노려봤다.
“백룡지존한테서 대서미마주까지 얻었나보구나.”
흑룡지존이 한숨을 쉬더니 손을 벌리며 말을 이어갔다.
“그런데 그건 우리 용마궁의 물건이니 돌려다오. 그럼 너희는 살려주마.”
이에 목진은 흠칫 놀랐다. 대서미마주의 본체는 건드리지도 않았는데 흑룡지존이 이를 발견할 줄은 몰랐다.
“꿈 깨요!”
목진이 이를 악물며 말했다. 상대가 아무리 지존이라 해도 대서미마주를 순순히 내줄 수는 없었다.
“후배를 공격하는 것은 옳지 않으나 용마궁의 보물을 되찾기 위해서라면 다들 나를 이해할 거야.”
흑룡지존이 담담하게 웃으며 주먹을 쥐자 목진 주위의 공간이 순간 응고되어 몸을 움직일 수 없었다.
이것이 바로 지존의 힘이었다. 목진이 아무리 수단과 방법이 많아도 그대로 당할 수밖에 없었다.
그때, 흑룡지존이 손가락을 가볍게 튕기자 목진 체내의 대서미마주가 미세하게 움직이는 것을 느꼈다. 만다라 꽃만 아니었으면 이미 체내에서 벗어나 흑룡지존의 손에 들어갔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뭐지?”
흑룡지존이 흠칫 놀라 목진을 바라보며 말했다.
“네 체내에도 보물이 들어있어 대서미마주의 살기를 견뎌냈던 것이었구나. 그러나 우리 용마궁의 물건은 오늘 반드시 되찾아야겠다.”
말을 마친 흑룡지존의 손바닥에 검은색 파문이 일더니 목진 체내의 대서미마주와 공명하듯 점차 격렬하게 떨었다.
목진은 대서미마주를 곧 잃을 것 같은 느낌에 안색이 점차 창백해졌다.
“이젠 내놔!”
흑룡지존이 씨익 웃으며 주먹을 쥐자 대서미마주가 격렬하게 움직이며 봉인을 뚫으려는 찰나, 목진 앞쪽 공간이 일그러지며 큼지막한 손이 목진의 어깨에 닿았다.
손에서 뻗어 나온 웅장한 영력은 목진 체내의 대서미마주를 다시 봉인하였고 옷깃을 휘날려 주위의 응결된 공간을 부수더니 안색이 어두워진 흑룡지존을 바라보았다.
“흑룡지존, 이렇게 나오면 안 되지 않나?”
무덤덤한 목소리에는 엄청난 위압감이 묻어났고 천지의 영기가 순간 움직임을 멈췄다.
엄청난 그의 실력에 사람들은 눈가가 파르르 떨렸다.
흑룡지존도 점차 차가워지는 눈빛으로 상대방을 바라보며 말했다.
“허허, 태창 원장이 이곳에 나타나다니, 예상 밖이군.”
“태창 원장이라니?”
“북창령원의 원장 태창이란 말인가?”
“저분까지 나타날 줄이야…….”
흑룡지존의 말에 서황성에 있는 강자들도 흠칫 놀랐다.
북창령원의 원장인 태창은 북창대륙의 유명인사로 실력으로만 놓고 봐도 최정예에 속했다. 서황성에 지존급 강자가 두 명씩이나 나타나다니 사람들은 꿈만 같았다.
막강한 실력을 지닌 지존급 강자를 본다는 것은 사실 하늘의 별 따기와 다름없는 일이었다. 그런데 이토록 쉽게 흑룡지존과 태창 원장 같은 거장을 봤으니 다들 믿기지 않는 것이 정상이었다.
한편, 목진은 체내의 격렬한 움직임이 사라져 숨을 길게 내뱉었다. 그는 자신 앞에 서 있는 사람을 보고는 이내 화색이 되었다. 태창 원장까지 나섰으니 더는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고마워요, 원장님.”
태창 원장이 아니었다면 목진 체내의 대서미마주는 이미 흑룡지존의 손에 들어갔을 것이다. 비록 지금은 이 물건을 완벽히 다루지는 못하지만 언젠가 완벽하게 조종할 수 있다면 분명 큰 도움이 될 것이라 확신했다. 그래서 절대 빼앗기고 싶지 않았다.
이에 태창 원장은 손을 저으며 그윽한 눈빛으로 목진을 바라봤다.
“너 이 녀석, 체내에 뭘 많이도 숨겼구나.”
태창 원장도 목진의 체내에 대서미마주가 들어있다는 것을 알아챘다.
“이 또한 너와 인연이 닿아서 이뤄진 것이겠지. 대신 흉물의 살기가 엄청나 체내에 묶어두고 있는 것이 해가 되지는 않을지 모르겠구나.”
말을 마친 태창 원장은 멀리 떨어진 심창생 등에게 고개를 돌렸다.
“그래도 이번 일은 내가 오히려 고맙다고 말하고 싶구나. 네가 아니었다면 북창령원은 체면을 차릴 수 없었을 거다.”
“별말씀을요, 원장님. 북창령원 학생으로서 응당 해야 할 일인걸요.”
목진이 히쭉 웃으며 하는 말에 태창 원장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이고는 그제야 안색이 어두워진 흑룡지존한테 눈길을 돌렸다.
“흑룡지존, 이번엔 자네가 너무 한 것 같네.”
그 말에 흑룡지존이 태창 원장을 노려보자 주위를 맴돌던 영기가 순간 흐름을 멈춘 듯 엄청난 압박감을 일으켰다. 사람들은 갑자기 몸이 무거워지며 체내의 영력도 응고되는 것 같았다. 역시 지존경의 강자가 내뿜는 위압감은 엄청 났다.
흑룡지존이 옷깃을 휘날리며 담담하게 웃었다.
“말이 지나치네. 후배들의 대결에 끼어들려는 것이 아니라 용마궁의 보물이 이곳에 나타나 되찾으러 온 것뿐이네. 우리는 이를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을 거라 태창 원장 측에서 먼저 내어주면 좋겠네. 그럼 용마궁에서도 당신이 베푼 은혜를 절대 잊지 않을 걸세.”
흑룡지존의 말에 사람들은 몰래 혀를 내둘렀다. 서로 죽이지 못해 안달이 난 사이에 은혜라니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아니나 다를까, 태창 원장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웃었다.
“목진이 이 물건을 얻은 것은 인연이 닿아 그리된 것이니 아무리 나라도 강요할 수는 없다네.”
그해, 백룡지존이 마주와 함께 용마궁을 벗어나지 않았더라면 북창령원과 용마궁은 더 오랫동안 싸웠을 거란 걸 잘 알고 있는 태창 원장은 태고의 흉기에 깃든 엄청난 힘을 빼앗기고 싶지 않았다.
흑룡지존은 한껏 정색하며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북창령원에서 지금 용마궁과 싸우겠단 말인가?”
이에 도성에는 순간 정적이 흘렀고 어느덧 허공에 떠오른 푸른색 도포를 입은 사내도 흠칫하였다. 북창령원과 용마궁의 싸움은 북창대륙의 거사나 마찬가지였다.
“흑룡지존, 혹시 지금 북창령원을 위협하는 건가?”
흑룡지존의 살기 가득한 눈빛에 태창 원장은 날카롭게 대응했다.
“그해, 우리가 패배했다고 북창령원을 두려워할 거라고 여기는 건가?”
흑룡지존은 말이 끝나기 무섭게 하늘 높이 날아올랐는데 뒤쪽에 영력 소용돌이가 일며 주위의 천지의 영기가 미친 듯이 몰려와 수천 장 크기의 검은색 그림자를 형성했다.
우뚝 솟아오른 검은색 그림자의 두 눈에는 커다란 용이 누워있는 것 같았고 숨을 쉴 때마다 광풍이 일며 무서운 힘을 방출해 천지마저 부들부들 떨었다.
이에 목진도 화들짝 놀랐다. 거대한 검은색 그림자에 비하면 자신은 벌레보다도 못한 존재란 생각이 들었다. 상대방이 공격하면 바로 즉사할 것이 분명했다.
이것이 바로 지존급 강자의 힘이었으니, 통천경과는 하늘과 땅 차이였다!
“지존 법신이라니. 정말 나와 싸우기라도 하겠다는 건가, 흑룡?”
태창 원장이 무덤덤한 표정으로 거대한 검은색 그림자를 바라보며 묻자 흑룡지존은 그저 차가운 눈빛으로 상대방을 바라볼 뿐이었다. 아무리 그라도 태창 원장을 이길 자신은 없었다.
또한, 일단 두 사람이 싸우면 바로 용마궁과 북창령원 사이의 대전으로 이어질 텐데 용마궁은 아직 그만큼의 준비는 되지 않았다. 그렇다고 이렇게 대서미마주를 내어주기는 싫었다.
이러한 생각에 흑룡지존은 잠시 조용해졌지만, 지존 법신은 아직 사라지지 않았고 사람들은 언제 벌어질지 모르는 대전에 잔뜩 긴장하며 이를 지켜봤다.
“두 분이 싸우기에 서황성은 너무 작지 않을까요?”
흑룡지존이 머뭇거리고 있을 때, 누군가의 웃음소리가 들려오더니 공간이 일그러지며 통로가 나타났다. 그 속에서 한 중년 남자가 걸어 나왔다.
패기 넘치는 사내는 절대 보통 사람이 아니었다.
“서극전 전주 서극지존(西極至尊)이야!”
사람들이 흥미진진한 얼굴로 허공을 바라봤다. 고귀한 지존급 존재가 세 명이나 한자리에 모인 것은 엄청난 일이었다.
그때 허공에 떠 있던 푸른색 도포를 입은 사내가 화색이 되어 부랴부랴 달려왔다.
“아버지.”
그는 서극전 소전주 서청해로 북창대륙의 젊은이 중 마형천 등과 비슷한 실력을 갖춘 엄청난 존재였다.
이에 서극전 전주는 서청해를 향해 가볍게 손을 젓더니 흑룡지존과 태창 원장한테 고개를 돌렸다.
두 사람이 나타난 것을 알아채고 바로 다가온 그는 서극전의 관할 범위 내에서 싸움이 일어나는 것을 원치 않았지만 북창대륙의 진정한 거물인 북창령원과 용마궁의 미움을 사고 싶지 않아 조심스러웠다.
“하하, 서극지존이었군.”
태창 원장이 이내 웃으며 말했다.
“말도 없이 와서 미안하네.”
이에 서극지존이 굽신거리며 인사했다. 비록 같은 지존이었지만 삼급 지존밖에 안 되는 그는 태창 원장에 비하면 실력이 훨씬 뒤처졌다.
“나를 봐서라도 이곳에서 싸우지 않는 것이 어떨까요?”
다른 사람들이었다면 바로 물리쳤을 테지만 북창대륙의 거장들을 차마 함부로 대할 수는 없었다.
이에 흑룡지존도 더는 말하지 않고 옷깃을 휘날리자 그림자가 위압감과 함께 서서히 사라졌다.